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경제를 위한 혈액저장, 석유비축을 만나다

글 | 이창원_한국석유공사 석유비축처 

석유 1배럴은 1.5ℓ 페트병 100개 분량이며, 12명의 사람이 1년 내내 쉬지 않고 일해야 낼 수 있는 에너지량이다. 그래서 최근 모방송사에서는 현대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석유라는 노예를 부리는 호모오일리쿠스로 명명했나보다. 인류의 화려한 번영을 이끈 석유이건만, 그 석유에 의해 세계경제가 요동을 치기도 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지난 1970년대 전 세계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극심한 경제적 충격을 경험한 바 있다. 과거부터 에너지 소비 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우리나라의 석유산업구조의 특성상 석유공급 중단 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전체 원유 중 80%이상을 중동에서 수입함으로써 석유수송에 대한 위협이 항상 내재되어 있는 것 또한 큰 문제이다.

최근의 고유가 상황이나 세계석유수급 불안, 날로 더해가는 자원민족주의, 투기자금 개입, 중동정세 불안 등 석유시장 상황은 우리나라와 같은 석유소비국들에게 더욱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우리 몸의 혈액이 부족하거나, 멈추면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되는 것처럼 석유공급 차단시 국민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석유 위기시 공급혼란을 최소화하고 국민경제의 안정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석유비축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석유비축계획 수립 및 추진현황

1979년 2차 오일쇼크의 충격으로 정부는 1980년 한국석유개발공사를 설립하고, 정부 석유비축사업을 공식적으로 추진하였다. 석유공사는 제1차 석유비축계획에서 서울시로부터 마포기지와 구리기지를 인수하고 거제, 울산, 평택기지를 건설함으로써 총 44백만배럴 규모의 비축시설을 확보하였다.

또한,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국내경제와 석유소비가 급속히 성장함에 따라 제2차 석유비축계획을 수립하여 부족한 석유비축시설을 추가로 확충하였다. 이때 2000년대 국토균형개발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 개념에 의해 지역별 제품비축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석유제품 비축은 비상시 신속하게 방출하여 석유수급을 안정시키는 장점이 있다. 이렇듯 석유비축계획은 국내경제상황 및 석유소비변화를 반영하면서 꾸준히 발전되어왔다.

특히, 2002년 4월에는 국제에너지기구(IEA)에 공식 가입함으로써 석유대소비국으로서 국제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다년간의 비축기지 관리 노하우와 안정적인 비축시스템 운영으로 많은 회원국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최근 중국, 인도, 베트남 등 후발 비축국가들은 우리나라 비축시스템에 큰 관심을 보이며 이상적인 비축모델로 설정, 국가비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비축시설 146백만배럴, 비축유 141백만배럴을 목표로 제3차 석유비축계획이 진행 중에 있다. '08년 10월 기준 9개 비축기지에 138백만배럴의 비축시설과 110백만배럴의 비축유를 확보하고 있다. 이 물량으로 우리나라 전체가 추가 석유수입 없이 약 30여일을 소비할 수 있다.

<정부비축목표 및 비축현황>

비축목표

비축현황

비축일수
(소비량기준)

비축시설

비축유

비축시설

비축유

31일

원유

제품

146

141

138

97

13

110

비축유는 현물시장에서 석유메이저, 국제트레이더 및 국내 정유사로부터 구입하며, 입찰-계약체결-선박용선-보험체결-선적-대금지급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비축기지에 입고된다. 석유시장에서 석유는 대부분 변동가격으로 거래되며, 가격은 거래시점에서 결정되지 않고 선적시점의 가격에 연동하게 된다. 비축유 구입에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위험을 헷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며, 이를 위하여 스왑, 옵션 등 다양한 금융거래기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전략비축 개념의 변화

석유비축은 보험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하여 각종 보험에 가입한다. 석유비축도 미래의 심각한 석유공급 차질에 즉각 대응하기 위하여 평시에 비축유를 꾸준히 확보, 관리하는 것이다. 실제로 1990년 걸프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시에 즉각적으로 비축유를 방출함으로써 공급혼란을 최소화하고 국민경제 안정에 기여한 바 있다.

1997년 IMF 금융위기를 겪은 후, 우리나라 경제구조는 대대적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석유비축도 기존의 정적비축(Stock) 개념에서 동적비축(Flow) 개념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즉, 전략비축유를 안정적으로 비축하면서 경제적으로 비축유 및 비축시설을 활용함으로써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는 시스템으로 변화한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국제공동비축사업 및 트레이딩사업을 추진하여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국내적으로는 비축유 및 비축시설대여를 통해 국내 석유산업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동적비축시스템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것으로 타국 비축시스템과 같은 'Cost Center'가 아닌 비축목적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Profit Center' 의 모습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하여 정부재정 부담을 경감하면서도 비축목표를 조기에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최근 석유공사는 新정부 국정과제로 선정되기도 한 동북아 오일허브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오일허브란 세계 주요 항로상에 위치한 석유의 집산지로 원유 및 석유제품의 생산/공급, 하역/저장/부가처리, 중개/거래 등 석유물류주체(정유사, 트레이더, 탱크터미널 사업자 등)들의 물류활동 중심거점을 의미한다. 동북아지역이 세계석유소비시장의 중심지로 부상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강점과 비교우위의 인프라를 이용하여, 동북아 석유물류의 중심 거점으로 추진된다. 여수기지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 사업은 석유산업의 신성장동력으로서 물류, 금융 등 연관사업의 발전을 야기하고, 대규모 석유제품을 국내에 저장함으로써 국내수급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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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석유비축시스템 구축

유조선에 저장되었던 비축유는 선박접안시설(제티 또는 브이)로부터 송유관을 통해 비축기지로 입고된다. 석유비축기지 입출하시설 및 저장시설의 운전상태 점검을 위하여 자동제어시스템이 24시간 작동하며, 정상 운전범위 이탈 등 비상상황 발생시 경고음 발생 및 자동정지 등의 안전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석유를 비축하는 방법은 지상탱크에 저장하는 방법과 지하동굴에 저장하는 방법의 두 가지가 있다. 지하저장시설은 지하암반을 굴착하여 만들어진 공동 안에 석유를 비축하는 것으로 반영구적이며, 유지관리비가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장점이 있다. 지상저장탱크는 건설기간이 장기간 소요되는 지하동굴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경제적 운영이 가능하다.

지상저장탱크는 철판 용접 탱크로서 지붕형태에 따라 CRT(Cone Roof Tank), FRT(Floating Roof Tank), IFRT(Internal Floating Roof Tank)로 구분된다. CRT는 등유 및 경유저장에 많이 사용되며 가장 일반적인 탱크형태이며, FRT는 저장 유위에 따라 탱크지붕이 부상되는 형태로 원유를 주로 저장한다. IFRT는 CRT와 기본형태는 유사하나, 비축유의 자연감모를 줄이기 위해부에 부상지붕이 하나 더 있어 휘발성분이 강한 휘발유 등의 저장에 사용된다. 이외에도 상온, 상압에서 기체인 LPG 같은 유종을 가압하여 액체로 저장하는 구형저장탱크(Ball Tank), 횡형저장탱크(Horizontal Pressure Vessel) 등이 있다.

지하저장은 기름은 물보다 가볍고 물과 혼합되지 않는 기본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지하저장시설은 해수면 기준으로 지하 30~60m 아래에 건설되며, 지하 암반내의 지하수 압력으로 기름과 가스의 누출을 방지하도록 되어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80년대부터 지하저장시설을 활용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여수, 거제, 평택 등에서 세계 최대규모로 건설․운영되고 있다.

지하저장시설의 경우 입지 및 지질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원유는 560만배럴, 제품은 240만배럴 이상 대규모 저장시 보다 경제적이다. 

[지상탱크 저장시설]

[지하공동 저장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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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비축 기지에는 유사시의 화재에 대비한 각종 감지기와 완벽한 소방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위험한 사태가 발생할 징후가 있으면, 사전에 제반 모든 시설이 자동으로 긴급 정지되며, 만의 하나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가스계 소화설비, 폼설비, 물분무 설비, 냉각수 살수 설비, 소화전 및 자체 보유 소방차로 조기 진화가 가능하다. 또한 탱크 파손에 대비하여 2단계의 방유제(둑)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어, 비축기지 밖으로의 유류 누출을 막는다.

지금까지 25년 이상 운영한 석유비축 기지에서 환경오염사고는 단 1건도 없었다. 비축기지에서는 환경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비축기지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은 고도의 수처리 설비에 의하여 5단계 정화과정을 거쳐 청정지역 기준(BOD 40ppm)의 1/5 수준으로 강화하여 정화 처리하여 배출함으로써 기지 주변 환경보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렇듯 9개 전기지의 무사고-무재해 달성과 대규모 비축시설과 비축유의 성공적인 관리는 토목, 기계, 전기, 항무 등 다양한 분야의 숙련된 전문가들의 땀방울에 있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신속한 비축유 방출을 위한 비상준비태세는 오늘도 유지되고 있다. 끊임없는 공법 및 시설개선, 자율적인 경영혁신 추진으로 세계 최고의 석유비축시스템은 앞으로 더욱 발전해 나갈 것이다.

 

맺음말

우리나라는 세계 석유수입 5위, 석유소비 7위의 석유대소비국이다. 하루에 200만배럴이 넘는 석유를 소비한다. 일주일치면 서울 상암월드컵 주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석유는 가정용, 산업용, 수송용뿐 아니라, 농업, 공업 등 모든 산업을 뒷받침하는 화학산업의 원료로 쓰인다. 수입식품, 석유화학제품 등 생활 전 분야에 걸쳐 사용되기 때문에 석유공급 차질시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석유현실은 석유자급율 4%, 석유의존도 44%, 중동의존도 82%, 연간 석유수입비용 1000억$로 대변된다. 이렇게 열악한 상황 속에서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충분한 양의 석유비축은 국제적으로는 석유위기에 대응하고 국내적으로는 석유수급 안정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다. 적극적인 석유확보 노력, 안정적인 비축기지 관리, 운영만이 세계적인 석유위기로부터 우리 국민과 경제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