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무너진다…우리의 선택은?
-기술 혁신에 따른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
우아영 과학동아 기자
지난 3월, 서울에서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다.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 벌어진 것. 결과는 4대 1로 알파고의 승리였다. 인간이 기계에 졌다며 침통해 하는 반응이 쏟아지는 한편, 인공지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알파고 쇼크’ 이후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최첨단 기술의 다음 단계는 무엇이며, 우리는 과연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인공지능 서로 연결해 파급력 높이는 시대가 온다
인간 수준의 지능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에서 ‘시간문제’로 바뀔수도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한보형 포스텍 교수는 기자에게 “알파고는 ‘P-NP 문제’에서 우회로를 제시한 셈”이라며 “기존에는 시도하지 못했던 복잡한 문제에까지 인공지능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P-NP 문제는 컴퓨터과학계의 대표적인 미해결 난제로, 컴퓨터가 풀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한다는 논증이다. 어떤 복잡한 문제는 최적 값을 찾는 데까지 계산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결국 답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인간 수준으로 생각하는 고도의 인공지능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겨 왔다. 2013년 구글이 유튜브에 있는 고양이 얼굴을 구분하는 데만 중앙처리장치(CPU) 1만6000개가 필요했다. 인간 지능을 구현하려면 연산 시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에 비해 컴퓨터 성능은 곧 한계에 도달할 전망이다.
사람들은 바둑도 이런 문제라고 여겼다. 그런데 알파고는 정확도를 희생하면서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으로 반전을 선사했다. 인공지능을 다양한 현실 문제에 적용할 때 이런 방법을 자주 시도하는데, 알파고는 그 ‘끝판왕’을 보여준 셈이다. 이런 방향으로 인공지능 연구가 계속된다면, 극단적으로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구현하는 것도 ‘불가능’의 영역에서 ‘시간 문제’로 바뀔 수도 있다.
가장 근 미래에 만나게 될 대표적인 인공지능은 ‘자율주행’이다. 복잡한 상황을 인식하고 융통적으로 판단을 해야만 하는 운전은 지금까지 인간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센서와 정보처리 기술,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자동차가 알아서 운전하는 시대가 됐다. 운전이 어려운 장애인이나 운전 하기를 원치 않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교통사고가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대부분의 교통사고가 인간의 실수로 인해 일어난다는 통계가 있다.
인간 지능을 구현하지 못하더라도, 그 수준으로 고도의 복잡한 일들을 할 줄 아는 네트워크가 등장할 건 자명하다.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영화 ‘터미네이터’ 속 ‘스카이넷’으로 대표되는 ‘강한 인공지능’이나 ‘초지능’은 당연히 나오기 어렵죠. 하지만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추세를 보면, 이미 초지능으로 가는 것처럼 보여요. 예를 들어, 구글의 자율주행 자동차나 애플의 시리, IBM의 왓슨과 같이 이미 뛰어난 성과를 낸 인공지능들을 서로 연결하면, 인간처럼 모든 걸 잘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생명공학+로봇공학+IT기술=인간의 기계화?
‘기계의 인간화’, ‘인간의 기계화’무너지는 경계
알파고는 인간의 뇌를 모사한 기계다. 지난해 세계 재난로봇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휴보’는 인간의 신체를 모사한 기계다. 다시 말해, 이런 기술은 ‘기계의 인간화’에 속한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또 다른 놀라운 흐름이 짚이고 있다. 바로 ‘인간의 기계화’다. 생명공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IT기술 등이 융합하면서 우리 신체에 기술적 산물들이 삽입되고 있다.
이미 전자 의수족, 전자 피부, 인공 장기 등 수많은 ‘인공 신체’가 연구 단계, 그리고 일부는 상용화 단계에 있다. 특히 망가진 망막 및 유모세포(소리를 생체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귓속 세포)를 각각 대체하는 인공 망막과 인공 와우는 전세계적으로 수십만 명의 시각∙청각 장애인에게 빛과 소리를 되찾아 주고 있다. 질병과 장애, 노화에 대한 우리의 대처가 지금까지는 ‘치료’였다면, 이제는 ‘대체’와 ‘강화’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신체는 설계 가능한 기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최근 생명공학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생물의 유전자를 직접 조작할 수도 있다. 지구에 생명체가 처음 등장한 이래 지금까지 발생과 변이를 통한 자연선택으로 진행되던 진화가 인간의 기술적 영역으로 넘어온 셈이다. 먼 일이 아니다. 지난 2월 영국 정부는 인간 초기 배아에 유전자 편집 기법을 적용하는 연구를 승인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맞춤형 아기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는 슈퍼 인간이 탄생할 수도 있다.
인간을 닮은 기계가 개발되고, 인간이 기계가 되는 이 같은 기술의 흐름은 전통적으로 인간과 기계 사이에 존재한다고 여겨졌던 모종의 경계가 급격하게 허물어지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매즐리시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인간이 특권적 지위를 가졌다는 생각의 배후에는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에 근본적인 불연속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 불연속이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문명의 대전환기…우리에겐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오류일까? 고도의 계산결과일까? 윤리의 정립과, 기술적 안전장치 마련 필요
장차 뚜렷한 명암을 드리울 최첨단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 공감대를 형성하고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시점이다.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 문제는 역시 일자리 문제. 미국 펜실베니아대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 교수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로봇들이 일으킬 반란이 아니라, 로봇을 소유한 극소수 자본가 계급을 위해 노동이 기술로 대체되는 것이 미래의 진정한 위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3월 13일, 영국의 최대 국영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로보어드바이저(투자 자문 인공지능)’를 도입하면서 투자 상담 업무를 해 온 550여 명을 해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네트워크에 연결돼 최적의 운전 법으로 최단 시간 내에 목적지까지 주파하는 자율주행 자동차는 곧 직업 운전자들의 자리를 위협할 것이다. 천문학적인 수술비를 대고 인공 신체를 이식해 두뇌 능력을 극대화한 일부 사람들이 고등 일자리를 차지하면서 사회의 양극화가 더 심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보다 탄탄한 사회적 안전망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기술 윤리도 정립해야 한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이 진행되면서 해설가는 여러 번 “알파고가 실수를 한 것 같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결과는 알파고의 승리. 실수가 아니라 인간보다 훨씬 더 먼 수까지 내다 본, 계산된 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고 평가했다.
여기서 윤리적인 딜레마가 생긴다. 예를 들어, 알파고 같은 성능이 뛰어난 인공지능이 의료시스템에 적용됐다고 가정해보자. 어느 날 인간 의사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진단명과 치료법이 제안됐다면,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인공지능이 오류를 낸 것이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까지 고려한 고도의 계산 결과라고 받아들여야 할까. 인간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기계화된 인간은 해킹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이다. 몸 속에 심어진 인공장기나 두뇌에 꽂은 메모리 칩을 해킹해 개인의 생체정보를 빼내고 누군가를 조종할 지도 모른다. 만약 신체와 연결한 각종 기계 장치들이 오작동해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면, 그것의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도 미래 사회의 꽤 골치 아픈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 기술응용에 대한 공통적인 안전 장치가 필요하다.
휴머노이드, 인공지능, 그리고 기계가 된 인간. 전통적인 개념의 인간과 다르지만, 인간과 유사한 새로운 존재와 함께 살아야 할 날이 곧 도래할 것이다. 신상규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는 과학동아 6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아마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인공지능 등 다른 존재들과 구분되는 인간의 우월성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인간과는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며 번성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노력일 것”이라고 적었다.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긍정적인 발전을 허용하면서도 가능한 심각한 부작용을 예리하게 상상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