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신뢰제고를 위한 제언
서한기_연합뉴스 기자
안쓰럽다. 어떻게든 마음을 얻으려고 애쓰는 데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빈손이다. 마치 짝사랑에 빠진 가련한 연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상대방은 거들 떠 보지도 않는 듯한데, 혼자만 애를 태우는 게 영락없는 홀로 사랑이다. 다가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상대방을 붙잡지 못해 안달하는 게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금 정유업계의 모양새가 꼭 그 꼴이다. 아니 더 못 한 처지다.
`공공의 적'인양 거의 모든 시장 참가자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외로운 섬이다. 아무리 항변하고 억울함을 호소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칠 뿐이다. 왜 그럴까. 정유업계가 뭘 잘못한 것일까. 영리를 일차 목적으로 하는 기업으로서 정당한 영업활동을 통해 이익을 올렸다고 해도 왜 믿어주지를 않는 걸까. 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비난하는 것일까.
다른‘더 잘 나가는’호황 업종에 비해 특별히 영업이익을 더 올리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실제로 정유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정유사들의 세전이익은 총 3조8천 억 원이며, 총 판매량은 1천506억ℓ로 ℓ당 세전이익은 겨우 25원 수준이었다. 영업이익률도 5.2%(정유부문은 3.5%)로 국내 제조업 평균 6.7%보다 낮았다.
따라서 정유업계 입장에서는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갈 뿐이다. 따지고 보면 욕먹을 일을 하지 않았는데 왜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지 여간 속이 상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는 경제성장의 연료가 되는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뿐 아니라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 창출을 통해 그 어느 업종보다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정유업계로서 특별히 기억할 만한 해이기도 하다. 석유제품이 올해 1-8월 다른 모든 업종 생산품을 따돌리고 수출 1위 품목으로 우뚝 올라선 것. 올해 들어 휘발유와 경유 등 국내 석유제품의 올해 수출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92.4%나 늘어난 272억2천만 달러로 자동차와 반도체 등 전통적인 수출 주력 제품들을 저만치 제쳤다.
이처럼 석유제품이 수출 첨병으로 맹활약하는 것은 정유사들이 공급 과잉 현상을 보일 만큼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시장보다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베트남, 유럽 등으로 수출 지역을 다변화하며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선 덕분이라는 게 정유업계의 설명이다.
정유업계가 GS칼텍스 TV광고 카피에서 잘 드러나 있듯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를 만년‘에너지 수입국’에서‘에너지 수출국’으로 바꾸는데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충분히 자랑할 만한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정유업계는 대한민국 사회의 행복지수를 끌어올리는 데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유업체별로 앞다퉈 펼치고 있는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은 국내 어느 업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활동으로 손꼽을 만한 게 사실이다.
정유회사별로 약간씩만 훑어봐도 사회책임활동의 규모와 가짓수에서 다른 업종을 압도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먼저 SK에너지. 이 회사는 해마다 제주도 내 저소득층 유소년 축구 지망생과 불우 가정 아동을 위해 SK 제주 행복날개 기금’이란 이름아래 기부금을 내놓고 있다. 또 ‘행복을 나누는 기업’이란 슬로건 아래 새터민(탈북자) 주축으로 설립된 회사를 적극 후원하며 새터민의 일자리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아울러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 병원의 한센병 환자를 돕는데도 매년 앞장서고 있다. 다른 정유업체들도 사회공헌활동에 열심이기는 마찬가지다.
GS칼텍스는 `에너지로 나누는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도서 및 산간벽지 어린이 대상의 영어캠프 지원활동은 물론 저소득 가정 청소년들에게 책걸상 구입비용을 보태고 있다. 또 아름다운재단과 파트너십을 통해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들에게 나눔의 습관을 길러주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아름다운재단의 나눔교육사업을 전폭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에쓰오일은 임직원들로 구성된 자체 사회봉사단을 꾸려 행복한 사회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그룹홈(공동생활가정) 어린이들을 위해 신학기 학용품 꾸러미를 지원하는가 하면, 나눔 경영의 일환으로 근무 중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소방관의 가족을 돕는 `소방영웅 지킴이'를 포함해 각종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정신을 발휘하다 불의의 사고로 숨진 의인을 위한 `시민영웅 지킴이', `어린이 지킴이', `소외이웃 지킴이', 농업시장 개방 확대로 어려움에 처한 지역농민을 위한 `지역사회 지킴이',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보호를 위한 `환경 지킴이'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환경재단과 손잡고 매년 전국 아마추어 사진작가와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환경사랑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환경사랑 실천 아이디어 및 사진 공모전을 열고 있다. 나아가 해마다 회사의 대산공장이 있는 충남 서산시 대산 인근 해역 일대에서 이 지역 주민들의 생계수단인 어족 자원 보호 차원에서 치어 방류행사를 벌이고 있다.
정유업계의 사회공헌활동은 개별 회사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유업계 전체가 십시일반 힘을 모아 소외계층 지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정유4사는 최근 `고유가 고통분담을 위한 정유업계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고유가로 고통 받은 에너지 소외계층 지원 등에 사용할 목적으로 1천 억 원의 특별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정유업계의 사회공헌활동은 이처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활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가로 서민들은 고통 받는 데 석유기업은 자기 배만 불린다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은 좀체 바뀌지 않고 있다. 요지부동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정유업계가 겉으로 보여주기 식의, 자기 만족적, 자기 과시적 활동에 치중한 탓이 아닐까. “사회를 위해 우리도 이 정도는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사회의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자세로는 얼어붙은 소비자의 마음을 녹이지 못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유업계가 사회의 신뢰를 얻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에너지’라고 SK에너지가 TV광고에서 소리 높이 외치지 않았던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결국은 기본으로 돌아가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모든 활동의 초점을 기업 자신이 아닌 소비자에 맞춰, 즉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아닌 ‘컨슈머 프렌들리’한 경영활동을 보여줄 때 소비자는 자연스럽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정유업계도 정당한 경영활동을 통해 좋은 실적을 올려놓고도,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가시방석에 앉은 마냥 쓸데없이 안절부절 못하는 엉거주춤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더러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불편한 마음의 짐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정유업계에 막대한 부담을 안겨줄 정도로 거창한 것은 아니다. 시장원리를 파괴할 만큼 무슨 큰 선물 보따리를 달라고 막무가내로 조르는 게 아니다. 좋은 기름을 되도록 싼 가격에 공급해 달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소비자들은 특히 정유사들이 국제유가가 오를 때는 재빨리 기름값을 올리면서 국제유가가 떨어질 때는 기름값 인하에 미적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소극적 행태에 대해 거의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정유업계가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기름값은 국제 수급상황과 지정학적 위험요인, 허리케인 같은 돌발적인 자연재해, 환율 등 정유업계의 손에서 벗어난 갖가지 인화성 높은 외부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에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의 시장 영역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휘발유나 경유 등 기름값은 원유시장에서의 국제유가의 등락보다는 원유를 정제해서 만든 석유제품을 거래하는 국제시장의 가격변화에 더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비록 원유가격이 떨어지더라도 국제 석유제품가격은 수급상황에 따라 오히려 더 오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국내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의 가격도 원유가격의 변화에 상관없이 덩달아 상승할 수 있다는 게 정유업계의 설명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소비자는 이런 기름값 결정 메커니즘을 잘 모른다.
소비자들이 거의 매일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는 유가정보라고는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나 두바이유,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 등 주로 외신을 통해 전달되는 국제유가의 변화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름값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싱가포르 국제석유제품시장 거래가격의 변동에 대해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소비자들은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당연히 소비자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니 국제 원유가격은 내리는데, 왜 국내 기름값은 꿈쩍도 하지 않는 거야. 혹시 정유사들이 가격을 담합해서 소비자를 속이는 게 아니야.”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며 불만을 쏟아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런데도 정유업계는 이런 소비자의 정보부재 상황을 방치한 채 손을 놓고 있다시피 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나 시도를 찾아보기 힘들다. 제 스스로 비난의 무덤을 파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소비자가 원하는 대로 국제유가 하락에 맞춰 기름값을 탄력적으로 내릴 수 없다면, 그 까닭이라도 소상히 밝혀 소비자의 의혹을 속 시원하게 풀어줘야 마땅하다. ‘나 몰라라’하고 뒷짐 지는 것은 책임 방기다.
지금 당장 국내 기름값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정해지는 지, 소비자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알림 장치나 소비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하자. 이를 통해 정유업계에 씌워져 있는 오해의 굴레를 벗도록 하자. 물론 짧은 시간에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지도 모른다. 첫 술에 배부르겠는가.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유치원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교, 기타 사회교육시설, 강연회 등 가능한 모든 교육 공간을 활용해 소비자 타깃의 에너지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자.
그 연장선상에서 보다 소비자 친화적인 석유 정보공개를 제안하고 싶다. 현재 매주 단위로 정유사의 잠정 판매가격이 석유공사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 자체를 대부분의 소비자는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설사 알고 있더라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인 게 사실이다. 정유사별 공급가격은 기업의 영업비밀로 공개하기 어렵다 할지라도 이미 시행하고 있고 소비자들이 궁금해 하는 정유사 평균판매가격은 왜 널리 알리지 않는가? 주유소 가격은 오피넷을 통해 접할 수 있으니 정유사 판매가격 역시 소비자 알 권리 차원에서라도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비자의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을 한 가지 덧붙이자면, 석유기업이라고 언제까지 석유만 팔아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일 터이다. ‘피크오일’에 따라 불가피하게 종말을 맞게 될 석유시대 이후를 대비해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석유고갈에 따른 소비자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저탄소 녹색성장’의 분위기에 올라타라는 말이 아니다. 이는 에너지 기업으로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생존전략일 뿐 아니라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책임지는 자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사업의 중심축을 조금씩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옮길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