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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론] 석유가격 안정화는 시장에 맡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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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격 안정화는 시장에 맡겨야

 

 
문춘걸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

  

수송용 석유제품과 시장에 대한 편견

국내 정제산업은 4개의 기업이 생산활동을 담당하는 과점산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정제산업은 기업의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라, 대규모의 시설투자를 필요로 하는 생산기술적 특성(장치산업)으로 인하여 과점산업이 된 것이다. 나아가서 생산공정을 담당하는 정제산업이 과점산업이므로 석유제품을 유통하는 도매시장과 소매시장도 과점시장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휘발유, 경유를 주요 제품으로 하는 수송용 석유제품 도매시장은 4개의 국내 생산자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수입사가 경쟁하는 경합시장(競合市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석유제품 도매시장은 해외개방이 완전히 이루어져 있을뿐만 아니라 국내 정유사가 부담하는 비축의무 등을 수입사에게 면제해 주는 등 실제적으로 수입사에게 더 유리한 조건이 부여되어 있다.

만약 국내 정유사들이 도매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을 행사하여 공정가격(예를 들어 정상적인 대형 수입사가 국외 현물시장에서 석유제품을 구매하여 국내에 공급할 수 있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책정한다면 완전 자유화 하에서 특혜조건을 부여받은 대형 수입사가 언제든지 도매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즉, 국내 정유사는 정제산업에서는 과점기업의 지위에 있지만, 석유제품 도매시장에서는 대형 수입사의 잠재적인 진입이 실제적인 위협으로 작동하여 가격 책정에 시장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다.

정유사의 세전 공급가격 결정의 기준가격은 싱가폴 현물시장 가격이다. 싱가폴 현물시장은 한계공급자의 관점에서 잔여시장에 해당하며, 많은 공급자와 많은 수요자가 시장에 참여하여 거래가격(MOPS)이 결정된다. 즉, 석유제품에 있어서 MOPS는 완전경쟁가격에 제일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석유제품 소매시장은 실제적으로나 잠재적으로나 완전경쟁시장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주유소 간 거리제한 등 여러 종류의 규제(환경, 안전 등)가 있지만 자동차의 이동성과 규제가 달성하고자 하는 중요 목표를 감안하면 정책적 제약 하에서의 완전경쟁에 가깝다.

재화의 특성을 기준으로 분류하면, 석유제품은 공공재가 아니라 사적재화이다. 석유제품의 가격 수준에 대한 논의에서 공급측면의 원가에 초점을 두는 것은 정유사를 공기업으로 착각하거나 또는 석유제품을 공공재로 오인하여 출발한다. 사적재화인 석유제품의 가격과 거래량은 공급요인과 수요요인의 충돌과 조화에 의하여 시장에서 결정된다.

수요 특성을 기준으로 보면, 석유제품을 비롯한 에너지재화는 소득탄력성이 1보다 낮은 필수재에 가깝다. 아무리 소득이 낮은 가구라 하더라도 생존을 위하여 최저 수준의 소비를 필요로 한다. 즉,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에너지재화의 최저 소비를 보장하는 정부 지원이 요구되는 재화이다.


국외 정치적 요인을 고려하면, 석유제품은 안보재에 속한다. 국외의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국가 안보 유지에 필수적인 식량, 석유제품 등을 국내에서 적정수준이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고려하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안보재인 석유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에게 안보프리미엄을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된다. 마치 농민들로부터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쌀을 수매하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정유사의 영업이익에 대한 편견
 
기업의 영업이익이 적정수준인지의 여부는 감정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정유사의 영업이익률은 5% 수준이며, 다른 업종의 국내 대기업(포스코, 삼성전자 등의 과거실적: 10~25%)이나 같은 업종의 해외기업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매출 규모를 감안하면, 정유사의 영업이익 수준은 박리다매로 특정화할 수 있다. 그리고, 매출액과 영업이익의 측면에서 국내 정유사는 내수기업인 동시에 수출기업이며, 매출액에서는 해외부문이 내수부문을 앞서고 있으며 영업이익 측면에서는 해외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유사의 박리다매형 영업이익에 대하여 정부와 일반 소비자의 불만이 나오는 것은 석유제품의 특성과 석유제품 생산 및 유통시장에 대한 편견에 기인하는 부분이 크다. 이에 추가하여, 일반 가구를 기준으로 수송용 석유제품이 소비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고, 구매 빈도가 잦은 편이며, 구매 시마다 가격이 자주 변하므로 일반 소비자가 가지는 가격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게 되며, 이로 인하여 근거없는 편견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정부의 수송용 석유제품 가격안정화 정책

지난 몇 년간 정부는 석유제품의 가격 하향안정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도입해 왔으며, 최근에는 가격공개의 범위 확대, 대체 유통망 확대를 고시하였다.


정부는 가격공개가 가격 하향안정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근거없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가격공개가 실시된 전후를 실제로 분석하면, 정부의 압박이 작동하는 가격공개 제도화 전후 시기에만 국내외 가격차가 크게 축소되거나 음의 값이 되는 효과가 있지만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가격공개제도가 도입되기 이전에 비하여 국내외 가격차가 도리어 상승하고 또 국내가격의 정유사간 범위가 축소되는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가격이 기업의 유용한 영업비밀임을 확인시켜주는 실증적 증거로 볼 수 있다. 경쟁 기업의 가격이 공신력있는 정부기관에 의하여 정기적으로 잦은 빈도로 공개되어 상당기간 누적된다면 가격정보의 가치는 훨씬 높아지게 된다. 즉, 가격공개 확대는 정부가 지향하는 석유제품 가격 하향안정화에 배치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아가서 명시적·암묵적 정부예산 지원과 환경규제 비적용 등 사회적 비용 부담 면제를 통하여 대체 유통망을 육성하고, 이를 통하여 정부가 달성하고자 하는 안정화된 가격이 자율적인 시장가격보다 낮게 형성되는 가격을 의미한다면, 석유제품 가격안정화 정책은 정부가 지금까지 최상위 정책목표로 추구해온 녹색경제(에너지 재화의 효율적 사용과 절약)과 공생 및 동반성장(편익의 분배 형평성)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전력을 비롯한 에너지재화의 가격 왜곡으로 인하여 우리 국민의 에너지 소비는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며, 에너지원 구성에서도 경제적·기술적 최적 구성으로부터 심각하게 이탈되어 있다.

만약 정부의 공세적 개입이 성공적이어서 석유제품 가격을 정부 개입이 없을 경우에 형성될 시장가격보다 낮게 유지된다면 에너지 소비는 더욱 높아지는 반면, 정유사는 수익성 악화와 장기 시설투자 왜곡 및 산업경쟁력 약화를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명시적·암묵적 비용은 전 국민이 부담한 반면 편익은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 대형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 주행 거리가 많은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게 될 것이다.


고유가 시기에 국한하여 가격안정화를 달성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목표라고 정부가 판단한다면, 제일 효과적인 정책방안은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탄력세율일 것이다. 그리고,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여 석유제품의 가격을 전반적으로 낮추려는 정책보다는 저소득층에 대한 직접적 지원이 더 비용효과적일뿐만 아니라 정부가 추구해 온 최상위 정책목표도 아울러 달성할 수 있는 방책일 것이다.


실효성없는 정책의 추구는 국민, 정부, 기업에 모두 큰 손해를 끼치게 된다. 국민전체의 명시적·암묵적 부담을 담보로 하여 추구하는 석유제품 가격 하향 안정화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정책을 통하여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무능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며,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에게 정유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게 된다.

기업은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공헌을 통하여 꾸준히 평판을 구축해 오더라도, 오해를 야기하는 정부의 정책으로 모든 신뢰와 평판을 상실하게 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석유제품과 시장의 특성, 시장개입의 정당성, 정책목표의 달성가능성, 정책 추진의 비용효과성, 최상위 정책목표와의 조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석유제품의 가격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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