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하반기 국제유가 전망
이지훈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국제유가가 심상치 않다. 2008년 7월 중순을 정점으로 폭락세를 이어가던 국제유가가 올해 들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서부텍사스産 원유(WTI油) 가격은 지난 5월 20일 배럴당 61.59달러를 기록하면서 작년 11월 10일(62.44달러) 이후 6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60달러대에 진입했다. 지난해 7월 14일 배럴당 145.49달러까지 치솟은 후 31.12달러로 거의 1/5 토막이 난 12월 22일에 비하면 2배 가까이 급등한 셈이다.
우리나라는 원유의 80% 이상을 중동에서 수입한다. 이러한 중동산 원유의 기준가격 역할을 하는 두바이유가는 5월 22일 배럴당 59.51달러를 나타내면서 작년 11월 3일(60.44달러) 이후 6개월 20일 만에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7월 4일 배럴당 140.70달러까지 상승한 후 36.45달러로 폭락했던 연말보다 63.3% 오른 것이다.
금년 들어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반전된 것은 크게 세 가지 요인이 맞물리면서 발생했다. 우선 석유의 수급상황이 다시 조금씩 타이트해지고 있는 모습이다. 작년 9월 14일 미국 3위와 4위의 투자은행이었던 메릴린치(Merrill Lynch)와 리만 브라더스(Lehman Brothers)의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실물경제가 위축되면서 세계 석유수요는 여전히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 1/4분기에도 석유수요는 하루 8,381.6만 배럴로 전분기 대비 1.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세계 석유공급은 수요보다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모습이다. 유가 급락세의 지속으로 OPEC이 지난해 9월 이후 총 하루 43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결정하면서 금년 1/4분기 석유공급은 하루 8,401.7만 배럴을 기록하면서 작년 4/4분기에 비해 2.3%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3/4분기와 4/4분기 중 각각 하루 83.2만 배럴과 100.8만 배럴에 달했던 세계 석유시장에서의 초과공급은 올해 1/4분기에는 20.1만 배럴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유가 상승세 전환의 두 번째 요인은 달러화 가치가 하락세로 돌아선 것을 들 수 있다. 작년 4월 23일 1.598달러까지 치솟았던 달러/유로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인 미국의 장기국채 등으로 자금이 몰리면서 11월 21일 1.245달러까지 급락했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미국 정부의 막대한 구제금융 투입 등으로 재정적자가 누적되고 있는데다 미국의 장기국채에 대한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달러/유로 환율은 5월 25일 1.402달러까지 회복되었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10년물 미국 국채의 수익률은 2007년과 2008년 각각 4.47%와 3.67%를 나타냈으나, 2009년 1/4분기에는 2.74%로 하락했다. 국제유가가 대부분 달러화로 결제되기 때문에 달러화 약세는 자국통화로 표시된 석유수출국의 실질구매력을 감소시켜 이를 보전하기 위한 산유국의 고유가 정책을 견인하고, 석유수입국의 실질구매력을 증가시켜 수요확대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유가상승을 유발하게 된다.
마지막 세 번째 요인은 2007∼2008년 국제유가 급등락의 주범이었던 원유선물시장에서의 투기자금 문제가 재현되고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2007년 초 배럴당 50달러 내외를 나타냈던 국제유가는 이후 타이트한 수급상황, 달러화 약세 등이 겹쳐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전 세계 과잉유동성 자금이 금융시장에서 원유와 같은 실물시장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2008년 7월 중순 1년 반 만에 세 배 수준으로 급등했었다.
이러한 석유시장의 거품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의한 세계경제 침체에 따라 투기자금이 한꺼번에 다시 빠져나가면서 급격히 붕괴되었던 것이다. 석유 선물시장의 투기자금에 대한 대리지표로 자주 활용되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WTI유 선물 非상업용 純매수 포지션(매수 포지션과 매도 포지션의 차이, 옵션 포함) 규모는 2008년 6월 말 1억 1,485.1만 배럴까지 늘어나면서 2007년 초(2,155.4만 배럴)의 다섯 배 이상으로 급증했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선물거래의 기초자산에 대한 현물포지션이 없는 선물거래를 '비상업용(Non-commercial)'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는 헤지펀드 등의 투기거래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순매수 포지션 규모는 지난해 7월 들어 감소세로 전환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9월 들어 감소세가 가속화되면서 10월 7일에는 4,568.4만 배럴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계획 발표, 달러화 약세 등으로 비상업용 순매수 포지션 규모는 올해 들어 증가세로 돌아서면서 5월 19일에는 9,401.1만 배럴을 기록했다. 2009년 3월 18일 FRB가 3,000억 달러 규모의 장기국채 매입 등의 이른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발표한 이후 일주일 동안 14억 달러의 자금이 신규로 원유시장에 들어오는 등 올 1/4분기에만 총 180억 달러의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향후에도 국제유가의 상승세는 이어질 전망이다. 2009년 하반기 평균 국제유가는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배럴당 64.94달러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배럴당 49.06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상반기에 비해 16달러 가까이 오르면서 32.4%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러한 국제유가의 오름세 지속은 우선 하반기 중 글로벌 경기침체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석유수요가 큰 폭은 아니지만 증가세로 전환됨에 따라 수급상황이 보다 타이트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중 하루 8,308.0만 배럴로 지난해 하반기에 비해 2.5%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세계 석유수요는 하반기에는 하루 8,333.5만 배럴을 기록하면서 0.3%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해서 진행되고 있는 주요 국가들의 금리인하, 막대한 구제금융 투입 등으로 풍부해진 글로벌 유동성이 하반기에 세계경기 회복세에 따른 유가상승의 기대감에 의해 원유선물시장으로 상반기보다 빠르게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이치 뱅크(Deutsche Bank)가 1.1조 달러에 상당하는 전 세계 1,000여개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올 하반기에 대규모 자금이 원유시장에 유입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국제 원유거래의 주요 결제통화인 달러화의 가치도 상반기에 비해 약세를 나타내면서 유가상승을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