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화 약세가 세계 석유산업에 미치는 영향
연구위원 이문배
현재 고유가를 촉발시킨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달러화 약세 현상이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2004년 5월 유로와의 교환환율이 1.16까지 회복되던 달러화는 최근 미국 대선을 앞둔 2004년 11월 현재 1.28을 기록하며 다시 약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 엔화외의 환율도 현재 106엔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림]유로화 및 엔화의 대달러화 주간환율 추이
국제 석유거래는 통상 미국 달러화로 결제되기 때문에 달러화 약세는 세계 석유산업에 여러 가지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또한 석유의 국제거래는 달러화로 결제되지만 각국의 소비자들은 자국통화로 석유제품을 구입한다. 특히 산유국들은 원유 판매 대금을 달러화로 받지만 유럽이나 일본 등에서 필요한 상품을 구입할 때에는 해당국 통화로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달러화 약세는 유럽과 일본등의 지역에서 주로 생필품 및 기자재를 수입하는 산유국에 실질 구매력의 약화를 초래하게 된다. 이 같은 이유로 2003년 9월 OPEC이 뜻밖의 감산을 결정함으로써 시장을 자극하여 유가를 의도적으로 끌어올린 배경으로 해석되고 있다.
국제적 카르텔 조직인 OPEC에 있어서 이러한 환율과 관련된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즉, 회원국들마다 무역상대국이 다르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 하락에 따른 영향도 국가별로 상이하다. 다국적 기업인 석유 메이저 회사들도 석유거래는 달러화로 이루어지지만 임금과 세금, 비용을 지불할 때는 현지 해당국가의 화폐를 사용한다. 따라서 달러화 가치가 하락은 산유국은 물론 석유 메이저들에게도 민감한 사안이다. 이번 호에서는 달러화 약세에 따른 세계 석유산업의 영향에 대하여 살펴본다.
1. 주요 통화와 원유 가격
2001년 말 대부분의 유럽 주요통화들이 유로화로 대체됐다. 아직까지 독립적인 주요 통화로는 영국 파운드화 밖에 남아있지 않다. 1973년 이후 달러화 및 파운드화 표시 유가의 월별 추이를 보면, 파운드화로 표시된 유가는 지난 30년간 유럽의 주요 상황변동을 모두 시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유가가 최고치에 근접한 반면 영국 유가는 여전히 1984년에 기록한 최고치에 한참 못 미침을 알 수 있다. 달러화 표시 유가와 파운드화 표시 유가간의 격차가 지금과 같이 벌어진 것은 1982년 이후 처음이다. 1999년부터 최근까지의 유가 추이를 보면, 원유가격은 최근 달러화를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내달리고 있을 뿐, 타 통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달러화와 유로화로 표시된 유가 일일 변동추이를 살펴보면, 유가는 달러화로 사상최고치에 근접해있지만 유로화로 평가하면 달러화에 비하여 유로화의 환율가치 상승만큼 낮음을 알 수 있다. 달러화로 표시된 유가는 2003년 11월 이후 줄곧 상승해 왔지만, 유로화로는 2004년 2월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달러화표시 유가는 약 80% 상승한 반면, 유로화 유가는 약 55% 오르는데 그쳤다. 한편 일본 엔화 표시 최근 유가 역시 사상 최고치에서 동떨어져 있다. 미국 유가가 사상 최고가격을 기록한 반면 엔화 표시 유가는 1980년 초 수준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이는 1982년과 1985년 사이 가격보다도 낮으며 1976년 수준과 일치한다.
2. 달러화 약세, 석유생산 활동 위축
상류부문의 시추 활동은 유가와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즉, 유가가 오르면 시추정(the rig count) 수가 늘어나고 유가가 떨어지면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시추활동이 유가에 후행하기는 하지만 그 격차는 시기별, 지역별로 상이하다. 시추정 수의 전 세계 평균치만 가지고는 환율 및 기타 경제, 정치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을 파악할 수는 없으나, 전 세계 시추장비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이 세계적인 추세를 좌우하는 경향이 있다.
지역별로 시추정 수는 전 세계 통계의 추이와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북미, 중남미 그리고 대부분의 통화가 달러화에 고정된 중동지역의 경우 시추정 수와 유가 사이에 비례관계가 성립하는 반면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유럽의 시추정 수는 지난 12개월간의 꾸준한 유가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감소세를 보였으며, 아프리카 역시 몇 달을 제외하고는 2002년 중반 이후 꾸준한 내림세를 나타내고 있다. 유럽의 시추정 수는 달러화 표시 유가와는 반비례 관계를 보이는 반면 유로화 표시 유가와는 비례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아프리카의 경우, 시추정 수와 유로화 표시 유가와는 양의 상관관계이며, 이는 시추정 수와 달러화 표시 유가와의 상관관계 보다 3배나 더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즉, 유로화 표시 유가가 하락하면 그 만큼 시추정 수도 줄어든다. 다시 말해, 달러화 가치가 하락하면 시추정 수도 같은 추세로 감소한다. 계량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유럽의 시추정 수와 달러/유로 환율 사이에는 -0.6(크게는 -0.75) 정도의 반비례 관계를 갖고 있다. 또한 달러가치가 하락할수록 시추정 수도 감소한다는 사실을 설명해 준다. 이 같은 사실은 아프리카지역에서도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다. 유럽과 아프리카 두 지역에서만 이러한 현상을 보아고 있다. 중동지역과 아시아 극동지역에서 달러/유로 환율과 시추정 수는 약 +0.4의 정비례 상관관계로 분석된다. 결과적으로 유럽지역 시추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달러화가 아닌 유로화 표시 유가이며, 반대로 미주지역과 중동지역 시추활동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유로화가 아닌 달러화 표시 유가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통계학적 분석의 결과, 시추 활동과 달러화 표시 유가 사이의 관계는 1999년 이후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이 변화가 1998년과 1999년 초까지 나타난 유가폭락의 영향 때문인지, 혹은 1999년 초 EU의 유로화 도입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두 가지 모두 원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통계 자료에 의하면, 유로화가 상당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달러화 표시 유가는 1999년까지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의 시추활동에 영향을 미친 반면, 그 이후에는 유로화 표시 유가만 유럽의 시추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캐나다의 시추활동은 유로화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유럽통화 표시 유가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달러화 표시 유가의 상승은 전통적으로 중동지역의 시추활동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1999년 이후에는 다르게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유로화의 출범이 유일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OPEC은 1999년부터 유가 지지를 위한 감산전략을 채택하였고, 그 이후 2000년에는 유가밴드제도를 도입하였다.
달러가치 하락은 산유국의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킨다. 통계에 따르면, 18개 산유국 가운데 14개국에서 인플레가 달러가치 하락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나머지 4개국은 산업구조가 좀더 다각화되어 있고, 원유 이외의 수입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자국 통화가 미국 달러화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국가들이다.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달러가치 하락은 산유국의 구매력을 위축시키게 되는데,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그 손실액이 약 5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달러가치 하락은 OPEC 회원국들에게는 서로 다른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OPEC 국가들은 각기 다른 무역상대국을 갖고 있어서, 미국으로부터의 수입비중이 큰 국가들은 유럽과 일본에서의 수입비중이 큰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실이 적었다. 일부 OPEC국가의 경우, 지리적 위치도 구매력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어, 미국과 가까운 베네수엘라는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예상 손실이 가장 적은 국가였다. 베네수엘라는 수입의 상당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미국과 멀고 일본에 더 가까운 인도네시아는 일본으로부터의 수입 비중이 큰 편이어서 베네수엘라와는 달리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타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리비아는 그동안 유엔과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무역상대국도 그만큼 제한되어 있었다. 그 결과, 리비아는 달러화 강세 때 OPEC 회원국 중 가장 큰 이득을 얻었던 반면, 달러화 약세 때는 가장 큰 손실을 입었었다. 로커비(Lockerbie)사건 해결과 함께 유엔과 미국의 제재가 해제되면서 미국과의 교역이 재개됐고 달러화 약세로 이득을 얻게 됐지만, 그 결과는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업화 선진국의 상품수출가격은 환율과 더불어 산유국의 구매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OPEC의 관점에서 달러화 약세 시 미국 상품의 수출가격 인상은 미국 제품 수입에 따른 이득을 그만큼 감소시키게 된다.
인플레 상승과 구매력 감소 모두 실질소득을 떨어뜨리고 시추활동에 필요한 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최근과 같은 유가 급등 및 여러 지정학적 요인들이 달러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추활동을 자극시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난 3년 동안 달러화 가치가 유로화 대비 40% 이상 급락하지 않았다면 시추활동이 지금보다 더 증가했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예를 들어, 2002년 이후 지속적인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동안 중동지역의 시추정 수 증가율은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것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 결과인지, 혹은 달러화 약세의 결과인지, 두 가지 요인 모두인지는 분명치 않다. 2000년 1월부터 5월 사이 명목 유가는 배럴당 약 4달러 상승했고, 중남미지역에서 시추정 수는 29대 증가했다. 그러나 2004년 1월부터 4월까지 유가는 배럴당 6달러 가까이 올랐지만 동 지역에서 시추정 수는 20대 증가에 그쳤다. 이처럼 중동 및 중남미지역에서 유가 상승에 시추활동이 무관한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달러화 약세 때문일까? 아니면 시추활동이 둔화되기 시작한 시점과 달러가 하락하기 시작한 시점과의 관계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앞서 언급한 대로, 현 유가가 달러화 강세에 연동되었다면 시추활동도 더욱 증가했을 것이다. 결국, 달러화 약세는 공급을 위축시킨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3. 미국 석유소비와는 정비례 관계
달러가치 하락은 유로화, 엔화처럼 독립통화 사용국가에 대해 유가를 상대적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이들 국가에서는 실질소득의 증가와 함께 원유 수요도 늘어난다. IEA, EIA, OPEC에서 발표하는 최근 석유수요 전망 보고서들이 이 같은 현상을 뒷받침하기는 하지만, 달러가치 하락이 일부 유럽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OECD 국가에서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고율의 세금이 유가 변동 및 급등에 대한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분석에 의하면 달러화 가치 상승은 영국 국내 유가를 끌어올리고 수요를 위축시키며, 반대로 달러화 가치 하락은 유가를 내리고 수요를 진작시키는 것으로 분석됐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 12월의 석유 수요는 줄어드는 경향이 있지만, 2000년 12월에는 10%, 2001년 12월에는 6%, 2002년 12월에는 3% 감소한 반면, 달러화가 약세를 보였었던 2003년 12월에는 오히려 2.8% 증가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1월의 석유수요는 통상적으로 저조한 편이지만, 2004년 1월에는 증가세로 이어갔다. 이러한 소비 증가세를 설명할 만한 변수 중 하나로 달러화 대비 파운드화 및 유로화 환율 변화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인과관계는 아직까지 입증되지 않았다. 과거 자료에 의하면, 달러화 약세 시기에는 미국인의 해외관광객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의 상황은 테러위협 등으로 인한 신변안전의 우려 때문이라고 지적하겠지만, 과거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달러 환율과 미국인의 해외관광객수 사이에 비례관계가 성립함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미국인이 국내여행을 선호함에 따라서 그만큼 미국의 휘발유 소비가 늘고, 따라서 전반적으로 원유 수요가 증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4. 결론
달러화 약세는 비용 상승과 인플레확대, 구매력 감소, 투자수익 감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석유산업의 상류부문 활동을 위축시킨다. 또한 달러가치 하락의 결과 상대적인 자국통화절상의 영향으로 구매력이 높아진 국가에서는 석유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미국에서는 자국에서 휴가를 보내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국내여행 증가로 인한 휘발유 소비가 늘어나게 된다. 결국 달러화 약세는 현재의 고유가 상황을 예상보다 더 오래 지속시키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세 가지의 추가적인 결론은 향후 연구와도 관련이 있다. 원유 수요의 탄력성에 대한 집중 연구는 미국 달러화가 아닌 국가별 통화로 표시된 유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에너지 가격 및 경제성장률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 역시 달러화가 아니라 국가별 통화로 표시된 유가를 사용해야 한다. 끝으로, 환율은 전문가들이 아직 합의내리지 못한 국제 에너지 시장의 여러 가지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