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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정유사 경영실적이 악화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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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사 경영실적이 악화된 까닭은?

이정선 |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정유사들의 3분기 실적발표 시즌이었던 지난 10월경. 기사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한 정유사 홍보실 직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아침 조간기사에 실적 결과가 반영되느냐”는 것이었다. 마침 그날 오전 실적을 공시했던 이 업체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전체 매출규모나 전년 동기와 비교할 때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지면사정이 빡빡한데다, 금융위기가 채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가급적 기업들의 기(氣)를 위축시킬 필요가 없다는 편집부의 판단에 따라 해당 업체의 실적기사는 신문에 게재하지 않기로 결정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따지고 보면 비중이 높은 기사도 아니었다.

“기사가 빠질 것 같다”는 기자의 답변을 듣고 돌아온 답은 실로 의외였다. “웬만하면 기사를 실어줄 수 없겠느냐”는 것. 주주나 주가 등을 의식해 기왕이면 ‘장밋빛 기사’를 요구하기 마련인 기업 홍보실의 본분(?)을 망각한 돌출발언에 기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홍보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럴 만도 하다. 휘발유 값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데 대해 정유사들이 폭리를 취한다는 소비자들의 의구심이 좀처럼 가시지 않으니 차라리 치부(?)를 적극적으로 들춰낼망정 실상을 제대로 알려달라는 주문이었다. 여기에 친서민 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정부는 정유사 공급가격과 주유소 판매가격을 공개하거나 주유소 가격 담합조사에 착수하는 등 은근히 정유사들을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악화된 실적을 적극 홍보해달라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연출되는 배경이다.

최근 정유사들의 실적은 실제로도 악화일로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에너지의 경우를 보자. 이 회사는 3분기 매출 9조1201억원, 영업이익 82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의 매출 14조3162억원, 영업이익 7330억원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진 것.

외형도 그렇지만 내용은 더 좋지 않다. 주력사업 부문인 석유정제부문의 경우 5조7992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영업이익은 무려 1957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탓이다. 그나마 ‘부업’이랄 수 있는 비주력사업인 석유화학부문(1737억원)과 윤활유 부문(455억원) 등의 영업이익에 힘입어 전체 영업이익이 겨우 흑자를 기록한 셈이다. 석유정제부문만을 놓고 보면, 결국 휘발유나 경유를 팔아서 엄청난 적자를 봤다는 얘기다.

GS칼텍스의 사정도 비슷하다. 3분기 매출은 7조1807억원. 영업이익은 146억원에 그쳤다. 작년 3분기의 매출(10조3505억원), 영업이익(688억원)과 비교하면 실적이 나빠졌다. GS칼텍스 역시 올해 3분기 석유정제부문의 영업이익은 -1473억원, 석유화학부문의 영업이익은 1619억원으로 주업과 부업의 역전현상이 두드러졌다.

손실 폭의 차이만 있을 뿐 이는 지난 2분기부터 이미 시작된 현상이다. 주력사업인 석유정제부문에서 손실을 입고,‘부업’인 석유화학부문으로 적자를 메우는 ‘주객전도(主客顚倒)’ 구조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그나마 이들 두 회사는 석유화학부문 비중이 전체 매출 대비 20~30% 정도여서 전체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하진 않았다. 석유화학 비중이 10%도 채 되지 않는 에쓰오일이나 현대오일뱅크는 각각 705억원, 505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에 따라 이들 회사는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석유화학사업 비중을 늘리고 있다. 예컨대 에쓰오일은 파라자일렌과 벤젠 등의 생산규모를 늘리기 위해 울산 온산공장에 1조4000억원을 투자해 설비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일본 코스모석유와 합작법인을 설립해 파라자일렌 및 벤젠 생산규모를 기존 대비 3배인 140만t으로 늘리기 위한 설비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정유사들이 석유정제사업에서 이처럼 엄청난 손실을 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정제마진 악화를 꼽을 수 있다.
싱가포르 현물시장 기준으로 휘발유 단순(1차) 정제마진은 작년 4월 배럴당 -1.42달러에서 지난 10월에는 -4.31달러까지 떨어졌다. 원유 1배럴을 정제해 석유제품을 만들 때마다 4.31달러씩 손해를 본다는 얘기다.
정제마진이 맥을 못 추는 이유는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은 제자리인데 원유 값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원료와 제품가격간의 차이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는 것이다.

원유를 해외에서 들여와 휘발유 경유 등을 생산하는 정유사는 원유와 제품(휘발유, 경유) 가격차가 클수록 이득을 보게 돼 있다. 영업이익 실적이 좋았던 작년 상반기에는 원유와 휘발유 가격 차이가 배럴당 15~20달러까지 벌어졌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 등으로 휘발유 소비가 줄면서 올 들어 가격차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A정유사 관계자는 “올 들어 원유가격은 향후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차익을 극대화하려는 글로벌 투기세력이 몰리면서 상승폭이 컸지만, 정작 휘발유와 같은 석유제품은 아직 실수요가 받쳐주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원유와 석유제품 가격차가 갈수록 좁혀지면서 정유사들의 마진이 줄어들거나 손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4분기 들어서도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지는 추세다. 지난 9월 6달러대였던 가격차는 지난 10월 들어 3달러 밑으로 떨어진 뒤 지난 11월(둘째주 기준)에도 2달러대에 머물렀다. B정유사 관계자는 “원유 수송과 정제설비 가동, 제품 유통에 드는 비용을 감안할 때 현재의 가격구조로는 이익을 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동안 단순정제 손실을 상쇄하던 고도화설비의 2차(값싼 벙커C유를 휘발유 등 경질유로 바꾸는 것) 정제마진도 지난 3월 이후 마이너스로 돌아선 뒤 지난 10월에는 배럴당 -3.55달러까지 하락, 정유업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정유사들이 보통 원유를 석유제품으로 정제할 때 남는 정제마진 폭이 줄어든 이후 원유보다 저렴한 벙커C유를 정제해 남는 정제마진을 주요 수익원으로 삼아왔지만 이마저도 통하지 않은 시기로 접어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SK에너지는 최근 인천공항에 지으려던 고도화설비인 중질유 분해시설(HCC)의 완공시점을 당초 계획인 2011년에서 2016년으로 연기했다.

본업인 석유정제사업에서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는 정유사들은 휘발유 값이 오를 때마다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는 소비자나 정부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디기 힘들다고 항변한다. 더욱이 기름 값의 상당수가 정유사들의 공급가격(원유 값+유통비용+마진) 외에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잘 모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 가격의 50% 이상은 유류세, 부가가치세 등 세금이다. 예컨대 지난 8월의 경우 국내 평균 휘발유 값은 리터당 1670.7원이었다. 이중 정유사들의 공급가(세전기준)는 703.6원이고 나머지는 유류세(890.9원), 유통비용(76.2원)이었다. 국내 휘발유의 세금 비중은 리터당 평균 55.2%로 우리나라와 사정이 비슷한 상황의 일본 47.7%, 미국 15.4%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물론 유럽의 세금비중은 더 높지만 동등비교는 어렵다. 전통적으로 환경문제에 민감한 유럽은 석유연료에 대한 사용을 억제하기 위해 세금을 강하게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제유가가 내려도 환율차이로 인해 내린 폭 만큼 휘발유 값에 바로 반영되지 않을 때도 적지 않다. 정유업계 전문가들은 “현재 정유사들의 수익구조를 파악하면 과도한 이윤을 취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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