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연료의 바람직한 정책 방향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이영재 박사
에너지 안보, 온실가스 및 유해배출가스 저감을 위하여 친환경 자동차와 연료가 세계적인 화두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시장에 본격 진입하기에는 아직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센티브나 세금 감면 등을 통하여 이들의 보급을 확대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 경쟁력이나 성능이 미흡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소비자 측면에서 볼 때, 자동차는 보통 10년은 사용하는 내구재이므로 가격과 성능에 아주 민감할 수 밖에 없고 연료는 소비재이기는 하나 차량을 선택하면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이 역시 가격이 소비자에게 민감하게 작용한다.
작금에 세계적으로 성공한 친환경자동차는 하이브리드자동차이다.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자동차는 금년 3월에 누적판매 500만대를 돌파하여 세계 시장의 4분의 3을 점유하고 있다. 대표차량인 프리우스는 1997년에 세계 최초로 양산 판매된 하이브리드자동차로서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하므로 주유 인프라에 문제가 없고, 기존 자동차보다 가격이 높기는 하나 소비자가 수용할만한 수준이며, 높은 연비와 환경성으로 소비자에게 어필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초기 손실을 감수하고 차량 가격을 낮추어 판매한 토요타사의 전략 등 성공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구비하였다.
석유류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상당기간 주류를 이룰 것
반면에, 대표적인 친환경자동차인 전기자동차는 차액의 50% 정도를 정부가 지원해도 현재로서는 기존 차량 대비 두배 정도 가격이 비싸고 일회 충전 주행거리가 5분의 1정도에 불과한 단점이 있으며, 연료전지자동차는 성능은 그런대로 수용할 만하나 가격이 전기자동차보다 훨씬 더 비싸서, 이들 두 차량 모두 일반 소비자가 구입을 고민하는 단계까지 발전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 및 수소 충전인프라가 기존의 주유소 정도로 구축되려면 많은 시일이 필요한 것도 장애요소의 하나이며, 이들 연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신재생에너지에 의한 전기나 수소 생산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전기자동차와 연료전지자동차의 기술 개발과 시범 보급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시장 선점 보다는 미래 시장을 겨냥한 기술 육성 측면이 강하다. 그러한 면에서 지난 정부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던 전기자동차 보급사업이 제한된 차량으로 보급대상을 축소한 것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기술의 발전단계를 개발기, 도입기, 성장기로 볼 때에 이들 자동차는 아직 개발 후기 또는 도입 초기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자동차는 특히 글로벌한 제품이기 때문에 세계 시장의 트렌드에서 벗어나 독주하기가 쉽지 않다.
연료 측면에서는 상술한 전기와 수소 연료 외에, 바이오에탄올과 바이오디젤 등의 바이오연료가 세계적으로 이미 상용화 보급되고 있고, DME나 XTL과 같은 합성연료도 일부 국가에서 실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RFS 2 (Renewable Fuel Standard 2)나 RED (Renewable Energy Directive)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RFS (신재생연료 혼합 의무화제도)를 수립하고 있으나, 연료는 특히나 지역적 특성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석유계 연료는 물론 바이오연료에 대한 부존자원 역시 열악한 우리나라에서 보급을 확대하기가 쉽지 않으며 가격 경쟁력도 상당기간 확보하기 어렵다.
결국 휘발유, 경유, LPG, CNG 등의 석유계 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내연기관 기반의 하이브리드자동차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국내 시장에서 연료업계 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동급 모델에 휘발유, 경유, LPG 등 다양한 차종을 판매하고 있는 자동차제작사는 국내의 제로섬 시장에서 소비자의 연료 선택에 덜 민감하며, 국내와 세계 시장을 공히 공략할 수 있는 차종을 양산하는 것이 유리하나, 연료업계는 휘발유와 경유, LPG, 천연가스로 업종이 나뉘어 국내에서 제로섬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또한 기술의 진보에 따른 자동차 환경성의 변화 등 제반 요인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차종에는 특정 연료로 사용을 제한하고 있는 정책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기도 하다.
비전문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자동차 연료와 엔진 기술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온실가스인 CO2와 유해배출가스인 CO, HC, NOx, PM의 배출은 엔진의 연소방식과 배기 후처리기술, 그리고 연료의 특성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며 종종 잘못 알려지기도 하고 왜곡되어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연료의 특성만을 따지자면 탄소수가 적고 수소수가 많을수록 청정하다고 볼 수 있는데, 탄소수는 천연가스가 가장 적고, LPG, 휘발유, 경유 순으로 많아진다. 그러나 CO2와 유해배출가스는 엔진의 연소기술에 크게 영향을 받고, 특히나 유해배출가스는 연소기술보다는 후처리기술에 의해 대폭 저감되기 때문에 적용된 기술에 따라서 효율(연비), 온실가스인 CO2, 유해배출가스인 CO, HC, NOx, PM의 배출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가솔린, LPG, CNG엔진은 흡기관 내에 연료를 분사하여 스파크 점화시켜 연소하는 방식의 엔진이고, 디젤엔진은 연료를 실린더 내에 직접 분사하여 자발화에 의해 연소되는 방식의 엔진인데, 이러한 연소방식의 차이에 따라서 디젤엔진은 전자보다 효율이 훨씬 높고, 연료에 탄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CO2를 덜 배출하나, 유해배출가스인 입자상물질과 NOx를 원천적으로 많이 배출하는 단점이 있다. 최근에 양산되는 GDI (가솔린 직접분사) 엔진이 기존의 MPI 엔진보다 효율은 다소 좋아지나 PM 배출이 증가하는 것은 이러한 연소방식의 변경에 기인한다.
연소기술만으로는 유해배출가스를 저감하기 아주 어렵기 때문에 요즘의 엔진은 CO, HC, NOx, PM 등의 유해배출가스(완전연소의 산물인 CO2는 제외)를 배기 후처리기술에 의해 대폭 저감한다. 그러나 후처리장치는 기술과 비용이 수반되므로 각국에서는 자동차 배출허용기준을 규정하여 기술의 성숙도와 차량 가격 상승 폭을 고려하여 기준을 강화하여 왔다. 가솔린엔진은 1980년대부터 비교적 저렴한 삼원촉매라는 후처리장치를 사용하여 CO, HC, NOx와 같은 유해가스를 90% 이상 동시에 저감하여 왔으며 동일한 연소방식을 가진 LPG엔진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디젤엔진은 CO와 HC를 저감하는 DOC(디젤산화촉매)와 PM을 저감하는 DPF(매연여과장치)가 최근에 장착되기 시작하였고, NOx를 저감하는 SCR이나 LNT와 같은 질소산화물 저감촉매는 NOx 기준이 강화되는 2014년의 Euro 6 규제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보다 큰 틀에서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자동차와 연료정책 검토가 필요한 시점
이러한 배경으로 삼원촉매를 사용하는 가솔린엔진은 효율이 다소 낮으나 운전이 정숙하고 배기가 청정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승용차엔진의 주류를 이루어왔다. 최근에 클린디젤엔진이 회자되는 것은 커먼레일 직접분사 승용 디젤엔진의 개발에 따른 높은 연비와 낮은 CO2 배출량, 그리고 후처리기술의 진보에 따른 환경성의 개선 등에 의한 것이나, 현재의 디젤엔진은 상술한 바와 같이 일부 후처리장치가 적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본격적인 클린디젤엔진은 2014년 이후의 Euro 6 디젤엔진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연료와 자동차 기술을 장왕히 설명한 것은 위와 같이 비전문가가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요인이 얽혀 있어서 혼돈이 많기 때문이다. 여하간에 엔진 및 후처리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서 유해물질을 많이 배출하던 디젤엔진의 환경성이 예전에 비해 크게 개선되었고, 이에 따라 디젤엔진과 타 연료 엔진 간의 환경편익 차이가 예전에 비해 많이 감소하였으며, 향후 환경성이 유사한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 버스연료시장에서 기존의 천연가스에 디젤이 가세하여 2파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이러한 기술의 발전에 따른 것이며, 택시연료시장에서는 여기에 저렴한 연료비용까지 가세하여 기존의 LPG에 디젤과 천연가스가 삼파전 경쟁을 벌이고 있고, 정치권과 정부에서도 일부 가세하는 부분이 있다.
편향된 관점에서 자동차와 연료를 다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동차와 연료 정책은 에너지와 환경 정책, 온실가스 정책, 세제 및 보조금 정책 등 고려해야 할 사항이 다기에 걸쳐 있다. 기술과 제반 여건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문가조차 의견이 갈리는 소모적인 갑론을박보다는 보다 큰 틀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그리고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