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점화되고 있는 디젤의 안전성 논란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디젤 배기가스가 폐암을 유발한다는 과학적 근거에 의해 디젤 배기가스를 담배, 석면, 자외선, 알코올 등과 같은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WHO는 1988년부터 디젤 배기가스를 발암유발 개연성이 있는 2급 물질로 분류해 왔으며, 현재 가솔린 배기가스도 2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WHO는 일반인이 디젤 배기가스로 인해 암에 걸릴 위험성은 낮으나, 디젤 배기가스에 빈번히 노출될 경우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간접흡연보다 높을 수 있다면서 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디젤 관련 기술개발 및 정책 수립에 지침으로 작용할 예상
디젤 배기가스에 대한 유해성 논란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으나, 클린디젤이 상용화되면서부터 잦아들었다. 각국 정부의 규제 강화에 따라 정유업계와 자동차업계가 경유의 고품질화와 디젤엔진의 성능 향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환경 규제가 가장 강한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1998년에 디젤 배기가스가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유해물질을 포함하고 있다고 규정하면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EU 역시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함으로써 2008년부터 발효된 유로 5 기준을 충족시키는 클린디젤의 상용화를 촉진했다. 이처럼 디젤자동차의 친환경성과 경제성이 향상되면서 전세계적으로 디젤자동차의 수요가 점증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WHO는 지난 3월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와 국립직업안전 및 보건 연구소(NIOSH)가 발표한 연구결과 등을 근거로 디젤 배기가스의 유해 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WHO가 참고한 연구결과물들은 트럭 및 버스 운전자, 승선자 및 선원, 철도근로자, 기계 기술자와 광부 등 다양한 환경에서 디젤배기가스에 장기간 노출된 근로자들의 폐암 발병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근로자보다 3배~7배가 높다고 강조하고 있다. 등급 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위 두 연구소의 공동 연구 결과는 1947년부터 50여 년간 지하 광산에서 작업했던 12,000명의 광부를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를 통해 도출되었다. 그러나 두 기관의 연구결과는 지난 20여 년간 끊임없는 논쟁거리가 되어 온 ‘광산에서의 디젤가스 연구(DEMS)’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산업계의 지원을 받은 연구팀은 DEMS의 디젤 배기가스 노출추정 방식이 부정확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설문 집단 중 조사대상 기간 초기에 디젤 배기가스에 노출되었던 광부들의 노출 수준을 정확히 측정하기란 어려운 문제라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IARC는 금번 결정이 디젤배기가스에 과다 노출된 특정 표본 집단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라돈의 유해성 연구 결과에서 과다 노출된 집단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연구결과를 정당화했다.
한편 미국의 디젤기술포럼과 국립자원보호위원회는 최근 판매되고 있는 클린디젤 트럭과 버스는 구형 모델에 비해 입자상물질 배출이 98% 적고, 질소산화물 배출도 99%가 적다고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지난 4월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의 연구 등을 근거로 하고 있다. 동 대학의 연구진은 1999년 환경규제 기준을 충족시킨 대형 디젤트럭은 갤런당 110그람의 질소산화물과 0.22그람의 입자상물질을 배출했으나, 2010년 기준을 충족시킨 디젤트럭은 배기가스의 재순환과 선택적 촉매 저감기술의 적용 및 매연여과장치의 부착 등을 통해 2그람의 질소산화물과 0.011그람의 입자상물질만 배출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미국광업협회와 관련 과학자단체들도 WHO의 결정이 낙후된 디젤기술을 근거로 하고 있으며, 일반인이 어느 정도 디젤 배기가스에 노출되었을 때 암에 걸릴 위험성이 높은지를 수치로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학계와 관련 산업 전문가간의 추가적인 공동연구 필요
주지하다시피 초저유황유가 미국에서 상용화된 것은 2000년이며, 제도적으로 의무화된 것도 2006년의 일이다. 각국 정부의 규제 강화에 따라 자동차업계는 유해 물질 배출이 적은 첨단 디젤엔진과 정화장치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유업계 역시 저유황경유의 품질 향상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EU가 2014년부터 유로 6를 발효시킬 예정이며, 미국도 최근 화목난로, 발전소, 공장과 자동차가 배출하는 입자상물질이 호흡기와 심장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허용 기준을 2020년까지 대폭 강화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규제의 강화와 함께 그 동안 디젤 자동차의 수요가 부진했던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자동차 생산국 정부는 클린디젤 자동차를 친환경자동차로 분류해 보급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클린디젤 자동차의 경제성과 친환경성이 우수하고 단기적으로 이를 대체할 친환경자동차의 양산과 보급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WHO 역시 이러한 규제의 강화와 기술의 발전을 인정하면서 동 변화가 인류의 건강에 정성적이나 정량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암협회 관계자도 디젤자동차를 보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전문가들은 디젤 배기가스 흡입보다 흡연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금번 WHO의 연구결과가 선진국보다는 디젤 관련 규제 수준이 낮고 노후 된 디젤 자동차, 기차, 선박, 농기계와 발전기 등이 보급되어 있는 개발도상국 정부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선진국 자동차업계와 정유업계의 관련 기술개발을 촉진하면서 환경정책 수립에 새로운 지침을 제시했다고도 판단된다. 그러나 WHO 결정의 주요 참고가 된 과거의 광산용 기계가 분출하는 배기가스와 입자상물질을 최근 판매되고 있는 클린디젤 자동차가 배출하는 그것과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또한 당시의 경유 품질과 현재의 품질 격차를 충분히 고려했는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금번 WHO의 등급조정이 디젤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비화되어서는 안 되며, 자동차산업 전문가와 의학계의 추가적인 공동연구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이 시간에도 정유업계와 자동차업계가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친환경 연료와 엔진 개발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