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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론] 정부의 석유시장 개입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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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석유시장 개입의 허와 실


 박희천 교수

인하대학교 경제학부

 

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나면서 세계경기가 다소 호전되어 석유수요가 증가하는데 반해, 석유공급은 리비아 사태 등으로 인하여 경색됨에 따라 원유가격이 상승하게 되었다. 정부는 물가안정을 빌미로 정유사에 석유제품가격의 인상자제 요구를 넘어 리터당 100원의 가격인하를 압박하였다. 이로 인하여 국제 원유가격이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국내 석유수요는 줄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리터당 평균적으로 약 14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정유업계는 지난 4월부터 3개월 동안 약 70008000억 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번지수 잘못 찾은 정부의 압박

정부의 석유제품시장에 대한 일련의 개입(압박)은 자유화된 석유제품시장이 전력 및 가스시장과 달리 정부의 저에너지가격정책에 부응하지 않는다는 판단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아시다시피 저에너지가격정책은 산업 및 수출지원, 물가안정과 저소득층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물가안정과 저소득층의 보호가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석유제품가격을 좌지우지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 있지 않나 생각된다. 또한 정부는 정유업계를 뿔 달린 업계로 보고 있는 일부 소비자들의 정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일각에서는 석유제품시장이 다른 상품시장들과는 달리 뿔 달린 시장으로서 수요공급과 관계없이 가격이 책정될 수 있다고 소비자들을 선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석유제품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잘못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국제 석유가격이 오르면 국내 석유제품의 가격은 올라야 한다. 울산 앞바다의 가스전에서 생산되는 소량의 경질유 외에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며 석유제품의 수출입이 자유화 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국내 석유제품가격이 국제시장에 연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제품가격의 결정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석유제품의 가격은 공급요인과 수요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 공급(비용)측면에서 석유제품 가격은 원유가를 기준으로 정할 수 있다. 우선 석유제품이 3045일 이전에 선적한 원유로 생산된다고 가정하자. 원유가 방식을 채택하면 정유사는 국제유가의 상승기에는 시가보다 저렴하게 도입한 원유로 생산하기 때문에 국제제품가격보다 저렴하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반면에 국제유가의 하락기에는 국제제품가격보다 비싸게 제품을 공급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일부 소비자들은 국제유가가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제품가격을 왜 내리지 않느냐고 정유사를 비판할 것이다.

석유제품의 수출입이 자유화된 상황에서 만일 원유가 기준으로 제품가격이 책정된다면, 국제유가 상승기와 하락기에 국내제품가격이 국제제품가격에 비해 싸든지 비싸게 되면서 추가적인 수출입을 유발하게 된다. 이럴 경우 국내 석유제품의 수급불균형까지 유발될 수 있게 된다. 국제유가 상승기에 국내외 제품가격 차이가 많이 나면 정유사들은 내수물량을 줄이고 수출물량을 늘릴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국제유가 하락기에는 국내외 제품가격 차이로 인하여 수입물량이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수출입은 소비자의 후생을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원유가 하락기에 수입으로 인하여 정유사의 가동률을 떨어뜨려 국민경제에 부담만 줄 수 있게 된다. 석유제품가격의 수요측면 파라미터로 국제제품가격을 들 수 있다. 이 국제제품가격은 수요를 반영한 가격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국내석유제품가격과 국제석유제품가격 간에 차이가 발생하면 수출입 수요를 유발시킨다. 더욱이 석유제품은 연산품이기 때문에 제품들의 생산원가를 정확히 산출하기가 쉽지 않다. 국제제품가 방식을 채택하면 정유사는 국제유가의 상승기에는 시가보다 저렴하게 도입한 원유로 생산하기 때문에 이득을 보게 된다. 이 때문에 국제제품가 방식은 국제유가의 상승기에는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유가의 하락기에는 정유사가 손해를 보게 된다. 정유사는 하락기에 국제가격으로 제품을 낮게 팔지 않는다면 시장의 일부를 수입상에게 잃게 되기 때문이다. 국제제품가 방식은 석유제품의 수급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다. 그러나 원유가 방식이든 국제제품가 방식이든 이는 정유사가 결정할 사항이다. 원유가의 상승기와 하락기에 똑같은 방식을 채택하여야 한다. 원유가의 상승기에는 원유가 방식을 하락기에는 국제제품가를 적용하는 등 소비자나 정유사 어느 한쪽만 유리한 방식이 채택될 수는 없다. 물론 정유사들은 국내의 경쟁업체의 가격정책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국내 석유제품시장에 대한 막연한 불신

많은 사람들은 국제가격이 오를 때 석유제품가격을 많이 빨리 올리고, 내릴 때 적게 느리게 내린다는 가격비대칭성을 믿고 있다. 국내 제품가에 대한 불신은 선적한 원유를 정제할 때까지의 시차에 따른 정유사와 소비자 간의 이해상충외에도 소비자가 주로 국제원유가에 대한 정보를 언론을 통하여 접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

국제원유가와 국제제품가가 장기적으로 연동이 되고 있지만, 경기가 좋아지면 국제제품가가 원유가보다 더 많이 오르고, 경기가 나빠지면 제품가격이 원유가보다 더 많이 내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동안 투자의 부진으로 세계적으로 정제설비가 다소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기가 좋을 때 소비자는 국제원유가 상승률을 기준으로 국내제품가의 상승률을 비교하면 일련의 가격비대칭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또한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비대칭은 높은 유류세금 때문일 수도 있다. 휘발유의 경우 세금이 판매가의 약 50% 수준에 달하기 때문에 원유가가 10% 상승할 때마다 제품가격의 인상요인은 5%가 된다. 이와 반대로 원유가가 10% 하락하면 제품가격은 5% 하락할 수 있다. 일부 소비자들은 원유가가 10% 하락하였는데 제품가격이 왜 10% 내리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정유사가 원유가 상승기에 당연히 10% 올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자천 석유전문가들은 석유제품시장에 대한 막연한 불신에 편승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내 모 유력민간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국내외 유류가격 전망과 대응전략이란 세미나에서 환율하락으로 인하여 국내유가의 하락요인이 생겨도 인하차익을 정부와 정유사가 가져가기 때문에 소비자 유가는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정유업계가 이러한 인하차익을 취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떠나, 원유수입의 국내가격이 하락하는 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세입규모가 늘어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우리나라의 석유류세제의 경우 관세와 부가가치세가 종가세(정률세)이기 때문에 원유가격과 석유제품가격이 상승하여야 세입규모가 늘어나게 된다.

연초에 구성된 정부의 석유안정화 대책반(Task Force)은 가격비대칭의 존재를 밝히지 못했다. 설령 석유제품의 가격비대칭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이는 정유업계가 단합을 한다거나 과도한 이윤을 얻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4개 정유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국내 제품시장은 설비(약 일산 280만 배럴)에 비해 수요(약 일산 200만 배럴)가 작기 때문에 과점체제 임에도 불구하고 정유사들 간의 경쟁은 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국내 정유사별 단순(hydro skimming) 및 복합(cracking)마진과 영업이익 간의 밀접한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국제유가 상승기에 발생하는 높은 이익은 높은 복합마진으로 인한 것으로 단합과는 관계가 없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유업계의 리터당 약 14(1.6%의 영업이익률)의 영업이익은 다른 산업에 비하여 아주 작다. 정유사들을 압박하여 영업이익을 내지 않게 한다고 하여도 소비자의 석유제품가격 인하요구를 전혀 충족시킬 수 없다. 정부의 압박은 석유제품가격이 높은 이유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오히려 높은 세금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하는 부메랑이 될 뿐이다.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책

원유가격의 상승이 일시적이라면 석유안정기금의 조성이나, 리터당 정액 475원의 교통에너지환경세에 플러스 마이너스 30% 붙는 탄력세율(현재 529= 475+11.4%)의 조정을 통해 국내 석유제품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원유가격의 상승이 일시적이지 않다면, 상승 시 좀 덜 소비하고, 하락 시 좀 많이 소비하게 하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 된다.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기회 있을 때마다 에너지저소비형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외치면서도 저에너지가격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거꾸로 에너지다소비형 구조를 고착시켜 왔다. 인위적인 가격인하나 저에너지가격정책은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정책에 장애가 될 뿐이다.

낮은 전력요금으로 인하여 한국의 인구 일인당 전력소비는 미국,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와 호주를 제외하고는 OECD 국가 중 제일 많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국의 전력소비는 200820102년간 무려 12.7%나 증가하였다. 날로 증가하는 전력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투자의 상당 부문은 부채로 조달되고 있으며, 근래에 발생하고 있는 한전과 발전자회사들의 대규모 적자로 인하여서도 전력부문 부채는 눈덩어리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러한 공공부문의 대규모 부채로 인하여 우리나라 경제는 외환 및 경제위기에 매우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전력시장에서와 같이 석유시장에서도 정부의 개입이 지속되었다면, 한국의 석유소비는 지금보다 훨씬 크게 늘어나 경상수지가 크게 악화되었을 것이다. 또한 정유업계가 저가격정책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고도화설비에 투자할 수 없었다면, 한국은 정유업에서 국제경쟁력을 상실하여 석유제품의 순수출국에서 순수입국으로 전략하였을 것이다. 이로 인하여 소비자들은 지금보다 훨씬 높은 석유제품가격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석유제품가격은 시장에서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석유의 국제가격이 오르면 국내 제품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 이 때 소비자는 석유제품의 소비를 줄여야 한다. 국제가격이 오르는 데도 불구하고 국내 제품가격을 올리지 않는 행위는 보조금을 주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일부 계층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전국민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필요는 없다.

낮은 가격으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게 해 놓은 상태에서의 에너지절약정책은 허공에 메아리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의 역할은 공정경쟁의 촉진과 함께 독과점의 폐단을 방지하는 것이지, 과도한 가격인하나 점진적 가격인상을 유도하는 행정지도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름값이 묘하기보다는 석유제품시장에 대한 정부정책이 묘하다고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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