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가격과 세제의 정상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유승훈 교수
정부는 2040년까지를 계획기간으로 하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기본)을 수립하고 있는데, 에기본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따라 에너지위원회, 녹색성장위원회,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4월말에 확정될 예정이다. 에기본은 에너지 분야 최상위 국가계획으로서 시대정신과 국가의 에너지 대계를 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에기본 민간 워킹그룹은 에기본 권고안을 작성한 후 지난 11월초 정부에 전달하였다.
권고안에는 ① 에너지 수요관리 혁신을 통한 고효율 에너지사회 구현, ② 재생에너지 중심의 통합 스마트에너지시스템 구축, ③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미래 에너지산업 육성, ④ 국민참여/분권형 에너지 거버넌스 구현, ⑤ 에너지안보 제고를 위한 에너지자원 협력 강화, ⑥ 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전환시대에 걸맞은 인프라 확충이라는 6대 정책방향이 담겨 있다. 특히 과거와 달리 에너지가격・세제 소위원회를 구성한 후 수차례의 논의를 통해 에너지 가격 및 세제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를 권고안에서 분명하게 밝혔다.
권고안은 정부의 규제로 인해 사회적 비용이 가격구조에 적기에 반영되지 않아 시장가치 기반의 소비 선택이 어려워 새로운 서비스 창출이나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소비가 저해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특히 전기요금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 예를 들어, 2017년 기준 산업용 전기요금 대비 천연가스 가격이 독일과 미국은 각각 4.78 및 4.73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2.03에 불과하였다. 주택용 전력의 상대가격도 독일 4.13, 미국 3.40, 프랑스 1.92, 일본 1.86인데 반해 우리는 1.69에 불과하였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MWh당 $109.1로 OECD 평균 $156.9의 2/3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낮은 전기요금은 낮은 과세, 적정 공급비용 미반영 등에 의한 것으로 전력 수요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종 에너지소비 중 전력부문의 비중은 1990년 12.5%에서 2016년에는 25.5%로 약 25년만에 2배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에기본 워킹그룹은 에너지 가격・세제 정책을 3대 원칙 하에서 추진해야 함을 권고하였다. 첫째, 사회적 비용을 반영한 에너지 가격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에너지 가격에 공급원가 및 외부비용이 모두 포함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 과세체계의 공정성 및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해 에너지 원별・부문별 과세를 합리적 기준에 따라 체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셋째, 에너지 가격체계는 효율향상을 위한 가격신호 기능을 충실히 반영하면서 결정 및 시행과정에서의 국민 수용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권고안에서는 구체적으로 다양한 제안을 하였는데, 그 중에서 몇 가지 중요한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1차 에너지보다 저렴한 전기요금을 시급하게 정상화해야 한다. 우리는 봉지라면보다 끓인 라면이 더 싼, 쌀보다 즉석밥이 더 싼, 콩보다 두부가 더 싼 모순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렇게 원가에 못 미치는 낮은 전기요금은 한전의 적자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결국 안 써도 될 에너지를 더 사용하게 하고, 배출하지 않아도 될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를 더 배출하고, 무역수지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열대지방이 아닌 우리나라 내륙에서 망고, 바나나 등의 열대과일 재배면적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원가보다 한참 낮은 전기요금이 유발한 안타까운 현실이다. 따라서 최우선 과제는 한전의 전력구매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전기요금 도매가격 연동제를 도입하여 기본적인 전기요금 수준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둘째, 전기요금 체계를 합리화해야 한다. 즉 공급원가에 근거하여 부하특성이 유사한 산업용, 일반용, 교육용을 전압별로 통합하는 전압별 요금체계로 전환하여 용도 구분을 단순화해야 한다. 또한 주택용, 심야전력, 농사용, 가로등용은 별도 체계를 유지하되 단계적으로 요금 수준 조정을 통해 원가 기반 요금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할인특례제도는 일몰제 도입을 통해 단계적으로 축소 및 폐지하고 향후 신설을 제한해야 한다. 특히 기업이 생산활동보다 에너지저장장치(ESS) 충전으로 돈을 벌고 국민들이 이를 부담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ESS 할인특례제도는 조속히 폐지되어야 한다. 이상의 내용을 반영하여 올해 말까지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위한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셋째, 다양한 에너지원 중에서 유일하게 국세가 부과되고 있지 않은 원전에 대해 과세가 이뤄져야 한다. 원전은 대표적인 비분산형 전원으로서 송전시설과 관련하여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으며, 특히 사용후핵연료와 관련된 외부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도 원전에 대한 과세가 제안되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한국산업조직학회(2017)에서는 원전의 외부비용이 kWh당 18.20원에서 27.37원 사이라고 추정한 바 있으므로 이 금액을 과세 신설의 근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세금을 원료인 우라늄에 부과할지 아니면 원전으로 생산된 전기에 부과할지를 포함한 다양한 논의를 통해 원전에 대한 과세가 실현되어야 한다.
넷째, 외부성을 감안하여 에너지 세제의 수준이 결정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가 및 이해당사자로 구성된 ‘(가칭)에너지 외부비용 평가위원회’를 구성하여 에너지원별 외부비용을 주기적으로 산정하여 공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산정된 외부비용과 일치하도록 조세의 수준이 결정되어야 조세의 외부성 교정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 당장 조세의 외부비용 반영률을 100%로 하는 것이 어렵다면 단계적인 조정을 통해 2030년까지는 100% 반영으로 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조세의 외부비용 반영률을 에너지 원별로 유사하게 유지해야 한다. 특정 에너지원에만 집중된 과세는 형평성을 심각하게 왜곡하여 수용성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15%를 넘지 않는 수송용 에너지에 에너지 세제의 80% 이상이 집중되는 과세 불균형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것을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다섯째, 석유제품에만 집중된 수송용 에너지에 대한 조세를 다른 수송수단으로 확대해야 한다. 정부는 2022년까지 전기차 43만대, 수소차 6만7000대를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LNG 화물차의 보급도 확대하겠다고 한다. 석유제품에만 집중된 과세 체계를 유지한다면 앞으로 극심한 세수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정 수준 미세먼지를 배출하고 혼잡으로 인한 외부성을 야기하는 전기차, 수소차, LNG 화물차 연료에 대한 면세로 과세 형평성 왜곡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수송용 연료별 외부비용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합리적인 상대가격 체계를 구축하고, 석유제품 외 수송용 연료에 대한 적절한 과세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여섯째, 현재 다양한 형태로 시행되고 있는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 및 폐지해야 한다. 국제연합(UN)에서는 2016년 지속가능 개발목표 17가지를 발표했는데 12번 ‘지속가능한 소비 및 생산 양식 보장’에서 에너지 낭비를 부추기는 비효율적인 화석연료 보조금의 합리화를 권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발전용 유연탄에는 개별소비세가 부과되고 있지만 산업공정외 석탄 사용 및 산업단지 석탄 열병합발전에 대해서는 개별소비세가 면세되고 있다. 석유제품에 대해서도 농어업용 면세유, 화물차 유가보조금 등이 적용되고 있다. 당장 폐지는 어렵겠지만 중장기적인 폐지를 염두에 두고 화석연료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에너지 가격에 공급원가가 충분히 반영되고 더 나아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 수준이 결정된 외부비용을 감안한 과세가 이뤄져야 한다. 당장은 외부비용을 100% 반영하기 어렵겠지만 단계적으로 외부비용의 반영률을 올려 나가되 에너지원별 외부비용 반영률이 비슷하도록 하는 과세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 작년에 있었던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듯이, 특정 에너지에만 집중된 과세 강화는 사회적 수용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에너지 가격과 세제의 정상화는 결국 국가 전체적인 에너지 효율화로 귀결될 것이며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