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알뜰주유소의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서울경제신문 산업부 유주희 기자
대부분의 기자는 평균적으로 2, 3년에 한번씩 담당 분야를 바꾼다. 예를 들어 사회부에서 경찰서, 법원을 출입하며 각종 사회 이슈를 취재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산업부나 정치부, 문화부 등으로 옮겨다니는 식이다. 거의 모든 언론사가 이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기자가 담당하고 있는 정유ㆍ화학 업계는 다른 분야와 비교했을 때 기자 입장에서 ‘뉴스거리가 별로 없는’축에 속한다. 우선 내용이 어려운 데다 B2B 사업이 대부분이라 일반 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소식은 기름값 등락이 거의 유일하다. 대신 기름값이 오르면 소비자들이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며, 덩달아 정부의 주목도도 올라간다.
이런 가운데 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슈는 단연 ‘알뜰주유소’다. 지금까지 몇 차례 알뜰주유소에 관한 기사를 썼다. 정유ㆍ화학과 관련된 다른 기사는 별다른 반응이 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알뜰주유소 관련 기사는 쓸 때마다 정유사, 협회, 주유소 점주, 일반 소비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피드백이 왔다.
처음에는 왜 알뜰주유소가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기자이기 전에 소비자로서 기름값은 마땅히 저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1ㆍ2부로 나뉘어진 공급 구조 등이 난해하게 느껴진 것도 있었다.
알뜰주유소, ‘묘한 기름값’ 못 잡았다
하지만 알뜰주유소에 대해 알아갈수록‘구조적으로 잘못됐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 알다시피 알뜰주유소는“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에서부터 시작됐다.
기름값을 내려 서민 경제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목표에는 누구라도 공감할 것이다. 첫 알뜰주유소가 생긴 지 이제 4년여, 목표는 아직까지 달성되지 못한 상태다.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매일 업데이트되는 전국 주유소 판매가격을 내려받아 저가순으로 정렬해보면 50위권 내 알뜰주유소는 손에 꼽을 정도다.
7월 13일의 유가도 그랬다. 상위권 50개 주유소 중 알뜰주유소는 5곳에 불과했다. 물론 알뜰주유소 수가 1,120여곳으로 전체 주유소(1만2,000여곳)의 10%에 못 미치긴 하지만, 알뜰주유소가‘기존 주유소보다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출범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망스런 결과다.
6월 평균 판매가격을 봐도 정유 4사 중 가장 저렴했던 현대오일뱅크는 리터당 1,568.20원, 알뜰주유소는 1,551원.92원으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미미한 가격차이를 감안하면 소비자 입장에선 신용카드 결제로 할인받거나 포인트를 쌓을 수 있는 기존 주유소가 오히려 더 이득이다.
문제는 정부의 ‘보이는 손’
왜일까? 지난 4년을 들여다보면 정부의‘보이는 손’이 문제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어떤 정책이라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알뜰주유소 도입 초기는 논외로 치더라도, 최근 1, 2년 사이 정부의 행보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알뜰주유소 공급자를 둘로 분리했다. 애초의 1부만으로 기름값 인하 효과가 떨어지자 2부를 추가한 것이지만, 시장에서 보기엔 한참 이상한 구조다.
애초에 정유 4사는 알뜰주유소에 제품을 공급한다 해도 자사 주유소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을 책정할 수가 없다. 자사 주유소 사장들의 반발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쌀 수 밖에 없는 1부를 개선하지 않은 채 2부를 추가한다는 것은 시장 논리에 어긋나는 정책이었다.
또 2부 공급자는 1부와 달리 전자상거래를 활용해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전자상거래를 이용하면 리터당 4원의 석유수입부과금을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가 알뜰주유소에 제품을 공급하면서 수수료를 떼 가는 데 대해서도 지적이 많았다. 알뜰주유소 시장에 굳이 공기업이‘중간 상인’으로 나서야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는 이야기다. 석유공사는 수수료 규모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알뜰주유소 사장들의 입장에선 어떨까? 정유사들이 갈등을 겪는 사이 알뜰주유소 업계의 분위기는 괜찮았을까?
결론적으로 전혀 그렇지 못했다. 기존 브랜드 주유소의 ‘경영 간섭’이 싫다며 알뜰주유소를 택한 점주들은 뭐 하나 내세우기 힘든 경쟁력으로 속을 앓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알뜰주유소의 저렴한 가격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고, 멤버십 혜택 등의 측면에선 브랜드 주유소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가 느닷없이‘안심 주유소 제도’를 실시하면서 알뜰주유소를‘비(非)안심 주유소’처럼 오해받게 만드는 결과까지 초래했다. 이 가운데 서울 1호 알뜰주유소는 진작 문을 닫았다. 지난해의 알뜰주유소 해지 신청 건수는 총 47건으로 2013년(24건)의 두 배에 달한다.
누더기 된 알뜰주유소 정책, 시장친화적 해법 필요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다. 좋은 취지에서 출발한 알뜰주유소에 반(反)시장적인 정책이 하나씩 더해지면서 결국 보기 흉하게 기운 누더기 꼴이 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선“정부가 책임을 지고 알뜰주유소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게다가 알뜰주유소가 “가격을 직접적으로 인하하기보다는 오르지 못하게 잡아두는 효과가 있다”는 의견도 무시할 수는 없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한 지역에 알뜰주유소가 생긴 후 한 달간 근처의 경쟁 주유소들이 판매가를 ℓ당 3.5~3.7원 가량 인하했다”고도 분석했다. 결국 이 같은 효과를 더욱 강화하면서 알뜰주유소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근본적인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장의 과포화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현재 전국 주유소 수는 1만2,000여개지만 업계에선 적정한 수를 7,000~8,000여개로 보고 있다.
유류세도 빼놓을 수 없다.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 교육세, 주행세에 부가가치세 등으로 구성된 유류세의 경우 ℓ당 800~900원대로 고정돼 있어 아무리 국제 유가가 내려도 기름값 인하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일례로 지난 1년 간 두바이유 가격이 최고 배럴당 108달러에서 45달러대까지 53% 떨어졌지만, 국내 휘발유값 평균은 ℓ당 1,859원대에서 1,409원대로 24% 하락하는 데 그쳤다. 정부가 유류세 수입을 일부 포기하면 정유업계도, 소비자도 좀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상당 규모의 혈세를 알뜰주유소 사업에 투입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지적과 비판 중에서 옳은 의견이 있다면 정부의 입장보다 우선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앞으로 알뜰주유소 도입 5년째, 6년째를 지나면서 좋은 성과가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