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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소비효율을 높이기만 해도 산유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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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1. 해외석유자원확보 정세와 대응전략 / 성원모
2.
에너지 소비효율을 높이기만 해도 '산유국'이 된다 / 유병선
3.
기업경쟁력 강화·가계부담 경감을 위한 유류세 인하 필요하다 / 김정식


에너지 소비효율을 높이기만 해도 '산유국'이 된다

유병선 논설위원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프랑스의 법률가 브리야 사바랭은 19세기 초에 펴낸 책 ‘미식 예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탐식은 죄악이고 금기였다. 먹다가 망했다는 로마제국의 무절제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다. 그 오랜 금기를 대량 소비가 태동하던 무렵 사바랭이 깬 것이다. 식탐의 금기가 풀리면서 비만은 곧 풍요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렇게 200년을 불린 배는 이제 손가락질을 받는 신세로 바뀌었다. 비만은 자신의 건강을 해칠뿐더러 사회의 의료부담을 가중시키는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폭식-금식-탐식’으로 순환한 역사의 주기는 다시 ‘절제’로 돌아섰다.

시대의 흐름은 에너지의 게걸스러움도 지탄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분별없이 부어라 태워라 했던 석유와 석탄의 폭식이 환경재앙과 자원위기로 역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비만’은 모두의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다. 사바랭 식으로 그 불똥을 표현하면 “당신이 무엇을 태우는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가 된다.

에너지 중독

미국의 자동차 전문가인 글로벌 인사이트의 존 워코노위츠는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꾼 뒤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대접해주는 주변의 시선을 즐긴다. 그는 “하이브리드 차를 탄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좀 봐 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 맛에 작고 비싼 하이브리드 차를 몬다는 얘기다.

워코노위츠처럼 생각하는 미국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1999년 첫 선을 보인 하이브리드 차는 지난해 25만대 팔렸고, 올해 35%나 판매가 늘었다. 2015년이면 판매량이 170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하이브리드 차량 5대 가운데 4대를 차지하는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하이브리드 차의 보통명사로 자리 잡았다.

미국 사회 지도층과 할리우드의 스타들의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저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대중들이 환경친화적인 인물로 신뢰를 보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차량이 2억4천만 대에 달하는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의 존재는 양동이의 물 한 방울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이브리드 차량의 빠른 증가세는 ‘에너지 비만’에 대한 비판적인 문화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만은 틀림없다.

폭식은 포만을 부르고, 포만감은 중독 된다. 먹는 즐거움과 세계관조차 바꿔놓는 배부름의 쾌락을 포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중독의 결과인 비만을 줄이는데 고통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국인은 석유에 중독 됐다”고 말했듯이 현대인은 에너지 포식에 중독 되어 있다. 기름값이 치솟고 기상이변의 위협을 뻔히 알면서도 습관을 바꾸기기 힘들다. 에너지 다이어트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비만과의 전쟁’을 하듯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대형차 운전자에 대해 ‘잘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환경을 위태롭게 만들고 이웃과 후손에게 몹쓸 짓을 하는 사람으로 사회적 평가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대형 승용차를 가리키는 신조어 ‘첼시 트랙터’가 사전에도 올랐다. 런던의 부자 동네인 첼시 사람들이 트랙터처럼 큰 차를 모는 것은 사회적으로 무책임하다고 꼬집는 말이다.

자동차 비만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의 자동차 비만은 심각하다. 11월 현재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1630만대에 달한다. 인구 2.5명에 1대 꼴로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다. 그런데도 배기량 1ℓ미만의 경차 비중은 4.7%에 불과하다.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2배쯤 되는 프랑스와 일본에선 경차가 각각 39%와 32.5%를 차지한다. 이는 여전히 자동차를 신분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런 분위기를 조장한 우리 정부와 자동차 회사의 ‘자동차 비만’ 불감증 탓이 크다. 배기량 0.8ℓ 미만의 경차는 1종에 불과하고, 내년부터 1.0ℓ미만으로 기준이 상향되어도 2종뿐이다.

GM대우 관계자는 “자동차 크기를 신분의 잣대로 여기는 문화가 있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한 업체들은 경차 개발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와 정책 탓이라지만 설득력이 없다. ‘저유가 시대’가 막을 내린지가 2년이 넘었지만 요즘 신차의 대부분은 이른바 ‘첼시 트랙터’들이다. 공급자 우위인 자동차 시장의 특성상 우리의 소비자들은 자동차 비만을 줄이려 해도 쉽지가 않은 상황이다. 1950년대 대형차를 선호하는 미국의 자동차 시장에 독일 폭스바겐은 딱정벌레만한 ‘비틀’을 내놓으며 “작은 것을 생각하라(Think Small)”란 광고 카피를 내세웠다. 비틀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소형차에 대한 수요와 시장을 만들어냈다. 우리 자동차회사들은 사치품이 아니라 실용품으로서의 작고 좋은 차를 공급하지도, 시장을 만들어 내지도 못한 것이다. 이 틈새를 일본 경차들이 파고들고 있다.

물론 정부의 책임도 크다. 공공기관에 경차를 일정 비율 이상 확보하도록 강제하고, 직급에 따라 자동차의 덩치를 정하는 전근대적인 관례를 없앨 필요가 있다. 비단 경차만이 아니더라도 자동차 비만을 줄이는 방법들을 강구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게 효과적인데, 기존 연비등급에는 문제가 많다. 자동차 연료 탱크 속 기름의 4분의 3은 차량의 무게를 굴리는 데 소비된다. 배기량이 같아도 차의 덩치가 줄어들고, 차체 무게를 줄이면 그만큼 기름은 덜 먹는다. 하지만 기존의 연비등급은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되었듯이 배기량에 따라 연비를 상대 평가하는 바람에 ‘에너지 다이어트’를 권장한다는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경차가 대형차와 같거나 낮은 등급을 받는 것이다. 마치 비만의 정도를 보여주는 체질량지수를 사회적 신분에 따라 달리 매기는 것처럼 황당한 일이다. 유럽처럼 배기량과 관계없이 모든 차를 1ℓ의 기름으로 몇㎞를 운행할 수 있는가를 따져 연비 등급을 매기는 것이 옳다.

연비 방식을 손대지 않으려면, 애머리 러빈스 미국 로키마운틴연구소 소장의 제안한 ‘피베이트’(feebate)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피베이트란 부과금(fee)과 보조금(rebate)을 합성한 말로, 배기량이 같더라도 연비가 다르면 값에 차이를 두도록 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연비가 나쁜 모델에 부과금을 물리고, 그 부과금을 연비가 좋은 모델에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자동차 회사들이 에너지 효율을 높이게 유도하는 한편, 소비자들에게 구입 단계에서부터 자동차 비만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자는 것이다.

에너지 다이어트

자동차 비만은 주유게이지나 연료게이지의 눈금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매일 휴대폰을 충전하고, 인터넷을 쓰면서도 에너지 비만에 가슴 철렁해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쓰는 ‘깨끗한’ 전기의 40% 정도가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석탄을 태워 만들어지는데도 말이다. 한정된 화석연료를 언제까지 폭식할 수 있을지, 그로 인한 환경변화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지금의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은 일찌감치 났고 대비책도 나와 있다. 환경에 해롭지 않은 대체에너지 개발에 힘을 쏟는 것,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석탄과 석유를 덜 태우고 더 큰 에너지를 얻는 것, 그리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고유가로 대체에너지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다. 농업·임업 부산물의 셀룰로오스를 발효시킨 바이오연료가 10년 내 실용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풍력도 세계 연료 수요의 3분의 1을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 태양광과 지열, 파력을 이용한 발전방식도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폴로 프로젝트처럼 집중적인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한 대체에너지가 실용화되는데 적어도 2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만 해도 ‘산유국’이 된다. 로키마운틴 연구소는 2004년 미 국방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2040년까지 미국에서 석유 사용을 완전히 중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75년 석유파동 이후 석유의 효율성이 2배로 높아졌는데, 다시 2배로 끌어올릴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신소재나 고효율 기술이 뒤따라야 한다.

가장 강력하고 근본적이며 당장에 쓸 수 있는 최선책은 에너지 다이어트에 나서는 일이다. 천문학적인 돈과 기술이 없이도 개인적 의지와 사회적 결단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난방 끄고, 걸어 다니자는 얘기가 아니다. 비만과의 전쟁이 밥 한 숟가락 덜 먹는데서 출발하듯, 과도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자는 이다. 자동차 비만만 줄여도 유정 몇 개는 기름을 퍼내지 않아도 된다. 길게 보고 기후변화를 완화하면서 동시에 적응하는 것이 에너지 다이어트의 핵심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크리스 서머빌 교수는 에너지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기적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문제가 심각해져 정말로 위기가 닥치기 전에 대체에너지를 개발할 시간은 아직 있다. 하지만 아무도 일도 하지 않고, 폭넓은 위기의식이 없다면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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