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사 글마당>
엉망진창 MC(Marketing Consultant) 일기
김재선_GS칼텍스(주) 산업체영업1팀 사원
“우리나라에 바퀴벌레가 몇 마리나 될까요?”
“….”
“김재선씨??”
“많습니다. 무척 많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지금 GS칼텍스에 들어오고 싶은 이 맘보다는 작을 것 같습니다.”
“네~? 하하하~”
생애 첫 면접이었다. GS, GS칼텍스… 얼마나 꿈꿔왔던 순간이냐..
츄리닝 바람에 머릴 질끈 묶고 뱅글뱅글 안경에 여드름이 덕지덕지 난 얼굴. 누가 볼새라 고개를 푹 파묻고 도서관과 집을 오가는 암울한 취업준비생, 어제의 내가 떠오른다.
아침에 나의 자는 머리맡에는 5천원짜리 지폐 한 장씩이 놓여졌었다.
학교 식당 1,500원짜리 밥 2끼 3천원에 왕복 버스비 1천 4백원. 합쳐서 4천 4백원. 6백원은 자판기 커피라도 사먹으라는 ‘팁’이다. 대학 4년 등록금에 어학연수라는 사치까지 부렸는데 아직 취직도 못해 빌빌거리고 있으니 그것만도 감지덕지다. 그런 상황이니 친구? 연애?? 그런 것 없다.
하루는 아직 내 머리맡에 돈이 놓이지 않았는데 어머니 나가시는 문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잠옷바람으로 어머니를 쫓아 나갔다. 돈을 받아 들고 다시 집으로 들어서다가 신발장 앞 거울에 눈이 갔다. 손에 쥔 5천원 지폐와 내 잠옷바람 몰골의 어우러짐이 너무나 절묘하다. 피식 웃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다...
“김재선씨?!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 GS칼텍스에 대해 생각해본 것이 있습니다. 잠시 시간을 주신다면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내 주변의 2~30대 자가운전자 1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토대로 GS칼텍스의 부족한 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리고 주유소에도 나가 내 생각들을 고객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GS칼텍스 주유소와 경쟁사 주유소를 방문, 또 100여명의 설문조사를 했다.
누군가 물었다 “이야~ 대단하네요~ 면접준비를 그렇게 해요?”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거죠~ ^^”
가끔은 머리가 나쁜 게 신의 축복이라 생각한다. 봐라. 덕분에 난 그토록 원하던 GS칼텍스에 들어와 있다.
이제 난 大 GS칼텍스의 영업사원이다. 그리고... 여자다. ^^
“여자가 영업을 하긴 힘들텐데… 술은 잘 먹나요? 주량이 어느 정도 되죠?”
“앞에 있는 사람만큼 먹습니다”
“네..?”
“앞에 앉은 사람이 한 병이면 한 병, 세 병이면 세 병 똑같이 먹습니다”
“그~래요~? 하하하~”
그렇게 시작되었다. ‘기름장수아줌마’가 되고 싶다는 여자아이의 영업사원 입성기.
면접 때 흘러나간 주량 때문일까. 입사하자마자 내겐 이상한 별명이 따라다녔다.
“야~ 한 박스!”
“네???”
“너 주량이 한 박스 라매~ 소주 한 박스.”
세상에 절대 말아야 할 자랑이 두 가지 있다던가.. 힘자랑. 술자랑..
사실 난 아토피를 심하게 앓고 있어 술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으로 깡으로 마신다. 여자라서 못한단 말이 듣기 싫어 오기로 더 마신다. 물론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젊음으로 그리고 정신력으로 끝까지 버텨 낸다.
“꽉 꽉 채워주십쇼~~”
선배님들과의 첫 술자리가 막 물이 오를 즈음.. 줄곧 입을 꾹 다물고 계시던 한 선배님이 입을 연다.
“난 너 후배로 생각 안 한다”
“네?”
“우리 팀 모두 너 우리 팀 오는 거 반대한 거 알어? 여자가 무슨..”
이제... 드디어… 시작이다…
저런 꼬맹이 기지배가 팀에 무슨 도움이나 되려나 하는 눈빛이시다.
까짓 거~ 좋다. 밟을 테면 맘껏 밟아 보세요.. 난~! 밟으면 밟을수록 더 굳세게 자라나는 잡초입니다~! 기죽지 말자!!
“아휴~ 선배님 왜 그러세요~ 푸른 언덕에~ 앗싸싸~”
“허어….요거 봐라~”
그랬다. 여자가 기름밥을 먹으며 더더군다나 영업을 한다는 것이 그리 달가운 시선 받을 일은 아니었나 보다.
전화 받을 때는 더하다.
“감사합니다. 산업체영업1팀 김재선입니다.”
“예~ 거기 영업하시는 분 좀 바꿔주시겠어요?”
“네~ 말씀 하세요.”
“아니~ B-C구입상담 좀 드리려는데 영업사원 좀 바꿔달라고요”
“네. 제가 영업사원인데요.”
“네?? 여자분이 영업하세요?? 남자 없어요??”
“….^^ ”
재작년이었던가? 인기폭발 드라마<인어아가씨>. 은아리영의 일에 대한 근성, 집념, 의지를 내 역할모델로 삼았던 적이 있다. 그 타이틀 화면에 나오는 ‘잉어’ 한 마리는 나와 아리영을 연결해 주는 비밀 코드였다. 중국 고사를 보면 황하에 물살이 세고 가파른 용문이라는 계곡이 있단다. 그 곳에는 잉어들이 떼지어 살았는데 어느 날 물살을 헤치고 상류로 도약한 잉어가 순간 용이 되어 승천하여 “등용문(登龍門)” 이라는 말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 아리영은 기껏 남자 하나를 위해 자기를 버리는 ‘인어’아가씨가 아니라, 불굴의 의지로 용이 되어 승천할 ‘잉어’아가씨라 생각했다. 그 잡초같이 피어나는 집념과 의지로 결국 '성공한 여성'이 된 그녀를 보며 지치고 힘든 내 삶에 작은 위안을 받았었다.
나도 용이 되련다.. 기름 파는 용이 되련다..
그리고… 이제 1년이 흘렀다.
2주만 안 찾아 뵈어도 “기름 조금 쓴다고 보러 오지도 않는 거예요?” 전화를 걸어 앙탈(?)을 부리시는 거래처분들과. 매일의 구박 속에도 날 아끼는 맘이 어쩔 수 없이 담뿍 흐르는 선배님들. 이제 몽땅 다 ‘내 편’인 사람들이다. 내가 너무 사랑하는 ‘내 사람’들이다.
내 비록 엉망진창 사고뭉치 애기 사원이지만. 비록 2BD, 4BD 거래처들 맡고 있지만 그렇게 그렇게 2BD 4BD 모아 모아서 200BD 4000 BD 만들어낼 거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또’ 묻는다.. ^^;;;;;
“선배님~ 이거는 모예여~~?”
“아휴~ 왠수야~~”
묻고 또 묻고... 뛰고 또 뛴다.
김재선 파이팅~!! 산업체영업1팀 파이팅~!! GS칼텍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