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유업계 바람
글·정헌|SK주식회사 E&M전략본부장
먼저, 정유사의 경영성과에 대한 일부 폭리주장과 관련 국내 정유사의 경영성과와 해외 Major의 경영성과 비교를 통해 정확한 이해를 도모하고자 한다.
석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유업계의 바램을 논하기 앞서 정유업계에 대한 소비자, 언론 및 주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일반적인 시각 특히, 경영성과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느냐에 대해 알아보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건전한 관계개선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정확히 짚고 넘어가는 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동일한 경영성과에 대해 이해관계자별로 각기 다른 상반된 잣대로 평가한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평가 또는 비판이 객관적이고 편향되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검토는 필요하며,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Communication 활성화 노력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최근 국제가 급등에 따른 정제마진 개선과 동절기 특수 등이 더하여져 금년 상반기에 양호한 경영실적을 시현하였으나, 이는 국내시장보다는 수출제품의 마진 확대, 중국 특수, 석유화학부문의 수익증가 등에 기인하는데도 불구하고 언론 및 소비자들로부터 내수시장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어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석유제품 수출단가는 전년동기의 31.9달러에 비해 19.5% 상승하고, 수출량은 중국특수에 힘입어 1.2% 증가, 수출단가 상승과 수출량 증가에 따라 수출금액은 21% 대폭 증가하였는데, 이러한 해외부문의 호조는 경기침체로 인한 석유 내수시장 부진(내수소비 1.2% 감소)을 만회하여 정유부문 전체 수익개선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제유가 급격한 변동시점에서, 원유가격 수준과 정유사 손익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상승국면에서는 국제제품가격 상승폭이 원유가격 상승폭 보다 더 크므로 정제마진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게 나타나지만 하락국면에서는 원유가격 하락폭 보다 제품가격 하락폭이 더 커 정제마진이 악화되는 현상이 발생되는 것으로서 유가상승으로 인한 (+)시차효과와 하락으로 인한 (-)시차효과가 장기적으로는 상쇄되어 원유가의 변동은 정유사의 경영성과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국내 정유사의 폭리 주장과 관련, 해외 Major의 경영성과는 어느 정도 수준이며 국내 정유사의 경영성과와는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자. 해외 Major의 경우 대부분의 수익이 석유개발과 같은 상류부분에서 발생된다는 점에서 수익구조가 국내 정유사와 상이한 측면이 있으나, 매출액 순이익률의 경우 해외 메이저가 2002년, 2003년 평균 4.1%와 5.9%를 시현한 반면 국내 정유사는 동일기간에 3.3%와 2.5%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성과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상기 국내 정유사의 경영성과는 정유, 화학 및 윤활유 등을 포함한 전체 성과치로써, 정유부문만을 구분하여 보면 2003년 매출액 순이익률은 0.5%에 불과하고, 한전(10.3%), 가스공사(3.8%) 등 타 에너지 업계보다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정유업종은 대규모 장치산업의 특성상 가속화되는 석유수요의 경질화 추세 및 정부의 환경규제 강화에 부합하는 제품생산을 위한 시설투자에 소요되는 막대한 투자비용과 주주의 배당요구 수용, 재무구조 개선 및 향후 안정적인 성장을 위한 재투자 등을 위해서는 적정수준의 이윤은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써, 상기 수준의 성과로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없는 것이 실상이다. 국내 정유사는 2002년, 2003년 흑자를 기록하였으나, 아직 2000년~2001년 2년간에 걸친 약 1조원의 정유부문 적자를 보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석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개별기업이 자체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은 물론 외부 특히 정부의 제도적 재정비와 정책적 지원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석유업계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석유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오랜 기간 고민의 대상이었고 향후에도 지속될 숙제라는 점에서 명확하고 단정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필자가 생각하는 경쟁력 강화의 문제는 개별기업 내부에서 논의/추진될 수 있는 부분과 외부에 대한 바람 또는 건의사항이라는 두 가지로 대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개별 사업자의 내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요구되는 Value Chain Integration을 통한 Operation Excellence, 수익성 위주의 차별화된 마케팅전략의 수립/실행 및 Risk 관리와 같은 사안은 필자가 논할 수 있는 영역 밖이므로 이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고, 다음으로, 민간기업이 산업경쟁력을 배양할 수 있도록 정부가 Rule을 정립하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 위주로 기술하고자 한다.
첫째, 제도의 재정비가 필요한지 여부를 다면적이고 체계적으로 검토해 주길 당부한다. 1990년대 후반 석유산업의 자유화가 본격 시행됨에 따라 정부의 역할이 제도의 정립·운영·감시자에서 제도의 운영·감시자로 그 역할이 축소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에 한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사안별로 정부의 개입여부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외부의 진입개방을 통한 경쟁체제도입으로 소비자에게 Benefit을 증대시키고 정유사의 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Motto하에 실시된 정부의 석유산업 자유화가 당시 의도한 바대로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 아니면 개정/보완의 필요성은 없는지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검토/분석하여 재정비할 시점이라는 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규제완화라는 명분 하에 추진된 행정절차의 간소화가 정부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관리감독의 역할을 포기하여 또 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지는 않은지 짚어봐야 할 것이다.
둘째, 정부 부처간 유기적인 관계구축이 절대 필요하다. 산업이 복잡 다기화 됨에 따라 정부의 기능도 과거와 달리 폐쇄적이어서는 존립의 근거를 상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석유산업의 경우도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만의 역할에 국한되었던 시대는 지나고 유관 부처와의 유기적이고 긴밀한 협조체제가 절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 부처간 협력과 조정기능 부재로 인해 2002년 6월부터 촉발된 세녹스 사건의 경우 2004년 8월 ‘세녹스’의 석유사업법 위반 여부에 대해 항소심 법원이 원심을 깨고 유죄 판결을 내릴 때까지 당사자인 정유업계는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국력을 낭비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관세청이 문제를 제기한 Reformate의 경우도 각 부처가 관장하고 있는 법의 해석이 상이해서 초래된 것으로서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할 것이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확대 정책과 관련해서도 유사한 사례의 재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점이 발생되기 전 충분한 검토와 관련 부처와의 원활한 협조관계를 조기 구축하여 시장에 혼란을 야기했던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 해서는 안될 것이다.
셋째, 석유자원의 자주개발을 위해 정부의 획기적인 정책적 지원을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고유가 상황이 되면 석유자원의 자주개발 필요성을 크게 외치다가도, 막상 유가가 떨어지면 자주개발의 필요성이 쉽게 잊어버리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안정적 에너지 자원의 확보라는 국가적 명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에 민간과 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합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는 2010년까지 원유 10%, 천연가스 30%의 자주개발 공급 목표를 설정하고 정책자금의 융자 및 세제상의 혜택 등 정책적인 지원제도를 이미 운영 중이나 자주개발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막대한 자금소요와 리스크가 수반되는 해외 석유자원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을 통한 획기적인 예산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현재 자원개발에 따른 배당에 대해서는 세액공제가 있지만 정작 투자세액에 대해서는 공제가 없는 상태다. 또 정부 특별예산으로 책정되는 에너지 융자금의 경우에도 2,000억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지원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해외 자원개발 투자세액 공제를 적어도 5%가량 해주고 에너지 융자금도 5,000억~6,000억원 수준으로 확충해 민간 기업들의 에너지 개발을 적극 장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정유사의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투자실적을 보면 해외 Major에 비해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상당히 열악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천연가스의 경우에는 원유와 달리 장기판매처가 우선 확보되어야 개발이 가능한데, 해외에서 애써 확보한 자원이 판매처가 없어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면 이는 국가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예멘 마리브 광구 내에서 원유와 함께 발견된 천연가스를 개발하기 위한 예멘 LNG 사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미 10조 입방피트의 가스 매장량을 발견하였고 한국지분이 16%에 달하는 사업으로서 국내도입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해왔지만, 그간 국내 가스산업 구조개편 등의 문제로 추진이 보류되고 있는 상황이다.이와 같이 국내기업이 참여하여 발견한 해외자원에 대해서는 국내 도입/판매를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경제적 이익을 실현함은 물론 침체된 해외 자원개발 투자의욕을 고취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고유가에 따른 석유 수요감소 및 대체에너지의 보급확대에 따라 석유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될 개연성이 있는 만큼 과거 정부가 석탄산업 경쟁력 약화에 대비해 시행한 다양한 지원책을 석유산업에 대해서도 보완·활용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작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정부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문제가 발생된 후 직접적인 재정지원보다는 개별기업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경쟁력을 배양하여 급격한 환경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정책·제도적 배려와 에너지원간 공정 경쟁의 Rule을 정립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석탄산업 지원을 위해 석유산업이 수행했던 부담을 이제는 석유산업을 위해서도 재정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집집마다 연탄을 사용할 당시 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석유산업도 언제 쇠락의 길로 접어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별기업도 이러한 불행한 상황에 대비해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필요하며, 정부도 산업의 경쟁력 배양을 측면 지원한다는 동반자적 관점에서 미래를 함께 고민해 주길 간곡히 당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