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 논란, 무엇이 정답인가?
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선임연구위원
금년도 물가상승률이 4% 안팎에서 실현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유가의 고공행진과 국제원자재 값 상승, 구제역 여파로 인한 육류 가격상승, 기나긴 장마와 수해로 인한 일부 농산물의 작황 부진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들이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에 따라 하루가 다르게 물가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
물가상승의 고통은 비단 장바구니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전세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면서 주거생활을 위협하면서 일반 서민 대중들의 답답한 가슴을 더욱 옥죄고 있다. 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특히 유가 상승이 주는 고통 또한 크다. 소비재 가운데 술․담배와 더불어 소비자 가격 중 세금의 비중이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세금이 높은 유류에 대해 세금을 인하하여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전파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류세 인하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유류세 인하를 주장
요즘처럼 유가가 고공행진을 오랫동안 지속한 적도 드물다. 유가 수준 자체가 높을 뿐만 아니라 자고 일어나면 유가가 오르고 또 오르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고유가의 고통이 만성화되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유류세 인하를 통해 유가를 인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여기에 연유한다. 그렇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이런 모습만 보면 ‘정부가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부가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굳건하게 버티기를 하고 있어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필자는 한국조세연구원에서 20년째 조세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원에서 처음 당당했던 분야가 유류세를 포함한 소비세 전반에 대한 것이었다. 지금도 소비세를 연구하고 있다. 오랫동안 조세문제를 연구하면서 느꼈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과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 또는 국민들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종종 충돌하기도 한다.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부분 정부가 비난을 받는 것으로 꽅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부가 잘못하여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최소한 유류세 인하 문제와 관련해서는 개이적으로 정부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자유민주주의의 기틀 안에서 정치적 자유에 기반한 대리민주주의의 핵심은, 국민들이 원하는 바를 지지하는 후보들에게 투표하고,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된 정치인들이 국민들의 뜻에 따라 정치를 잘 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도의 전문성과 그에 기초한 전문적 판단을 요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자칫 전문성과 정치적 자유가 충돌하여 잘못된 판단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신약의 시판 여부 등을 판단하는 문제는 과학적 지식과 임상실험결과 등 전문성에 기초하여야 한다. 그런 것에 대한 판단을 일반인들의 투표로 결정할 수는 없다. 경제정책도 종종 그와 유사하다. 유류세 인하 문제가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즉, 국민들이 원하는 것과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바람직한 것)이 서로 충돌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유류세 인하 문제이다. 아마 필자도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았거나 또는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조세를 연구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유류세 인하를 주장하였을지도 모른다.
유류세 인하 주장의 이면에는 수년째 그칠줄 모르고 지속되는 고유가 행진에 근본 원인이 있다. 고유가는 산유국들의 석유시추시설의 노후화로 인한 공급애로 현상,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 성공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중국 등 신흥국의 경제개발 가속화에 다른 석유 소비 급증에 따른 수요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아울러 만성적 수요초과 현상이 미래에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투기적 수요까지 가세하였기 때문이다.
고유가 현상은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국지적인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범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 고유가에 따른 고통을 더 크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그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가 석유를 너무 많이 소비하고 석유에 너무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의식주 생활패턴과 산업구조가 모두 에너지다소비형, 특히 석유다소비형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우리 경제가 총체적으로 과도한 에너지 비만증에 걸려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대중교통수단이 편리하게 잘 구축되어 있으면서도 일반인들은 자가용, 즉 개인교통수단을 선호한다. 산업구조도 석유화학, 제철, 제강 등 에너지다소비 산업의 비중이 매우 높다. 따라서 유가가 낮을 때엔 별다른 자각 증상이 없지만 유가가 상승하면 여기저기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널리 퍼진다. 작금의 상황이 그러하다. 고유가의 원인은 유류세 인상에 있지 아니하고 국제유가 상승에 있다.
유류세 인하 보다는 에너지 체질 개선과 에너지 다이어트가 더욱 절실
따라서 유류세를 인하하더라도 국제유가가 오르면 유가인하 효과는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다. 비만증을 근원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체질 개선과 에너지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유류세 인하는 근본적으로 치유가 아니라, 비만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잠시 고통만 피해가자는 것이다. 열이 나면 열을 나게 하는 염증을 찾아 곪은 데를 도려내는 아픔을 참는 것이 정답이다.
결코 잠시 열을 내리고자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법이 될 수는 없다. 물론 일시적인 과로로 열이 난 것이라면 진통제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우리의 에너지 비만증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병폐이기 때문에 진통제만으로 해결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유류세 인하는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에너지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유류소비 억제가 필요하며 더 나아가 에너지 체질 개선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유류세 인하보다는 유류세 인상을 통한 적극적 의미에서의 유류소비 억제 및 경제 제칠과 생활패턴 개선이 요구된다.
영국, 독일 등을 비롯하여 다수의 환경 및 복지 선진국에서는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물가 수준 등을 고려하여 유류세를 상향조정하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유류세를 현실에 맞춰 조정하지 않는다. 그에 따라 휘발유의 경우에는 1990년대 말 수준, 경유의 경우에는 2차 에너지세제개편이 종료된 2007년 이후 현재까지 동일한 세액이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10여년간 물가가 40% 이상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휘발유에 대한 세금은 10여년 전 세액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이는 매년 물가상승률만큼 사실상 유류세를 인하해준 것이다. 복지․환경선진국에서 유류세를 지속적으로 조정해옴으로써 복지재원도 축내지 않고, 경제에너지 체질도 슬림한 S-라인을 유지해 온 것과 크게 대비된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왜 에너지 비만증에 걸린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왜곡된 가격정책과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발생한 대량실업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산업정책 등이 복합되었던 데 일부 요인이 있다. 왜곡된 가격정책이란, 원가에 미달할 정도로 공공요금을 낮게 책정하는 것을 말한다. 공공요금을 낮게 책정하는 요인은, 과거 정부의 재정여력이 높지 않았던 시절에, 서민․빈곤층 지원을 위한 재원이 부족함에 따라 직접지원대신 가격을 낮게 유지하였던 데 기인한다. 경제개발 촉진을 위해 산업용 유류가격을 낮게 유지한 것도 한 요인이다. 유류도 이와 유사하다. 유가가 자율화되기 이전에 정부고시제로 유가가 결정되면서 유가도 일종의 공공요금으로 인식되었던 기간이 길었고 그런 전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서민․빈곤층 지원을 위한 당장의 재정적 여건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서민․빈곤층의 경제적 어려움을 보전하기 위해 공공요금을 낮게 책정하는 정책이 사용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공공부문의 만성적자의 요인이 된다. 뿐만 아니라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중산층과 고소득층까지도 지원해줌으로써 장기적으로 실질 재정부담이 과도해지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선진국에서는 그런 정책을 사용하지 않는다. 보호․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대부분 직접지원(예: 소득보조, 바우처 제공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우리나라도 공공요금을 낮게 책정하던 기조에서 벗어나 공공요금을 현실화하되 보호․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직접지원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990년대 말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의 실업문제가 야기되었다.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이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산업정책적으로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조치로 화물운송부문 등에서 규제가 대폭 완화하였다. 화물운송 부문에서의 공급이 크게 증가하였다. 이는 화물운송 공급의 만성적인 공급초과현상을 야기하였다. 그 결과, 수많은 화물운송업자들의 경제적 여건이 열악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던 차에 1, 2차 에너지 세제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유가인상분을 환급해주는 정책이 뒤따랐다. 그로 인해 유류세 인상의 본래 목적이었던 유류소비의 감소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위의 두 가지 정책기조가 결과적으로 에너지 비만증을 촉발한 요인이 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석유․에너지 소비는 지나치게 비대할 뿐만 아니라 소비증가율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유류 소비가 과다하다보니 유가가 조금만 올라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현상이 빈발한다. 표면적으로는 고통의 진원지가 고유가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고통은 비만증에서 유발되고 있다. 당장의 고통을 덜고자 유류세 인하를 주장하면 일시적으로 고통은 경감되겠지만, 국제유가가 다시 오르면 고통은 더욱 증대된다. 따라서 유류세 인하는 근본적 치유책이 아니다.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서 유류세 인하로 대응하지 않는 것도 바로 에너지 비만증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다만 일시적으로 충격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즉흥적 일시적으로 유류세를 인하하기도 하지만 작금의 경우는 고유가 현상이 구조적인 문제이므로 일시적 유류세 인하도 적절한 대응방안은 아니다.
상당수 복지․환경선진국에서 작금의 고유가 상황 하에서도 지속적으로 유류세를 인상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속적인 다이어트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고유가 상황 하에서 고유가에 따른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유가인상을 통한 유류소비 감축이 필요하다. 유류 소비는 필연적으로 환경오염물질과 기후변화유발가스를 배출하고, 교통혼잡과 같은 외부불경제, 즉 외부비용을 초래하는 만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 증가분을 유류소비자가 마땅히 부담해야 함은 조세이론은 물론이고 국민경제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서도 긴요하다. 작금의 상황은 최소 5∼12년 이상 유류세를 묶어둠으로써 물가상승률에 반비례하여 감세를 나타낸 만큼, 현행 유류세제 유류소비에 따른 외부비용조차 커버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재정여력을 위축시켜 복지재원 마련을 어렵게 하는 요인도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에너지 비만증과 유류 소비에 따른 외부불경제 문제에 대응하고, 복지선진국에서 부가가치세율 인상, 술․담배 유류 등에 대한 소비세율 인상을 통해 복지재원을 확충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유류세 조정 문제는 하향조정이 아니라 오히려 상향조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기적으로 고통의 원인을 뿌리째 제거함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보탬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낮은 가격 하에서도 절제된 유류 소비구조가 정착된다면 고유가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수요․공급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가격이 낮으면서도 절제된 소비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경험이 이미 그에 대한 답을 제공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유류세 상향 평준화별 물가연동을 통해 유류세율을 조정해야
고유가 정책은 유가상승으로 인해 당장의 고통 증가를 수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녹색성장을 통해 더 큰 수익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온난화가스 배출 증가로 인한 세계적 기후변화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우리나라가 최근 수년간 기후가 급격히 아열대화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해준다. 기후변화는 미래 세대의 생존에 직결된 만큼 국제적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국제적인 규제도 강하되고 있다.
저탄소 성장을 위한 신기술, 즉 녹색기술의 성공적 개발이 지속가능성장을 보장해주는 열쇠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저탄소 성장을 위한 세계적 규제로 조성된 새로운 신기술 시장을 선점하여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보장할 수 있다. 녹색성장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유가 수준이 국제적으로 현저하게 낮은 편은 아니지만 자생적으로 대체에너지․신기술개발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높지는 않다.
현재와 같은 유류세 체계로는 신기술 개발을 통한 신재생에너지 등 녹색성장을 담보해줄 수 있는 대체에너지원에 대한 시장을 형성하는 데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 싼 에너지(석유)가 있는데 굳이 비싼 에너지(신규 개발된 대체에너지원)를 사용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아무리 장기적으로 시장성이 있더라도 초기에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재정적 지원과 함께 기존 에너지원에 대한 가격인상, 특히 소비세 인상을 통한 가격인상 방안이 병행되어야 한다. 복지․환경 선진국에서 유류세를 계속 인상하는 것도 바로 그런 목적에서 이다. 그러므로 당장의 고통만을 두려워해서 유류세 인하를 주장하기 보다는, 에너지 비만증을 근원적으로 치료하여 체질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녹색성장을 담보해줄 수 있도록 유류세 상향평준화 및 물가연동을 통해 유류세율을 조정해주는 방향으로 관련 세제를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