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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온실가스 감축,가야 하지만 어려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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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감축,가야 하지만 어려운 길

추창근 |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스위스 다보스에서 지난 1월말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을 통해 발표된 세계 각국의 환경성과지수(EPI)평가에서,한국은 조사 대상 163개국 가운데 94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최하위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EPI는 미국 예일대 환경법·정책센터와 컬럼비아대 국제지구과학정보센터가 공동으로 자연 대기 수질 기후변화 해양 농업 등 다양한 환경여건을 수치화해 국가별로 계량화한 환경분야 종합지표다.

특히 우리나라는 기후변화 부문에서 147위라는 형편없는 수준을 기록했다.국민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118위),발전부문 온실가스집약도(78위),산업부문 온실가스집약도(146위) 등이 모두 최하위권이었다.물론 지표 구성체계,자료수집및 평가기준 등에 허점이 적지 않아 EPI의 신뢰성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조사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우리는 지난해 녹색성장위원회에서 2030년까지 EPI 순위를 세계 10위 이내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이같은 평가 결과는 당연한 측면이 많다.우리 경제의 산업구조가 갖는 특성 자체가 다량의 온실가스 배출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지난 2005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의 두 배였다.OECD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증가율이 가장 높고,전세계에서 아홉번 째로 많은 양이다.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량이 세계 10위이며,온실가스 배출 유발도가 높은 석유소비는 세계 6위,석유 수입은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데 따른 결과로,에너지다소비형 산업구조의 반영에 다름아니다.우리나라 에너지 소비량의 60%는 산업부문,특히 제조업에서 쓰이고 있는 현실이다.이 비중이 일본은 40% 남짓하고,미국은 25%,프랑스는 30% 수준이다.

에너지 소비량이 작은 반도체 LCD 휴대폰 등 IT(정보기술)분야 말고는 우리 주력산업인 자동차 철강 정유 석유화학 조선 등이 다 그렇다.원료를 들여와 다량의 에너지를 투입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이를 수출함으로써 지탱되는,다른 나라들보다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를 훨씬 많이 소비할 수 밖에 없는 경제구조인 것이다.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힘이 그러한 에너지 집중투입형,온실가스 다량 배출형 산업이었고,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같은 산업체제가 경쟁력의 원천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우리나라의 EPI 평가순위가 크게 낮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는 매우 야심적이다.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원래의 배출전망치보다 30% 감축한다는 목표를 지난해 확정했다.지난 2005년 배출량 5억9400만톤(CO₂환산기준)보다 4% 줄어든 5억6900만톤이다.그동안 개발도상국들이 국제사회로부터 권고받아온 최대의 감축량을 목표치로 삼은 것이다.

2005년 배출량 기준 4%의 감축목표는 언뜻 별게 아닌 것 같지만,따지고 보면 대단히 심각한 수치다.앞으로 경제와 산업규모는 팽창하기 마련이고,따라서 에너지 사용량도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다.단기간내 화석연료를 효율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적 에너지원을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2020년 예상되는 배출전망치는 원래 8억1300만톤이었다.정상적인 경제성장을 전제했을 때 그 만큼의 온실가스 배출이 불가피한 상황인데,이를 30%나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앞으로 10년 동안 줄여야할 온실가스 배출량 2500만톤은 정유및 화학업체가 밀집한 울산 남구 석유화학단지에서 지난 2006년 배출된 2526만톤과 맞먹는다.이는 같은 해 우리나라 제조업의 총배출량 2억9447만톤의 8.6%에 해당한다.극단적으로 말하면,향후 10년 동안 우리 산업의 에너지 소비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꿔 에너지 사용량 자체를 줄이지 못하거나,혁신적 온실가스 저감대책 및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최소한 그 정도 규모의 산업을 포기해야 한다.

의욕만 앞세울 수 없는 과제가 바로 온실가스 감축인 것이다.모든 조건에서 불리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고 보면,우리 산업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지나치는 목표 설정과 정책 추진이 자칫 심각한 후유증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먼저 깃발은 들기는 했지만,우리 능력이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여지도 별로 없다.세계 1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만 해도 “환경부담은 국가별 경제상황과 해결능력,역사적 책임에 따라 차별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지금껏 선진국들이 온실가스를 쏟아내 기후변화의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놓고,이제서야 부담을 개도국에 지우려 한다는 문제제기다.2013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포스트 교토체제의 새로운 국제 규범을 만들자면서 지난해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회의가 결국 구속력있는 합의를 내놓는데 실패한 것도 이같은 개도국들의 반발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압력은 여전하다.이미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은 글로벌 스탠더드로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대세인 까닭이다.이명박 대통령이 코펜하겐총회에서 ‘나부터(me first)’라는 실천을 강조하고,개도국의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촉구하는 감축행동 등록부 설치,2012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한국개최를 제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국제사회의 합의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든 우리로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강구하고 실천해나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문제는 온실가스 감축을 어떤 방법으로 추진하면서 저탄소 경제체제를 구축하느냐가 관건이다.

그 최우선적인 대안으로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탈피한 신·재생에너지를 손꼽을 수 있을 것이다.이른바 ‘녹색에너지’의 기술개발과 보급 확대이다.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재생가능하며 자연순환형인 태양광,풍력,조력,수력,지열 등의 에너지 개발은,당면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대안적 수단이다.또 기후변화 대응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하는 세계경제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성장동력이 될 가능성도 높다.이미 선진 각국들은 앞으로 시장창출 규모가 급속도로 커질 이 분야 산업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기술개발에 올인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 2008년 9월 확정한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의 공급비중을 2012년 4.0%,오는 2030년까지 11%로 높이고,생산은 현재 18억달러 수준에서 2012년 170억달러,2030년 3000억달러로 확대키로 했다.이를 위해 태양광 풍력 수소연료전지 가스석탄액화(GTL/CTL) 석탄가스화복합발전(IGCC) 등 9대 분야를 핵심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그린에너지산업 발전전략’도 내놨다.

야심한 계획이지만 전망이 결코 밝지는 않다.신·재생에너지 개발의 당위성이 충분하고,특히 태양광이나 풍력 조력(潮力) 등은 가장 유망한 에너지원 임에 틀림없다.그럼에도 이들 방식은 아직 전력 생산의 경제성·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기존 원자력을 비롯한 석유와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발전과 비교 자체가 어렵다.이들 에너지를 경제적으로 실용화하려면 지금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획기적 기술혁신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결국 이들 대체에너지는 장기적인 대안으로 모색될수 있을 뿐이다.

문제는 단기 대책이다.당장에는 기존의 에너지 이용효율을 높여 석유 등 화석연료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급선무이다.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면 지금 사용하는 모든 에너지 시스템의 기술을 혁신하고,산업구조를 에너지저소비형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핵심 과제이다.특히 에너지 절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공급위주의 에너지 정책부터 수요관리 방식으로 바꾸고,범국민적 에너지절약 운동,에너지 효율화를 위한 과감한 투자,불필요한 에너지 사용 억제 노력을 기울이는 등 모든 분야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 온실가스 감축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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