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석유 산업 경영 환경 전망
신한금융투자 이응주 팀장(소재/중공업)
정유년이 밝았다. 그러나 희망찬 새해 운운하기에는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촛불로 대표되는 국내 정치 여건의 급박한 변화 가능성, 미국 대통령 교체가 상징하는 국제 정치/경제 환경의 불안정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석유 산업은 더욱 큰 불확실성에 직면할 전망이다. OPEC 감산과 트럼프의 새로운 에너지 정책이라는 불협화음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쉽게 예단할 수 없다. 2017년 석유 산업이 처할 환경에 대해 조심스럽게 전망하고자 한다.
2017년 WTI 기준 유가 55달러/배럴(+12달러 YoY) 전망
유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펀더멘탈(수요와 공급), 글로벌 유동성(달러 가치), 지정학적 리스크(중동의 정치적 안정 여부) 등 이다. 이 세가지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유가 강세를 전망한다. 2017년 WTI 기준 평균 유가는 배럴당 55달러로 전년 대비 12달러 상승하겠다.
우선 펀더멘탈 측면에서 유가 강세가 전망된다. 2017년 글로벌 석유 수요는 전년 대비 120만b/d 증가하겠다. 2015년(+160만b/d)이나 2016년(+130만b/d)에 미치지 못하지만 평균(+100만b/d)을 상회하므로 여전히 좋다. 반면 공급은 줄어들겠다. OPEC 감산 합의가 없었어도 2017년에는 글로벌 공급 과잉 우려가 완화될 가능성이 컸다. 2015년 중반 200만b/d에 달했던 공급 과잉 규모(석유 공급 – 수요)가 2017년 하반기에는 ‘0’에 가까워진다는 전망이 우세했었다.
여기에 OPEC과 Non-OPEC이 최대 170만b/d(OPEC-120, Non-OPEC-50만b/d) 감산한다면 공급 과잉이 한층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란, 나이지리아, 리비아 등 감산 미참여 국가들의 증산 규모는 유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이슈다. 미국도 셰일가스 업체들이 생산을 재개한다면 최대 100만b/d의 원유 공급이 가능하다.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은 원유를 둘러싼 펀더멘탈(수요/공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트럼프의 핵심 공약 중 하나는 친환경 정책 폐기와 Shale Gas/Oil 개발 장려다. 얼핏 원유 생산을 늘려서 유가 하락을 유도하겠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친환경 정책의 폐기는 원유, 천연가스와 같은 재래식 에너지원에 대한 즉각적 수요 증가를 의미한다. 반면 정책적 유도를 통한 원유/천연가스 생산량 확대에는 시간이 걸린다. 미국 에너지 개발 업체들은 트럼프의 에너지 정책보다 원유 가격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둘째 글로벌 유동성을 고려해도 유가 강세가 예상된다. 트럼프 당선에 따른 글로벌 불확실성의 확대로 일시적인 달러 강세 현상이 나타났다. 원/달러 환율도 1,200원을 상회했다. 그러나 트럼프 취임 이후 반전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보호 무역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미국산 제품이 많이 수출되고 수입이 줄기 위해서는 달러 약세가 필수적이다. 미국 정부가 달러 가치 약세를 용인할 가능성이 높다. 통상 달러 가치와 상품 가격은 역의 상관관계를 갖는다. 달러 가치가 하락(글로벌 유동성이 증가)하면 원유와 같은 상품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셋째 중동의 정치적 불안정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가 이란과의 핵 협상 파기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평균 유가(WTI 기준 43달러/배럴)가 전년 대비 5달러/배럴 하락한 이유는 이란의 원유 생산 증가 때문이다. 2016년 12월 현재 이란의 원유 생산량(373만B/D)은 제재가 풀리기 전(2015년 평균 280만B/D)보다 93만B/D 증가했다. 2016년 석유 수요 증가분(130만B/D)의 72%를 충족시킬 수 있는 양이다. 이란에 대한 봉쇄 정책이 다시 펼쳐지고 지난 11월 30일 결정된 OPEC 감산 합의가 제대로 지켜진다면 유가가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7년 WTI 기준 연말 유가는 배럴당 60달러에 근접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OPEC의 감산 합의가 성실히 이행되고 중동에 큰 정치적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다만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크게 상회할 가능성도 낮게 본다. 60달러는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의 손익 분기점이다. 이 구간부터는 미국 셰일가스 생산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유가 상승을 억제하겠다.
2017년 한국 정유사 기준 복합 정제마진 8.3달러/배럴(+1.1달러) 전망
2014년까지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한국 정유사들이 2015년 들어 살아났다. 살아난 정도가 아니라 2016년 한국 정유사들의 영업이익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저유가가 오히려 이익의 증가 요인이었다. 유가 하락은 OPEC의 치킨게임이라는 공급 요인 때문이었다. 석유 수요는 오히려 좋아졌다. 판가 하락 폭이 원료가 하락 폭보다 작아서 정제마진이 개선되었다. 2017년에도 마찬가지 상황일까?
2017년 복합 정제마진(한국 기준)은 배럴당 8.3달러로 전년 대비 1.1달러 상승하겠다. 석유 수요 증가 규모(+120만b/d)가 정제설비 순증가 규모(+90만b/d)를 상회하기 때문이다. 주요 제품별 마진 전망도 낙관적이다. 2017년 휘발유 마진은 전년 대비 0.5달러/배럴 상승하겠다. 2016년 기저효과 덕분이다. 수요에 대한 과도한 낙관적인 전망(정유사들의 생산량 극대화) 덕분에 2016년 휘발유 마진은 전년 대비 3.7달러나 하락했었다. 경유 마진도 3.0달러/배럴 개선되겠다. 유가 상승으로 신흥국 경기 개선, 중국/미국의 인프라 투자 본격화에 따른 경유 수요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불안 요소는 존재한다. 중국, 사우디, 미국이 변수다. 우선 중국의 경우 티팟(Teapot Refinery)이라고 불리는 소형 정제설비의 가동률이 문제다. 티팟은 중국 전체 정제설비(1,500만b/d)의 25%를 차지한다. 중국 정부가 민간 정유사들에 원유 도입 권한을 부여하면서 가동률이 급격히 상승했다. 2016년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이 전년 대비 무려 40%나 증가한 이유다. 최근 탈세, 시장 교란, 환경 오염 이슈 등을 들어 중국 정부가 티팟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티팟에 대한 규제 강화가 실효을 거두지 못한다면 중국발 석유제품 공급 과잉 우려는 더욱 증폭될 수 있다.
사우디의 OSP(Official Selling Price) 관련 정책도 관건이다. OSP(보다 정확하게는 OSPD)는 사우디가 자국산 원유를 국제 유가 대비 얼마나 비싸게(혹은 싸게) 파느냐의 지표다. 2014년 초에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배럴당 3.5달러(Arab Light 기준)나 비싸게 팔았다. 그러다 치킨게임이 가속화되면서 2015년에는 평균 1달러 정도 싸게 팔았다. 2016년 연평균 OSP는 -0.4달러 수준이다. 2017년 OPEC 감산이 준수된다면 사우디가 굳이 OSP를 낮출 이유가 없다. 더구나 2018년 상반기 국영 석유 업체인 Aramco 상장이 예정되어 있다. 기업 공개 과정에서 아람코 주식을 비싸게 평가받으려면 OSP를 높여야 한다. 한국 정유사들이 원유를 1달러/배럴 비싸게 사면 연간 1조원의 이익이 (정유 4사 합산 영업이익 기준) 감소한다.
미국의 새로운 에너지 정책도 변수다. 트럼프는 제 2차 Shale Gas Boom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향후 어떤 일이 전개될지 알기 위해서는 1차 Shale Gas Boom 기간(2011~14년)에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정유사들은 황금기를 구가했다. 대표적인 독립계 정유사인 Valero Energy의 영업이익은 60.3%(2011년 3.7 vs. 2014년 5.9십억달러) 증가했다. 반면 한국 정유사들은 암흑기를 경험했다. 2011년 S-OIL의 영업이익(정유 부문)은 4,723억원이었으나 2014년에는 -7,295억원을 기록했다. 그나마 선전한 현대오일뱅크의 영업이익도 27.3% 감소했다.
정반대의 양상이 벌어진 이유는 지역간 유가 차이 때문이다. 저유황 경질유인 WTI는 고유황 중질유인 Dubai보다 품질이 좋다. 가격도 높아야 한다. 그런데 2011~14년 평균 배럴당 9달러 더 낮았다. Shale Gas Boom으로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은 증가(+51.3%, 2011~14년 연평균 생산량 기준)했는데 원유 수출이 금지되어 있으니 WTI 가격이 구조적으로 저평가될 수밖에 없다.
재미있는 점은 휘발유와 같은 석유제품 수출은 허용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미국 정유사 입장에서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저가의 원유를 구매해서 비싸게 팔 수 있는 구조다. 해외 석유제품 가격은 WTI보다 고평가된 Brent나 Dubai 원유 가격에 연동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 정유사들의 평균 가동률이 3년 사이 5%p 상승했다. 원가 경쟁력이 높은 미국 정유사들의 공급 증가는 아시아 정유사 입장에서는 재앙이었다.
2016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정유사들이 선전한 이유 중에는 WTI와 Dubai간의 재역전도 있다. 2015년 말 미국산 원유의 수출 제한이 풀리면서 WTI와 Dubai간의 가격 역전 구조가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2016년 WTI는 Dubai 가격보다 배럴당 2.0달러 더 높다. 2016년 미국 정유사 가동률이 전년 동기 대비 1.5%p 하락한 이유다.
그런데 OPEC 감산 결정과 트럼프 당선이 겹치면서 2016년 12월 WTI/Dubai 스프레드는 배럴당 ‘0’으로 좁혀졌다. Dubai유 가격은 상대적으로 높아졌고 WTI는 싸졌다. 제 1차 Shale Gas Boom 기간의 악몽(한국 정유사 입장)이 재현되지 말라는 보장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