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관련 새로운 법‧제도가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최광림/공학박사
1. 빈번한 화학물질 사고의 발생
우리는 매일 각종 미디어를 통해 국내외의 다양한 사건 사고를 듣는다. 그 중 화학물질이 누출되어 발생했던 최근의 몇가지 사고는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는 화학물질사고의 특징상 사고가 발생되면 짧은 시간에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되어 신속한 사고대응이 어렵고 자칫 인명 손실까지 수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시점으로부터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도 잔류성이 큰 물질들의 경우 오랜 기간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세계 5위 화학강국으로 석유‧석유화학산업뿐만 아니라 전기‧전자, 반도체, 조선 등 모든 산업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다.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화학물질 사용량이 늘고 용도가 다양해지고 있어 크고 작은 화학물질 사고의 위험성과 환경오염 문제가 항상 상존하고 있다.
최근 화학사고로 이어지는 유해화학물질의 누출은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증가시켰고, 유해화학물질의 관리를 강화하고, 사전적 예방책을 마련하는 방안을 고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2년 구미시에서 발생한 휴브글로벌 화학 사고는 화학물질의 안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였고, 화학물질 관련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구미 불산 누출사고는 안전수칙 위반 및 공정순서 무시로 불산 가스가 누출된 사건으로, 사업장 화학물질관리의 한계점을 드러냈다. 당시 사고현장에서 근로자 5인이 사망하고, 주민 11,280명이 건강상 피해를 호소했으며, 554억의 재산피해가 있었다. 2013년에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불산 누출 사고가 잇따라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사고는 일상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환경위해 요소임에도 우리 주변에서 취급되는 화학물질의 종류나 양 등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누출에 대한 대응과 관리방안 등이 체계적이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2. 우리나라 화학물질 관리 관련 법체계의 새로운 정비
연이은 누출사고로 인해 화학물질 관리 및 사고예방에 대한 법‧규제들이 늘어나고 있다. 화학물질관리 및 사고예방의 한계점을 보였던 기존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은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으로 분할되고, 보다 강화된 수준으로 법체계가 새로이 정비되었다. 새로 제정된 화평법은 신규‧기존화학물질의 등록과 유해성 및 위해성평가, 허가 및 제한, 정보제공의 단계로 구성되어 국내 시장에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 확인과 유해성 등 안전사용에 필요한 정보를 포함했다. 전면 개정된 화관법은 강화된 유해화학물질 통계조사 및 정보공개, 화학사고 대응, 장외영향평가서의 도입 및 과징금 상향 조정 등 엄격한 기준을 마련했다. 화학사고 사전예방위주의 관리체계 및 신속한 대응체계 마련을 위해 제‧개정된 법률들은 금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산업규모가 확대되고 유해화학물질 사용량이 증가함에 따라 환경오염사고의 빈도와 규모 또한 커지고 있다. 최근 다양한 환경오염사고로 인한 인명, 재난 보상 및 피해복구를 위한 과도한 비용 투입으로 경영난을 겪는 기업들이 증가하고, 환경오염의 피해를 입증하지 못해 보상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에 환경피해 측면에서 환경배출시설에서 발생하는 인적‧물적‧정신적인 피해의 배상책임에 관한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환구법)’도 제정되었다. 국제 환경법의 중요한 기본원리인 오염원인자 책임원칙을 바탕으로 제정된 환구법은 환경오염사고 발생시 피해자의 신속한 구제를 가능케 하고, 기업의 환경책임보험 가입으로 불의의 사고로 인한 도산을 방지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16년부터 시행된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화학물질 관리는 신규‧기존 화학물질의 등록으로 유해성‧위해성을 관리하는 화평법, 화학물질의 안전한 관리 및 사고대응을 위한 화관법, 피해발생시 신속한 구제를 위한 환구법으로 체계가 완성되었다.
3.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
화평법과 화관법이 시행됨에 따라 석유업계를 포함한 산업계 전반에 다음과 같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기업이 준수하여야 할 법‧제도적 의무사항들이 늘어난다. 화평법의 시행에 따라 화학물질의 보고, 등록 및 정보제공 제도가 도입되고, 유해성심사 및 위해성평가와 위해우려제품 등의 안전관리가 강화되었다. 또한 화관법의 시행에 따라 화학사고 장외영향평가 제도가 도입되고, 위해관리계획서 작성, 영업정지처분에 따른 과징금 부과기준도 강화되었다. 그 밖에 유해화학물질 취급‧도급, 사고수습조정관 및 화학사고 특별관리지역 지정이 신설되었고, 보호 장구의 의무화, 화학물질 조사와 정보공개, 취급시설의 검사 및 안전교육, 사고발생 시 초기대응체계 등에 관한 기준이 보다 엄격해졌다. 법‧제도가 복잡‧다양해지고 기준이 강화되어 기업들이 관련내용을 숙지하고 대응하지 못할 시, 오히려 법을 위반할 수 있는 위험도가 커졌다.
둘째, 화학물질 대응 관련 인력 및 비용부담이 증가한다. 화평법, 화관법의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기업은 화학물질 취급‧관리를 전담하는 전문인력 확보 및 양성이 시급하고, 나아가 전 직원의 안전의식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화평법을 대응하기 위해 물질 등록비용, 공급망 내 업체간 물질정보 전달 시스템 구축비용, 유해성심사 및 위해성평가 비용 등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관련 소요비용이 발생한다. 화관법을 대응하기 위해서도 개인보호구 구입비용이 발생되고, 영업정지에 따른 과징금도 늘어난다. 화학물질의 관리 및 규제 대응으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기업의 경제적 부담이 커졌다.
셋째, 화학물질 정보공개로 인해 영업 비밀 누출 우려가 있다. 기업은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용도, 함유량, 유해성 및 위해성 등의 정보를 하위 사용자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그리고 사업장에서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종류, 취급량, 유통량 등의 정보도 공개하여야 한다. 화학물질의 성분, 함량 등의 정보는 기업의 기술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특정 정보들은 영업활동과 관련되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기업의 정보공개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면서 기업의 노하우 등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누출 우려가 커졌다.
4. 산업계의 대응전략
금년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화평법과 화관법으로 인해 기업들은 초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지속가능한 관점에서 화학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응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다음과 같은 화학물질 관리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화평법 시행에 따라 기업은 첫째,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화학물질 확인을 위한 인벤토리를 구축하여야 한다. 둘째, 등록면제 및 간소화가 적용되는 물질을 파악하고, 기존의 유해법에서 확인‧면제‧등록을 이미 수행한 물질을 확인하여야 한다. 셋째, 화학물질 등록대상기업을 기준으로 동일물질을 사용하는 업체간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공동등록 추진을 고려하여야 한다. 넷째, 공급망 내 정보전달이 의무화됨에 따라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재정비도 필요하다.
화관법 시행에 따라 첫째, 화학사고 발생으로 사업장 주변 지역의 사람이나 환경 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장외영향평가서나 공정안전 관련사항 및 사고발생시 예상 누출시나리오를 포함한 위해관리계획서 등 평가 자료를 마련하여야 한다. 둘째, 삼진아웃제 도입 등 유해화학물질 영업허가의 취소 및 영업정지 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위반사항이 반복하여 발생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하여야 한다.
끝으로 인적, 물적, 시설 등 각각의 운영체계가 환경법규를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진단‧점검을 시급히 실시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