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클린디젤이 親서민이다
글 | 성항제_헤럴드경제 편집국 선임기자
지난 8월 서울 도심에서 운행 중이던 시내버스의 압축천연가스(CNG) 연료통이 폭발해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당시 사고로 20대 여자 승객 발목이 절단되는 등 승객과 행인 17명이 부상했다. CNG 시내버스를 ’달리는 폭탄’으로 인식한 일부 시민들은 연료통이 장착된 버스 중앙을 일부러 피하는가 하면 시내버스 기사들마저 CNG버스 운행을 기피할 정도다. 중앙 및 지방정부와 시내버스 업체 등이 뒤늦게 CNG버스의 용기 안전성과 정비 소홀 등에 일제 점검에 나서 위험성이 높은 일부 버스에 대해선 운행정지 조처를 내리기도 했다.
CNG버스는 고압으로 압축된 천연가스를 쓰는 까닭에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연료탱크 내부 압력이 200바(bar)이상으로 LPG택시보다 폭발력이 150배 크다. CNG보급 사업이 10년 이상 지나면서 차령 노후화 등과 겹쳐 자칫 대규모 인명피해를 우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택시와 SUV에 주로 사용되는 액화석유가스(LPG 부탄)의 경우 아직 대형 엔진이 개발되지 않았을뿐더러 가스란 점에서 현실성과 안전성이 클린디젤에 미치지 못한다. 장시간 LPG택시를 운전한 기사들의 두통 하소연을 그냥 흘려버릴 사안이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클린디젤(청정 경유)는 어떠한가. 정책적 무대접 푸대접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경제성과 열효율, 환경보호 측면에서 시내버스 및 택시 연료인 CNG와 LPG의 효용성보다 클린디젤이 한참 앞서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민 부담을 덜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의 친환경차량(그린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에너지 및 환경정책의 親클린디젤 전환은 시급하다.
2000년 이전만 해도 사실 디젤(경유)는 매연+공해의 대명사였다. 노후 엔진을 장착한 시내버스와 화물트럭이 배출하는 시꺼먼 매연은 대기오염의 주범이었다. 숨이 막히고 눈이 따가운 건 예사였다. 하지만 이는 과거지사다. 고도의 정제기술로 생산한 지금의 초저유황 ’클린디젤’은 경제성과 성능, 오염물질 배출 등에서 오히려 CNG나 LPG를 이미 앞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자동차 메이커의 엔진 및 후처리 장치 기술도 크게 향상되어 선진국 수준에 근접했다.
전광민연세대교수는얼마전국회클린디젤포럼에서“클린디젤 차량 연비가 CNG 및 LPG 차량보다 20~30% 높은 대신 이산화탄소(CO2)배출량은 오히려 25%정도 적다”고 단언한 바 있다. 실제 국산 클린디젤의 유황 함유량은 1993년 2000ppm에서 세계 최저 수준인 10ppm으로 떨어졌고 미세먼지 등 다른 유해물질 배출량도 과거의 10분의1 이하로 줄어들었다. 디젤-하이브리드 버스를 개발 중인 한국기계연구원은 한발 더 나아가 탄소 배출과 효율성, 가격 대비 편의성 등에 비추어 디젤 차량의 세계 시장 진출 및 선점 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평가했다.
홍창의 관동대 교수도 "클린디젤은 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하면서 멀리 달리게 하는 최적의 차량 연료"라며 "새로운 차량을 개발하는 것보다 기존 디젤차를 발전시켜 연료 소모를 줄이면서 유해 배출가스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엔진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향후 정책방향까지 제시했다.
에너지관리공단 조사 결과 LPG부탄과 CNG를 사용하는 쏘나타 2.0(자동)의 연비는 각각 리터당 10.0km 11.3km에 그쳤지만 투싼 2.0 클린디젤은 15.4km에 이르렀다. 이는 LPG의 리터당 순발열량이 6302kcal이나 클린디젤은 8450kcal에 달하기 때문으로 그만큼 클린디젤의 화력이 좋다는 점을 방증한다. 질소산화물의 경우 연료 특성상 클린디젤이 LPG보다 많이 배출되는 건 사실이나 조만간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신형 엔진이 나오면 이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LPG와 디젤이 비슷하나 연비를 따지면 디젤이 훨씬 친환경적이다.
때문에 세계 각국은 클린디젤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프랑스는 디젤 차량 구매자에게 부가세의 19.7%를 깎아준다. 예컨대 현대자동차 i30 디젤 1.6을 사면 정부가 친환경자동차에 지급하는 최대 700유로(약105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독일은 매연저감 장치를 추가 장착한 디젤 차량에 330유로의 세금을 감면해준다.
전통적으로 가솔린을 주연료로 쓰는 미국도 디젤차량에 연간 최고 1800달러의 세금 혜택과 함께 디젤 엔진의 연비 향상 등을 위해 2012년까지 1조5000억원을 쏟아붓는다.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이 자동차 연비를 2016년부터 리터당 15.1km로 높이는 규제책을 발표한데 따른 것으로 클린디젤 차량에 대해서는 하이브리드 차량과 똑같은 보조금을 주고 있다. 일본도 하이브리드 차량이 보편화하기까지 앞으로 20~30년 동안 클린디젤 차량이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석권할 것으로 보고 관련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조처는 1980년대 말 직접분사방식 및 과급장치가 개선된 클린디젤 엔진 개발에 힙입어 출력 연비 및 유해배출 저감 기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데 따른 것이다. 차세대 자동차로 평가 받는 전기자동차나 수소연료전지 차가 연비향상 및 충전소 인프라 구축 등 실용화에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클린디젤 차량은 사실상 가장 현실적인 ’그린카’로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EU는 질소산화물 배출기준을 매 5년마다 2배씩 강화해 현재 EURO-5 기준을 2014년부터 가솔린 엔진과 동등한 EURO-6으로 격상할 계획이다. 세금 부과 기준도 배기량이 아닌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변경, 디젤 차량 판매를 크게 늘리고 있다. 세계적 시장분석 전문회사인 CSM월드와이드는 전 세계 클린디젤 차량 시장을 올해 930만대에서 2016년 1224만대로 30%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유럽의 디젤차량 비중은 10%안팎에 머물렀으나 이같은 친환경성과 경제성이 부각되면서 디젤차량 보급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경우 이미 70%가 넘고 이탈리아는 50%, 독일과 영국도 40%를 훨씬 웃돈다.
하지만 우리의 대(對) 디젤 정책은 ’거꾸로’다. 가솔린 차량에 부과하지 않는 환경개선부담금을 디젤 차량에는 배기량에 따라 연간 5만~14만원을 준조세로 떠안기고 있다. 10여년 전 배출가스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구시대적 잔재로 디젤차량 비중을 전체의 18%에 그치게 한 근본적 장애물이다. 외국에선 보조금을 주면서까지 친환경 디젤차량 보급을 늘리는 조처와 정반대다. 세계 수준에 육박하는 클린디젤의 기술개발을 막는 족쇄이기도 하다. 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 등 각종 세금 역시 LPG는 세전 가격의 절반 정도인 리터당 260원 정도를 물리는 대신 클린디젤에는 세전 가격에 버금가는 650원 정도를 부과하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난다.
그렇다고 CNG와 LPG 물량이 남아 도는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연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미국 일본 유럽에서 거의 쓰지 않는 CNG버스에 대해 우리는 민간 회사에 대당 2000만원 가까운 보조금을 퍼주고 있다. 국내 정제과정에서 3.8%밖에 생산되지 않는 LPG는 차량 연료의 14%를 담당할 정도로 수요량이 급증, 65%를 수입에 의존한다. 지난해 LPG 완제품 수입액만 29억달러(6619만m3)에 이른다.
대신 정제과정의 부산물인 친환경 디젤은 국내 수요처가 마땅치 않아 절반(2009년 1억2547만배럴)을 외국에 내다팔고 있다. 그나마 해외에서 들여오는 LPG 완제품엔 리터당 16원의 석유수입부과금을 면제해주면서 국내 정유사가 생산하는 국산 LPG엔 이를 부과하는 등 일관성도 보이지 않는다. 국내 정유사가 볼멘소리를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제라도 정책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디젤차량에 부과하는 환경개선부담금을 과감히 폐지하고, 배기량 기준으로 부과하는 자동차 세제도 연비나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잣대를 바꿔 클린디젤 보급을 늘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동차 등록세 및 보유세 등에 대한 인센티브와 기준 초과 차량에 대한 페널티 제도 등을 연비와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보완, 소형 고효율 자동차 수요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이춘범 자동차부품연구원센터장의 제안은 설득력이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대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연비와 친환경성이 뛰어난 디젤 차량에 세제 혜택은커녕 환경개선부담금 부과로 시장 선점 기회를 가로막고 있다"면서 "CNG나 LPG 위주의 지원정책을 클린디젤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젤 차량에 대한 환경개선부담 부과가 부당하다며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한 법무법인의 행정소송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부는 아울러 현행 LPG에 대한 세금우대조처를 클린디젤에도 똑같이 적용해달라는 택시업계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LPG소비량의 40%를 차지하는 택시 업계(240만대)는 "LPG에만 면세 혜택이 주어져 어쩔 수 없이 LPG를 쓸 수밖에 없지만 가격이 오를 때마다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며 "클린디젤에도 면세를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까닭이다. 에너지 세제 개편으로 과거 휘발유대비 디젤과 LPG의 100대 85대 50의 가격비율이 최근엔 100대 88대 56으로 높아져 LPG 연료비 부담이 그만큼 늘었다는 하소연이다. 클린디젤 세전 가격이 LPG보다 비싸지만 연비가 60%정도 우수해 경쟁력이 있다는 택시 업계 주장은 일리가 있다.
택시 업계는 또 불합리한 유통구조에도 불만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에서 90%를 들여오는 E1과 SK가스 등 양대 공급업자의 독과점 지위를 이용한 담합 가능성에 의혹의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LPG 공급업체에 668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전국적으로 2만3000대에 이르는 CNG시내버스 역시 노후차량의 디젤-하이브리드 교체가 바람직하다. 디젤-하이브리드는 CNG보다 40%정도 연비가 좋은데다 시내 주행 시 전기모터를 사용,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다. 상용화 기술 개발 완료에도 대당 3억8000만원대에 이르는 높은 가격이 걸림돌이지만 "천연가스를 자체 생산하지 않는 한 CNG버스를 유지하는 장점이 사실상 없어졌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곱씹어봐야 한다.
궁극적으로 택시는 클린디젤로, 시내버스는 디젤-하이브리드로 정책 중심을 서둘러 옮겨야 한다는 주문이다. 클린디젤 촉진 정책은 업계 부담을 줄이면서 환경오염을 막는 일석이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는 곧 국제경쟁력을 갖춘 엔진개발을 촉발, 국내 자동차가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인도 중국 남미 등 신흥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할 지름길이기도 하다.
단기적인 세수 부족이 문제라면 상응한 세원을 새로 발굴해야 온당하다. 친환경 클린디젤 차별정책 시정이야말로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친서민 정책이다.그린정책을 모토로 내건 이명박 정부와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은 업계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 경제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하루빨리 관련 법규 개정에 나섰으면 한다. 다행히 지식경제부가 10년 넘게 큰 변화가 없었던 석유류 제품에 대해 대대적인 세제개편에 나서기로 하고 이른바 ’석유산업 미래비전과 발전전략’ 을 수립하기로 했다니 반갑다. 시늉내기에 그치지 말고 에너지 수급과 유통, 친환경을 감안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국내 정유업계도 이에 상응한 기술개발에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LPG업계 주장대로 질소산화물을 배출할 수밖에 없는 클린디젤의 태생적 약점과 미세먼지(PM10) 나아가 초미세먼지(PM2.5)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야 할 책무를 저버리지 말기 바란다. 그래야만 클린디젤은 국민에게 더 다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