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세제개편이 세수증대의 방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홍창의_관동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
정부는 지난 ‘2000년 제1차에너지세제 개편안’을 통해 휘발유, 경유, LPG 가격비율을 오는 2006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100대 75대 60으로 조정키로 했었다. 당시 가격 비율은 100대 47대 26이었기에 경유와 LPG 사용자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LPG 가격을 대폭 올리자 LPG 차량의 판매는 급격히 줄어든 반면, 경유차 판매는 크게 늘어나 에너지세제의 변화가 자동차 세금에까지 영향을 주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국민들은 가계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정부는 세금수입이 증가하게 되었다. 실제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총 14조 원의 세수가 증가했으며 2004년에는 2000년 대비 총 7조 3천억 원의 세수가 증가하였다.
사실상, 우리나라는 유류에 관한 세금이 너무 많이 왜곡되어 있다. 전체 에너지원 중 국내 석유의존도는 45.6%에 불과하지만, 석유류에 부과되는 세금은 전체 에너지에 부과되는 세금의 무려 95%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합리성이 결여된 상태이다. 그리고 석유류 세수가 가장 크게 증가한 2004년의 경우, 석유관련 하여 거두어들인 세금이 전체 국세의 18.2%나 차지할 정도로 막강한 세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올해 경유승용차 판매허용을 앞두고 휘발유승용차의 경유승용차로의 급격한 전이 및 경유다목적차의 급증을 정부는 우려하게 되었다. 특히, 경유차로 인한 대기오염을 다루기 위한 ‘경유차 환경위원회’가 발족되어 경유의 황함량 기준을 강화한다든지 경유승용차에 매연후처리장치 부착을 촉진한다든지 등의 방안을 논의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기자동차, 전기하이브리드차 등의 무·저공해차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지원이나 보조금지급 지원방안을 강구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이에 재정경제부와 한국조세연구원 등은 환경세를 기화로 또다시 ‘2차 에너지세제 개편안’을 들고 나왔다. 결국 이번 ‘2차 에너지세제 개편안’은 올해의 경유승용차 도입계기와 무관하지 않고 소비자들의 세제변화에 따른 차량선호도의 영향과도 관계가 깊다. 그리고 제 2차 에너지세제 개편안을 당초 계획보다 2년 앞당겨 내년부터 적용키로 가닥을 잡은 것도 상당히 촉박한 시간 압박 속에 정책결정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2차 에너지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부터 휘발유, 경유, LPG의 가격비율은 100대 85대 50으로 재조정될 전망이다. 정부가 당초 예고한 것보다 경유 값은 더 오르고, LPG값은 소폭 내려감으로써, 경유차 운전자들의 연료비 부담이 가중될 것이다. 이에 따라 휘발유 값이 현 수준을 유지할 경우 앞으로 LPG 가격은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경유 가격은 30% 가까이 오를 것으로 예상돼 디젤차량 운전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이번 세율조정에 대한 정부 측 논리는 “유류의 사회적 비용과 국제수준 등을 감안해 결정한 것으로 자가 운전자들의 기름 값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차등과세를 통해 연료 간 가격차별을 유도하는 경제적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일부 차량의 이용 목적을 고급소비 행위로 간주하여 소득 재분배 차원에서 특별 과세하여 분배구조를 개선하려는 것이다. 둘째, 차량이용으로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비용을 원인자 부담 원칙에 의해 연료별, 차량별로 사회적 비용 발생정도에 따라 차등 과세하여 형평성을 제고하는 것이다.
연료 간 가격차별은 소득 재분배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에너지 사용의 외부성으로 부터 발생하는 ‘시장의 실패’를 효율적으로 교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적 파급효과가 매우 높다는 데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듯하다.
먼저, 소득재분배 기능과 관련하여 정부의 입장은 휘발유의 경우 차등과세가 소득재분배에 일정 기여를 하고 있는 데, 경유와 LPG의 경우 소득역진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나 소득재분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연료별 비용할당은 연료사용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가격에 내재화 시켜 연료사용으로 발생하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할 수 있다고 자신을 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생각하는 사회비용이라는 것은 ‘교통혼잡비용’과 대기오염에 따른 환경비용이다.
그 다음 국제 비교하는 방법론상에서 휘발유대 경유의 세후 가격비율을 선진국의 가격비율 사례에 비추어 경유의 가격비율을 75~85% 수준으로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경유 대 LPG의 가격비율은 선진국 운영사례와 연료 간 열량차이를 감안하여 경유 대 LPG의 가격비율은 최종소비자 가격기준으로 LPG의 가격이 경유의 50%수준이 되도록 설정하여야 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었다.
연료별 차량의 장단점을 고려할 때 현재 운전자들이 체감하고 있는 적정 연료비 가격비율은 이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한 뒤, 연료 사용에 불균형을 초래하지 않는 방향에서 조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것은 모든 유류의 기준이 되고 있는 휘발유 세에 대한 적정성 고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금비중은 62.7%로 OECD 평균(58.7%)보다 높으며, 가격 또한 국민소득(GNI)수준을 고려할 때 세계 최고수준이다. 휘발유 세금은 한국이 870원/ℓ일 때, OECD 평균이 754원/ℓ이다. 이 같은 휘발유 세금을 그대로 둔 채, 경유값을 올리고 LPG 값을 내린다고 서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지를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00ℓ의 경유를 쓰는 운전자의 경우 이번 경유 값 인상안에 따라 한 달 평균 2만원 5천원 정도의 연료비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LPG 가격인하는 소폭에 그쳐, 한 달에 100ℓ정도 LPG를 쓰는 운전자는 한 달 평균 2천 5백원 정도의 연료비를 절감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국민세금 총량만 증가할 뿐이다.
특히 경유차 소유주의 상당수가 서민층, 영세 자영업자들인 점을 감안하면, 환경보호를 위한 경유 값 인상 때문에 경제적 약자들만 피해를 본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또 경유에 붙는 세수가 늘어나면 휘발유에 붙는 세금을 줄여 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에너지세제 정책은 세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 이는 정부의 신뢰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많은 경유차 운전자들은 정부의 ‘1차 에너지세제 개편안’ 발표를 믿고서, 경유차를 사는 게 그래도 경제적이라는 판단아래 차를 구입했다. 소비자들이 차를 구입할 때 향후 5~6년 이상 운전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선택하기 때문에 앞으로 경유와 LPG가격이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내용은 가계경제를 계획하는 데 필수적인 사항이었다. 그런데, 이런 계획을 정부가 망가뜨려 놓은 셈이다. 또한, 투싼·싼타페·스포티지·쏘렌토·렉스턴·무쏘픽업 등 경유 자동차를 판매 중이거나 경유승용차 출시를 앞두고 있는 현대차·기아차·쌍용차는 경유가격 인상 때문에 마케팅 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자동차 업체들도 에너지 가격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경유와 LPG가격의 조정 방향이 어떻게 결정되느냐가 곧바로 판매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번 ‘2차 에너지세제 개편안’ 이후 언제 또 ‘3차’, ‘4차’가 나올 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그러므로 일관성 없는 정부는 국민이 계획을 세울 수 없게 만들었고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둘째, 교통혼잡세와 환경세 추징에 대한 근거도 없다. 한마디로 시나리오 설정이 잘못 되었다. 먼저 혼잡세의 경우, 서울의 남산 터널비를 100원에서 2,000원으로 대폭 인상하면서 써먹은 논리가 교통혼잡세였다. 지금에 와서 차량연료에까지 혼잡세를 들먹이면 곤란하다. 강원도 호젓한 산간지역에서 디젤차량을 운행하면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교통혼잡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데, 그들에게 교통혼잡세를 내라고 하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지역별로 교통 혼잡도의 차이가 심한 데, 정부가 자꾸 혼잡비용을 강조하면 지역간 형평성 문제도 야기시킬 수 있다. 그리고 경유차에 대한 환경세 주장도 문제이다. 유럽의 경우, 1897년 루돌프 디젤이 디젤엔진을 발명한 이후, 디젤엔진이 대기오염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휘발유차에 비해 디젤차는 질소산화물(NOx), 이산화황(SO2), 미세먼지(TSP)를 많이 발생시키는 데, 반대로 COX(CO, CO2의 총징)와 하이드로카본(HxCy)는 적게 배출한다. 그렇지만 디젤엔진에 사용되는 경유는 정유단계에서의 탈황 공정으로 황은 제거가 되며, 분진은 차량에 특수필터 장착을 의무화하여 환경오염을 최소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럽의 경우, 경유가 환경친화 연료로 인식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승용차 기준으로 배출가스 규제기준이 계속 강화되어왔고 생계형 자동차인 화물차, 버스, 중장비와 같은 경유차는 상대적으로 규제기준이 느슨하여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잘못 인식되었다. 결국 미국과 같은 제한된 국가의 정보를 가지고 산출한 결과를 준용하여 유류별 배출가스의 장단점 자체를 호도하고 있는 셈이다.
셋째, 유류가격에 대한 투명하고 명확한 논리가 없다는 것이다. 국민이 처음에 바란 것이 무엇인가? 매우 단순하다. 휘발유세가 경유나 LPG에 비해서 너무 높으니 좀 낮춰달라는 거 아니었는가? 이도 엄밀히 말하면, 휘발유에 대한 세금이 너무 높으니까 그냥 낮춰 달라기 뭐해서 경유나 LPG를 끌어들인 것이리라.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휘발유세가 너무 높은 것이 원인이다. 그런데 정부의 반응은 그 반대였다. 고급소비, 소득재분배를 거론하면서, 경유와 LPG의 세율을 높이는 게 아닌가? 1차 수송용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 시 휘발유 세금은 고정시킨 채, 경유와 LPG 세금을 인상하여 가격비율을 맞춤으로써 에너지 세제개편을 세수증대 방편으로 활용한 측면이 강하다. 경유승용차 도입과 LPG를 사용하는 택시업계의 요구에 따라 제 2차 세제개편이 단행되었다. 앞으로 경유가가 인상되면 버스와 화물차에서 반대가 거세질 테고 정부는 늘 하듯이 지원금이나 면세, 취득세 감면 등으로 사태를 진정시키려 들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영세업자와 일반시민들이다. 그들은 인상폭, 감면부분, 그 모든 것을 떠맡아야 한다.
세금이 비싸다 보니 유사 연료가 자꾸 기생한다. 경유가 자꾸 비싸지다 보니 디젤엔진에 등유까지 사용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불법이고 차량장치에 심각한 고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엄격히 규제하여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등유가 경유의 대체연료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식별제를 사용하는 등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엉뚱하게도 이번 세제개편에 경유 세금을 올리면서 덩달아 등유세금도 올려놓고 있다. 대체연료로 사용됨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문제는 등유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 계층이 영세 서민층이란 점이다. 모든 문제는 나름대로의 최적의 해결방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정당한 해결방식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휘발유의 세금을 내리면 될 일을 갖고 경유와 LPG의 세금을 올리더니, 이제는 경유 세금을 더 올리고 등유까지 세금을 인상하겠다고 으름장이다.
이제는 세수증대 목적이 아닌 서민 생활 보장 차원으로 방향을 선회 할 시기가 도래하였다. 불합리한 세제개편은 철회하고 휘발유 특소세를 없애고 각종 유류세를 인하하는 방향의 개혁적 세제개편을 통해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신뢰받는 정부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