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대책과 석유산업의 역할
박희천_인하대학교 경제학부
늦어도 1992년 브라질 리우의 지구정상회담 이후부터 기후변화 대책이 범세계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1997년 체결된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주로 선진국들인 Annex I 국가들은 2010년까지 1990년 기준의 온실가스 배출을 평균적으로 약 5.2%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각국은 에너지효율 향상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세계 에너지수요의 약 80%를 충족시키고 있는 화석연료를 과연 대체할 수 있겠는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유의 장래 역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에너지수요 측면을 살펴보자. 선진국의 에너지수요는 정체되고 있으나 중국, 인도와 같은 신흥공업국의 에너지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British Petroleum 에너지통계에 의하면 1999∼2009년 기간 중 세계 석유소비는 3억6060만 toe 증가하였는데 이의 67.4%에 해당하는 2억4320만 toe는 중국과 인도의 수요증가에 기인하였다. 현재 세계 약 20억명 인구가 상업 에너지를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에너지 절대 빈곤층이며, 또 다른 20억명 인구가 상업 에너지를 부분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 빈곤층이기 때문에 향후 이들의 경제발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에너지수요를 부분적으로나마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금세기 중반까지 세계 인구가 약 20억명 정도가 증가하게 될 것을 감안한다면 에너지수요는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공급 측면에서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은 두말할 것 없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의 공급여력은 한계가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대량으로 생산하기가 힘들고 각종 제약요인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 에너지는 식량생산과 경쟁이 될 수 있으며 이의 생산에 화학비료와 다량의 용수를 필요로 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과 육상풍력도 민원문제로 인하여 투자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원자력발전의 경우 사회적 수용성과 사용 후 연료의 처리 문제가 아직 남아있다. 이에 따라 신재생에너지는 에너지공급에 있어서 향후 화석연료의 일부는 대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를 상당 부문 대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지난 9월 12일부터 16일까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되었던 21차 WEC 총회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전체 에너지소비에서 화석연료의 비중이 현재 약 80%에서 2050년까지 70% 수준 이하로는 감소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기후변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천연가스보다 2배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세계 석탄의 연평균 소비증가율은 3.8%로 천연가스의 2.4%보다 훨씬 높았다. 1999∼2009년 기간 중 석탄소비 비중은 24.9%에서 29.4%로 대폭 상승하였다. 이와 같은 석탄소비의 대폭 증가는 기후변화 대책이라는 이상과 경제성이라는 현실 간의 괴리로 인하여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석유는 같은 기간 동안 연평균 1% 증가에 그쳐 석유소비 비중은 1999년 39%에서 2009년 34.8%로 감소하였다. 석유의 비중감소는 같은 화석연료인 천연가스와 석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고 세금을 많이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석유의 공급이 향후 얼마나 원활하겠는가에 따라 석유가 지금까지와 같이 기준에너지 역할을 해 나갈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 원유의 최대생산량이 곧 도달하게 될지의 여부에 대한 peak oil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이 현재 수그러진 것을 보면 peak oil이 당분간 현실화 되지 않을 것 같다. 한 동안 잠잠하였던 대형유전 발견이 근래에 와서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 남미,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기술개발에 따라 현재 30% 수준인 석유회수율이 향후 70%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사용한 석유회수증진(CO2 enhanced oil recovery) 기술은 유체상태인 CO2를 유전에 고압으로 주입시켜 증기를 주입시킬 때보다 훨씬 많은 석유회수를 가능케 한다. 이와 같은 석유회수증진은 석유매장량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리는 효과를 낳는다. 더불어 이 기술은 CO2를 대기로 배출시키는 대신에 유전 속에 묶어둠으로써 석유생산의 증대와 온실가스 배출저감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한다. 참고로 전문가들은 캐나다 oil sands의 회수율이 90%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몬트리올 WEC 총회에서 보고하였다.
석유가격이 더 상승하게 되면 oil sands, shell oil, 오리멀전 등 비전통 석유의 개발도 현재보다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수송용 석유제품을 대체하기 위해 현재 전기자동차와 연료전지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어 승용차부문에서 일정 부분 석유제품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자동차들이 내연기관 자동차들의 경제성을 따라오기에는 힘들 것이다. 천연가스를 액화 연료화 시킨 GTL(gas to liquid)이 수송용 연료인 LPG와 디젤의 일부를 대체시킬 수도 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 및 클린디젤의 도입에 따른 석유제품 이용효율 향상은 오히려 석유제품 대체를 어렵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항공기, 선박, 트럭, 버스부문에서 석유제품은 대체가 여의치 않다. 물론 서울, 인도의 뉴델리와 같은 대도시의 버스에 천연가스가 연료로 사용되고 있지만 이는 전체 버스의 일부밖에 되지 않는다. 화학부문에서 일부는 석탄, 천연가스와 바이오매스로 대체될 수 있겠으나 화학제품은 향후에도 석유화학의 기반으로 생산될 것이다. 북미의 셰일가스와 같이 비전통 가스의 공급이 지속적으로 확대될 경우 발전부문에서 석유제품(경유, 중유)과 석탄이 천연가스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천연가스로의 대체에도 불구하고 석유의 수송부문 및 석유화학부문 수요는 급증하는 세계 인구와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따라 향후에도 대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급 에너지인 석유는 1차와 2차 석유파동을 거치면서 발전부문에서 처음에는 유연탄으로 나중에는 원자력과 천연가스로 많이 대체되었다. 이런 연료의 대체는 희소자원의 경제적인 활용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단순히 전력과 열을 생산하는데 석유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수요가 둔화되는 중유는 중질유 분해를 통해 상대적으로 수요가 늘어나게 될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으로 고급화 시켜 사용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이브리드 자동차, 클린 디젤 자동차 등과 같은 고효율, 친환경 수송기기의 도입에 따라 석유부문도 온실가스 배출저감 노력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희소 자원인 석유는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가 어렵든지 현재의 기술수준으로 대체가 거의 불가능한 석유화학, 항공기, 선박, 중장비, 트럭, 대형버스 등의 사용에 국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석유산업도 석유제품의 안정적인 공급뿐만 아니라 이의 효율적 사용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원자력 및 신재생에너지의 개발,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에너지원으로의 fuel mix 변경만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없다. 주어진 에너지 서비스를 보다 적은 양의 에너지의 투입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에너지효율 향상이 최선의 방안이다. 에너지효율 향상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소비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공급자도 수요부문 에너지효율 향상에 일정 부문 기여할 필요가 있다.
석유산업의 기여방안은 석유제품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기나 시스템의 개발과 보급에 힘쓰는 것이다. 이러한 효율향상은 장기적으로 석유제품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것이다. 한국의 석유업계가 디젤 하이브리드 버스의 개발과 도입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라고 하겠다. 현재 농어촌 지역이나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 기름보일러가 대안이라면 콘덴싱 기름보일러의 도입으로 보일러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면 된다. 석유업계는 콘덴싱 기름보일러 도입을 촉진시키는 ESCO 사업에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국가적 에너지효율 향상과 온실가스 배출저감 노력에 동참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만 하다.
천연가스의 경우 이러한 노력이 돋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보일러의 효율을 고위발열량 기준으로 82%에서 95%이상 획기적으로 향상시킨 콘덴싱 가스보일러는 1970년대 말에 네덜란드와 북부 독일의 최대 가스수송업체인 Gasunie 회사에 의해 개발되어 보일러제조업체에 기술이 이전되었다. 콘덴싱 가스보일러의 도입으로 인하여 개별가스난방은 물론 산업부문 증기 및 열생산도 높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유럽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보일러는 콘덴싱 보일러이며 영국, 독일 등 국가에서는 이의 구입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던지 이의 구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가스업계는 가스의 활용을 높이기 위해 가스의 액화연료화(GTL)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천연가스를 원료로 생산한 DME는 LPG 및 디젤 수요의 일부를 대체시킬 수 있다. 일부 산유국에서는 천연가스로 합성가스 생산과 함께 휘발유, 경유, 등유와 같은 전통적인 석유제품의 생산에도 많이 투자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개도국의 경제발전 및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석유화학 및 수송부문 석유수요는 증가하게 된다. 석유 이외에는 이러한 수요를 충족시킬 경제성 있고 효율적인 대안이 금세기 중반까지 마련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는 향후에도 현재까지와 같이 기준에너지 역할을 해 나갈 것으로 판단된다. 석유업계는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석유사용 기기나 시스템 개발 및 보급을 통하여 기후변화 대책에 동참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