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폐업주유소의 현황과 과제
김기석 기자(파이낸셜뉴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해결할만한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정부도 고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 차원에서 내놓을만한 해결책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유소업계 휴업사태를 바라본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최근 주유소 휴업사태는 정유업계를 넘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사업장을 방치하면서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 되고 있는 것은 물론 일부의 경우에는 임대 형태로 전환돼 가짜 석유의 불법유통에 악용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사태해결을 위해 주유업업계는 정부에 주유소 공제조합을 통한 예산지원을 요청했고 정부도 검토하고 있지만 특혜시비가 불거질 수 있어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623여개 휴폐업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7월까지 623개 주유소가 폐업을 하거나 휴업을 하고 있다. 지난 하반기부터 국제유가가 급락세를 보이면서 주유소를 찾는 운전자들이 늘었지만 영업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이는 전년 동기 휴폐업 주유소 591개에 비해 32개나 늘어난 수준이다.
지난해까지 영업을 하다 올해 문을 닫은 주유소가 133개였고 영업을 쉬고 있는 주유소는 490개였다. 폐업을 결정한 주유소 수는 1년전 159개에 비해 줄었지만 휴업 주유소는 지난해 7월말 현재 432개에서 지난 7월말 490개로 15.7%나 증가했다.
폐업 주유소는 2013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2013년 310개이던 폐업 주유소는 지난해에는 244개로 줄었다. 그러나 휴업 주유소는 2013년 393개에서 지난해 449개로 늘었고 올해는 490개까지 늘었다. 주유소가 휴업신고를 내면 1년 동안 영업을 하지 않는 휴업상태로 있을 수 있고 때에 따라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다.
주유소들이 폐업을 하지 못하는 것은 폐업하는데 큰 돈이 들기 때문이다. 주유소 사업을 접으려면 오염된 토지를 복원하고 지하 유류 저장탱크 등 시설을 철거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페업 비용으로 1억5000만원, 규모가 클 경우에는 2억원 이상 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유소 영업환경이 악화되면서 전체 주유소 수도 감소추세다. 2012년말 1만3198개이던 주유소 수는 2013년 1만3096개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1만2940개, 올해 상반기에는 1만2842개로 감소한 상태다. 새로 문을 여는 주유소보다 문을 닫는 주유소가 더 많아지면서 주유소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주유소 난립·알뜰주유소 등이 직격탄
한 때 수익사업으로 부러움의 대상이던 주유소의 영업환경이 악화된 것은 주유소 설치에 대한 거리제한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990년만 해도 서울은 700m 이상, 직할시 등은 1㎞, 기타지역은 2㎞ 등의 거리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1991년 거리제한이 절반으로 줄었고 1995년는 아예 거리제한 제도가 폐지됐다. 거리제한이 사라지면서 잠재 사업자들이 업계에 뛰어들었고 정유사들도 외형 경쟁에 나서면서 주유소 수가 급격히 늘었다. 경쟁자 수가 증가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주유소 수익성도 악화된 것이다.
국제유가가 급등할 때마다 정부가 제시했던 방안들도 주유소업계의 수익성을 악화시킨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부가 국민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을 이유로 주유업계에 일정 수준의 가격할인을 압박했고 일명 마트주유소, 알뜰주유소 등이 등장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다.
주유소업계 한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급등할 때마다 주유소업계에 가격인하 압력이 가해졌고 운전자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목으로 셀프주유소, 알뜰주유소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수익을 내지 못해 문을 닫거나 영업을 중단하는 주유소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주유소 수가 8000개 정도까지 줄어야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정부 '묘수' 찾기 골몰
문제는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만한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 8월 21일 국회에서는 주유소업계와 중소기업연구원,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주유소 업계 바람직한 구조조정 방안 마련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주유소업계 등은 영세주유소가 스스로 폐업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경쟁촉진정책으로 주유업계 경영난이 발생했다. 공제조합 설립에 정부예산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한 중소기업연구원 박사는 주유소 퇴출을 위해서는 주유소 시설개선부담금 신설, 구조조정기금 조성 등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난색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업종은 도와주지 않고 주유소만 지원한다면 형평성에 문제가 될 수 있고 정부에 의존해 쉽게 폐업하는 도덕적 헤이도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