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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석유제품 수출액, 원유수입액의 절반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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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제품 수출액, 원유수입액의 절반을 넘다

서한기 | 연합뉴스 기자

지난 1분기 경영성적표를 받아든 정유사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정유 업계 안팎에서 일찌감치 1분기 실적이 호조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잇달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좋게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기대 이상의 실적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스스로의 힘과 땀으로 이룬 결실에 한편으로 자랑스러우면서도, 백일몽으로 끝나지 않을까 경계하며 허리띠를 다시 졸라맸다.

실제로 지난 1분기 정유업계의 경영실적은, 말 그대로 ‘어닝 서프라이즈’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정유사가 입이 귀에 걸릴 만큼의 실적을 올렸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세계 수요가 급감하면서 많은 업종이 수출위축에 시달리는 속에서 거둔 성과여서 더 빛났다.

SK에너지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올해 1분기에 매출은 14.2% 하락한 8조1천53억 원에 그쳤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무려 61.8% 증가한 6천458억 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은 환차손(3천773억 원)에 따른 영업외손실 탓에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슷한 수준인 2천470억 원을 나타냈다.

SK에너지가 이처럼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보인 데는 석유제품의 수출증가가 큰 구실을 했다.

수출 물량이 늘면서 1분기 사상 최고 수준의 수출실적을 올렸다. 총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 1분기의 51%에서 58%로 7%포인트나 높아졌다.

GS칼텍스도 마찬가지다. GS칼텍스는 올해 1분기 매출 5조2천408억 원, 영업이익 3천87억 원, 당기순이익 1천781억 원 등의 경영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견줘 매출은 국제 원유가격 하락과 이에 따른 석유제품가격 하락의 영향으로 26% 감소했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석유화학 시황 호전 덕분에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7% 증가했다. 특히 석유제품 정제마진이 좋아진데 힘입어 2008년 4분기와 비교해 흑자 전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당기순이익도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흑자로 돌아섰다

에쓰오일(S-OIL) 역시 기대 밖의 성과를 보였다. 올해 1분기 매출액 3조7천744억 원, 영업이익 4천14억 원, 세전이익 2천187억 원 등 경영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매출은 22% 감소했다. 국제 유가 하락 탓이다. 하지만, 정제마진과 부분적인 재고자산 평가손실 회복으로 영업이익과 세전이익은 늘었다.

정유 업계가 우리나라의 새로운 수출엔진으로 떠올랐다. 수출 첨병으로 일선에서 맹활약하며 꺼져가는 수출 선적에 환한 등불을 밝히고 있다.

비록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 빈국이지만, 원유를 수입, 가공 처리해 만든 석유제품은 수출효자 구실을 톡톡히 하는 것이다.

석유제품 수출은 증가 일로를 걷더니 급기야 수출액이 원유 수입액을 앞지르는, 얼핏 봐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마저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내 정유 업계의 수출 경쟁력이 그 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반증하는 모습일 뿐이다.

지난 3월 원유수입액 가운데 정유사의 석유제품 수출 비중은 60% 가까이에 이르렀다. 월별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였다.

지난 3월 원유수입액은 27억973만 달러였다. 반면, 석유제품 수출액은 15억6천191만2천 달러로 원유수입액 중 석유제품 수출 비중이 57.6% 기록한 것.

올해 들어 원유수입액에서 석유제품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월 36.7%, 2월 43.8%, 3월 57.6% 등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3월 석유제품 수출액은 수출단가 하락 탓에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3% 감소했다. 그렇지만 원유수입액 중 석유제품 수출 비중은 높아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원유수입 감소에도 석유제품 수출물량이 증가한 덕분이다.

실제로 수출단가 급락으로 말미암아 석유제품 수출액은 줄었다. 하지만, 3월 석유제품 수출량은 3천32만7천 배럴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천364만1천 배럴)에 견줘 28% 증가했다.

올해 3월 석유제품 수출단가는 배럴당 51.5달러로, 지난해 3월의 배럴당 115달러와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그러나, 석유제품 수출물량은 올해 들어 1월 2천501만 배럴, 2월 2천680만 배럴, 3월 3천33만 배럴 등으로 다달이 늘었다. 이는 국내 경상수지 개선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세계 경기위축으로 조성된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석유제품 수출물량이 는 걸까.

갖가지 분석과 해석이 분분하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운도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급강하는 세계경기를 떠받치려고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연합 등 세계 각국이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등 국제공조 덕분에, 일시적으로나마 국제수요가 살아난 덕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행운으로만 돌리기에는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하는 법.

평소 쌓아놓은 숨은 기술이 어려운 시기에 빛을 발했다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사실 국내 정유사들은 일찌감치 고도화시설을 앞 다퉈 증설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왔다. 이를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석유제품의 생산량을 늘리면서 내수감소를 수출로 이겨내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 결과가 올해 1분기의 실적으로 나타난 셈.

잘 알려져 있듯, 고도화시설은 벙커C유 등 부가가치가 낮은 석유제품을 경유와 휘발유 등 고부가가치 석유제품으로 바꾸는 장치를 말한다.

원유 정제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석유제품 중에서 40%가량이 가격이 싼 고유황 벙커C유 등 중질유이다. 중질유는 황 함량이 많고 사용처가 제한돼 있다. 생산원가에도 못 미치는 탓에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본다. 수출해도 손에 남는 게 없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 휘발유와 경유 등 청정 경질유는 수출단가가 높아 채산성이 좋다. 고도화설비는 이 때문에 `지상유전'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유사들이 고도화시설 증설에 목을 매는 까닭이다.

현재 국내 정유사들의 고도화 능력은 하루 77만2천 배럴이다. 2007년 말의 68만3천 배럴과 견줘 크게 높아졌다.

실제로 고도화시설을 늘리려는 정유사들의 노력은 멈출 줄을 모른다. 증설 투자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SK에너지는 제1, 2 고도화설비에 이어 총 2조 원을 투자해 하루 7만 배럴 규모의 제3고도화설비를 지난해 6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하고 있다. SK에너지는 고도화설비를 통해 하루 17만 배럴의 고유황 벙커C유를 처리해 휘발유, 경유 등을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물량은 100% 수출된다.

SK에너지는 또 추가로 2011년 6월까지 1조5천억 원을 들여 인천공장에 하루 4만 배럴 생산 규모의 고도화 시설을 건설할 예정이다. 이러면 SK에너지의 고도화 비율은 기존 14.5%에서 17.6%로 늘어난다. 하루 생산량도 20만 배럴 이상으로 확대된다.

GS칼텍스는 2007년 10월 총 1조5천억 원을 투자해 하루 6만 배럴 규모의 제2중질유분해탈황시설을 완공했다. GS칼텍스는 현재 총 3조 원을 들여 제3중질유분해탈황시설 건설을 추진하는 등 친환경 고도화시설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도 비록 다른 정유사보다 한발 늦었지만, 정제시설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4월 중순 충남 서산시 대산 공장에서 제2 중질유분해 탈황시설(No.2 HOU) 증설공사가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안전 기원제를 열고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정제시설 고도화는 현대오일뱅크의 숙원사업이다. 이 프로젝트에 현대오일뱅크는 총 2조1천억 원을 투자한다. 현대오일뱅크는 2011년 7월 고도화 설비 증설을 마무리하고 상업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현대오일뱅크는 현재 하루 6만8천 배럴에 머물러 있는 고도화 정제능력을 하루 12만 배럴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럴 경우 현대오일뱅크의 고도화 비율은 17.4%에서 30.8%로 올라간다.

이런 시설의 고도화를 토대로 정유사들이 수출지역 다변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친 것도 수출증가에 한몫했다.

한마디로 고도화 시설과 수출촉진 노력이 물리적,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석유제품의 수출물량 증가를 이끌었다는 말이다.

국내 정유사들이 석유제품을 수출하는 곳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주로 중국이나 동남아, 일분 등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제 그 경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수출처는 작년 하반기부터 유럽과 미국, 중남미, 아프리카 등 장거리 수송 국가들로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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