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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기묘한 발상이 시장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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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기묘한 발상이 시장을 죽인다

안현실 한국경제신문 논설·전문위원

리 정부에게 구조개혁이란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언제까지 돈 풀기로 일관한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제아무리 아베노믹스라고 해도 결국 가야 할 길은 세 번째 화살이라는 성장전략이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완화 등 구조개혁이 필수적이다. 아베의 성패는 여기에 달렸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현 경제팀이 아베노믹스를 본 떠 부동산과 증시 부양책을 들고 나왔지만 그 실효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자 정부는 이제서야 구조개혁을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구조개혁은 말로만 떠든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 규제완화, 민영화 등 구조개혁을 들고 나왔던 고이즈미 전 총리는 “개혁 없이는 성장도 없다”고 말했다. 이를 본 떠 현 경제팀에서도 비슷한 말을 하지만 그 뜻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것 같다. 고이즈미는 “민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민간에, 지방이 할 수 있는 것은 지방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일본 국민들이 고이즈미에 높은 지지를 보낸 것은 이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 정부는 어떤가. 그런 철학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오히려 민간이 할 수 있는 일, 지방이 할 수 있는 일까지 죄다 중앙정부가 다 하겠다고 나서는 건 아닌가. 마치 정부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불행히도 우리 현실은 후자 쪽에 가깝다. 정부는 툭하면 시장을 제쳐놓고 직접 장사를 해 보겠다는 기묘한 발상들을 내놓기 일쑤였다. 창조경제를 외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당장 창조경제 주무부처라는 미래창조과학부부터 그렇다. 
대표적인 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제7홈쇼핑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공영TV홈쇼핑 승인정책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 비영리 재단법인을 설치하는 1안과 주식회사로 설립하되 공공기관, 비영리법인, 공익을 위해 특별법에 근거해 설립된 법인만이 투자할 수 있게 하는 2안이다.
정부 얘기는 어느 쪽이든 민간기업의 투자를 배제한 100% 공영 홈쇼핑을 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TV홈쇼핑만 6개다.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체제로 가도 될까 말까 한 판국에 거꾸로 가겠다는 말이다. 기묘한 발상이다.
이에 대한 정부 설명 또한 기관이다. 중기제품 등의 판로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기존 홈쇼핑과 다른 성격의 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판매 수수료율 20% 상한선 설정, 운영수익 전액 재투자 등의 명분도 내세웠다. 그러나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경영이 안 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비효율과 적자경영이 훤히 내다보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제7홈쇼핑 신설이 기획재정부 등의 요구로 시작됐다는 점이다. 앞에서는 공기업 개혁을 부르짖는 기재부가 뒤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제7 홈쇼핑은 민간단체에 주는 게 백번 맞다.

홈쇼핑만이 아니다. 미래부가 하는 K-플랫폼, 데이터 거래소, 샵메일 등도 똑 같은 사례들이다. 중소 방송사와 제작사 등의 한류 콘텐츠 판매를 위한 기업형 장터라는 K-플랫폼만 해도 그렇다. 방송업계부터가 회의적이다. 시청자의 인기를 얻어야 가치가 올라가는 게 방송 콘텐츠다, 시장이 이러한데 누가 검증되지도 않은 콘텐츠를 바로 사려고 하겠는가.
이름도 거창한 데이터 거래소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각 기업과 정부기관 등에서 모은 데이터의 규격을 맞춰 주식처럼 한 곳에서 매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장터를 만든다고 거래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데이터 거래라고 해서 서로의 필요성이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시장원리를 비켜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지정된 중계자가 본인 확인, 송·수신 확인을 보장한다는 이른바 ‘온라인 등기우편’ 샵메일도 그렇다. 정부는 샵메일이 공공부문에서조차 외면 받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이런 실패사례는 여기서 일일이 적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미래부는 과거 정보통신부 시절 정부가 주도했던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나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상용화 등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ICT시장 환경은 천양지차다. 정부가 과거의 성공방정식을 고집하다가는 백번백패다. 지금 세계는 민간이 혁신을 주도하고 있고, 게임의 룰 또한 급속히 글로벌화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사업을 하겠다고 덤비는 건 민간에게는 또 하나의 철벽 규제나 다름없다. 기업 손발 묶고 직접 ICT사업을 하겠다는 미래부의 역주행이 걱정이다.


시장이 아닌 정부가 하려는 기묘한 발상
정부가 직접 장사를 하고 싶어 하는 건 미래부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지금 민관합작 의료수출전문기업 코리아메디컬홀딩스(KMH)를 공공기관으로 재편하겠다고 나섰다. KMH는 지난해 3월 설립된 이후 가시적 수출성과가 단 한 건도 없다. 당시 정부는 KMH가 새로운 민관협력 모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끝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술 더 떠 KMH를 아예 공공기관으로 만들어 직접 장사를 해 보겠다고 한다. 기가 막힌다. 시대역행적 발상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사실 KMH의 실패도 예견된 것이었다. 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산업은행, 5개 민간병원 등이 출자했다지만 실은 정부 주도로 부랴부랴 급조된 것에 불과했다. 사업모델에 대한 충분한 검토도 없이 회사부터 덜렁 세웠으니 성과가 나온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정부가 벌인 전형적 전시행정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렇다면 KMH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복지부는 오히려 공공성을 대폭 강화해 의료수출을 담당해야 한다는 등의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복지부 말고도 정부 주도로 장사를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실패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앞세워 한국판 카길을 만든다며 2011년 출범시킨 aT그레인컴퍼니도 그랬다. 청산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농림부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눈치다.
중소기업청도 이런 사업이 적지 않다. 단적으로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전액 출자로 1999년 출범시킨 중기제품 전용 행복한백화점이 그렇다. 다른 백화점이 승승장구하는 것과 달리 성장 정체에 허덕이고 있다. 여기에 비리 백화점이라는 오명까지 쓴 마당이다.
그 뿐인가.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석유공사를 내세워 시작한 알뜰주유소는 또 어떤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의해 시장질서와 공정경쟁을 해치는 대표적 사례로 지목됐다. 교통안전공단의 자동차검사, 한국관광공사의 면세점, 한국표준협회의 교육사업 등도 똑같이 지적받았다. 정부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정부연구소까지 이렇게 평가할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닌가.
민간과 경합하거나 중복된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들도 다를 게 없다. LH 등 민간과 경합하거나 중복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도 한둘이 아니다. 통신, 금융, 의료 등에 유독 규제가 많은 이유도 실은 정부가 직접 장사를 하겠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한 탓이다. 각 부처가 정부 3.0을 내세우며 공공데이터를 서비스한다면서 민간시장을 오히려 죽이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정부가 직접 데이터 비즈니스를 하겠다면 민간은 도대체 뭘 하라는 것인가.
공기업을 개혁하라고 했더니 오히려 공기업을 더 늘리겠다고 나오는 정부를 대체 어찌해야 하나. 한마디로 정부가 직접 장사를 하겠다는 유혹은 끝도 없다. 이런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 운운하고 있으니 국민이 어떻게 믿겠나.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내세웠다.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융합으로 곳곳에 창조경제를 꽃 피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공은 결국 시장에 달렸다. 정부가 지역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어 아무리 밀어 붙인들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창조경제든 뭐든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경제가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큰 정부, 작은 시장’이 아니라 ‘작은 정부, 큰 시장’이다. 규제개혁, 민영화 등이 필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혁신이 일어나는 곳은 엄연히 시장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시장을 대신해 정부가 뭘 해보겠다는 기묘한 발상들이 새해부터는 자취를 감추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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