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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사활을 건 원자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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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국제 원자재 쇼크
1. 고유가시대의 장기와 가능성과 영향
2. 국제 곡물가격 급등의 파급효과
3.
전세계, 사활을 건 원자재 전쟁


전세계, 사활을 건 원자재 전쟁

심경욱·김재두_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

● 원자재 전쟁에 시달리는 지구촌

오늘날 지구촌에는 두 가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지의 자원 부존국들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원자재 전쟁이 그 중 하나이고 또 다른 전쟁은 경제 강국들 간에 전개되고 있는 자원 쟁탈전이 그것이다. 이 두 부류의 전쟁은 하나는 피가 흥건한 열전(熱戰)인 반면, 다른 하나는 총소리 한 방 내지 않는 냉전(冷戰)이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하지만 자원의 선점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으로부터 촉발되었다는 사실에서는 예외가 없다.

● 자원 분쟁을 부추기는 ‘블러드 다이아몬드’

현대 인류사의 전쟁은 대부분 석유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끝나지 않은 이라크 전쟁이 석유 수급 질서의 재편을 겨냥한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지닌다. 그런데 비단 석유뿐만이 아니다. 오늘날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문명의 이기들은 급속도로 한정된 자원을 고갈시키면서 전 세계적으로 원자재 확보를 위한 전쟁을 야기하고 있다. 편의성의 상징인 휴대 전화나 무선기기에 사용되는 천연물질 콜탄을 비롯해 니켈, 구리 등 광물자원, 사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다이아몬드, 심지어 고가의 원목까지 원자재 전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100만 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고 25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아프리카의 앙골라내전은 원자재로 인한 대표적인 분쟁이다. 전쟁 초기에는 미국이 앙골라 독립국가연합을 지원하고 구소련과 쿠바가 앙골라 대중해방운동을 지원하는 대리전쟁의 양상을 띠었으나 이제는 오로지 석유와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놓고 벌이는 원자재 전쟁으로 변질됐다. 양측의 지배계층은 원자재의 판매대금으로 무기를 구매하며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당연히 무기 판매상들은 이들의 후원자로서 분쟁이 종식되지 않도록 상태를 악화시키는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다.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분쟁은 이외에도 숱하게 많다.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의 첨예한 대립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소위 ‘피 묻은 다이아몬드(Blood diamond)’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유통되는 것이다.

캄보디아의 잘 자란 티크목 한 그루가 2만5천 달러에 판매된다면 목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인도네시아와 중남미의 많은 국가들이 목재 전쟁의 온상이 되고 있는데, 최근 인도네시아에서는 목재 마피아까지 등장해 전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고급 목재의 경우, 마구잡이로 남벌되어 지구 온난화의 주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크게 신경 쓰지않는 구리가 나는 남태평양 솔로몬제도의 부겐빌 섬에서도 오늘도 구리채굴권을 둘러싼 지루한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전 세계 구리의 추정 가치액은 7,320억 달러에 이른다. 알루미늄 원광석인 보크사이트의 경우엔 5,370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처럼 국가적 이익을 창출할 만큼 커다란 가치를 지닌 자원이기에 개도국으로서는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지키고자 한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이나 특정 이해 관련 국가의 입장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군과 반정부군, 혹은 다국적 기업의 지원을 받는 용병업체의 존재 등이 뒤엉켜 인종과 종교의 가면을 쓴 분쟁이 발생한다. 그 악순환은 국제기구나 다른 국가들이 중재하기 곤란한 상황으로 악화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개도국의 국민이나 혹은 독립하지 못한 지역의 원주민은 전쟁과 환경파괴라는 이중적 피해에 속수무책으로 희생되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 세계 원자재 확보 경쟁의 주도권은 이제 '원자재 수입 강대국'에서 '원자재 수출 약소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런데 미국, 중국, 우크라이나 등 주요 원자재 수출국들이 자국산업 보호정책을 강화, 철스크랩(고철), 유연탄 원당 석유 등의 수출을 규제하고 나서는 탓에 지구촌의 원자재 전쟁은 앞으로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 국제 역학질서를 지배하는 원자재 패권전쟁

21세기 들어 세계 경제 강국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고민들 중의 하나가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을 위한 인프라의 구축이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하여 각국은 지구촌의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면서도 국제사회가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오늘날 이 같은 상생과 화합의 이념이 결코 제 구실을 해낼 수 없는 분야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원자재의 채굴과 사용이다.

주요 선진국들은 제각기 더 많은 자원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외교·안보·경제·군사 영역에 있어 국가 자산을 집중 투자해 자원 확보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 이제 수년 내 생산량이 하향 곡선을 그릴 전망인 석유 자원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EU, 심지어 인도에 이르기까지 제로섬(zero-sum)적인 국가간 갈등을 유발하는 배경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질서는 필연적으로 경제안보와 군사안보가 한층 더 융합된 포괄안보 개념에 의해 주도되어가는 양태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우, 21세기에 들어 두 차례의 ‘테러와의 전쟁’ -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 - 을 준비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또한 NATO를 대폭 확대하는 과정에서 동맹관계를 맺거나 미군 기지를 개설함으로써 발트해에서 시작해 유라시아대륙의 남부를 가르는 장대한 군사기지의 벨트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군사기지 라인은 공교롭게도 전 세계 석유 부존량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중동과 카스피해의 기존 파이프라인이나 현재 건설 중인 파이프라인의 통과지역과 일치한다.

이라크전쟁이 발발한 이래 중국과 일본의 안보정책 기조도 해당국의 자원안보와 그 어느 때보다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중국과 일본의 정치-외교-경제-군사 등, 국가전략적 고려가 요구되는 정책 영역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원활한 자원 수급안보와 통상안보를 중시하는 중-장기적 고려가 그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

작금의 국제사회에서는 다국적군 작전이나 국제 평화유지활동(PKO/PKF)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어떠한 성과를 거두는가에 따라 각국의 대외 영향력 수준이 매겨지고 있다. 21세기 강국들은 세계 어느 곳에라도 분쟁이 발발하면 다국적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병력을 투사하고 분쟁 종식에 기여한 전과(戰果)만큼 재건사업의 파이를 나누고 있다. 미국을 선두로, 영국과 프랑스, 이태리와 스페인, 네덜란드, 호주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최근 일본과 중국도 이 대열에 합류하였다. 이들 국가의 군대는 자국 영토 방호에만 매달리는 대신, 사막을 넘고 대양을 건너 미래의 국가 번영을 겨냥한 새로운 국익을 창출하는 전위대인 셈이다.

특히 오늘날의 국제 자원안보 환경은 중국발 에너지 위기 가능성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중국은 2001~2005년 GDP 성장률 9.5%의 고도성장을 이룩하는 동안 에너지 소비량은 무려 55%나 급증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2005년 5월 원자바오 총리를 비롯한 13개 부처 장관들로 구성된 ‘국가에너지 지도그룹’을 설립, 범정부 차원에서 횡적인 정책 접근을 한층 더 용이하도록 하였다. 중국 정부가 자원 확보를 위해 전 세계 차원에서 전방위 외교를 전개하는 가운데 인민해방군도 해양권익을 둘러싼 외국과의 충돌이나 자원 분쟁 가능성을 예상, 군사적 영역과 자원 문제를 연계해 대처해나갈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작년 말 “민주주의·자유·인권·법의 지배 등 보편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외교를 추진해 ‘자유와 번영의 호(弧·arc)’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자유와 번영의 호’란 동북아시아에서 중앙아시아, 동유럽으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륙의 외연지대를 잇는 초승달 비슷한 원호(圓弧)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 지역 국가들이 분쟁을 중단하고 민주화를 이룰 경우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일본이 최근 부상하고 있는 남부유라시아 자원부존 지대에 대한 미국의 경영 전략에 힘을 보태면서 동시에 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속셈을 보여준다.1)

고이즈미 정부에 이어 아베 전 정부도 일본 정상이나 장관급이 일찍이 방문한 적 없는 국가들을 방문하는 ‘전략외교’를 본격 가동해왔다. 2006년 여름 이후 모두 11명의 각료가 아프리카 대양주 등 16개국을 방문하였다. 일본은 일찍이 2002년 중앙아시아 지역에 자원 탐사팀을 파견했을 당시에도 이미 현역 장교를 포함한 안보 전문가를 포함시킨 바 있을 정도로 자원 문제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왔다. 실제로 방위연구소의 경우, 에너지 이슈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군사안보와 연계하여 분석하고 있고, 해당 연구팀은 방위연구소장에게 연구결과를 직접 보고하는 체제를 가동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 등 주요 국가들의 안보 노력은 기 확보된 국익을 보전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새로운 국익을 창출하는 데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더욱이 이들 국가의 공세적인 노력은 비단 에너지 자원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시장이나 IT 시장, 방산 물자 거래 등 대규모 재정 수익이 예상되는 영역에서도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편, 2007년 레바논 UNIFIL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는 30개국으로서 이탈리아가 가장 많은 2,500명을 파병하고 있으며, 독일이 2,400명, 프랑스가 2,000명, 그리고 중국과 인도네시아, 스페인이 병력 규모 면에서 그 뒤를 잇고 있다. UN 평화유지군 파병의 기폭제가 된 2006년 레바논에서의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전투는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 성격이 강하다. 이란은 중국이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동맹확대를 추구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국가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간의 갈등 관리에 대한 참여는 이란에 대한 서방권의 압력 수준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분쟁 해결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중국이 급증하는 경제 성장 엔진을 등에 업고 전방위적으로 활약할 경우 중국이 드리울 힘의 그림자는 지금보다 훨씬 길고 깊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상 최대 규모를 파병한 중국의 생존권역 확충을 위한 치밀한 계산을 읽어야 할 것이다.

1) 이미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3개국 국경지대에 약 2,000만 달러 상당의 개발 지원을 약속했고, 인도, 호주와 경제제휴 협정(EPA) 체결도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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