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에 선 카페

김은숙 / 작가

벌써 몇 시간 째 연자는 연속 하품만 해대었다. 눈 가장자리에서 흐르는 물기 때문에 눈이 짓무를 지경이었다. 연자는 턱뼈가 빠지는 경우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하품 후 손가락으로 귀밑 턱을 누르고 아그 아그 하는 모양으로 입을 움직여 보기도 했다.

바깥을 내다보았지만 오늘따라 지나다니는 사람도 드물었다. 이따금 대각선으로 보이는 슈퍼로 종종 걸음을 치는 꼬마아이가 눈에 띌 뿐이었다. 슈퍼 말고는 대부분 상점은 마치 출입문에 못질을 해 놓은 것처럼 들락거리는 손님이 없었다. 직장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변두리의 오전은 항상 텅 빈 느낌이었다.

아들 딸 둘씩 두어 연자는 일찍부터 고생이었다. 아이에 대한 욕심은 연자나 남편이나 비슷했다. 연자 나이 정도의 주부라면 쇼핑이라든가 특별한 점심을 먹기 위해 외출하는 등등의 취미활동을 갖고 있었다. 연자가 원하는 취미활동은 비스듬히 누워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올드팝을 듣는 일이었다. 물론 그건 휴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었다.

아이들 분유 값이 나갈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허리를 졸라매는 생활이었다. 지금은 애들이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이니 학원비 만해도 흉년에 끼니때가 돌아오는 것보다 더 부담스러웠다. 어떤 날 아침에는 순식간에 주머니가 털려 마치 도둑맞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서랍속의 잔돈은 넉넉했다. 서랍을 닫고 시디플레이어를 누르자 부드러운 팝이 흘러 나왔다. 연자는 물건 몇 개를 꺼내어 마른 천으로 닦기 시작했다. 도금제품이나 은제품은 변색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했기 때문에 피부와 접촉 후에도 꼭 닦아주어야만 했다. 물론 변색이 되면 제품을 만든 공장에 보내어 재 도금을 한다거나 아니면 특수 약품으로 세척을 했다.

흐트러진 물건까지 정리를 하고 나서 왼쪽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기생식물처럼 나날이 번져 가는 잡티와 조각칼로 정교하게 새긴 것 같은 눈가의 주름이 곧바로 연자의 시야에 들어왔다. 연자는 마치 처음 발견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려다가 호들갑을 받아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거울속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연자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옮겨가면서 얼굴이 찌푸려졌다. 얼굴보다 더한 문제는 거울을 꽉 메운 연자의 몸이었다.

연자의 상반신은 액체처럼 출렁거리는 듯 보이는 거울 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결혼생활 십구 년에 잃은 것이 있다면 청춘일 것이요, 얻은 것이 있다면 몸의 외피와 내피 사이에 낀 두툼한 지방질이었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스물다섯이 넘으면 계속 세포가 죽어간다고 하는데 세포가 죽어서 비는 공간을 지방질이 차지하는 것 같았다. 겨울에는 지방질이 몸의 외투 구실도 했지만 여름에는 벗어 던질 수 없었으므로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지방질 제거 작업으로 필수적인 건 운동이었지만 그러기에는 가게가 너무 비좁았고 집과의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웠다.

잡념에 생기면서 절망으로 시작되는 하루였다. 연자는 뚱뚱해 보이는 게 거울 탓인 것처럼 신경질적인 표정이 되어서 마른걸레로 거울을 빡빡 소리가 나도록 문질러 닦았다.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대충 다듬고 얼굴에 파우더를 발랐다. 입술과 눈 화장까지 끝내니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그 무렵 들어 온 노인 한 쌍이 때문에 연자는 얼른 마무리를 하고 진열장 앞에 섰다. 영감은 칠십 중반 정도 되었을 것 같고 할멈이 영감보다 서너 살 아래로 보였다.
“어여 골라봐여. 돈 생각하지 말고...”
영감은 문신 때문에 눈썹이 시커먼 할멈을 보면서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주머니에 들어간 손은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할멈은 새빨간 루주가 발라진 입술을 간혹 오물 거렸다. 쥐어 짠 빨래 같은 목의 주름을 가린 얄포름한 머플러의 꽃무늬가 지나치게 요란스러웠다. 그것은 계절을 앞질러 목에 걸려 있었다.
“안 사줘도 되는디...”

할멈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무게가 많이 나가는 은팔찌를 팔목에 얹었다. 팔목이 가늘어서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걸 연자에게 채워달라더니 만족스러운지 틀니를 환히 드러내며 웃었다.
영감이 할멈에게 사준 건 은반지와 은팔찌였다. 사만 원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돈이 나오는 데는 한참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의 태도로 봐서 요즘 유행하는 노인정 커플이었다. 홀로된 영감에게는 찌개라도 끓여주고 등이라도 긁어줄 사람이 필요해서겠지만, 호락호락해 뵈는 할멈이 아니어서 자칫 헛일이 될 수도 있었다. 하긴 집에 데려다 앉히려면 할머니들도 전세 보증금부터 본인 앞으로 해 달라는 요즘 세상이고 보면 영감도 그러다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 커플이 나가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연자가 건강을 지키지 못한다면 남편도 늙어 그런 꼴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연자는 볕을 가리는 블라인드를 한쪽만 내리고 맨손체조를 했다.
오후에는 바빴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서 손님이 뜸해졌다. 연자는 하루 벌은 걸 셈해 봤다. 액세서리라 큰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었지만 마진이 좋아서 벌써 순수익이 오 만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남편에게서 좀 늦겠다는 전화를 왔기 때문에 연자는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불러내서 자장을 시켰다. 큰딸은 고3라서 저녁을 같이 먹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이들은 자장 배달이 늦자 안절부절못했다. 학원도 늦으면 벌칙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끼리 있는 집은 엉망일 테지만 청소를 하란 말도 할 수 없었다. 연자는 아이들이 입 주변에 묻은 자장을 닦기도 전에 등을 떠다밀었다. 어둑어둑한 골목길로 사라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디밀어 앉았다. 아이들과 밥 먹는 내내 숙제 얘기와 시험 얘기만 했다는 생각에 연자는 기분이 더욱 가라앉아 있었다.

타일 벽에 걸려있던 나무 시계에서 뻐꾸기가 문을 밀치고 나왔다. 건전지가 거의 소모되어 뻐꾸기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울었고 펴고 있던 날개를 한참 만에 접었다. 손목에 찬 시계가 있었기 때문에 약을 갈아 끼워야 한다면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막내인 아들이 뻐꾸기 소리를 까꿍이라는 소리로 흉내 낸 적이 있었다. 그 무렵 네 살이던 녀석이 열한 살이나 되었으니 고물이 다 된 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의 흐름은 물건만 낡게 하는 게 아니었다. 연자의 몸도 예전 같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설 때 뚝딱거리는 소리를 내는 무릎은 관절염의 시초라고 했다. 의사는 운동장 다섯 바퀴를 돌아야 한다고 했지만 연자에게는 대학 입시보다 어려운 과제였다.

의자에 앉아 무릎을 주무르던 연자는 진열장 귀퉁이를 잡고서 일어났다. 동시에 유리문이 힘차게 열리더니 키가 큰 청년이 들어왔다. 청년의 세운 앞 머리카락에 무스가 곱게 발라져 있었다. 그는 약간 웃음을 흘리면서 연자를 바라보았다.
“저... 남자가 걸을만한 목걸이 좀 보여 주세요.”

얼굴 표정과는 달리 청년의 말투는 딱딱했다. 그는 진열장 안을 쓰윽 훑더니 싯누런 도금이 된 굵은 줄의 금빛 목걸이를 가리켰다.
목걸이를 든 청년이 쩔쩔매고 있어 연자가 고리를 끼워줄 수밖에 없었다. 연자는 수평이 되도록 남자의 손을 잡아 고정시켰다. 남자의 깔끔한 목덜미를 바라보자 연자의 가슴에 파도가 밀려왔다. 스물두 살 무렵의 일이 기억의 낡은 창고에서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었다.

그 무렵 연자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고 눈동자가 까맣게 반짝거리는 처녀였다. 목이 길고 허리가 가늘어 한 마디로 동양적인 매력을 지닌 아가씨였다. 굳이 흠 있는 곳을 들라하면 몸에 비해서 굵은 허벅지라 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긴치마가 유행되던 시절이라 흠이랄 것도 없었다.

막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연자는 희자와 경춘선 안에 있었다. 열차 속에는 청춘 남녀로 넘쳐 나고 있어서 틈에 끼어있는 몇몇 어른들은 민망하다는 표정이었다. 기차 바퀴가 덜컹대는 소리까지 뒤섞여 실내가 더 시끄러운 것 같았다. 연자와 친구 희자는 그저 창밖만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부숭부숭한 연자의 눈이 한층 더 가느스름해졌다는 것은 밖의 풍경에 취해있다는 얘기였다. 이미 치장을 끝낸 건너편 산이 강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햇살이 부서져 그 풍경에 덧칠되기도 했다.

소양호 주변에서 계획대로 막국수 한 그릇씩 먹고 일어섰다. 후식으로 연자는 번데기를 샀다. 이쑤시개로 번데기를 하나씩 찔러 입에 다 털어 넣을 때까지 둘은 소양호 주변을 맴돌았다.
쉬엄쉬엄 도로를 따라 시내 쪽으로 걷기 시작했을 때는 오후로 바뀌어 있었다. 여름 내내 멀건 빛깔이었을 하늘에는 푸른 천이 깔린 듯했다.
“저거 봐. 은하수 같지?”
연자는 죽 늘어서 있는 포플러나무를 쳐다보며 말했다. 잎이 바람에 팔랑거리면서 반짝이고 있었다.
“아기 손바닥 모양이라고 노래에서 그랬을 걸?”
희자가 건성으로 나뭇잎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는 나뭇잎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연자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편지만 주고받았던 첫사랑이 떠난 지 꼭 반년이었다. 막상 편지를 써야할 계절이 왔지만 이젠 주고받을 사람이 없었다. 연자는 길바닥의 잔돌을 차면서 터벅터벅 걸었다.
"얘! 저기 좀 봐."
다소 고조된 희자의 목소리에 연자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연자는 희자의 손끝이 가리키는 건물을 바라보다 몸을 기역자로 꺾었다. 간판이 모로 걸려있어 읽기 위해서였다.
“비.탈.에.선.카.페...”

카페는 건물 일 이층을 다 사용하고 있었다. 또박또박 읽고 나서 몸을 들어 담쟁이덩굴에 휘감긴 건물을 쳐다보았다. 담쟁이덩굴은 회갈색으로 바래어버린 벽을 타고 올라 지붕에까지 실처럼 가느다란 가지를 뻗치고 있었다. 덩굴에 붙은 잎사귀들은 빨강, 노랑, 주황, 녹색 등으로 배색되어 있었다. 연자는 담쟁이 잎을 두어 장 따서 책갈피에 넣어둘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건물 가까이 갔다. 앞 유리면으로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여느 커피숍처럼 디제이 박스가 있고 테이블 너덧 석에 손님이 앉아 있었다.

놀랍게도 커피숍 안은 미니 이층이었다. 그러니까 앞쪽으로는 일층이었고 뒤쪽으로는 이층이다 보니 가게 안이 비탈져 있는 꼴이었다. 유리 벽면 앞으로 테이블이 대 여섯 개 정도 놓여 있고 중간에 대 여섯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이 일층과 이층을 연결하고 있었다. 전체 테이블 수는 스무 개가 넘지 않아 보였다. 연자는 자리에 앉으려다 미니 이층에 있는 DJ 박스를 쳐다보았다. 조도가 다소 낮은 불그스름한 불빛 아래 앉아 있는 DJ와 눈이 마주쳤다.

“제가 하경을 하게 된 까닭은 막국수 때문이었지 비탈에 선 카페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담쟁이덩굴과 모로 누워있는 간판에 홀려 이곳을 찾았습니다. 다섯 곡을 듣겠다는 것은 저의 고집입니다. 물론 그 노래를 다 들어야만 저는 비탈진 이 카페를 나가겠지요.”

DJ는 미소를 머금은 채 종업원이 들이 민 연자의 쪽지를 읽었다. 다른 사람들이 신청한 노래 사이사이에 연자가 원하는 팝이 흘러 나왔기 때문에 느긋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 음악이 다 끝난 후에도 연자는 일어 설 수가 없었다. DJ의 멘트 때문이었다.

그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누군가가 인사를 했다. 돌아보니 DJ였다. 안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DJ는 죽은 깨가 있는 얼굴이었다. 호리호리한 키에 섬세한 손가락이 인상적이었다. 몇 마디 더 나누고 연자는 수줍은 표정으로 돌아섰다. 연자의 뇌리에는 DJ의 깔끔한 뒷목덜미가 여운으로 남았다.

스물두 살 무렵의 매력이 깡그리 사라져버린 연자는 방금 떠올린 아름다운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가 충혈 된 눈을 비볐다. 그제야 가게의 물건이 하나씩 눈을 비집고 들어왔다. 연자는 입 가장자리가 터지지 않을 만큼 힘껏 벌리고 하품을 했다. 벌써 시간은 여덟시 반이 넘어 있었다.

거리가 한산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좀처럼 밤에 밖에 나오지 않는 이층 여주인의 얼굴과 마주쳤다. 육십 대 초반인 여주인은 어기적거리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원래도 알사탕을 문 것 같이 툭 불거진 볼이 풍선처럼 더 부풀어 있었다. 출입문을 힘껏 밀어젖히는 여주인의 콧구멍이 벌름댔다. 여주인이 벼락 치듯 소리를 질렀다.
“아이구... 이 정신 나간 여편네야. 이 건물 식구들 다 태워죽일 셈이야?”
목걸이를 샀던 청년이 나갈 무렵 가스레인지에 주전자를 올려놓았다는 것이 그제야 떠올렸다. 정신이 번쩍 든 연자는 한 뼘 정도밖에 안 되는 부엌에 딸린 쪽문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오랫동안 써 온 알루미늄 커피주전자가 새빨갛게 달궈져 있었다. 플라스틱 손잡이까지 녹아 퀴퀴한 냄새가 부엌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연자가 벌렁대는 가슴을 누르며 가스렌즈의 스위치를 돌려 껐다. 떠올랐던 추억이 커피주전자처럼 처참하게 뭉개어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 주전자는 연자가 처녀 적부터 사용하던 물건이었다. 허무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때 정수리의 머리가 뭉텅 빠져버린 남편이 가게 문을 밀며 들어섰다.
“벌써부터 춥네.”
“오는 길에 마트에나 다녀오라니깐. 참내...”
연자는 남편을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 눈을 흘겼다.
“여편네가 남편 알기를... 못해! 씨!”
"으이그...술 냄새. 내가 미쳐!"

툴툴거리는 연자를 빤히 바라보던 남편이 픽 웃었다. 비틀거리던 남편은 덜퍽 소리가 나도록 거칠게 소파에 앉았다. 연자도 그 곁에 앉았다.
“나도 미쳤지. 좋은 여자 다 놔두고 몇 통의 편지에 헤까닥하다니...흐흐...담쟁이덩굴이 감싸고 있던 아름다운 비탈의 카페라...서두가 그랬지 아마?”
“뭐? 자기는 내가 동화책에서 만났던 소녀 같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처럼 좋은 날 싸우면 안 되지.”
아예 뒤집어진 넥타이가 대롱거리는 걸 보면서 연자가 혀를 쯧쯧 찼다.
“영감탱이가 다 된 것 같네.”
“아이구 이 할멈아...나랑 맞짱 뜰래?”
남편이 실실 웃으면서 대꾸했다. 연자는 말을 말아야지라고 중얼거리며 남편의 넥타이를 폈다.
“축하합니다!”

소파가 거리를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연자는 큰소리를 내며 들어서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은 피에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연자는 얼떨결에 일어났다. 피에로는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연자의 손에 들려주었다. 핑크색의 장미가 가득한 바구니였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연자에게 삐에로는 춤이라도 출 것 같은 자세로 손을 내밀었다. 연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오른 손을 약간 쳐들었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피에로는 연자의 손등에 입술을 댔다. 잊고 있었던 날이었다. 남편은 소양호 앞에서 청혼을 했었다. 피에로가 문을 밀고 나가자 연자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뒤로 젖힌 남편의 눈은 반쯤 감긴 상태였다. 무던한 남편이었지만 나쁜 버릇은 술에 취하면 쉽게 잠이 들어버린다는 점이었다. 연자는 남편의 주름진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