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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전력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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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전력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조영탁(한밭대학교 경제학과)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에너지문제에서 가장 큰 이슈로 부상한 것이 바로 전력수급문제이다. 수년 전부터 피크부족에 대한 우려가 있었고, 급기야 작년에 순환정전까지 겪은 바 있다. 앞으로도 몇 년 동안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 그 동안 발전소 건설취소 등 공급상 다소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수급위기의 기본 원인은 공급측면이라기 보다 수요예측의 측면에 있다고 판단된다. 수요예측상 오류에는 전력수요 관리목표를 다소 의욕적으로 책정한 탓도 있지만, 최근 들어 급속하게 진행된 유류의 전기로의 전환, 즉 에너지의 전력화 추세를 충분히 감안하지 못한 것도 그 요인중 하나이다.

물론 유류에서 전기로의 전환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초반에 농촌지역중심으로 심야전기난방이 확산되면서 난방용 등유가 전기로 대거 전환된 적이 있다. 수년전부터는 도시지역 중심으로 시스템 에어컨과 전기온풍기가 확산되면서 난방연료가 전기로 전환되었고, 최근에는 산업용 열수요도 유류에서 전기로 전환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동절기의 피크부하가 하절기의 피크부하보다 높게 나타나고, 겨울철 수급위기가 여름철보다 더 심각하게 된 것도 이러한 에너지의 전력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에너지의 전력화로 에너지용 유류소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이것이 외형상 탈석유의 바람직한 추세로 보일 수 있다. 만약 에너지효율이 높아지면서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소비를 통해 석유소비가 줄어든다면, 이는 국가에너지수급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에너지의 전력화 추세는 우려의 소지가 많고, 국가에너지수급의 측면에서 심각한 부작용마저 예상된다.

첫째, 전력수급의 불안정성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의 전력화로 전력수요가 증가하더라도 이에 상응하는 공급여건이 충분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전력의 공급여건은 점점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수도권의 전기수요 충족을 위한 장거리 송전망 건설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둘째, 경제적으로 연료낭비가 심해지고 국가에너지효율이 저하된다. 유류와 같은 1차 에너지로 열과 난방수요를 충당하면 될 것을 굳이 전기로 전환하여 60%의 열량손실을 거쳐 다시 열로 활용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동일한 열량을 얻는 데 2배 이상의 연료가 든다. 그만큼 경제적 비용이 추가되고 국가에너지효율은 저하되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갈등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의 전력화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가 대부분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발전소와 송전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발전소와 송전망 입지를 둘러싼 갈등 그리고 전력소비지인 수도권과 발전지역인 비수도권간의 지역간 형평성 문제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넷째, 환경의 측면에서 에너지의 전력화는 이산화탄소의 추가배출을 유발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열수요나 난방에 전기를 사용하면 유류를 직접 이용하는 것보다 효율이 저하되고 이산화탄소는 두 배 이상 배출된다.

이러한 우려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에너지의 전력화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고유가의 영향도 있지만 정부의 세제 및 요금정책이 유류가격과 전기요금간의 상대가격을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즉 유류가격은 고유가로 인해 상승하는 데에 비해 전기는 고유가로 인한 연료비 상승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인위적으로 요금을 억제하였다. 정부가 수요자에게 유류보다 전기를 더 사용하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예컨대 2000년대 초반 심야전기난방의 확산은 당시 세제인상으로 인한 등유가격 상승과 원가 이하의 저렴한 심야전기간의 상대가격 격차에 기인한 것이었고, 최근 도시지역의 에너지의 전력화 현상은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일반용 및 산업용 전기요금을 억제하여 전기의 상대가격이 하락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앞으로 에너지의 전력화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은가? 기본적으로 유류세제 따로, 전기요금 따로가 아니라 유류가격과 전기요금을 통합적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유류가격은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결정되고, 전기요금 등은 정부공기업이 주도하는 규제체계 하에 놓여 있기 때문에 양자 간의 조율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우리나라 세제정책은 세수확보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고, 전기요금은 물가안정이나 산업체 지원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 목표가 여전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앞으로는 세제와 요금 모두 에너지정책의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전기요금제도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첫째, 전기요금체계의 경우 요금 차등 논란을 유발하는 용도별 전기요금체계를 시장원가 중심의 전압별 요금체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둘째, 전력원가에 대한 객관적인 재검토를 통해 현재 발전원가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비용과 보조금을 전력원가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송전망과 관련된 비용이 상당히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이 전력원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전기요금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정부가 인상 여부와 정도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요금결정 원칙을 수립하여 이에 따라 결정되도록 전기요금의 운용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물가안정, 산업체 지원 등을 이유로 끊임없이 전기요금에 개입하여 요금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전기요금제도의 개편과 아울러 유류세제의 개편도 필요하다. 첫째, 열과 난방용 유류에 대한 세수는 전기요금이 정상화될 때까지 낮게 운용하여 유류가격과 전기요금간의 상대격차를 줄일 필요가 있다. 재정상 세수확보 문제로 여의치 않다면 동절기만이라도 면세하여 에너지의 전력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가의 등유 난방은 가스 배관이 어려운 지역의 중하위계층이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동절기 면세는 난방비 형평성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둘째, 발전용 연료의 세제개편이 필요하다. 특히 이산화탄소 및 대기오염물질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발전용 유연탄에 세금이 전혀 부과되지 않고 있다. 난방용 세수인하에 해당하는 만큼 유연탄에 과세하면 안정적인 세수확보, 유류가격 인하, 전기요금 상승이라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통해 유류와 전기간의 상대가격을 개선할 수 있다.

에너지의 전력화는 소득증가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에너지의 전력화는 그 정도나 속도가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로 인해 에너지수급의 불안정성은 물론 에너지효율 저하와 온실가스 추가배출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열 수요 및 냉난방에서 유류의 적정한 역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유류세제와 전기요금제도의 개편이 불가피하다. 물론 세제와 요금제도 개편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개선이 어렵다면 안정적인 저탄소의 국가에너지수급체계 구축 역시 힘든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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