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길들이기 보다 경쟁여건 조성이 먼저
윤원철 교수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상반기 소비자물가는 이미 4.3% 올랐고, 한국은행은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4%로 상향조정하였다. 치솟는 물가에 청와대와 정부 관련부처는 연일 물가대책을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기획재정부 차관 주재로 매주 열리던 물가대책회의를 장관급으로 격상하였다. 대통령은 과거 물가당국이 했던 단속이나 점검 등이 아니라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할 것을 장관들에게 주문했다.
최근 물가상승의 주된 요인의 하나로 지목받고 있는 것이 기름값이다. 사실 석유는 화학제품을 비롯하여 우리의 의식주와 관련된 거의 모든 생필품의 직간접 원료로 사용되다 보니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올해 초에 대통령은 ‘기름값이 묘하다’는 지적을 하였고, 지식경제부 장관은 기름값의 적정성을 따져 보겠다고 하였다.
물가 안정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는 정부의 고충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정부 출범 당시 기업친화적이고 시장원리에 바탕을 둔 경제정책을 내세웠던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최근 기름값 논란과 관련해서 가장 이슈가 되었던 부분 중에 하나는 ‘가격 비대칭성’에 관한 내용이다. 가격 비대칭성은 양적 비대칭성과 시간적 비대칭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정상적인 시장에서도 비대칭성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어
양적 비대칭성은 원유나 국제 석유제품 가격 등 국제 석유가격이 오르는 크기보다 정유사 공급가격이나 주유소 가격과 같이 국내 기름값이 더 많이 오르는 경우를 말한다. 물론 국제 석유가격이 내리는 크기보다 국내 기름값이 적게 내리는 경우도 포함한다. 시간적 비대칭성은 국제 석유가격이 오를 때 국내 기름값이 더 빨리 오르거나 국제 석유가격이 내릴 때 국내 기름값이 천천히 내리는 경우를 말한다.
금년 초에 시작되었던 민관 합동 석유가격 태스크포스에서는 양적 비대칭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국내 석유시장이 자율화된 1997년 이후 자료를 여러 시기별로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 정유사와 주유소 단계에서 비대칭성이 항상 나타나지는 않지만 상당수 확인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 석유가격이 오를 때 국내 정유사나 주유소 가격은 조금 올라가고, 내릴 때는 덜 내린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의구심을 가졌던 것과 같이 국제 석유가격에 비해 국내 석유가격이 더 오르고 덜 내린다는 것과는 조금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참고로, 2009년 1월에서 2011년 2월까지의 주간자료를 활용하여 분석해 보면 국제 휘발유가격이 1원 오르거나 내리면 국내 정유사 공급가격은 첫째 주에 각각 0.478원, 0.151원 오르거나 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4주간을 누적하면 상승기에 0.684원, 하락기에 0.410원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비대칭성이 존재한다고 해서 정유사가 과대이윤을 향유하거나 담합을 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대칭성이 발견되더라도 정유사나 주유소의 과대이윤 혹은 담합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 실제로 외국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매우 경쟁적이고 정상적인 시장에서도 비대칭성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비대칭성의 발생 원인은 다양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석유시장이 덜 경쟁적인 것도 하나의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경쟁이 불충분한 경우라면 가격이 제대로 조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대칭성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정유사는 4개밖에 없으며, 석유수입업체는 현재 경쟁력이 취약하여 시장점유율이 0.5%도 되지 않는다. 또한 국내에는 외국과 같이 제대로 된 석유제품 거래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석유가격 태스크포스 결과에 잔뜩 기대하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정유사의 100원 인하 조치로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단체에서는 인하폭이 100원에 못 미치기 때문에 정유사들이 소비자를 기만하였다고 문제를 제기하였다. 또한 일부 주유소들은 사재기하면서 마진이 이전보다 더욱 커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편에서는 일부 자영주유소들이 정유사의 일방적인 기름값 할인방식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관계야 어떻든 예상하지 못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이번 정유사의 100원 인하 조치는 소비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암묵적 압력이든 정유사의 자발적 성의표시든 시장원리를 벗어난 인위적인 가격 조정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소비자의 우려와는 달리 정유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지 않다면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 속에서 정유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내 시장을 떠나 해외로 나가는 것이다. 국내에서 소비하고 있는 석유제품이 외국으로부터 수입이 된다고 하더라도 물류비용을 감안하면 소비자 입장에서 지금보다 비싸게 기름을 쓰게 될 지도 모른다. 경제학 교과서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과 같이 인위적인 가격통제로 말미암아 우유값과 사료값을 폭등시킨 로베스피에르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과연 정부와 소비자의 바램대로 기름값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복잡한 경제이론을 동원할 필요 없이 물건 값을 낮추는 근본적인 방법은 경쟁을 촉진시키는 일이다. 경쟁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시장이 있어야 하고 보다 많은 시장참여자가 시장에 들어와야 한다. 현재는 정유사와 대리점, 정유사와 주유소 사이에 일대일 거래방식이다. 나름대로 공정하게 거래한다고 하지만 주유소 입장에서 보면 약자이고 가격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석유제품 거래시장은 현재의 일대일 거래방식 대신 정유사와 석유제품 수입사 등이 공급자로서 참여하고 대리점, 주유소, 공동구매단체 등이 수요자로서 참여해서 치열하게 가격을 협상하는 장소가 된다. 무엇보다 국내 수급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가격이 시장에서 결정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유소의 입장에서도 가격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현재 보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가격정보를 얻을 수 있다.
물론 정유사의 입장에서는 석유제품 거래시장의 개설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실시간으로 가격정보가 노출되기 때문에 시장참여에 냉소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석유가격 태스크포스의 대책에도 제시되어 있지만 정유사들의 시장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법인세나 소득세 감면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국내 판매량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시장을 통해 거래하게끔 강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정유사들이 이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지금까지 경쟁을 활성화하자는 정부의 취지에 동의하였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어쩌면 정부의 전방위 압박에 성의표시를 하는 것 보다는 석유제품 시장 개설에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시장참여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자가폴 주유소를 육성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대형마트 주유소, 농협폴 주유소와 같이 독립폴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자가폴 주유소의 시장점유율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소비자의 신뢰를 높여 주기 위해 정부가 인증하는 석유품질보증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홍보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여기에다 현재 완전히 침체 상태에 있는 석유수입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현재 공급과잉의 국내 수급 구조상 새로운 정유사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석유수입업은 상대적으로 훨씬 쉽게 확대시킬 수 있다. 석유수입업의 활성화와 관련하여 최근 정부가 이전에는 난색을 표명하였던 관련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함으로써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제시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시장이 개설되고 시장참여자가 많아지면 가격은 자연히 내려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석유제품 거래시장이 개설되고 시장참여자가 많아지더라도 지금과 같은 고유가 상황에서 소비자가격의 인하폭은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휘발유 소비자가격이 리터당 2,000원이라 가정하면 대략 절반인 1,000원이 세금이다. 연산품의 특성상 휘발유의 원가만을 정확히 구분해 내긴 힘들다.
하지만 정유사의 영업이익률, 정유사 공급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의 차이 등을 고려하면 정유사와 주유소의 마진은 리터당 200원 안팎으로 대충 짐작된다. 결국 정유사와 주유소가 조금이라도 이윤을 남긴다고 가정하면 가격 인하폭은 리터당 200원이 안 된다는 소리다.
유류세 인하 문제는 정부의 세수 감소와 소비절약에 부정적인 영향 등을 모두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기름값 문제는 ‘서민물가 안정’이라는 차원에서 논란이 되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지금까지 고통을 감내해 왔다. 정유사도 정부 대책에 맞춰 나름대로 성의표시를 하였다. 이제 정부도 고통분담 차원에서 유류세 인하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시점이다.
꾸준한 경쟁 촉진 정책이 바람직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한 마디에 시작된 최근 기름값 논란은 잘못된 문제 제기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석유가격 태스크포스를 통해 정유사의 과대이윤이나 담합 문제를 가격 비대칭성으로 추정하고자 하였지만 이들 사이에는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과대이윤 여부는 정유사의 원가자료를 회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민간기업의 원가내용은 영업 전략이자 기밀 사항에 속하기 때문에 단순히 심증만으로 원가공개를 요청할 수 없다. 만약 정유사들이 담합을 통해 폭리를 취한다면 이것은 명백히 불법사항이고 공정거래위원회나 사법 당국에서 처리하면 되는 문제이다.
결국 가격 비대칭성 문제는 비대칭성을 발생시키는 원인의 하나로 경쟁이 불충분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경쟁을 촉진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최근 대통령의 지적대로 물가가 오를 때마다 기업을 무작정 압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꾸준히 경쟁 여건을 만들어 가는 우리 정부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소비자들도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기름값 길들이기 보다는 지속 가능한 경쟁촉진 정책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