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이겨낼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이덕환(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결국 걱정하던 맹추위가 찾아왔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기온이 올라간 탓이라고 한다. 역설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 마음을 더욱 차갑게 만드는 것은 북극에서 내려왔다는 차가운 공기가 아니다. 살얼음판보다 더 위태로운 우리의 전력 사정이 정말 우리의 몸과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이번 겨울은 전력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소리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할 모양이다.
이미 전쟁은 시작됐다. 추위가 시작되면서 난방용 전력 수요가 하늘을 향해 치솟고 있다. 물론 예상했던 일이다. 전기 수요의 25%를 난방용으로 쓰고 있는 현실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예비 전력이 400만 kW를 넘나드는 위험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하루에 90억이 넘는 비용을 감수하면서 총력전을 벌이고 있지만 뾰족한 묘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아까운 혈세를 쏟아 부으면서 산업 현장에서의 생산 활동을 줄여달라고 사정을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앞으로도 몇 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물론 산업 현장의 가동률이 떨어지면 우리 사회의 생산성도 떨어질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겨울철 전력 부족은 여름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자칫하면 생명을 위협하는 재앙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절대 과장이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과 사무실에서는 전기 이외에는 현실적인 난방 수단이 전혀 없는 형편이다.
난방용 전력소비 급증으로 위기 초래
맹추위가 밀어닥친 상황에서 정전이 되면 전열기는 물론이고 전기 모터를 사용하는 보일러도 무용지물이 된다. 맹추위 속에서 전기가 끊어지면 가정과 사무실의 사람들이 고스란히 추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 피해가 사회적 약자인 저소득층에게 더 치명적이기 때문에 사태가 더욱 심각하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의 90%가 전기 난방에 의존하고 있다. 정전이 되면 비닐하우스의 농작물도 얼어 죽어버리게 된다는 뜻이다. 요행을 기대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우리 모두가 현실적인 자구책을 찾아내야만 한다.
우리 발전소의 최대 시설용량은 8,200만 kW수준이다. 지난 여름의 최대 전력 수요가 7,400만 kW였던 것을 고려하면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지금 현재 23기의 원전 중 영광5・6호기를 포함해 5기의 원전이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모두가 정부의 관리 소홀 때문에 생긴 문제다. 1월의 예비전력이 40만 kW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고도 있는 형편이다.
수명 연장 논란에 휩싸인 월성 1호기의 운명도 불확실하다. 원전 관리 부실의 여파가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화력발전소도 안심할 수 없다. 9・15 전력 대란 이후 모든 발전소가 심한 피로 상태로 가동을 계속하고 있다. 자칫하면 전력 체계 전체가 완전히 무너져버릴 수도 있는 진짜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터키에서 소형 발전선을 빌려오겠다는 대책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현재의 전력 위기는 예견된 것이었다. 고질적인 전력 부족에 시달리던 우리는 1978년 고리 원전 이후 원전을 비롯한 발전소 건설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덕분에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자랑하는 전력 공급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정부가 90년대 말에 일시적으로 전기가 남아도는 상황을 잘못 판단했던 것이 문제였다.
엄청난 보조금까지 풀어서 난방용 전력 소비를 부추기기 시작했다. 정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국민들은 모든 난방 시설을 전기로 바꿨고, 방마다 에어컨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원전의 비중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우리가 생산하는 전력의 60%가 화석연료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화석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의 효율이 30%를 넘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무시됐다. 우리 모두가 한편으로는 기후 변화를 걱정하면서도, 돌아서서는 깨끗하고 편리한 전기의 유혹에 깊이 빠져버렸다. 오늘날 우리가 전기를 아껴야 한다는 정부의 절박한 요구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도 정부의 잘못된 에너지 정책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정부의 ‘비상 매뉴얼’은 산업계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는 것이다. 기업의 절전은 곧 생산 단축을 뜻한다. 올해만 하더라도 전력 수요조정에 날려버리는 예산이 4천억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이 정부의 절전 요구에 따라 조업을 감축한 기업에게 지급한 보상비용이었다. 내년에는 그 비용이 더욱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기업이 생산 축소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손실의 규모는 추정도 하기 어렵다. 정책의 연속성보다 국민의 고통을 줄여주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정책에 대한 비전, 기술적 전문성 그리고 제대로 된 관리능력을 갖추려면 에너지와 자원 정책을 전담하는 에너지자원부를 독립시켜야 한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를 전력위기 극본의 근본적인 해법으로 삼아
국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스스로 생명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을 찾아내야만 한다. 더 이상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믿고 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 너무나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전이 된 상황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한 현실적인 비상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 소형 등유 난방장치가 훌륭한 비상용 구명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모든 가정과 사무실에 비상용 등유 난방장치를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과도한 전력 수요를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불필요한 전기의 낭비는 절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전력 사정이 나쁘다는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거나 필요 이상으로 밝은 조명이나 네온사인을 사용하는 상점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전기 소비가 적은 절전형 조명 기구를 설치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화려한 전광판이나 루미나리에의 유혹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특히 난방용 전력 수요를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도 필요하다. 대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6위 규모의 원유 정제능력을 가진 정유산업을 활용하는 것이다. 다행히 생산량의 60%를 수출하고 있는 경유는 곧바로 난방용 등유로 사용할 수 있다. 등유를 사용하는 난방 장치의 보급을 위해 정부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특히 적지 않은 시설비가 필요한 비닐하우스와 공장의 난방 시설은 반드시 등유로 전환해야만 한다. 최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그렇게 낭비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추위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등유용 난방장치를 생산하고 설치하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다. 대단한 기술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물론 등유 난방이 전기만큼 편리한 것은 아니다. 실내 공기 오염과 화재의 위험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러나 당장 전기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상황에서는 등유 난방보다 현실적이고 적절한 대안은 찾을 수가 없다. 특히 비닐하우스와 공장의 난방은 반드시 등유로 바꿔야만 한다. 등유 난방의 열효율이 화력발전소보다 3배나 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등유가 저탄소 녹색성장에 어긋나는 대안이라는 인식은 우리의 전력 생산 구조를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등유의 세금과 경유의 유류세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는 일도 시급하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가 등유의 소비를 위축시킨 근본 원인이었다. 난방용으로 사용되는 등유가 곧바로 ‘가짜 경유’로 잘못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짜 석유는 정부가 석유를 세수 확보용으로 잘못 인식한 탓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최고급 에너지인 전기의 무분별한 낭비를 줄이지 못하면 전력위기는 절대 극복할 수 없다. 더욱이 발전소의 건설에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전력 위기가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공연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