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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론]에너지기본법 제정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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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론>

에너지기본법 제정에서부터 풀어나가자

문영석_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정책연구부장

국제유가의 급등, 기후변화협약의 발효, 국가 간 자원 확보 경쟁의 격화, 원전수거물 처리장의 입지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 등 최근 들어 에너지문제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에너지정책 추진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각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에너지정책 환경은 급변하고 있음에도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범정부차원의 에너지정책 추진체계가 미흡한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에너지기본법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은 에너지를 둘러싼 이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법률로 반영되는 단적인 예가 되겠다. 에너지관련 시민단체가 앞장서서 법안을 성안하여 의원 입법형태로 제정을 추진하였고, 정부도 입법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별도의 정부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였다. 찾아보기 힘든 입법 추진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임시국회에서는 에너지기본법의 통과가 미루어져, 다음 임시국회나 정기국회에서 다시 심의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국회 공청회에서 법안을 제기한 양측은 (산업자원부와 에너지시민연대) 각기 제출한 법안의 타당성을 설명하였고, 이후의 협의 과정에서 합의점을 찾고자 하였지만 이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동안 법안 준비 및 시민단체외의 협의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아쉬움을 써 보겠다. 이는 앞으로 에너지기본법의 제정과정이 보다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기본법이 필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되면서 민간부문이 에너지정책의 수립과정에 참여하려는 욕구가 점차 높아지고, 이에 따라 민주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에너지정책 수립체계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국제에너지시장의 불안에 따른 고유가시대를 맞이해 국가 간 자원 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우리나라도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에너지정책 추진체계의 정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에너지기본법에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라는 새로운 기구를 설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너지기본법과 같은 에너지관련 법체계를 통괄하는 상위법의 필요성에서는 양측이 모두 공감하면서도,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운영과 관련된 조항에서 이견을 보여 법통과가 지연되는 것을 보면 마치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이 주요 현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과 유사한 과정을 겪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정부와 시민단체가 각기 제안한 법안간의 차이점을 정리하여야 향후 합의안 마련이 가능할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법안이 지향하는 기본적인 방향이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기본법의 규율 대상 및 중앙정부가 소관 해야 하는 에너지정책의 역할에 대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운영과 관련된 내용이 단일안에 이르지 못하는 견해 차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두 법안 간의 공통점은 민간 에너지전문가(시민단체 추천자 5인 이상 포함)를 국가에너지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시킴으로써 에너지정책에 대한 국민적 수용성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차이점은 정부안이 관계부처 장관 및 민간전문가 등 총 30인 이내로 구성하며, 공동간사(산자부장관과 민간 위촉위원 중 1인)가 별도의 사무처 없이 관련 사무를 처리하도록 하는 반면에 의원 입법안은 관계부처 장관 및 민간전문가 등 총 20인 이내로 구성하며, 사무 처리를 위해 별도의 사무처를 두고 민간위촉 간사위원이 사무처장을 맡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부분이 쟁점이 되는 이유는, 시민단체가 추천한 민간위촉위원이 상임간사위원이 되어 사무처장이 되는 독립된 사무처를 국가에너지위원회 아래에 설치할 경우에는 에너지정책 집행부서인 산업자원부와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사무처간에 역할 분담이 분명하지 않아 정책 수립체계에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에 대해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에너지문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 도출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사무처가 필요하다는 주장과, 앞서 지적된 관련업무의 중복 및 정책혼선에 대한 우려로 별도의 사무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에너지기본법이 산적해 있는 에너지 문제의 해결에 해답이라는 보장은 없다. 모든 제도는 운영과정에서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며, 이를 이끌어내기 위해 국가에너지위원회와 에너지기본법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에너지기본법에 대해서 합의 도출이 난항을 겪고 있는 걸 보면 국가에너지위원회가 생긴다고 이런 문제가 풀릴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하지만 우리보다 성숙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들도 이와 같은 진통의 과정을 통해 성숙한 제도를 보유하게 된 것이며, 갈등을 제도의 틀 내에서 조정해 내는 관행이 축적되어 있기에 우리 보다는 훨씬 나은 형태로 이를 관리해 내고 있다고 판단된다.

에너지기본법의 제정을 위해 우리가 거쳐야하는 과정도 이러한 관행의 축적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에너지기본법의 제정과 국가에너지위원회의 설치는 바람직한 에너지정책 추진체계 수립에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다음 국회에서 에너지기본법에 대해 단일안이 마련될 수 있다면, 우리의 에너지정책 현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 시점도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더불어 강조하고 싶은 점은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에너지정책을 둘러싼 정부-민간부문간의 갈등 해소도 중요하지만, 여기에만 주목하여 에너지정책 방향이 정해져서는 장기적으로 우리의 에너지수급구조를 더욱 취약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에너지기본법 준비과정에서 느낀 에너지정책에 대한 시민단체 대표들의 지나친 참여 욕구나 정부 에너지 정책에 대한 불신감이 우리나라 에너지정책의 효율적 추진에 역작용을 할 가능성을 경계하게 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국내 현안에 대한 합의점 도출 노력과 함께 대외정책과 연계된 장기 에너지정책 방향이 동시에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에너지기본법 및 국가에너지위원회가 반석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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