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영용_전남대 경제학 교수
지금 세계 경제는 미국 월가의 금융위기로 한바탕 홍역을 앓고 있다. 거기에 치솟는 석유 값이 주름살을 더하고 있다. 물론 금융위기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떤 형태로든지 진정되겠지만, 석유 문제는 장기적으로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고갈성 자원이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에서 트럭 운전사의 파업과 특정 정유사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 등으로 정부의 미온적 태도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지만, 각국 정부가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미국, 영국, 러시아, 멕시코 등은 제품 가격 인상 등으로 유가 상승에 따른 충격을 소비자가 흡수하도록 하는가 하면, 일본, 중국, 인도, 이태리, 프랑스, 베트남 등은 유가 통제와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등의 고육지책으로 대응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은 저소득층과 자영업자, 대중교통 및 물류사업자, 농어민 등에게 지난 7월 1일부터 앞으로 1년간 10조 5000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고유가 극복 민생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유류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자가용 승용차의 5부제나 홀짝제 운행을 권고 또는 시행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브라질은 과거 두 차례의 오일쇼크 이후 사탕수수를 이용한 에탄올을 대중화하여 휘발유와 겸용함으로써 유가 상승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독일 역시 태양열, 풍력, 바이오 등 대체 에너지 개발에 노력한 결과 고유가 파동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유가는 올해 초 나이지리아의 폭력 사태와 파키스탄 정정 불안으로 100달러를 넘어선 후, 지난 3월 미국 달러 가치 하락, 중국과 인도의 수요 증가와 그에 따른 투기 수요 증가로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섰다. 이어 미국 경제의 침체 완화 기대에 따른 수요 증가로 120달러를 돌파했고,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공격 위협과 달러 가치 하락으로 140달러대에 육박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OPEC이 석유생산을 줄이지 않겠다는 발표와 세계 경제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그리고 미국을 강타할 것으로 예상됐던 허리케인의 약화 등에 힘입어 100달러 내외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2004년 세계 에너지 통계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의 석유 매장량은 1조 1,886억 배럴로 가채년수(可採年數)는 40년 정도이며, 국가별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전체의 22.1%, 이란 11.1%, 이라크 9.7%, 쿠웨이트 8.3%, UAE 8.2%, 베네수엘라 6.5%, 러시아연방6.1% 등이다. 그리고 2004년 세계 석유생산량은 8천 26만 배럴로 사우디아라비아 13.1%, 러시아연방 11.9%, 미국 8.5%, 이란 5.2%, 멕시코 4.9%, 중국 4.5% 등이다.
석유의 가채년수가 40년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채굴에 따른 추정 매장량의 감소와 함께 유가가 올라가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유전이 있을 수 있어 가채년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석유는 종국적으로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고갈성 자원(exhaustible resource)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경제 원리적으로는 가격기구가 방해받지 않고 작동한다면 가격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수요가 감소하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높아진다면 수요는 영(零)이 될 것이므로 완전히 고갈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경제성이 없어져 사실상 우리 생활에서 주 연료의 위치를 차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향후 에너지 문제는 석유 고갈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할 것이다. 즉, 앞으로의 에너지 문제는 석유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가격기구의 작동이 석유 문제를 얼마나 완만하게 이끌어갈 것이며, 차후 대체 에너지 개발에 집중하는 좀 더 폭넓은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우선 가격기구가 석유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는 점을 살펴보고 다음으로 대체 에너지 개발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알아보자.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 쇼크는 주로 석유 카르텔인 OPEC의 감산(減産)이 이유였다. 한국에서는 하룻밤 새에 60%가 오르기도 했다. 전 세계 경제는 고유가와 월남전으로 미국 달러의 공급이 크게 증가한 탓에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유가 동결로 가격 상승을 막아보려 했지만 실패하고 자국 내 석유 생산마저 감소시켜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경제학에서 예견하는 카르텔(cartel)의 특성에 따라 다른 재화의 가격에 대한 석유의 실질가격은 OPEC이라는 카르텔이 처음 형성된 1973년을 정점으로 하여 꾸준히 낮아졌다. 이는 가격기구의 작동에 의해 소비자들이 석유 소비를 줄이고 원자력, 태양열, 풍력 등의 다른 공급원이 새롭게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동안 미국 정부는 가격이 올라간 외국 석유 수입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값싸게 생산되는 국내 석유에는 세금을 부과하는 등, 석유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기도 했다.
석유 자원의 고갈을 걱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석유 자원의 고갈 징후가 최근 전반적인 유가 상승에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가격 상승을 예측한 투기 현상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의 유가 폭등이 몇몇 산유국의 정정(政情) 불안과 일부 국가의 석유산업 국유화 등에도 그 한 이유가 있지만,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 석유 다량 소비국의 수요 증가와 향후 공급 감소 예상에 따른 항구적인 것이라면 유가의 하향 안정은 크게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최근의 고유가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당장 고통이 따르더라도 각 경제주체들이 이에 적응하도록 가격기구의 작동을 보호하는 것이다. 사실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세계 경제는 그 이전에 비해 석유 의존도에서 크게 탈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의 고유가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은 석유 의존도 탈피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위적으로 정부가 유가를 동결해서는 안 되며, 전기·기차 등의 공공요금을 동결해서도 안 된다. 석유와 관련된 가격기구의 작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가격기구가 원활하게 작동하면 소비자는 고유가에 따른 석유 소비를 줄이고 기업들은 다른 대체 에너지 개발 유인(誘因)을 가질 것이다. 최근의 유가 폭등과 미래에 대한 예상에 따라 새로운 유전 탐사와 대체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들이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유다. 또한 현재로서는 유류세 인하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태까지 터무니없이 높은 유류세를 부과한 것은 잘못이지만, 유가 상승에 따라 석유 소비를 줄이려는 사람들의 적응을 무력화하여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석유 소비 행태가 자리 잡고 유가가 일단 안정된 후에 대폭 인하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음으로 가격기구가 인류를 목재에서 석탄으로, 또 석탄에서 석유로 인도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였던 제번스(Stanley Jevons)는 1865년 ‘석탄 문제(The Coal Question)’라는 책에서 향후 예상되는 석탄 고갈이 영국의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밀튼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1970년대의 두 차례 오일 쇼크 이후, 제번스가 쓴 책에서 ‘석탄’이라는 단어를 ‘석유’로 바꾸면 현재 우리가 걱정하는 에너지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프리드먼은 제번스가 유명한 경제학자임에는 틀림없지만 가격기구의 위력을 간과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제번스만 하더라도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가격기구가 에너지 문제의 해결을 촉진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인류가 불을 발견한 이후 연료는 목재에서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으로 성공적으로 이동해 왔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발생하는 새로운 사건들에 인류를 적응시켜 온 가격기구이다. 석탄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과거에 비해 가격이 올랐고, 이에 따라 인류는 더 값싸고 풍부한 대체 에너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했으며 그 결과 석유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 석유가 처음 발견된 것은 1859년이었으나 그 당시에는 석탄에 비해 경제성이 없다가 석탄의 경제성 하락과 석유의 분별증류 기술의 발달로 석탄에 비해 경제성이 높아져 오늘날 주 연료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아직 40년으로 추정되는 가채년수가 남아있는 지금, 석유 고갈을 염려하는 것은 인류가 이미 다른 에너지 개발에 나섰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아직은 부분적이지만 이미 석유를 대체하고 있는 원자력, 태양열, 풍력에 이어 현재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수소, 옥수수 등에서 추출하는 에탄올 등이 석유를 대체할 것이다.
효과적인 대체 에너지 개발을 위해서도 가격기구의 작동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현재 각국이 고육지책으로 시행하고 있는 유가동결, 고속도로 통행료 할인 등은 석유 에너지에서 다른 대체 에너지로 이행해가는 데는 물론, 소비자들의 석유 수요 감소를 유도하는 데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유가 동결이나 다른 유류 소비 관련 비용을 인위적으로 낮춰주는 것은 석유 자원이 점점 더 희소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가격의 정보전달 기능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가격기구의 작동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에 박차를 가하도록 할 것이다. 경제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로를 가장 잘 돌파하고 오히려 더 큰 이윤 기회로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기업가들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유가 동결, 전기·기차 등의 공공요금 동결이나 유류 사용에 대한 보조금 지급 등 가격기구의 작동을 방해하는 조치를 해서는 안 되며, 기업가들이 새로운 에너지원을 발굴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의사결정에 방해되는 제반 규제를 철폐하는 것이 미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결국 원활하게 작동하는 가격기구는 인류를 석유에서 다시 원자력, 태양열, 수소, 에탄올 등으로 성공적으로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