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기후변화 협약에 대한 정유산업의 대응전략
글·김대근|SK주식회사 안전환경경영팀 부장
서 론
그 동안 교토의정서 비준에 대해 소극적 입장을 견지해 오던 러시아가 최근 비준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에 의해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배출 저감의무를 부담하게 될 경우 국내 정유산업은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정부 정책은 에너지 소비 억제에 집중될 것이며 이로 인한 국내 산업구조의 에너지 비집약적인 구조로의 전환 및 소비감소는 석유류의 수요를 크게 위축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제협상 결과에 따라 이러한 시나리오의 진행 여부는 상당히 가변적이라 할 수 있으나 정유산업의 생산제품이 기후변화협약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에너지 가운데 하나인 석유류이기 때문에 타 산업에 비해 보다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기후변화협약과 관련한 국내외 동향과 함께 국내 정유산업의 대응전략을 간단히 살펴 보고자 한다.
주요영향
정부는 우리나라가 향후 온실가스 배출저감 의무를 부담하게 될 것에 대비하여 우리의 경제구조를 에너지 절약형 및 환경친화적 구조로 전환하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하는 기후변화협약 대응 종합대책을 마련하여 추진 중에 있으며 이중 에너지부문에 대해서는 수요, 공급, 수송연료 등으로 구분된 감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수요부문에서는 통합관리형 에너지 절약정책 추진, 에너지효율 개선, 공급부문에서는 대체에너지 및 청정에너지 보급 확대, 수송연료 부문에서는 청정연료 사용 및 경차보급 촉진 등의 추진전략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또한 에너지경제연구원의‘기후변화협약 및 교토의정서 대응전략 연구’ (2002.4)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전망을 위해 선진국과 개도국의 의무부담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시나리오별 파급효과를 2015년 기준으로 분석하였으며, 분석결과에 따르면 실질 GNP는 - 0.8 ~ 0.04%, 온실가스 배출량은 - 9.79 ~ - 2.30%, 석유류 소비량은 - 6.74 ~ - 0.89%의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었고 이에 따른 석유 및 석탄산업의 생산량은 0.88 ~ 6.68% 줄어드는 것으로 각각 전망되었다.
이 같은 분석으로 볼 때 기후변화협약으로 인한 정유산업의 주요영향은 생산공정 측면과 제품판매 측면으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생산공정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설비투자로 인하여 생산단가가 상승할 수 있으며, 판매분야에서는 정부의 에너지 소비 저감정책에 따라 에너지 판매수요의 감소가 예상된다.
해외 기업동향
BP, Shell 등으로 대표되는 해외 정유사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수단으로 사내 배출권거래제도를 도입하여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향후 형성될 국제 배출권 거래시장에서의 선점효과 (First Mover’s Advantage)를 누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내 경험 축적과 함께 축적된 경험을 유럽 배출권거래제도 정책수립에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BP에서는 이를 위해 1999년 배출량 조사와 외부 전문기관 검증을 통한 데이터 측정 및 입증시스템을 구축하였으며 또한 각 사업단위 별 배출저감비용을 산정하여 DB화 하는 등 사전기반을 구축한 후 2000년 사내 배출권거래제도를 도입하였다.
Shell에서는 이외에 2010년 중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의 5% 이하로 감축키로 목표를 설정하고 에너지효율 개선 프로그램과 사내 배출권거래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Chevron Texaco사의 경우에는 온실가스 배출저감 및 에너지 효율 증대, 연구개발 및 기술개발 투자 확대, 유망한 혁신적 에너지 기술분야에서의 사업기회 추구, 환경보호를 위한 신축적이고 경제적인 정책 및 메커니즘 개발 지원 등의 기후변화협약 대응전략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 석유업계에서는 ‘석유업계 지구환경보전 자주행동계획’을 수립하여 추진 중에 있으며 이러한 계획의 추진결과 평균적으로 에너지소비 원단위, 연료소비량 등에 있어 커다란 개선을 이룩하였다. 다만, 목표 설정 시 시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품질향상 설비의 처리량을 고려한 집약도 방식의 에너지소비 원단위를 적용하고 있는 점이 절대적 목표를 수립하고 있는 유럽기업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 해외사례를 종합해 볼 때 국내 정유산업에서는 국내기업과 다소 상이한 기업환경을 고려하여 정부와의 협력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으며 원단위 방식의 목표설정과 함께 배출권거래 기반을 조성하는 등의 사전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응현황 및 문제점
국내 정유업종의 구체적인 기후변화협약 대응활동은 해외기업에 비하여 다소 소극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명확한 저감목표가 아직 설정되지 못한 외부적 경영환경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 대한상의 산하에 정유업종 차원의 기후변화협약 대책반을 구성하여 약 1년간 관련부서 담당자들이 주기적 모임을 통한 업종 차원의 대응방안을 모색한 사례는 비록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는데 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업종 차원의 공감대 형성과 함께 학습기회를 통한 대응역량 강화가 가장 큰 효과라 할 수 있겠다.
이외에도 각 사별로 에너지저감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는 해외기업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일부 기업에서는 축적된 기술을 활용하여 ESCO사업을 추진하거나 정부의 정책과제에 시범적으로 참여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들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나름대로의 국내 정유업계 활동들이 앞서 살펴 본 해외사례와 비교해 볼 때 적극적인 대응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가장 우선적으로 외부적 불확실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온실가스 저감시점 및 조기행동 인정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온실가스 저감투자에 대한 기업의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업의 경영활동은 불확실성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불확실성은 기업 경영에 있어 가장 커다란 장애요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기업별로 교토 메커니즘에 적극 대응하기에는 자체적인 내부역량이 다소 미흡한 수준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아직은 관련업무를 부가적 업무로 인식하여 전담 조직 및 인력 등의 자원투입이 미흡한 때문이기도 하다.
정유업종은 이외에도 산업 특성상 실질적인 온실가스 저감이 어려운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즉, 성숙산업으로서 온실가스 저감기술 자체가 한정되어 있는데다 한정된 기술 또한 대규모 투자를 수반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같은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여 향후 정부 차원에서 저감목표가 설정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사전 준비사항과 에너지 정책방향, 정부와 산업계 역할 분담 등에 대한 중장기적 로드맵 설정이 필요하겠으며,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Matching Fund의 활용이나 CER구매, 보조금 지급 등과 같은 다양한 인센티브 정책의 시행이 요구된다.
대응전략
교토 의정서가 아직 비준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국가 의무부담도 불확실한 현 시점에서 기업의 대응전략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지만 그러나 시기적으로 문제일 뿐 어떤 형태로던 기후변화협약이 가동될 것이란 전제 하에서 보면 향후에도 정유업계에서 관망하는 입장을 지속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정부의 정책방향을 고려한 단계적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즉, 향후 정부에서는 다양한 연구와 시범사업을 통한 국내 정책수립 후 국제협상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이후 협상결과를 반영한 국내 제도화 등의 절차를 거칠 것으로 예상되므로 기업 입장에서는 이와 연계하여 역량축적, 자발적 목표수립, 자발적 저감 추진과 같은 3단계 대응전략 수립이 필요할 것이다.
1단계 역량축적 단계에서는 내부의 대응역량을 우선적으로 강화하기 위하여 교토 메커니즘에 대한 학습과 이를 대비한 내부 인프라 구축이 필요한 단계라 볼 수 있다.
교토 메커니즘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2002년 PwC에서 30개의 일본기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서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연구에 의하면 현존하는 가장 값비싼 온실가스 감축방안을 적용하더라도 5% 이상의 감축은 어려우며 따라서 그 이상의 감축을 위해서는 교토 메커니즘을 활용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업종과 기업 특성에 따라서 다를 수 있으나 한계저감비용이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상승할 것이란 추정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이다.
청정개발체제나 배출권거래제도와 같은 교토 메커니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배출량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인벤토리 체계 구축과 함께 온실가스 저감사업 인증에 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
2단계에서는 1단계에서 학습한 교토 메커니즘을 활용하여 자발적 저감목표를 수립하는 단계로서 일본 석유업계의 사례와 같이 원단위 방식의 저감목표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다양한 감축 옵션별 경제성 평가를 토대로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포트폴리오 구성이 필요하며 사내 에너지 투자사업에 대한 경제성평가 기준을 온실가스 감축과 연계하여 재정립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3단계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실행하는 단계라 볼 수 있으며 설비투자에 의한 실질적 감축과 함께 교토 메커니즘을 활용한 경제적 감축도 병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배출권거래제도에 참여 시 발생하게 되는 Credit에 대한 재무적 위험관리와 함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체제에서의 신규사업 창출도 가능하리라 본다.
결론
정유산업은 대표적인 에너지 집약산업의 하나로 온실가스 배출이 타 산업에 비해 많은 편이기 때문에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매우 큰 산업 중의 하나이므로 국가 차원에서 뿐 아니라 정유산업 자체로서도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의무부담에 대비한 노력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정유사들의 경우 대부분 온실가스 저감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저감과 관련하여 향후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추진될지 불확실한 요인이 많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국내 정유업종의 온실가스 감축 촉진을 위한 정부의 정책방향을 시사해 주고 있는바 향후 온실가스 조기감축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과 함께 기업의 인식도 제고를 위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업계 내부적으로도 현재 예상되는 정부의 정책방향을 고려하여 역량축적, 자발적 목표수립, 자발적 저감추진 등과 같이 단계적인 대응전략을 수립함으로써 미래 위험부담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새로운 시장체제에서의 수익창출 기회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