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되는 에너지위기와 대응방안
글·김동엽|경희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언론은 연일 요즘 상황을 1970년대의 오일쇼크에 비교하면서 ‘에너지위기’를 부각시키고 있다. 4년 전에는 저유가의 지속으로 인해 여러 우려가 제기된 적이 있었다. 당시 영국의 경제전문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저유가가 지속되어 제3차 오일쇼크의 가능성이 있으며, 중동발 국제금융위기가 우려되고, 이는 세계적 디플레이션을 확산하며 지구온난화의 심화 등의 부작용을 몰고 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석유가의 급등으로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다면 4년 전 저유가 현상에 기초한 여러 경제 예측들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인가? 아니다. 석유가격 결정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음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석유시장을 지배하는 경제와 정치 양축에서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수급 구조가 바뀌고 있다. 정치적인 측면은 이라크전쟁 이후 중동지역 정세불안정으로 국제 에너지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감산(減産)을 무기로 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전략적 결속 강화, 9·11테러 이후 중동을 둘러싼 이해관계 변화,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소위 BRICs의 고속 성장 등 수급면에서의 새 변수들이 출현하면서 1980년대 중반 이후 20여년간 지속된 저유가 체제가 붕괴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는 한번 사용하면 다시 재생이 불가능한 재생 불가능 자원이다. 따라서 석유소비에 따른 기회비용(자원경제학 용어로 한계사용자 비용)이 요구된다. 고갈성 자원은 희소성 때문에 미래사용을 위해 묻어두면 이에 따른 보상가치가 따르게 된다. 지난 1986년 이후의 1990년대 후반까지의 저유가시대는 생산국들 특히 OPEC국 멤버들의 이해관계가 매장량에 따라 달라 결속력이 부족하여 한계사용자비용을 요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의 재정이 고갈되어 채무국으로 전환되고 석유의 실질가격이 낮다는 인식이 OPEC 멤버들 사이에 확산되어 감산 및 고유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일치하여 OPEC의 결속력이 강화되고 있다.
또한 이라크는 확인된 매장량만 1,125억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의 매장량을 갖고 있다. 만약 이라크에 친서방정권이 들어설 경우 석유값이 안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 앞날을 점칠 수 없는 상태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세도 불안하다. 석유값을 안정시켜주는 대가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왕정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미국의 시각이 9·11테러 이후 바뀌고 있다. 중동 정세가 악화될 경우 국제 석유시장은 더욱 불안해 질 것이다.
수요측면에서 보면 세계경제의 동반회복 현상을 들 수 있다. 미국경제가 이미 본격적인 회복국면에 진입하고 있으며, 일본경제도 1990년 이래 장기불황에서 탈출하여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유럽경제도 회복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중국경제의 급성장은 석유소비의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빠른 경제성장과 올림픽 관련 인프라 확충 등으로 석유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석유가격 상승을 유발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달러화 약세를 들 수 있다. 석유수출국들은 달러약세로 인한 수입(收入) 감소를 보전하기 위하여 수출가격을 인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달러화가 약세로 반전되기 시작한 2002년 초반 이후 석유가격은 상승세로 반전된 바 있다. 이러한 수요요인들로 인한 석유가격의 급등은 회복중인 세계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 우려된다.
반면 공급측면을 보면, 과거 2년 동안 달러 가치의 지속적 하락 및 1986년 이후의 저유가체제는 석유개발 및 정제시설에 대한 투자부진으로 석유감산의 원인이 되어 왔다. 세계 석유시장은 달러로 결제되기 때문에 달러가치가 하락하면 석유수출국은 收入이 감소되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수출가격을 인상하려는 유인이 있다. 특히 저유가의 지속으로 석유개발 및 정제시설에 대한 투자가 부진하여 당분간 더 이상의 석유공급능력이 제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석유생산은 적어도 6년 이상의 기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의 에너지 부족이 1970년대에 있었던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같은 위기상황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다. 조만간 선진국의 경기나 중국의 성장세가 진정되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고, 고유가로 대체연료 개발에 대한 투자가 증가되고, 에너지효율 향상이 과거보다 쉬워졌으며, 선진국의 석유의존도가 낮아진데다, 1970년대의 두 차례 오일쇼크 경험으로 OPEC와 석유수입국 모두 원유가격 안정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자원다소비형 성장이 예상되는 거대 개도국인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이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미국 및 선진강국의 저유가체제의 거부감( 중동발 국제금융위기 가능성, 지구온난화 심화가능성, 제3차 오일쇼크의 가능성) 때문에 적어도 당분간은 그 하락세는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석유시장의 수요변화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는 중국의 에너지시장의 구조를 살펴보자.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자료에 의하면 중국은 2003년부터 일본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유 소비국이 됐다. 하루 약 550만 배럴을 소비하는 중국의 2003년 석유수요 증가율은 세계 전체 증가율(1.9%)의 5배 이상인 11%였다. 특히 올해는 석유소비량이 620만 배럴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2004년도 1분기 하루 세계석유수요 증가량은 200만 배럴인데 이중 50%에 해당하는 100만 배럴이 중국의 수요증가이다. 이에 반하여 중국의 석유공급은 증가할 것 같지 않다. 2003년에는 하루 341만 배럴에 불과하였다. 석유교역에서도 2002년 중국은 하루 204만 배럴을 수입하여 전체 교역시장에서 4.68%로 미국, 일본, 한국에 이어 4위를 차지하였으나 올해에는 수입규모가 280만 배럴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정부가 경기과열을 우려해 긴축정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에너지 부문의 투자를 우선 순위로 정하고 있기 때문에 석유소비 증가는 계속될 것이다. 10년마다 경제규모를 2배 늘린다는 중국정부의 경제계획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의 GDP는 1인당 1만 달러에 도달하게 된다고 한다. 선진국의 예에 미루어 보면 통상 1인당 국민소득이 3,000~1만 달러에 이르는 기간에 석유소비가 급증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에 따른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에 의하면 2010년과 2020년에는 중국의 원유수입량은 각각 일일 약 1,918만 배럴(년간 1억 5000만톤)에서 2,877만 배럴(년간 2억톤)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정부는 석유확보를 위한 치열한 국제경쟁을 시작할 것이다. 특히 석유위기를 겪어보지 않았고 석유비축량이 7일치에 불과한 중국은 유가가 크게 오르면 민간부문이 공황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중국정부는 가격과 상관없이 필사적으로 석유 확보에 나서 가격 폭등은 물론 국제 석유시장 자체가 불안해질 수 있다.
이러한 석유위기 대처방안으로 석유소비 대국인 미국은 종합대책으로 에너지 효율제고, 자립도 향상, 공급증대, 인프라 현대화 등 전략적 차원의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책은 장기처방에 치우쳐 단기적 에너지 부족에 따른 가격상승을 누그러뜨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이 석유시장이 경제논리로만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은 석유와 에너지 문제를 경제안보 뿐만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러한 인식이 미약하다. 이제 포괄적인 국가 에너지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참여정부 등장으로 한미간 포괄적인 동맹관계가 이슈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또 과거 1차오일 쇼크 당시에 비해 한국의 하루 석유소비량이 10배 이상 커져서 미국이 한국의 에너지 안보를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다. 2003년도 한국의 석유 소비량은 세계 6위, 수입량은 세계 3위다. 하루 석유소비량이 228만 배럴로 국제 에너지 시장에 혼돈이 생기면 한국은 과거 1, 2차 오일쇼크 때보다 훨씬 큰 경제적 타격을 입게 된다.
우리정부는 에너지위기 극복을 위한 단기적인 처방으로 에너지 다소비업체에 대한 수요관리와 인센티브 등을 제공해 자발적인 에너지소비절약을 사용하고 있다. 유가가 급속히 상승해 국내 에너지수급에 차질이 예상 또는 발생하게 될 경우에는 에너지사용의 제한 또는 금지 등의 조치를 통해 에너지소비 억제를 강제로 시행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석유가 공급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6~7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2000년 중반이후 20년간의 저유가 체제로 석유개발 및 정제시설에 대한 투자부진으로 공급부진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수요증가에 의한 석유가격폭등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고유가난은 사실 세계경제에 있어 긴 악몽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적절한 수급정책과 함께, 국민의 소비행태의 인식변화, 또한 대체자원의 개발 등을 통한 다각적이고 중장기적인 대책이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꾸어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에너지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에너지소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보통의 한 가정에서 사용되는 전력, 도시가스 등 총 10만원 안팎의 에너지비용은 일반전화, 이동전화, 인터넷 전용선 등 통신비의 지출보다 적다. 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에 대해서는 저렴한 가격으로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반드시 고쳐야 한다. 에너지 공급국가의 국지적 상황에 따른 에너지위기 뿐만 아니라 소비확대로 인해 에너지위기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급자 위주의 에너지정책의 기조가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에너지 공급량 확대가 어렵다면 적극적인 수요관리로 인해 수요량을 줄이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