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지난호 보기
협회보 바로보기 협회보 다운로드 전체 목차보기

[집중분석] 거래단계별 석유가격 공개 확대시 문제점

ICON ICON

 

 

거래단계별 석유가격 공개 확대시 문제점 

 

 
이병기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논의배경

올해 1월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언급한 이후 석유가격 안정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민관합동의 석유가격 테스크포스가 출범하였다. 석유가격 테스크포스는 2011년 4월에 석유제품 가격 공개제도 확대 등 대책을 마련하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최근 정부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이하 석대법) 시행령 42조의2 제3항을 개정하여 기존의 석유정제업자의 판매가격 공개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기존의 석대법 42조의2 제3항은 석유정제업자 별 주간 및 월간 “판매가격을 공개한다”로 되어 있지만, 이 조항을 석유정제업자별 주간 및 월간 평균 “판매가격과 각 정제업자의 판매단계별(주유소, 일반대리점, 일반판매소 및 석유판매업자 외의 판매처로 구분한다) 주간 및 월간 평균 판매가격을 공개한다”로 개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본고는 각 석유정제업자의 판매단계별 유가공개를 주요내용으로 하는 석대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서 석유가격 안정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유가공개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법률적인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그 정책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 판매단계별 유가공개와 가격상향 동조화

현재 정유사는 환율을 고려한 국제제품가격에 관세·부과금, 유통비용, 이윤을 더하여 기준가격을 산정하고, 영업단계에서 국내시장상황을 반영하여 가격을 추가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즉, 정유사 세전가격은 국제제품가격(환율), 관세·부과금, 유통비용, 이윤/시장상황 등을 더하여 기준가격을 산정하고 있다. 2010년 기준 국내 휘발유가격은 정유사 단계의 국제휘발유가(36.7%)와 유통비‧이윤(2.9%), 주유소 단계의 영업비‧마진(4.2%), 카드수수료(1.5%), 정부의 세금‧부과금(54.7%)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유사의 공급가격에 있어서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제원유가, 환율, 세금 등은 모든 정유사들에게 공개된 정보이거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정보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유사별로 가격이 추가적으로 공개될 경우 평균판매가격은 공개된 다른 정보들과 결합되어 해당 정유사의 원가구조 및 마진율 등에 관한 정보를 추정해낼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의사결정에 관한 구조모형과 의사결정의 결과물인 가격자료, 물량자료, 시장환경 변수, 정부정책 변수를 계량분석모형으로 분석한다면 경쟁기업의 의사결정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역시 가능해 진다.

 
또한 개별 정유사들은 정부정책에 의해 공개된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경쟁사의 가격설정 패턴을 학습함으로써 정유사 단계의 가격상향과 동조화가 예상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석유제품 가격공개 효과분석 결과에 따르면, 가격 공개 이후 정유사 간 판매가격의 차이는 줄어들었으나 싱가폴 현물가격을 기준으로 정의된 정유사의 마진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가격 공개이후 정유사의 가격책정이 상향 평준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가격공개 이전과 이후 기간에 대하여 회귀분석을 사용하여 정유사의 마진을 계량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가격공개 후 정유사 단계에서 휘발유는 19.9원, 경유는 28.8원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정유사가 판매기준가격에 해당하는 공장도가격을 공시하는 자체가 가격담합의 신호로 기능할 수 있는 측면이 있어 이를 담합의 정황증거로 제시한 바 있으며, 또한 LPG담합사건 의결서에서 가격정보 공개가 담합을 용이하게 하였다고 판단하였다. LPG 사건 주문에서 시장을 통한 정보수집을 제외하고 직접 또는 기타 여하한 방법으로도 거래처에 판매하는 가격결정이나 결정내용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제공하여서는 안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 판매단계별 유가공개와 정유사 영업비밀 침해

석대법 제38조의2 제2항은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 경쟁을 촉진하고 석유제품 가격의 적정화를 위하여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에 따른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석유제품 판매가격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에서 ‘영업비밀’이란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아니하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이다. 부정경쟁방지법 상의 영업비밀에는 비공지성, 경제성, 비밀관리성 등의 개념이 포함된 것으로서 부정경쟁방지법에서는 영업비밀을 기술상의 정보와 경영상의 정보로 나누고 생산 및 판매방법을 각각 그 예로서 규정하고 있다. 특히, 서울고등법원(1998)은 경영정보로서 제품원가 분석자료, 대리점 마진율, 할인율, 가격, 신제품 개발계획의 경제적 유용성을 인정하여 영업비밀성이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또한 석유정제업자의 판매가격은 자사제품의 판매촉진을 위해 행해지는 다양한 영업전략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로서 각 정유사가 영업전략 상 비밀로서 엄격히 관리하는 중요 정보에 해당된다. 정유사의 거래단계별 판매가격에는 해당정유사의 영업전략, 개별거래처의 특성, 개별거래처와의 거래조건 및 기타 제반관계 등 해당거래처에 대한 모든 영업요소가 반영되어 있는 매우 민감한 경영정보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개 대상범위를 더욱 세분화하여 판매단계별 평균판매가격까지 공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정유사의 기본적인 영업전략에 해당하는 가격정보를 노출시킬 가능성을 더욱 크게 하여 중대한 영업비밀 침해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 이같은 정보가 대외적으로 공개되는 경우 해당 정유사의 영업전략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그대로 노출되는 셈이어서 해당 정유사가 보유하고 있는 경쟁상의 이익에 상당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 판매단계별 유가공개와 과잉금지원칙 위배

헌법은 영업 내지 기업활동 등 영리추구의 경제행위를 할 수 있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같은 자유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 등 일정한 조건 하에서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결국, 법률로 기본권을 제한함에 있어서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과 같은 과잉금지의 원칙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평균판매가격 정보의 공개는 정유사의 영업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으로서 과잉금지의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다. 제품가격은 기업의 전반적인 영업전략은 물론 거래상대방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영업요소 등을 총체적으로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해당정유사의 의사에 반하여 법령으로 판매가격을 공개하는 것은 개별거래처에 대한 판매가격이든 평균판매가격이든 정유사의 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정유사별 평균판매가격 공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공익의 성격이 불확실하고 추상적인 반면에 정유사들이 입는 불이익은 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판단되므로 기본권 제한에 의해 보호하려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 간 균형성이 유지되지 못하므로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 평균판매가격의 공개는 오히려 가격상향 동조화의 심화로 인한 경쟁자제 등을 가져올 가능성이 클뿐더러 가격이 공개된다고 하더라도 현재 정유사 간 판매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소비자 입장에서 볼 때 주유소에 대한 공급가격 인하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해당정유사의 의사에 반하여 법령으로 판매가격을 공개하는 것은 기본권 제한에 의해 보호하려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 간 균형성이 유지되지 못하므로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

 

□ 결론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판매단계별 유가공개를 골자로 하는 석대법 시행령 개정 추진은 재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같은 조치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법률적·헌법적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정부는 정유사에 대한 유가인하 압력을 가하는 대신에 유가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인하하는 것이 바람직한 물가인하 방안 중 하나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최근 보고에 의하면, 유류세를 10% 내리면, 휘발유 값은 리터당 74.6원, 경유는 52.9원을 내리는 효과가 발생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19%포인트 낮출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유류세 인하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