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제품수출 사상 최대 달성 – 배경 및 의의
경희대 김동엽교수
지난해 석유제품 수출은 544억 달러로 선박에 이어 우리나라 수출 품목 2위를 기록하였다. 이같은 석유제품 수출실적은 전년 대비 61% 증가한 수치로, 그동안 내수산업 또는 공해유발산업으로 질시를 받던 정유산업이 주력 수출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정유산업의 대내외 환경
지난해 정유산업은 내수와 수출이 대조적인 양상을 이룬 해로 기록될만하다. 내수부문에서 정부는 물가안정을 이유로 직접적인 가격인하에서 더 나아가 석유법개정으로 정유산업의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수출부문에서는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여 침체된 글로벌 경제환경속에서도 정유산업은 지난해 최대의 수출실적을 달성하였다.
석유제품의 수출이 급증한 요인을 보면 국제 석유가격인상으로 인한 제품 수출단가의 상승과 중국의 내수부양책으로 인한 수요 증가를 들 수 있다. 또한 지난해 3월 일본의 지진으로 일본으로의 석유제품수출이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다. 내부적인 요인으로는 원화 약세로 인한 수출 증가, 불황기에도 지속적으로 고도화 설비투자를 한 결과 국내 정유업계의 가격 및 품질 경쟁력이 높아진 점 등을 들 수 있다.
내수산업에서 수출산업으로 탈바꿈한 정유산업
이러한 대내외 환경과 함께 정유사들이 지난해 석유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는 우리나라 총수출액 5,565억달러의 약 9.8%에 해당하는 544억달러에 달한다. 이처럼 국내 정유사들은 석유제품 수출만 놓고 보더라도 2011년 원유수입금액 1,001억달러 가운데 54%인 544억달러를 다시 외화로 벌어들여 국가 경제 차원에서 고유가의 충격을 일부 흡수하였고 무역수지 흑자에도 기여하였다. 이제 정유산업은 원유수입대금의 반 이상을 석유제품수출로써 회수하는 수출산업이 되었다. 특히 앞으로 예상되는 고유가 상황에서 국내산업에 대한 충격을 상당부분 완화시켜주는 완충산업내지는 수출산업의 역할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석유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 형편에서 정제능력기준으로 세계 6위의 정유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처럼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정제시설이 부족하여 오히려 석유제품을 비싸게 수입해서 쓰는 상황과 비교해보면, 정유산업의 경쟁력이 국가경제성장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다행한 일이다.
정유산업의 수출경쟁력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석유산업 미래전략 연구’라는 보고서에서 “2020년까지 국내 정유사의 수출 경쟁력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진단했다. 또 석유제품 경쟁력을 나타내는 지수를 봐도 국내 정유산업의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특정 국가의 개별 상품에 대해 현재 시점에서 비교우위를 수치화 한 현시비교우위 (Revealed Comparative Advantage: RCA)는 1보다 높으면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는데, 국내 정유산업의 RCA지수를 보면 2010년 2.1로 사우디아라비아 2.0, 미국 1.5, 일본 0.5에 비해 높다(표 참조).
<표> 주요국가 석유제품 RCA지수
국가 2009년 2010년 미국 1.0 1.5 중국 0.3 0.4 러시아 3.8 5.7 일본 0.4 0.5 한국 1.5 2.1
자료: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산업 미래전략연구: 원유조달전략, 2011.2
앞으로 국내 정유산업이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고도화 설비 투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고도화설비에 투자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원가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수출경쟁력 확보에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석유의 수요 잠재력이 큰 국가들과 석유제품 수출을 확대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한·EU 및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시행은 석유제품의 수출에도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칠레의 경우도 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한 관세철폐가 운송비를 커버하여 경유제품이 칠레에서 수출 1위 품목이 되고 있다.
그리고 해외 판매시장을 개척하고, 차별화된 생산시설, 내부 효율성 극대화, 정유사업의 경쟁력을 이용한 사업 다각화 등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아세안 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유럽,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을 적극 개척해야 할 것이다.
휘발유 가격 비대칭성 논란
석유가격 비대칭성이란 국제 유가가 오를 때 국내 유가가 오르는 폭과 국제 유가가 내릴 때 국내 유가가 내리는 폭이 서로 다른 현상을 말한다. 즉, 국제 유가가 오를 때 국내 유가는 더 많이 오르고, 국제 유가가 내릴 때에는 국내 유가가 더 적게 내릴 때 ‘석유가격이 비대칭적’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휘발유가격의 비대칭성에 대해 학계에서 비대칭성을 입증하고, 그 원인에 대해 이론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의회에서는 이러한 비대칭성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거론을 안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미 1990년대 말 비대칭성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분석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강재성, 미국 휘발유 소매가격 비대칭성과 제도적 분석, 에너지경제연구원, 2010.12.
- 비대칭성은 사용된 자료의 종류 및 분석모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가격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부분도 있으나, 패턴상의 비대칭성이고 양적인 비대칭성은 없다.
- 비대칭성이나 가격급등이 석유회사의 의도적인 담합이나 불법적인 과도한 이윤추구 행위에 의해 발생하였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
가격 비대칭 현상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결과에서도 가격 비대칭이 휘발유시장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비경쟁적인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론적인 설명도 많다. 소비자탐색비용, 굴절수요곡선, 에지워스 싸이클(Edgeworth Cycles), 기업의 메뉴비용(menu cost) 등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나 의회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 가격급등현상이 과거 보다 더 심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급등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과 불법적인 시장행위를 방지하려는 노력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국내의 경우도 학자들의 연구결과가 미국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만큼, 비대칭성이 불법적인 시장행위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 비대칭성 자체를 문제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 의회에서 그동안 수많은 가격부풀리기금지 법안이 제안되었지만, 결국 시장친화적이 아닌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을 고려하여 입법화되지 못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따라서 휘발유 가격의 비대칭성 문제에 대해 첫째, 가격 비대칭성이 불공정하고 반시장적 행위에서 발생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밀한 판단을 통해 시장독점이나 반시장적 행위의 근절을 위한 정책, 즉 석유시장을 감시하는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국내 휘발유시장은 외국에 비해 소수기업이 시장을 분할하고 있는 시장집중도가 높은 구조이다. 따라서 정부는 반시장적인 행위에 의한 가격비대칭성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하여 시장집중화를 완화시키고 경쟁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단기적인 소비자부담해소를 위한 조치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공급능력을 확충하는 등 휘발유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휘발유 가격인하 압력과 함께 휘발유 가격 안정을 위해 유통과정의 투명성을 목적으로 석유법을 개정하였다. 고공행진을 펼치던 기름값을 잡기 위해 석유 관련법 개정안을 통해 석유 유통구조에 대한 투명성을 확보하고 기름값 인하를 유도한다는 게 정부의 의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름값 급등문제로 불거진 정부의 휘발유 가격인하 압력이 석유제품의 수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이는 그동안 정유회사들이 고도화시설 투자를 통해 키워온 수출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정유회사들의 영업활동 제한으로 인해 수출산업 약화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자유무역협정과 석유제품의 수출경쟁력
지난해 우리나라가 석유제품을 수출한 나라는 중국과 싱가포르 등 기존 시장에서 칠레, 브라질 등 남미와 영국 등 유럽과 케냐 등 아프리카는 물론, UAE, 인도네시아 등 산유국도 포함되었다. 특히 일본 대지진 영향으로 대 일본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지구반대편에 있는 남미 등에 수출할 수 있는 것은 수송비용을 감안해도 수출경쟁력이 높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품목별로는 경유, 항공유, 그리고 윤활유 및 윤활기유의 수출이 늘었다. 그동안 국내 취항 항공기에 연료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미국 현지 공항에 항공유를 직접 공급하는 데까지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정유사들은 석유 및 석유제품 거래 시장이 있는 싱가포르에 대한 간접 수출보다는 수요가 있는 국가에 직접 수출해 마진을 더 늘리는 수출선 다변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칠레의 경우 우리나라 수출품목 1위가 경유다. 2004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가 철폐되어 수송비 보전이 가능해지면서 경유제품을 수출한 후 국내 정유사들은 2007년 이후 매년 10억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올리고 있다. FTA가 석유제품 수출 확대에 큰 역할을 한 것을 칠레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 이는 이미 발효된 한·EU FTA, 조만간 발효될 한미FTA를 통한 석유제품의 수출 증대가 예상된다.
EU는 자동차의 연료로 경유를 주로 사용해 현재도 경유 수출 비중이 타 석유제품을 훨씬 앞서고 있다. 대 EU 석유수출액은 2005년 7억4천만달러에서 2010년 18억2천만달러로 2배 반 정도 늘었으며, 이중 경유 수출액은 2005년 5억9천만달러에서 2010년 14억9천만달러로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경유 수출이 5년 새 3배 가까이 성장했는데, FTA 체결로 수출 성장 속도에 더욱 가속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칠레와의 FTA로 인해 수출이 폭증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보다 시장이 큰 유럽과의 FTA 체결로 국내 정유사의 석유제품 수출은 더욱 큰 폭의 증가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