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시대,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 개발해야

글 | 강용석_국회의원 한나라당 마포을, 지식경제위원회

image올 한 해 전 세계는 1, 2차 오일쇼크에 비견될 만한 고유가 사태에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140불을 넘나드는 유가의 고공행진은 고스란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서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왔다. 특히 경유 값이 휘발유 값을 넘어서는 역전현상은 산업계 전체를 크게 위축시켰다. 정부로서도 두 손 놓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각종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고, 국제 유가도 서서히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우리 경제는 아직도 수렁을 빠져나오고 있지 못하다. 물론, 미국발 전 세계적 금융위기 사태도 우리 경제 침체의 큰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만, 갈수록 급변하는 국제유가에 취약한 우리 산업 구조도 그에 못지않은 큰 원인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갈수록 심화되는 자원 고갈의 시대를 맞이하며 우리 산업구조도 유가변동이라는 변수에 면역력이 강한 구조로 체질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국제유가가 자고 일어나면 천정부지로 치솟던 지난 3월, 정부는 국무회의 석상에서 논의된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중심으로 실천계획을 추진했으며, 그 일환으로 지식경제부는 석유제품 선물상장, 석유수입사 비축의무 완화, 정유사 가격공개 주기 단축, 석유제품 수평거래 허용 등 석유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이의 목적은 물가안정과 가격인하 등 서민생활 안정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 세부 내용에 대해 충분한 검토 없이 성과에만 급급하여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정책을 내놓으면서 실제 물가안정에는 효과가 없고 오히려 시장 혼란을 야기하는 결과물을 산출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표적인 사례를 몇 가지 예로 들어 되짚어 보자.

첫째, 지식경제부는 주유소간 가격경쟁을 유발하여 석유제품 소매가격의 인하 여력을 조성하여 일반 소비자들이 실질적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주유소 판매가격을 실시간으로 수집, 공개하는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Opinet, 오피넷)’을 인터넷상에 개설했다. 많은 국민들이 오피넷의 등장으로 값 싼 석유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 가운데 오피넷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피넷 개설 초기인 올 4월에는 172만 명에 육박했던 방문자가 불과 2개월 후인 6월에는 75만 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석유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주유소 가격공개가 인근 지역 가격을 상향평준화하는 담합의 신호로 작용, 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오피넷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계량화 된 자료도 없고,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된 사례도 없다. 오히려 오피넷을 모방한 사설 주유가격 비교 사이트들이 개설되어 불확실한 주유가격 정보를 제공하면서 회원을 모집해 카드, 증권, 대출사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수익을 챙기는 등의 폐단이 발생하고 있다.

둘째, 지식경제부는 국내 석유제품 가격 인하를 위해 석유 선물거래 시스템을 마련하고 석유제품을 선물시장에 상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과거의 여러 사례나 외국의 사례를 비춰볼 때 순기능보다 역기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석유제품 선물시장에 투기세력의 자본이 유입할 경우, 석유제품 가격이 극도로 불안정해지고 폭등의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실제, 유가 대란의 원인이 투기자본의 유입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게다가 석유제품은 필수재이기 때문에 가격이 폭등할 경우 서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셋째, 지식경제부는 석유제품 수입을 확대해서 국내 정유사의 석유제품과 경쟁을 유발하여 석유제품 내수가격을 인하하고자 수입사들의 석유제품 비축의무일수를 40일에서 30일로 단축하고, 석유제품 수입업자 등록요건도 완화시켰다. 기획재정부도 이미 석유제품 할당관세를 3%에서 1%로 인하하였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는 석유제품 수입이 거의 늘어나고 있지 않다. 정유사들이 내수시장에 내놓는 석유제품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수입 석유제품이 내수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비축의무일수를 줄여주고 등록요건을 완화시켜 준다고 해도 가격경쟁력이 없다면 수입사들이 생길 리도 만무하거니와, 애당초 정유사 석유제품과의 경쟁을 유발해 가격 인하 효과를 노린다는 목표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더구나, 어느 업계에서 완제품보다 비싼 관세를 물리며 원자재를 수입해서 생산을 하고 있는가? 현실성 없는 수입 석유제품 관세 인하가 아니라, 원유 관세 인하를 통해 현실성 있는 유가 인하 여력 마련에 힘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넷째, 지식경제부는 유통시장의 경쟁 활성화를 위해 그간 금지됐던 대리점 및 주유소 간의 수평거래를 허용하기로 결정하고 법령 개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애초에 대리점 및 주유소 간의 수평거래를 금지했던 이유는 정유사와 대리점 및 주유소 간의 안정적인 계약관계에 의한 수급 및 가격의 안정, 품질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시 해당 정유사로의 책임 소재 귀결에 의한 양질의 품질 보증, 소매 단계의 거래선 제한으로 무자료 거래 차단에 의한 탈세 방지 등에 있었다. 그러나 수평거래 허용으로 수백 개의 대리점과 12,000여개의 주유소간 거래가 허용되면, 저 품질 제품 또는 유사 석유 제품 혼합 등으로 인한 품질 문제 발생 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고, 무분별한 무자료 거래 등으로 인한 탈세행위가 증가하는 등의 문제점이 예상된다.

정부가 주유소업계의 경쟁 촉진을 통한 가격인하 효과를 목표로 추진했던 상표표시제 고시폐지는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고, 동일한 경쟁촉진 및 가격인하 목적으로 정부에서 추진 중인 대형마트의 주유소 사업진출은 기존 주유소업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있다. 정부의 정책방향은 국민의 후생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최근 들어 국제유가가 60불대에서 안정을 찾고 있다. 국내 주유소 판매 가격도 하락해 휘발유가 1,400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전 세계적인 석유 대란이 진정 기미를 보이며 일단락되고 있는 듯하지만, 언제 다시 기름 값이 폭등할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럴 가능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높아져갈 것이다. 정부도 이번 유가 폭등 사태 속에서 보여줬듯이 국제유가가 이미 폭등한 이후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언 발에 오줌 누듯이 뒤늦은 미봉책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가 에너지 위기 시대에 체질적으로 면역력을 갖춘 튼튼한 경제 구조로 탈바꿈하기 위해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국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지 못하는 정책은 전시행정에 불과하다. 정부는 ‘아니면 말고 일단 해보자’ 식의 검증되지 않은 정책이 아니라,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물가 인하 방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 업계, 그리고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만들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봐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