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 국제 원자재 쇼크
1. 고유가시대의 장기와 가능성과 영향
2. 국제 곡물가격 급등의 파급효과
3. 전세계, 사활을 건 원자재 전쟁
국제 곡물가격 급등의 파급효과
애그플레이션의 원인과 시사점
김화년_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최근 시장에 나가보면 주부님들께서 “아 비싸다”라고 말씀 많이 하신다. 높아진 생활 물가 때문이다. 남편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라는 소리도 들리고, 공급이 원활하지 않자 ‘현대판 보릿고개’란 말도 생겨났다. 라면가격이 100원씩 오르면서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로 농산물 및 식품 가격상승이 물가불안의 주범이 되고 있다. 생활물가 불안의 진원지는 국제 곡물 및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작년 1월에서 올해 1월까지 밀은 96%, 대두는 80%, 옥수수는 25%나 상승하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작년 9월 이후 미국이 금리인하를 단행하자 글로벌 유동성이 곡물 및 원자재 시장으로 이동한 것이 가격 급등의 촉매재가 되었다. 3월에도 미국이 0.5%p 이상의 금리인하를 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곡물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국제 곡물가격의 상승은 식품가격 전반에 영향을 주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애그플레이션(Agflation=Agriculture+Inflation)을 초래하였다. 예를 들면 농산물인 밀 가격이 오르면 밀가루 가격이 오르고, 밀가루로 만든 과자, 라면, 국수 등의 식품가격이 올라 전반적인 물가상승을 유발하는 것이다. 주요 농산물의 가격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여 애그플레이션 현상은 전세계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곡물과 식품 가격상승은 서민 경제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서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소요 사태가 발생할 정도로 심각하다. 올해 1월에 국제 콩가격이 최고치를 기록하자 인도네시아 식품회사들이 공장가동을 중지하여 노동자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고 방글라데시에서는 주식인 밀가루 가격 급등으로 공급이 부족해지자 서민경제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멕시코에서도 작년 초 옥수수로 만든 전병인 또띠야 가격이 급등하자 국민들이 시위를 벌렸으며 멕시코 정부는 가격 상한선까지 설정하였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애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다. 라면 외에도 곡물과 관련된 식품류의 가격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2월 소비자 물가지수를 살펴보면, 전년대비 밀가루는 68.6%, 국수는 15.6% 상승하였다. 과자류도 크게 올라서 스낵과자는 18.5%, 초코파이는 21.3%나 상승하였으며, 콩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두부와 식용유도 10%대 상승을 하였다. 이러한 농산물 및 식품가격 인상은 서민들의 체감물가 혹은 장바구니 물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라면과 밀가루의 가격상승을 주목하면서 서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걱정하셨다. 정부는 곡물수급안정 TF와 서민물가안정 TF를 개설하여 물가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를 잡기는 역부족이다.
애그플레이션의 배경에는 수요증가, 공급감소, 거시경제 불안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공급 증감이 국제 곡물가격 변동의 주원인이었으나 앞으로는 수요증가 요인이 더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수요측면에서는 신흥국들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주식이 잡곡에서 쌀, 밀가루, 육류로 변한 것과, 바이오 연료용 곡물 수요 증가가 주요 요인이다. 이러한 수요증가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의 육류소비는 '85년 1인당 20kg에서 '06년에는 50kg으로 급증하였다. 소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8kg의 곡물이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중국 및 신흥국의 육류소비 증가는 사료용 곡물 수요확대의 주요인이 된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공급 감소, 주요 식량수출국의 식량자원주의 확산되고 있는 것도 농산물 가격이 오른 원인이다. 호주는 기상이변으로 인해 밀생산이 '05-'06 곡물년도에 2,500만톤에서 '06-'07 곡물년도에는 980만톤으로 급감하였다. 거시경제 불안측면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불안이 원인이 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로 인한 달러화 약세로 달러화 표시 자산에 투자되었던 자금이 곡물 및 원자재 시장에 몰려들면서 단기간 가격이 급등하게 되었다. 또한 유가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 물류비 상승도 곡물가 상승압력으로 가세하였다.
특히 곡물을 활용하는 바이오 연료는 이번 애그플레이션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바이오 연료 개발과 생산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발표된 미국의 '에너지 독립과 보안에 관한 법률'에 따라 미국의 연료 생산업체들은 오는 2022년까지 바이오연료 생산량을 최소 360갤런으로 확대해야 한다.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작년 연두교서에서 수송용 에너지의 5.75%를 바이오연료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은 옥수수 생산의 1/3을 바이오 연료에 사용하고 있으며, '07년 전세계 곡물재고량의 반인 3,000만톤의 옥수수가 추가로 바이오 연료생산에 사용될 것이다. 이에 뒤질세라 EU국가도 바이오 연료 생산을 늘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회원국 정상들은 작년 3월 2020년까지 모든 자동차에 바이오연료의 사용비율을 최소한 10% 수준까지 높이기로 결정하였다. 브라질에서는 이미 전체 차량의 80%이상이 바이오에탄올 혼합연료를 사용 중이다. 중국에서는 2010년까지 바이오 디젤 생산량을 200만톤까지 늘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바이오 연료의 원료의 사용 증가는 다른 곡물의 공급감소 요인이 된다. 미국에서는 옥수수 재배 면적 확대로 밀·대두 재배 면적 감소하여 이들 작물의 생산이 감소하였다. 바이오 연료 생산 증가는 수요와 공급 양쪽 모두에 영향을 주고 있어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애그플레이션의 주범으로서 이러한 바이오 연료의 사용은 비판을 받고 있다. 옥수수 등 바이오연료의 재료로 사용되는 일부 곡물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값이 올랐고 이 같은 현상이 다른 작물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곡물이 사람이 아닌 자동차의 연료가 되면서 값이 올라가고, 특히 빈국의 사람들이 먹을 식량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바이오에너지가 비인간적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높아진 곡물가격 때문에 세계식량계획(WFP)가 식량원조를 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SUV 차량을 한 번 채울 에탄올을 생산하는데 한 사람이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곡물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곡물 수급전망을 살펴보면 '07-'08 곡물년도에는 대부분의 농산물의 생산 및 재고량이 감소하여 가격이 추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농무부는 '07-'08 곡물년도에 옥수수와 쌀의 공급은 증가, 밀과 대두의 공급은 감소할 것으로 전망. 밀은 -1.6%, 대두는 -2.3% 만큼의 공급 감소가 예상되는 반면 옥수수(3.7%)와 쌀(0.4%)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07-'08 곡물년도의 소비는 '06-'07 곡물년도 증가보다 더 큰 증가율을 기록할 전망이며, 특히 옥수수와 대두의 소비가 각각 5.2%, 4.8% 증가할 것이다. 가격에 민감하게 영향을 주는 기말재고는 큰 폭의 감소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대두와 밀의 기말재고량은 각각 25.7%, 12.3% 감소할 전망이다.
주요 농산물의 가격은 '08-'09 곡물년도를 기점으로 하락하나 과거에 비해 절대 가격수준이 높아 애그플레이션이 지속될 전망.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식량농업기구(FAO)는 주요 농산물 가격이 '08-'09 곡물년도 이후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밀과 조곡은 '08-'09 곡물년도에 각각 전년 대비 3.4%, 0.8% 하락하고, 쌀의 경우 '09-'10 곡물년도에 3.5%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08-'09 곡물년도 이후 국제곡물가격은 완만한 하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지만, '01-'06년 평균가격에 비해 20~36% 이상 높게 유지될 것이다.
주요 곡물 수출국들의 식량자원주의가 확산된다면 높은 가격을 주더라도 원하는 물량을 제때 확보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러시아는 보리, 밀에 각각 30%, 10%의 수출세를 부과해 수출을 규제하고 있으며 수출이 일정량을 넘어서면 밀의 수출세를 40%까지 재인상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1월부터 쌀ㆍ옥수수ㆍ밀가루 등 식량에 대 잠정적으로 5∼25%까지 수출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우리는 이미 70년대 식량위기 시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곡물 수출을 제한한 것을 경험하였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28%로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식량안보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나마 쌀을 제외하면 곡물자급률은 5% 이하이다. 우리나라의 곡물자급률은 OECD 국가중 3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주요 곡물수출국인 호주(280%), 프랑스(191%), 캐나다(164%)는 물론이고, 공업국으로 알려진 독일과 스웨덴도 곡물자급률이 각각 126%,120%로 10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농축산물 무역수지의 적자 증가 추세로 식량자급률의 하락 추세가 심화될 가능성 증가하고 있다. '07년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는 115.7억 달러로 전년 대비 24.3% 증가하였다. 농축산물 수입액은 전년 대비 21.6% 증가한데 비해 수출은 10.6%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입물량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3.7% 증가하여 곡물가 급등이 무역적자의 주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효율적으로 곡물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정책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밀, 옥수수, 콩의 자급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100%의 자급률을 유지하고 있는 쌀의 자급기반을 지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앞으로 개방이 확대되더라도 식량안보 측면에서 쌀의 생산기반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생산량 확보와 생산단가 인하를 위해 경쟁력 있는 농지를 확보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만금 개발 시 공장, 서비스 지역 이외에 충분한 농지 확보를 해야 할 것이다. 소비측면에서도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불필요한 식량수입을 줄일 수 있도록 경제적인 식품소비 생활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식품공급량의 1/3 정도가 폐기될 정도로 비효율적 소비가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정적으로 곡물자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외 농업자원 개발과 정책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96년에서 '05년까지 미국과 중국 등 17개국 농업부문 해외직접투자(FDI)에 8,758만 달러를 투자하였으나 성과는 미진한 상황이다. 일본은 대두와 채소류 생산기지를 연해주에 구축하고 있다. 남미, 동남아시아, CIS 지역을 대상으로 해외 곡물생산 기지 운영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조직적 협업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국제곡물가격 불안정성 심화에 대응하여 선물시장 이용도 제고해야 한다. 대형식품기업과 농산물유통공사 등의 주요 수입주체들은 수입물량 중 아주 제한적으로 선물시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가격변동 위험이 커질 애그플레이션 시대의 불안정성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 국내 선물시장에 옥수수 등 곡물을 상장하여 거래하게 하는 것도 제고해야 할 것이다.
바이오 연료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도 신중히 대처해야한다. 세계가 바이오연료에 대한 논쟁에 빠져있지만 한국의 관련 산업은 아직 초보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정부 차원이나 중소기업 단계에서 콩이나 유채 등을 이용해 연료를 생산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시범 실시 단계이다.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기술개발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이번 애그플레이션 사태로 얻은 교훈처럼 환경과 기후변화를 고려하면서 각 지역별로 알맞은 작물을 사용하는 바이오연료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