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유통시장 변화와 의미
강승진 |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에너지대학원 교수
정부는 지난해부터 물가안정 차원에서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 하락을 위해 일련의 석유유통시장 개편 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1997년 석유산업 자유화 이후 단편적으로 언급되어 오던 석유유통 관련 각종 제도들을 한꺼번에 변경하였다. 그동안 논의되었던 수평거래 허용, 상표표시제 폐지, 석유 판매가격 공개 확대 등 유가 자율화 이후 최대의 제도적 변화가 이뤄진 것이다.
석유산업 자유화 이후 국내 석유유통시장은 크게 변화되었다. 19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석유수요는 정체되는 반면, 정제능력은 수요를 크게 초과하여 공급과잉 상태에 있으며, 대리점 및 주유소 등 석유사업자의 수는 크게 증가하여 석유시장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유가와 유류세 인상에 따라 유사석유제품 및 면세유 불법유통, 무자료거래, 상표표시 및 수평거래 위반 등 석유유통시장은 매우 혼탁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일부는 제도와 현실이 맞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이며, 일부는 석유사업자의 영리추구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석유산업이 자유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제도적으로 아직도 영업범위 및 방법에 대한 제약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제약은 석유사업자 간에 유통되는 가격의 불투명성과 더불어 석유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였다. 따라서 석유사업의 영업방법 및 범위에 대해 최소한의 규칙만 정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자율화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석유유통시장 혼란의 근본 원인인 사업자간 제품공급가격의 불투명성에 있으므로, 가격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했다.
이렇게 석유유통구조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서 2008년 들어 사상 초유의 고유가로 인하여 국내 석유제품의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유류에 대한 세금을 낮추는 등의 조치와 함께, 그동안 논의 되었던 석유유통 관련 제도를 한꺼번에 바꾸면서 국내유가 안정을 도모하고자 했다. 석유유통제도 변경의 핵심은 사업자간 경쟁을 촉진시켜 유가를 안정화 시키고, 유가정보 공개 확대를 통하여 소비자가 저렴한 유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석유 판매자간 경쟁촉진을 위해 석유수입조건을 완화시키고 사업자간 수평거래를 허용하였으며 상표표시제를 폐지하였다. 또한 대형 할인매장에 주유소 설립을 장려하여 주유소간 경쟁을 촉진하고자 하였다.
한편, 정부는 국내 석유제품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가격의 안정화를 위해 석유가격 공개제도를 개선하여 소비자에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기반도 구축했다. 한국석유공사는 정유사판매가격을 2007년 6월부터 월간 정유사평균 실제 판매가격을 조사․공개한데 이어, 2008년 4월부터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Opinet)을 개설하여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주유소판매가격을 실시간으로 공개하고 있다. 또한, 2009년 5월부터는 주간단위로 정유사별 실제 판매가격을 공개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주유소 사업자들은 상표표시고시 폐지를 비롯해 다양한 석유유통구조 개편을 정부측에 요청해왔고 상당부분이 받아 들여졌다. 달리 말하면, 정유사 입장에서는 지키고 싶었던 대부분의 것들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 정유사는 상표표시 고시가 없어지고 배타조건부 거래 같은 계약 관행이 수정되는 것에 대해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해 왔다. 하지만 주유소업계는 희망했던 것들을 얻었는데도 실질적으로 경영여건이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정부가 추진했던 석유유통 구조개편 및 유가공개에 따라 주유소간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석유 판매량이 늘어나지 있는 상황에서 각종 물가 상승 요인이나 인건비를 비롯한 판촉비용의 증가로 주유소의 마진 역시 늘어나야 하겠지만 주유소의 수가 너무 많은데다 과당 경쟁으로 마진을 확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주유소 판매가격 공개와 마트주유소의 등장은 주유소 마진의 줄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유사 판매가격 공개는 대리점 및 대형 주유소에 대해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이득의 여지를 축소시킨 것으로 판단된다. 상당수 주유소들이 국제유가를 모니터링 함으로써 정유사의 가격결정에 대해 주유소가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이를 유류 구입시기와 가격협상에 활용하는 등의 변화가 일부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주유소 가격공개는 소비자에게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으나, 주유소에게는 가격경쟁 촉진으로 판매마진을 감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주유소 판매마진 감소는 석유제품의 소비자 가격 안정화라는 정책목적 달성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주유소 영업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될 겨우 여러 가지 부작용이 예상된다.
정부가 다양한 석유유통구조 개편작업을 추진한 근본적인 배경은 경쟁촉진을 통하여 유가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러한 제도 변경은 유류 소매단계의 경쟁촉진에는 효과가 있으나, 도매시장 경쟁촉진에는 소기의 효과를 모두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수입조건을 완화하여 수입활성화로 유류 도매시장의 경쟁촉진을 의도했으나, 석유수입은 국제시장 여건 때문에 거의 미미한 실정이다. 하지만 일부분의 정책이 효과가 미미하다 해서 정부가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의 룰을 만들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시장의 실패가 발생할 때에만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