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이윤과 사회적 평가
윤 원 철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최근 국내 정유사들의 과도한 이윤에 대해 언론과 소비자단체 등에서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금년 상반기 국내 정유사의 전체 매출액이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대략 22%가 상승하여 33조 5천억원을 기록하였다. 이에 따라,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각각 1조 8천억원에 달하며 10% 이상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회에선 국내 정유사들이 공장도가격을 허위로 고시하여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주요 언론매체들은 대대적으로 국내 석유산업의 독과점구조, 정유사의 가격담합과 폭리, 소비자의 피해 등을 문제삼기도 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주유소 업계에서는 현행 상표 표시제 문제를 정유사의 강압에 의한 현대판 노비문서 정도로 폭로하기도 하였다. 항상 그러해 왔듯이,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은 기름값이 비싼 근본적인 이유를 국내 정유사들이 가격을 부풀리는 부도덕한 상행위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 아무래도 고유가와 그로 인해 급등한 국내 석유제품 소비자가격에 대한 희생양으로 국내 정유사만한 대상이 없는 듯 하다. 그런데, 이러한 정유사에 대한 문제점 지적과 폭로성 발언들이 상당 부분 오해와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되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적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분명히 국내 정유사에게도 문제점이 있지만, 일정 부분은 자본주의와 시장원리의 기본 원칙과 기업의 본질을 무시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유사의 수익구조에 대한 이해 국제 원유가격이 오르는 시기에는 제품가격의 상승폭이 원유가격의 상승폭을 앞지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반대로, 유가가 내리는 시기에는 제품가격이 유가에 비해 보다 빠르게 내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최근과 같은 유가 상승기에는 (제품판매단가에서 원유수입단가 차이로 결정되는) 정제마진이 향상되고, 유가 하락기에는 오히려 악화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국내 정유사들은 흑자를 나타낸 반면, 유가가 급등하기 바로 직전인 2000년과 2001년에는 적자를 보였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최근의 흑자구조를 살펴보면, 일반 소비자들과 직결되어 있는 정유부문보다 석유화학제품, 윤활유, 그리고 석유개발 등 비정유부문의 이익률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금년 상반기 국내 정유부문과 비정유부문 매출액 비율은 각각 82%와 18% 정도이지만, 영업이익에서는 53%와 47%로 나타나고, 순이익에서는 46%와 54%로 정유부문에 비해 비정유부문이 오히려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국제 유가는 국내 정유사들이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없고, 단지 국내 석유제품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제 유가를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타날 수 있다. 그 때마다 지금과 같은 논쟁을 계속해서 반복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내 정유사의 입장에서는 국제 유가의 변동이라는 피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위험은 정유사들의 이윤에서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요소이다. 즉, 위험이 전혀 없다면 이윤 또한 그리 크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위험이 크다면 이에 따르는 수익률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유가가 하락하는 상황으로 급변하여 언제 수익구조가 나빠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유사들은 최대한 이윤을 확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의 본질과 사회적 책임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의 본질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원칙만이 전부가 아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 내지 ‘기업가 정신’ 등을 통해 기업의 본질인 이윤 추구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사회적 책임이란게 무엇인가? 기업이 단지 주주(shareholder)의 이익을 극대화할 것이 아니라, 이해당사자(stakeholder) 즉 고객, 하청업체, 지역사회, 정부 등의 주변 사람을 모두 챙기자는 의미이다. 단순히 기업이 사회에 베푸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이미지 개선을 통해 장기적으로 보다 큰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단기적인 이윤을 낼 수 없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최근 정유사의 이윤이 불법적인 폭리가 아니라면, 지금과 같은 고유가 상황에서 고통분담 차원으로 (인위적인 가격조정을 통해) 정유사의 이윤을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시된다. 이런 논리가 성립하려면 국제 유가가 떨어져서 정유사의 수익구조가 악화되면 정부와 소비자가 나서 십시일반 정유사를 도와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리는 만무하리라 판단된다. 따라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이윤 자체를 가지고 문제를 삼을 수도 없을 것이며, 이러한 단기적인 이윤이 용납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기업 자체가 존속될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새로운 투자를 위해 단기적인 이윤을 유보한다면 이것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우리 속담에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살림살이가 넉넉해야만 비로소 남도 도와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제 국내 정유산업은 내수시장에만 목을 멜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중국과 인도의 빠른 성장에 따라 이들 국가의 정유사들과 대내외적으로 경쟁해야 하고, 한편으로 고도화 설비를 위한 막대한 투자와 해외 유전개발을 위한 재원조달을 위해 내부자금이 필요하다. 즉, 기업 본연의 투자를 위해 자금을 비축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최근 정유사가 향유하고 있는 이윤이 계속해서 지속될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국제 유가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윤이 계속된다면 시장원리에 따라 새로운 시장진입자가 국내에서든 국외에서든 나타날 것이고, 경쟁원리에 따라 차츰 이러한 이윤은 자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즉, 시장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만약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근거로 정부가 개입하거나 시민단체가 강요하여 기업의 이윤을 인위적으로 줄이고 기업의 독자적인 투자결정을 변경시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를 한번 더 생각해 볼 때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외부의 강요가 아니라 기업 자체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사항인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내 정유사의 선택최근 내수시장에서 불황이지만 다행히도 일부 품목들이 수출이 잘 되어 경상수지가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다. 국내 정유사들도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으로, 고학력 실업이 최악인 현재 상황에서 그나마 정유사들이 매년 지속적으로 신입직원들을 뽑고 있다. 아무리 기업의 이윤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해외 유전개발을 위해 전세계 오지에서 세계 굴지의 메이져들과 힘겹게 경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석유산업은 여전히 과점구조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마땅히 소비자의 입장에선 가격담합과 폭리 가능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심증만으로 마치 물증이 있는 듯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비자의 주장과 경우에 따라선 감정적인 반응을 국내 정유사들이 단순히 연례행사처럼 쉽게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어쩌면 과거에 실제로 문제가 되었던 가격담합과 불공정 거래행위 사례로 인하여 소비자의 불신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국내 정유사의 과도한 이윤에 대한 논쟁은 결국 시장에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과점구조에서 전적으로 시장에 맡길 수는 없을 것이고, 일정 부분 정부가 개입할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기업의 이윤 추구를 제대로 인정하고, 자율적으로 기업이 이윤을 유보하여 투자하는 의사결정도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배려는 분명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기업경영의 글로벌 스탠더드 측면에서도 국내 정유사들이 반드시 인식해야 할 명제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정유사들이 스스로 결정할 사항이지, 결코 강요할 사항은 아니라는 점을 함께 인식하였으면 한다.
"위험이 크다면 이에 따르는 수익률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이와 함께, 유가가 하락하는 상황으로 급변하여 언제 수익구조가 나빠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유사들은 최대한 이윤을 확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도화 설비를 위한 막대한 투자와 해외 유전개발을 위한 재원조달을 위해 내부자금이 필요하다. 즉, 기업 본연의 투자를 위해 자금을 비축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최근의 흑자구조를 살펴보면, 일반 소비자들과 직결되어 있는 정유부문보다 석유화학제품, 윤활유, 그리고 석유개발 등 비정유부문의 이익률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