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산업 환경변화와 석유산업
발전전략
서울대학교 기술경영경제정책 협동과정 이종수 교수
에너지
정책과 정부
에너지를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변화로 인해 에너지 정책은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전력 수급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과거에는 각 에너지원별로 해당 시장의 효율성
향상과 가격 관리에만 초점을 두면 되었지만, 현재는 전력수급의 안정성 확보가 가장 큰 이슈가 되면서
여러 에너지원간의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더욱이 원자력 발전소와 폐기물
저장소 등과 같은 전력 설비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이 악화되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전력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정책의 복잡성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원간기술, 산업, 시장 측면에서 융합이 가속되면서 에너지원간대체 및 보완 등과 같은 에너지 전환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개별
에너지원의 범위와 국민 경제적 역할 역시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에너지 산업의 환경이 복잡하고 급변하는 상황에서 관련 산업과 소비자에게 에너지 정책을 통해 정확한 미래
방향을 제시하여 에너지 시장의 효율성과 소비자 후생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008년에
작성된 제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기본)은 기존의 에너지 가격 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원전확대, 탈석유화, 비가격 수요관리대책을 중점 추진한 것으로 그 내용을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고유가지속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요금의 왜곡된 에너지 가격구조로 인하여 1,2차 에너지 가격 역전현상이
지속되었고, 이는 시장에 잘못된 가격신호로 작용하면서 값싼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생산시설의 확충
및 급속한 전기화를 야기하였다. 결과적으로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전력소비량은 OECD 국가 평균의
1.8배로 세계 최고수준이며, GDP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
또한 세계 1위를 나타내고 있다. 즉, 지난 제1차 에기본은 안정적 에너지 공급 및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반복된 에너지 수급 위기를 더욱 가중시킨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통합적 에너지 가격정책 수립’의 의의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2013년 10월 제2차 에기본을 위한 권고안이 마련되었다. 제2차 에기본은 과거와 같이 정부 주도의 방식이 아닌 시민사회․산업계․학계 60여명이 민관 워킹그룹에
참여하여 에너지 정책 기본방향에 합의한 후 ‘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한 정책제안’을 발표한 것으로, 에너지
정책에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 거버넌스의 관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제2차 에기본의 주요과제 중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전기, 석유, LNG 등 현재 개별적인 시장에서 서로 다른 세금이 부과되고 있는 각종 에너지원의 가격 및 세제를 통합적으로
조정하는 ‘통합적 에너지 가격정책 수립’을 제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당면한 에너지 위기가
근본적으로 왜곡된 에너지 가격정책에 기인하는 바, 각 에너지원의 가격 및 세제를 통합적으로 관리하여
합리적 에너지 소비를 유도하고자 하는 것으로 과거 1차 에기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방안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따라 정부는 전기요금을 평균 5.4% 인상하고, 향후 발전용 유연탄을 개별소비세 과세 대상에 추가하면서
LNG, 등유, 프로판에 부과되고 있는 개별소비세 세율을
인하하는 에너지 세율 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에너지 상대가격 체계 개선을 위해 전기요금 조정
및 유연탄 과세 등의 전기에 대한 과세를 신설하되, 전기 외 에너지에 대한 세율을 인하하는 에너지 세율
조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통합적 에너지 가격 정책을 통해 합리적 에너지 소비를 정착시켜, 기존의 정책 실패로 인한 왜곡된 에너지 소비구조가 일정 부분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탈석유화 및 전기화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관찰되는 보편적 현상이지만, 한국의 탈석유화와 전기화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사회·경제적 비용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고려할 때, 에너지 가격체계 개선을 통한 소비구조 정상화뿐만 아니라 에너지 믹스 차원에서 각 에너지원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석유 등 1차 에너지원의 활용도를 제고하여 안정적 에너지 공급 및 급속한 전기화의 속도를 낮추어야 한다. 최근 셰일가스, 오일샌드 등 비전통 화석연료의 공급량이 확대되면서
가격이 하락하고 있으며, 따라서 향후 10-20년간은 석유, 가스 등 화석연료가 수급안정성과 경제성을 갖춘 가교 에너지(Bridge
Energy)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에너지
정책 수립에 있어 국가 에너지 안보 차원의 안정적 에너지 공급이라는 목표 이외에도 에너지 산업경쟁력 향상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에너지 산업은 국민경제를 형성하는 모든 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국가 기반 산업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주력 산업 중의 하나로서 해당 산업의 산업경쟁력 확보 및 유지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국내
석유산업은 그 동안 수출 주력 산업으로서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한계를 극복하고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매우 큰 산업이다.
1996년 총수출액에서 석유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88%였으나, 2012년에는 10.24%로 크게 증가하면서 2012년 기준 10대 수출품목 중 1위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국제경기 회복 불투명에 따른 석유 수요 정체, 세일가스 에너지 개발 등에 따른 환경 급변, 산유국 및 역내 주요국의 정제설비 신·증설에 따른 국내 정유사의 경쟁력 약화 등 제반 경영 환경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 석유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기여도를 고려할 때, 향후 석유산업의 경쟁력이 저하되면 국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러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석유산업의 산업경쟁력 향상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석유산업의 역할
국가 산업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석유산업의
역할을 수요 부문별로 살펴보면, 우선 수송부문에서
클린디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자동차 업계와의 공동 대응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전기자동차, 하이브리드자동차 등과 같은 기존 파워트레인(power-train)대체
기술이 개발 중이지만, 기술개발의 속도나 인프라 측면에서 한계가 나타나고 있어, 산업적 측면에서 당분간 클린디젤 자동차가 세계 친환경차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국내 자동차 산업 및 석유산업의 공동 성장을 위해서는 수출 효과와 수입대체 효과가 상대적으로 큰 ‘클린디젤
자동차 산업' 활성화 정책 등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수송용 연료에 대한 신재생에너지연료혼합제도(Renewable
Fuel Standard, RFS)의 경우에는 신재생에너지 보급비율 목표치 달성의 수단으로서가 아닌 바이오연료의 가격, 관련 에너지 가격에 미치는 영향 및 온실가스 저감 등의 효과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기반으로 제도의 수행을 접근해야
할 것이다. 난방 부문의 경우, 최근 등유난방
및 가스난방이 전기난방으로 전환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일부 영역에 대해 등유 난방을 유지하거나 전기난방을 등유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열/전력 부문의 경우, 분산형 전원 및 신재생에너지 공급 확대를
위한 RPS II(Renewable Portfolio
Standard II), RHO(Renewable Heat Obligation), ESS(Energy Storage System), 자가발전 의무화 등은 기업의 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실행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산업경쟁력을 유지, 제고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량만 규제하고 에너지
절감수단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유효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에너지
효율개선에 대한 인센티브 제도를 실행한다면, 에너지 수요관리시장의 창출 및 석유산업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중복 규제로 인한 에너지시장구조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에너지 관련
의무제도를 통합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함께 석유업계
또한 자발적인 경쟁력 강화 전략을 추구하여야 한다. 안정적 수급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자원 개발 및 생산을 위한 상류부문 사업으로의 진출 확대가 요구되며, 국가 에너지 안보와 연계하여 위기 대응을 위한 적절한 규모의 비축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산업 원료 차원에서 생산설비 고도화를 통해 정제능력 향상
및 저공해 제품 생산역량 증진 노력이 요구된다.
온실가스
감축과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필연적인 변화이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당면한 지속적인 에너지 수급 위기와 급변하는 에너지 환경 하에서, 안정적 에너지 공급과 국가 산업경쟁력
확보라는 두 가지 중요한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향후 국내 석유산업의 역할에 대한 정부와 산업계의
진지한 고민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