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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 사건으로 되돌아 본 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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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선일씨 사건으로 되돌아 본 이라크

글·홍성민|중동경제연구소장

충격, 허탈, 실망, 분노!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6 21일 새벽 청천벽력 같은 섬뜩한 뉴스 한 토막이 전해지더니, 곧이어 “정부는 김씨가 지난주 목요일인 17일에 납치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 정부도 오늘 새벽에 방송된 알자지라 방송을 보고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긴급 대책마련에 나섰습니다”라는 발표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건 이틀전 우리 정부는 파병방침을 천명했던 터라 이라크의 현지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나에겐 충격이었다. 순간! 현지에 남아있는 이라크 교민들과 주변국에 있는 한국인 사업가들에게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면서도 ‘설마’라는 가정과 함께 무사귀환을 기대하고 있었고 오후에 날아든 속보는 생존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다소 진정된 마음으로 알자지라 홈페이지를 검색하던 중 한국인 김선일 피살이라는 속보자막이 흘러 나왔고, 아랍어를 잘못 읽었나 눈을 의심하며 영문판을 보았더니 “--- has been killed” 라는 똑 같은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아마 23일 새벽 1시반경으로 기억된다. 놀라서 TV를 틀었더니 믿기 싫은 생각은 이미 현실이 돼 있었다. 허탈 그 자체였다.

“희망이 보인다”고 대통령에 보고했을 땐 이미 피살되었다는 언론보도 내용을 접하고는 실망의 차원을 넘어 분노까지 겹쳤다. 현지교민 A씨라는 사람은 알자지라가 한국시간으로 21일 새벽 5시 비디오 테이프를 공개하기 전에 속보 형태의 1보를 뉴스에 내보냈다고 한다. 그는 “비디오 테이프가 방송되기 전에 이라크인 친구가 ‘한국 사람이 억류됐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오더라.’라고 알려왔다.”고 한 부분은 정부의 정보력 부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분노를 자아냈고 각종 언론매체들은 정부에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쏟아냈다. 당시 여론은 이라크를 쳐들어갈 듯한 자세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후 발간된 주간지들의 제목만 보아도 모두가 섬뜩한 단어들 일색이었다. “대한민국은 없다”, “이라크 늪에 빠지다”, “국가는 어디 갔나”, “김선일 후폭풍: 외통부, 국정원, NSC, “외교안보 공황 그 책임의 끝은?, “무찌르자 이라크?, “그의 조국은 뭘 했나”. 지금 국론을 모아 함께 위기를 극복해도 어려운 시기인데 다시 “책임공방”을 하는 걸보고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삭히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 모두가 죄인

사건 다음날 다행히 내 생각을 피력할 기회가 왔다. C방송국에서 출연제의가 왔고 나는 즉석에서 승낙을 하고 달려갔다. 흥분한 상태에서 곧바로 “발전된 문명사회에서 마치 점쟁이처럼 뉴스나 보면서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앵무새처럼 서로 떠들어대기만 한 것은 전문가들이 반성해야 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국민 모두의 잘못이며 죄인이라는 점도 강하게 호소했다. 정부의 정보력 부족, 분석기사 없는 동일한 내용의 언론, 시민정신의 부재를 질타했다. 개선책으로는 대한민국에 이라크 전문가는 거의 없다는 점을 부각하면서 전문가 양성을 제안했다.

image나중에 모든 사실이 밝혀지겠지만 현재로선 정부의 정보력 부족은 부인할 수 없는 점이다. 언론에 나타난 사실을 기초로 판단해볼 때, 17일 피랍, 21일 외교통상부 알자지라 방송내용 확인이라는 브리핑 내용은 나중에 531일 실종으로 현재 조사가 진행중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답답하기만 하다. 게다가 AP통신과의 진위여부 및 김천호 사장과의 대질 등 후속 보도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700명의 서희제마 부대원들은 이미 이라크에 있고 가까운 시일에 3000명의 추가파병도 이루어진다. 9명에 달한다는 대사관 직원으로서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기엔 애초부터 무리가 있었다.

미국의 경우 3000명의 정보요원이 이라크에 상주하며 일본도 200명 정도가 상주하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한다. 이 부분이 국력의 차이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물론 우리의 능력으로 그 많은 전문가를 파견하기란 어려울 줄 알지만 파병규모를 보았을 땐 지나치게 적은 숫자임에는 틀림없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라인을 거론하는 것도 다소는 넌센스다. 국내서도 관계부처에서 정보를 다양하게 수집하고는 있겠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정황으로 볼 때 지나치게 언론에 의존했다는 점을 감출 수 없다.

현지 정보부재는 협상능력에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이라크 사람들의 의식은 “미국만 아니면 좋다, 이라크는 우리 것이다, 그러니까 외국 사람은 필요 없다”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현지 이라크 사람들은 “우리가 너희에게 도와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너희는 왜 우리를 도와준다고 하느냐”라고 반문한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도와준다고는 왔지만 미국과 같은 점령군이라는 의식이 상당히 팽배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라크인들의 감정을 잘 분석하고 수집했어야 하는데 이번에도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존한 경향이 많았던 것 같다. 그 결과 알자지라에 호소한 우리 모두의 바램도 무위로 끝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번에 알자지라가 우리에게 한 역할은 사실보도이외에는 없는 것 같은 데 우리는 지나치게 그 방송에 의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언론은 사실보도에 기초해야함이 기본이다. 이번에도 우리 언론은 폭로성 보도와 추측보도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데 치중한 것 같다. 피랍 다음날 우리 언론은 차분한 보도로 무장단체의 행동을 예의주시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어느 채널을 보더라도 거의 유사한 나쁘게 표현하면 선정적인 내용들을 동시에 쏟아 놓고 있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의 P연구원은 언론개혁국민행동이 7 2일 오후 개최한 ‘김선일씨 피살사건 관련 언론보도에 대한 토론회’에서 6 26일부터 6일간 KBS, MBC, SBS의 저녁종합뉴스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추가파병 결정이 김선일씨의 비극적 희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나, 이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는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관련 보도 325건 가운데 추가파병 강행과 관련된 보도는 21건이었는데 중계식 보도가 90.5%로 대부분이었다. 균형적 태도를 취한 보도는 9.5%에 그쳤고 비판적인 보도는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보도 정서의 프레이밍을 분류한 결과 325건 가운데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정서가 79.1%인 반면 합리적·이성적 정서는 17.2%였다. 이러한 사실은 이제 우리가 언론의 자유를 언급할 단계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켜 주었다. 이미 우리 언론은 “자유나 보도의 문제가 아니라 분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라크전 당시인 2003 3 21~24일 한국기자협회가 신문, 방송, 통신 및 주간지 정치부장 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라크전 보도의 문제점으로 ‘국익에 미칠 영향과 분석, 정부가 취해야 할 입장 등 대안 제시 미흡’(36.8%)을 가장 많이 꼽았고 ‘철저한 검증 및 분석 없이 개전 전망을 앞세운 보도태도’(28.9%), ‘미국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보도태도’(15.8%), ‘국제사회의 비판이나 반전 여론 전달 미흡’(13.2%) 등이 뒤를 이었다.

이번 경우도 개선된 점은 보이지 않는다. 현지인들의 전언에 따르면, 현지방송에서는 김선일씨가 군복을 입은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알자지라나 BBC의 방송 내용도 미 군납 업체 직원이라는 것이 부각되고 있었는데 우리 언론들은 이러한 사실을 외면한 채 평화, 재건이니 복구니 하면서 방송으로 호소를 했다. 더 더욱 화나게 하는 장면은 화면과 내용이 맞지 않는 보도였다. 서희제마 부대의 재건사업을 운운하면서 사진은 봉사활동 내용과는 관계없는 사열하는 장면 같은 것을 방영했다. 그러면서 학생신분, 유학 등등을 언급한 것은 현지 언론과 너무 큰 괴리를 갖고 있었다. 최소한 사실확인이나 현지 언론의 철저한 분석에 기초한 보도라면 이런 우()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시민정신(市民精神)이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우리 한국사회가 민주화를 무척 많이 이루어왔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점을 다시 부끄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국정조사에 관계없이 가나무역의 K사장의 행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개인적인 회사의 이권과 정부나 언론에 알려질 경우 사태해결에 어려움이 있었을 줄은 잘 안다. 개인적인 해결능력을 과신했는지 모르지만 자칫 잘못하면 그 파급효과가 국내외적으로 엄청나리라는 점을 알았으면 최소한 우리 정보 당국에 비밀리에 상의라도 했어야 했다. 3주에 걸치는 기간동안 대사관이나 우리 정부에 알리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 자신은 우리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를 한 것이다. 과거 같은 회사 직원이 사건직후 나타나 이미 피랍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증언하고, 친구라는 사람들도 하나 둘씩 나타나 이메일을 공개할 때 나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렇듯 정보가 부족한 우리에게 왜? 그 귀중한 정보를 감추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더욱이 사건이후에야 의기양양하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서 국익(國益)보다는 사익(私益)이 중요한 사회였구나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시민정신의 부재라 생각된다.

그 후 이와 같은 종류의 폭로는 계속 이어졌고 국민들은 실망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A교회 선교팀의 한 관계자는 6 29 O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김씨 피랍 사실은 바그다드 현지에서 6 10일께 확인됐다”며 “국내 선교팀에서도 이 때쯤 김씨의 피랍 사실을 알게됐고 그의 안전을 위한 기도모임도 있었다”고 밝혔다. D일보 7 2일자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부터 중동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펼쳐 온 서울 M교회 L목사는 “지난달 6일 김 사장의 형인 김비호씨에게서 김씨의 피랍사실을 들었으며, 이를 즉시 교인들에게 알렸다”고 밝히고 있다. 진위여부를 떠나 이 모든 정황들이 나중에야 폭로되고 알려졌다는 사실은 개인의 사사로운 목적이 이 사회에 얼마나 팽배해져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자유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질서가 있어야 하고 또 반드시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카파라치가 나타나 현금을 요구하던 직업이 출현하기도 했던 우리사회의 단면에서 시민정신을 찾으려 했던 점이 잘못이라면 잘못일 수 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성숙한 민주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시민정신이 그 초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는 스스로 자란다

정부와 언론, 시민정신과 전문가의 부재를 통틀어 국민 모두가 죄인이라고 항변하고 나왔더니 다음날 언론에 “이라크 전문가는 없다”라는 기사가 화두(話頭)로 떠올라 다시 한번 실망을 했다. 이 사건을 줄곧 지켜보면서 정부와 언론의 책임 떠넘기기 공방에 실망하고, 더욱이 정치권에서는 문제가 발전하여 파병반대, 철수의 양분화 논쟁이 가열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까지 ‘다람쥐 쳇바퀴 식’의 커다란 사건에 익숙해져 있다. 대형 참사나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대형참사 → (언론) 인재 혹은 천재보도 → (정부) 예산 및 인력부족 타령 → (정부) 거창한 대책마련 발표 →(국민 혹은 단체) 기금 또는 보조금 요구 → (정치권) 대안없는 공방 → (언론) 여론조사 또는 가끔은 모금운동 → (시간경과) 망각”이라는 악순환을 되풀이 해왔다. 한국은 분명 선진국으로 가는 문명국가이고 지금 그걸 달성하기 위해 복지후생문제가 이 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다시는 악순환이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우리 국내에만 국한된 문제도 아니요, 한국의 장래와 직결된 중요한 사항이기에 철저히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찾아야한다. 그것도 단기적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조한다”는 고전파 경제학은 농업시대에는 잘 맞았다. 21세기 경제정책도 공공정책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일부 개도국에서 민영화의 폐해가 노출되고 있기는 하지만 민영화(民營化)를 기치를 내세우고 있다. 무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유무역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보호무역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유치산업(幼稚産業) 보호시대는image WTO의 출현으로 어렵게 되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지금까지의 예로 볼 때 국가에서 보조금을 주고 육성한 R&D산업이 성공한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이 경우 대부분 방만한 국고지출, 오만한 공무원과 게으른 개발자들의 태도로 국고가 낭비되는 사례들을 많이 보아왔다. 오히려 이보다는 민간기업의 창의적인 개발노력이 성공한 경우가 더 많다. 정부의 역할은 단지 개발이 잘 이루어지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고 대안이며 이것이 자본주의가 갖는 강점이기도 하다. 그 핵심은 경쟁의 원리에 있다. 기업은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코스트를 낮추기 위한 기술개발에 전력투구하고 그 결과 소비자는 값싸고 좋은 품질의 상품을 선택하게 된다. 전문가 육성도 이러한 법칙에 따라야 한다.

온실에서 꽃과 나무를 키우는 것이 보호주의라 한다면 산과 들에서 키우는 것을 자유주의라 볼 수 있다. 온실에서 자라는 식물은 일정한 온도와 수분에 잘 길들여져 있다. 기후변화나 재해가 닥치면 곧바로 시들거나 죽어버리는 것은 보호장치라는 온실 때문이다. 반대로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나무는 완전경쟁상태에서 자란다. 예들 들어 소나무를 잘 키우려면 천적인 참나무를 잘 솎아주고 해충을 잡아주면 된다. 칡넝쿨이 감고 올라가면 칡넝쿨만 잘 제거해주고 온실에서처럼 비료나 잘 주면 싱싱하게 자란다. 그 역할이 정부의 역할이다. 다시 말하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전문가가 없다는 보도에 지금 거창한 대안과 아이디어들이 각계각층에서 속출하고 있다. 물론 다 좋은 이야기다. 지금까지 중동전문가가 부족했다는 이면에는 정부가 육성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지만,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문가가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무작정 비료만 주는 행위는 오히려 잡목(雜木)을 양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본래 잘생긴 나무는 어려서부터 베어가거나 정원으로 옮겨심기 때문에 거목으로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에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필요하듯이 전문가도 전문가가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 옆에 있는 잣나무가 소나무 행세를 하지 않나 아니면 칡넝쿨이 소나무를 자라지 못하게 감고 있지 않는가를 살펴보고 비료를 주면 싱싱한 소나무 숲이 잘 육성될 것이다. 또한 산에는 소나무만 필요한 것이 아니듯 우리 사회에는 각계 각층의 다양한 전문가가 필요하다. 학계, 언론계, 정치권, 군사, 사회, 문화, 예술 등 정부는 다양한 중동전문가가 자라날 수 있도록 환경조성에 앞장서야 한다. 다시 말하면 “전문가는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란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보의 DB화와 네트워킹이 문제

중동전문가 부족이 발등의 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전문가가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전문가란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노련한 형사는 기초 데이터만 보면 육감으로 범인을 잡는 경우가 많다. 사무실에서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면 범인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스페셜리스트는 범인을 잡는데도 다양한 분석을 통해서 단 1발의 총탄으로 범인을 잡을 수도 있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수많은 병력이 동원되고 산발적인 총탄을 쏘면서 범인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효과적인 스페셜리스트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경비를 필요로 한다. 우리에겐 그런 전문가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이 문제는 장기적 대안으로 반드시 단계적으로 육성해야할 과제이다.

스페셜리스트는 아닐지라도 한국에 전문가는 있다. 그들을 발견하고 찾아내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고, 네트워킹화해서 총체적으로 데이터베이스(DB)화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내가 알기로도 이미 1970년대 이라크에서 아랍어를 익힌 사람도 있고, 현지인과 결혼에서 수십년간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고, 장기 체류하는 기업가도 있고, 걸프전이후 취재해온 기자도 있고, 아랍어에 능통한 기자도 있고, 수십년간 연구해온 학자도 있고, 정부기관이나 군인, 경찰에도 아랍어를 익힌 인력도 다수 있고, 최근이긴 하지만 선교사도 있고, 반전단체 회원도 있고 NGO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 각기 개인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는 매우 우수하다고 본다. 어느 네티즌의 글속에 “미국은 전문가가 없어서 살해당했느냐”는 항의는 내 가슴을 뜨끔하게 만들었지만, 그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들 소중한 정보가 효과적으로 네트워킹화 되어서 DB화 되는 과정이 과제로 남는다. 특히 민간인 정보의 경우 개인적인 정보는 개인의 목적이나 이익을 위해서 축적되는 것이기에 통합 DB화에 문제가 있다. 민간정보의 경우엔 철저한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고, 관련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연후라야 전문가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지금처럼 언론이나 낡아빠진 학술서적에 의거한 분석은 효과를 발휘하기가 어렵다. 어렵긴 하지만 방법은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장기적인 전문가 육성책은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기에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우선 활용가능 한 전문가들의 귀중한 정보라도 이용하자는 이야기이다. J일보의 보도대로 “정보도 전문가도 없이 말로만 떠든다”는 기사에 공감한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으로 전세계 정보를 인터넷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많은 양의 정보는 분석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있다. BBC도 이라크 침공에 대해 미국의 <정보 종합능력 결여>를 지적하고 있다. 9.11 테러 이전 미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은 일부 용의자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중동인들이 비행교습을 받고 있다는 정보도 갖고 있었지만 이를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터넷의 범람은 불필요한 쓰레기 정보도 만만치 않게 갖고 있기에 종종 더 큰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김선일씨 사건때도 정보의 혼란은 많이 경험했다. 필요한 자료수집 → 정확한 분석 → 적절한 대안 내지 정책구상 → 실행 및 검증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정보종합능력이 핵심요체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미 존재하는 전문가를 철저히 검증하여 발굴하여야 하며, 또 그들이 지금까지 축적한 정보나 자료를 정확히 분석하고 학자나 언론들이 그 동안 이라크에 관해 써온 글들을 평가·분석하는 작업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결코 미래에 진정한 전문가를 양산해 낼 수 없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없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온 국민이 이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숙의(熟議)해야 한다. ‘정보력 부족’과 ‘전문가의 부재’는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단시일에 해결되기는 어려운 경제적 시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우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단기적이나마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나친 정부에의 의존이나 간섭은 전문가 육성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어설픈 처방은 더 많은 환자를 고통스럽게 할뿐이다. 1970년대 전혀 무지(無知)의 중동건설시장을 개척할 당시 해외건설협회의 역할을 잘 분석하면 좋은 방안이 마련될 수도 있다. 가까운 일본의 사례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1세기가 정보화시대라는 점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오늘날 미국이 저토록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엄청난 양의 정보축적이 이루어낸 성과이다. 결국 정보축적은 그 나라의 국력인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 중동전역으로 확산

미국의 9·11테러 조사위원회는 7 6일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가 9.11 테러 이전에 이라크와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정리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도 부시 행정부가 사담 후세인을 중동평화의 위협으로 간주했지만, 이라크전이 중동평화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미국 상원 역시 이라크 전쟁은 ‘첩보오류’에서 비롯된 잘못된 전쟁이라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이 사건은 세계 역사에 대표적인 실패로 기록될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영국의 블레어 총리도 이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실수를 인정하고 순순히 이라크에서 철수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남는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라크사태는 이제 그 침공명분이었던 WMD나 알-카에다와의 연계성이 미국 9·11테러 조사위원회에서 부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와의 전쟁으로 자리 매김을 되고 있다. 외국인 인질 피랍과 인질 살해사건으로 테러리스트 혹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와 닿고 있다. 주권이양후 한스 블릭스 전 유엔 무기사찰단장은 “유엔과 세계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이라크의 무장해제에  성공했다”는 말을 남겼다. 이제 우리는 이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틀이나 앞당겨 6 28일 실시된 이라크 주권이양은 성격상 내분이나 내전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군통수권과 석유자원 통제권이 미군에 있는 상황하에서 친미인사로 구성된 내각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격이기에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 쿠르드족 문제 또한 이란, 터키 시리아 등 주변국가들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이러한 징후들은 현재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계속될 전망이다. 이 주제는 본고의 내용과는 동떨어진 것이기에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은 이미 지난 2월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의 축출은 중동질서를 미국과 동맹국들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면 재편되도록 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스라엘 총선이 끝난 만큼 가까운 장래에  ‘로드맵(roadmap)’을 향해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이 구도는 국제사회 4인방(미국, 러시아, 유엔, 유럽연합)에 의해 그려질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와 함께 파월 장관은 이라크내 변화를 이 지역 긴장을 유발하는 또 다른 고통스런 원인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재개와 연계시키고 있다. 이제 미국으로서는 주권이양후 보다 홀가분한 상태에서 이 문제로 뛰어들 것이다.

한국과 전세계가 아부 그라이브 포로학대와 외국인 인질 피랍 및 살해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  분리장벽을 건설하여 아랍권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분리장벽은 총 건설비가 34억달러(한화 4조원)에 달하는 이스라엘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로, 서안지구 북쪽의 200㎞ 정도는 이미 완성됐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간 유혈사태는 계속되고 있으며, 7 6일에는 중동 4자회담이 예루살렘에서 개막되었다.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국가를 창설하는데 목표를 둔 중동 로드맵은 2003년 이라크전 종전후 큰 환영 속에 시작됐으나 그후 사실상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 했다. 미국의 관심은 이제 이라크 문제에서 보다 큰 틀인 중동전체의 질서변화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우디에서의 테러사태의 진전과 예멘에서의 알-카에다와의 전쟁도 이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 이라크 사태는 자연스럽게 주변 국가들을 개입시키면서 중동전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이 와중에 미국은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이란 및 리비아의 목을 죄면서 그 방향을 서서히 아시아쪽으로 돌릴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미국은 9·11 테러사태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아프가니스탄으로 되돌아와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이라크만 보아서는 안된다

6·28 주권이양이후 이라크는 새로운 전환점에 다시 섰다. 미국이 걸프전이후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석유자원 장악을 통한 중동질서재편과 더 나아가 세계경제질서재편’은 이제 그 서막(序幕)이 오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의 대이라크 정책도 단지 이라크에만 국한되는 미시적인 정책만으로는 안 된다. 거시적 안목을 갖고 중동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정책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나치게 종교적 관점이나 테러와의 전쟁으로 몰고 가는 한 한국과 중동간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아랍=테러=이슬람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 이런 고정관념이 깨지지 않는 한 이라크나 중동에서의 우호관계는 쉽게 해결될 수 없다. 더 더욱 서구적 관념에서 기독교 : 이슬람이라는 도식으로 중동을 바라보는 한 악순환은 계속된다. 오히려 두 종교간 분쟁에 한국이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중동선교는 이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루어져야 한다. 국내 개신교 3000여명이 8월 예루살렘 및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대규모 평화행사를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선일씨 사건이 현재 이라크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아랍 내지 모든 중동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으면 좋겠다. 현대국가는 다시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추세에 있다. 국익이 사익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국민 모두가 가졌으면 좋겠다.

전세계에는 약 50여개 국가에 약 13억의 무슬림이 있으며, 이중 약 3억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랍인이다. 그리고 중동에는 이슬람국가외에 기독교, 유대교 등 세계 3대 종교가 모여 있는 곳이다. 이 가운데 터키와 이란은 이슬람국가이지만 아랍국가는 아니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들은 중동=아랍=이슬람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바로 경제적 측면이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시작된 이라크 침공의 근본의도는 WMD나 알-카에다와의 연계가 아니라 이라크의 <석유자원의 장악>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가 미국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작은 의미에서 보면 에너지자원 장악의 출발점이요, 큰 의미에서 보면 세계경제질서 재편의 시작이다. 미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중동에 대한 집착, 그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이라크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이며, 세계 제2위 경제대국 일본 또한 세계 경찰국가를 꿈꾸면서 미국의 정책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그렇기에 중동에서 이라크 문제해결은 세계경제질서 재편에 단초가 될 것이며, 그 해결방향에 따라 유럽 및 아랍권의 경제질서도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파병의 경제적 효과는 그저 눈에 보이는 이라크 재건사업에 대한 효과만 분석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한국경제가 1973년 제1차 석유위기를 넘긴 지 만30년이 지난 지금 그 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 같다. 김선일씨 사건으로 이라크 현지에서 고조되고 있는 반한 감정이 주변 아랍국가에 파급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중동은 과거에도 중요했지만 앞으로도 우리에겐 중요한 지역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유가와 테러로 인한 물류비용 인상으로 수출에 먹구름이 끼어있는 상황에서 한-이라크간 적대감 고조는 한국의 중동진출에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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