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박진영_작가(성신여대 졸업)
‘이코노미세계‘‘위클리경향’등 문화에디터로 활동
국가와 사랑의 기로에서 과감하게 사랑을 선택한 연인들의 비극을 다룬 오페라가 베르디의 <아이다>는 1869년 이집트 수에즈 운하의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 신축된 오페라 극장 개관 공연으로 위촉된 작품이었다. 당시 정원생활에 만족하고 있던 베르디는 이집트 측의 제의를 두 번이나 거절했으나 고고학자였던 오귀스트 마리에트의 대본을 보고 <아이다>를 작곡한다.
총 4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이다>의 배경은 고대 파라오 시대 멤피스의 궁전이며 주요 등장인물로는 노예로 잡혀온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디다, 파라오의 딸 엠네리스, 이집트 최고의 장군 라다메스다.
에티오피아가 이집트를 침략하자 라마네스는 사령관으로 임명되기를 희망한다. 그는 전투에서 승리해 사랑하는 <아이다>에게 조국과 자유를 선사하기로 마음먹는다. 라마네스가 전투에서 돌아오면 결혼하겠다고 생각한 공주 암네리스는 라마네스의 태도를 보고 질투에 휩싸인다.
사령관으로 임명된 라마네스가 출정해 에티오피아를 이긴다. 승전의 소식을 들은 암네리스는 아이다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그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이에 아이다의 절망하는 표정을 보고 사랑을 확신한 암네리스는 결국 그가 살아 있다고 밝히면서 자신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사랑을 빼앗지 말아달라는 아이다의 요청에 암네리스는 복수심에 가득 차 협박한다.
개선 장군 라다메스가 돌아오자 왕은 승리의 상으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서 딸 암네리스를 아내로 맞이해 이집트를 통치하라고 한다. 이에 라다메스는 잡아온 포로들을 풀어주라고 부탁한다. 포로 중에는 아이다의 아버지이자 에티오피아의 왕 아모나스로가 끼여 있었다. 그는 아이다에게 라다메스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집트 군사 기밀을 알아오라고 시킨다.
결혼식 전날 아이다가 라다메스에게 도망가자고 말하며, 군대를 피할 수 있는 경로를 이야기 해준다. 그때 아모나스로가 나타나자 라다메스는 자신이 조국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 사람이 도망가려고 하지만 신전에서 나오는 암네리스와 마주친다. 반역죄로 체포된 라다메스에게 암네리스는 아이다를 포기하면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결국 라다메스는 돌무덤에 생매장되는 형벌을 받게 된다. 무덤 속에서 그는 도망간 줄 알았던 아이다를 만나다. 아이다는 라다메스가 사형당할 것을 미리 알고 돌무덤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무덤 속에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그 어떤 어둠과 비극도 스며들 수 없을 것 같은 장면을 화려한 개선 행진대신 무사들의 칼춤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장식했다. 언뜻 보기에 막부시대 일본 사무라이 군복처럼 보이는 정체성이 불분명한 옷을 입고 장검을 든 무용수들이 보기에도 살벌한 동작으로 계속해서 춤을 췄고, 그들의 머리 위로는 피벅벅의 시체들이 날카로운 창과 함께 밧줄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 어디에서도 승리의 도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쟁과 정복의 역사의 뒤로 얼마나 많은 패배자들의 피눈물이 흘렸는지,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이 이루어졌다.
전형적인 <아이다>가 빛과 어둠이 절반씩 공존하다면 <아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둠과 우울, 그리고 비극이 장악하는 세계다. 이러한 어둠은 시작에서부터 이미 충분한 예견이 가능했다.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그 앞에 등 뒤로 포박당한 채 고통스럽게 앉아 있는 노예의 모습은 저 위대한 건축물이 정복자의 잔인함과 혹독한 육체노동의 결과물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1막의 마지막에 시체들로부터 출전 명령을 받기 전, 사원 안에서 펼쳐지는 제사에서는 잔인한 고대 인신봉양이 재연되었다. 가슴을 드러낸 여사 제들이 거의 다 벗다시피 한 남성들의 육체와 엉겨 있다가 그들의 심장을 도려내고, 남성들의 가슴으로부터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못해 역겹기까지 했다. 인종정화와 육체도륙의 행위가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묘사되면서 언제나처럼 살색 스타킹만 입고 암네리스의 침실에서 춤을 추는 무희들의 행각은 라다메스에 대한 암네리스의 사랑이 순수하지 못한 것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모두가 주목하고 찬양하는 화려한 정복의 업적 뒤로는 피정복자의 수모와 고통이 가려져 있다. 오페라도 그것이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음지와 양지의 대조가 더욱 두르러지는 것이다. 어둠의 슬픔은 대부분 승자와 빛나는 웃음에 외면당하게 마련인 오페라 <아이다>의 주제는 '비극'으로 폐자 아이다와 그녀를 사랑한 죄로 순장당하는 라다메스의 처참한 결말이 주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