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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론]한국계 석유 메이저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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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석유 메이저를 만들자
 
-고유가 시대의 대응방안-

글·김태유|서울대학교 기술정책 대학원과정 교수(경제학)

국내 경기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국제 유가의 급상승은 우리 경제에 더욱 큰 짐을 지우고 있다. 90년대 WTI 기준으로 배럴당 20$ 전후 수준이었던 국제 유가는 2000년대 들어와 지속적인 상승 추세를 보이더니 급기야 올해 10월 한때 배럴당 50$를 돌파하는 수준에 까지 이르렀다. 지난 1, 2차 석유 위기 (Oil Shock 1973, 1979) 6일 전쟁이나 이란 혁명 같은 석유 공급 불안에서 초래되었지만, 이번 유가상승이 공급 부문의 문제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들 특히 중국의 급격한 수요증가로 인하여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현재의 고유가는 지난 석유 위기처럼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저유가 시대가 막을 내리고 본격적인 고유가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나라는 8,90년대 소위 3저 현상의 하나인 저유가로 말미암아 경제성장에 많은 해택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사회와 산업이 저유가에 길들여짐에 따라 고유가 시대에 대한 대비에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1993년 동력자원부가 상공부와 통합된 후 현재 산업자원부의 1개실에 불과한 자원정책실에서 국가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 여론이나, 언론들도 유가가 잠시 오를 때만 목소리를 높이지, 유가가 다시 하락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지곤 한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고유가시대를 맞이하여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국가적 차원의 장기 에너지 전략을 마련해야 할 절박한 시점에 도달하였다.

세계 강대국들은 에너지 확보를 국가정책 및 국제 관계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에너지 정책과 관련된 체니보고서 (National Energy Policy)가 이라크 전쟁을 포함한 국제 질서 재편의 이론적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러시아 극동 지역 송유관 노선을 중국으로 가는 기존의 앙가르스크 - 대경 라인에서 일본으로 오는 앙가르스크 - 나홋가 라인으로 변경하는데 모든 외교적 역량을 투입하여 성공한 바 있다. 러시아의 경우에도 최근 1964년부터 해묵은 국경 분쟁의 대상이 되어왔으며, 러시아가 실제 점유하고 있는 타라바로프섬과 우수리스크 섬 일부의 337km2 나 되는 영토를 중국에 양보하면서 까지 시베리아 송유관과 가스관에 대한 중국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이렇게 에너지 문제는 단순한 경제적 차원이 아닌 국가 안보(安保) 및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경제 원리상 특정 재화의 가격이 상승할 때 그에 대한 대책은, 사용을 줄이던가, 대체재를 활용하던가, 아니면 직접 생산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원리는 석유와 같은 에너지의 경우도 예외일 수 없다. 먼저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방법을 보자. 2003년 우리나라의 에너지 원단위 (TOE/GDP) 0.303으로 OECD 평균인 0.19 보다 매우 높은 수준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GDP 1만 불의 중후장대 (重厚長大)한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을 주력산업으로 하고 있어 단기적인 에너지 절약 정책은 자칫 산업경쟁력을 손상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 바이오 에너지, 풍력, 조력, 태양열 등 대체 에너지 개발에 주력하는 방법을 보자. 그러나 수십 년 내에 대체 에너지가 석유와 같은 주 에너지원을 근본적으로 대체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선진국의 경우 지금까지 막대한 비용을 대체 에너지 개발에 투자하였으나 대체에너지의 비율은 5% 정도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따라서 이제 해외 에너지 자원의 국산화, 즉 해외 유전 자주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고유가시대에 대비한 최선의 정책대안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는 미약하나마 해외 자원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의 역량을 모아 제도적 지원과 집중 투자에 나선다면 단기간 내에 상당수준의 해외 유전의 확보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의 석유 자급율은 약 3% 정도 수준으로 프랑스의 77%, 독일의 22% 수준은 물론 일본의 11.3% 수준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KNOC SK() 등 다수 민간 기업들이 석유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소규모 지분참여형태이며 전체 투자 규모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기업의 생산량 규모는 2만에서 2 5 B/D 수준으로 국제 메이저 (Global Major) 석유회사의 평균 300 B/D 수준은 물론이고 지역 메이저(Regional Major)의 평균 30 B/D 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또한 유전개발의 기술력과 Know-how를 축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한국계 석유 메이저를 육성하는 것이다. 생산규모가 최소 20 B/D에서 40 B/D 수준이고, 탐사, 개발, 생산 및 경제성 분석 등에 대한 독자 수행 능력을 보유하며, 석유개발 (E&P)과 석유정제 (R&M) 및 석유화학 (Petrochemical) 부문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수직 일관 체제를 갖춘 대형 기업이 되어야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고 지속적인 석유확보도 가능할 것이다.

일본의 경우 과거 국영 JNOC를 통해 해외 석유 개발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2002 7 JNOC 해체 관련 법률을 공포하여 JNOC 해체와 매각을 통해 민간주도의 중핵적 기업을 육성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문제는 석유 메이저를 육성하기 위한 투자 재원을 과연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이다. 실제로 석유자급률 15%를 달성하기 위한 30 B/D 수준의 생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약 100$ 이상의 막대한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20년간의 정부 지원 10$와 총 투자액 45$에 비교해 보아도 엄청나게 큰 금액이다. 따라서 정부의 에너지특별회계 중 석유개발 투자를 확대하거나, 새로운 석유개발 기금을 조성하여 이러한 재원을 확보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경제 상황에서 획기적 재정 지원 확대는 정부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며, 설사 정부 투자 확대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는 기대하는 수준의 투자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재정 투자 확대에 추가하여 민간자본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많은 국내의 기업들이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사내 유보금이 쌓여 가고, 민간의 부동자금이 투자처를 찾아 떠돌고 있는 이때, 민간 정유사, 해외자원개발 기업, 그 밖의 중견기업 및 개인의 부동 자금을 해외석유개발 사업에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할 것이다.

민간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에너지 부문에 대한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완화할 것을 검토해야 하며, 민간에너지 기업에 대한 외국 투기자본의 적대적 M&A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또한 중견기업과 개인의 부동자금이 해외 석유 개발에 적극 투자될 수 있도록 공모 주식형 민간 에너지 펀드 (Energy Fund)를 조성하는 것을 신중히 검토해 보아야 한다. 현재 주식과 부동산 등 기존의 대표적인 금융투자 상품들의 저조한 투자 수익률과 경기침체에 따른 유망 투자처 상실 등에 따라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돈이 40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시중부동자금에게는 해외유전개발에 대한 투자는 상당히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시장을 교란하지 않는 선에서 여신, 금융에 관한 법률을 개정 하는 등 에너지 펀드 조성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대기업과 중견기업, 개인의 자금을 한데 묶은 다양한 형태의 에너지 펀드를 조성한다면, 투자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석유 자원의 안정적 지속적 확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유가 시대가 우리에게 위기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는 선진국도 있고,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는 선진국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선진국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오늘 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만 나간다면, 대한민국이 21세기 선진국으로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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