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유가의 배경과 전망

이지훈_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국제유가가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미국 서부텍사스産 원유(WTI油) 가격은 지난 2월 19일 사상 처음으로 세 자리 수대에 진입한 이후 3월 13일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섰으며 5월 6일에는 120달러를, 5월 21일에는 132.56달러로 보름 만에 130달러를 돌파했다. 우리나라는 원유의 80% 이상을 중동에서 수입한다. 이러한 중동산 원유의 기준가격 역할을 하는 두바이油 가격도 3월 14일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으며 5월 22일에는 128.97달러까지 치솟았다. 작년 초 이상난동으로 인한 난방유 수요 감소로 배럴당 50달러 이하로 하락했던 것과 비교하면 거의 세배 가까운 수준으로 폭등한 셈이다.

이러한 국제유가의 초강세는 크게 네 가지 요인이 한꺼번에 맞물리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수급상황이 상당히 타이트하다. 석유수요는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 인도 등 신흥개도국과 막대한 오일머니를 벌어들이고 있는 중동국가를 중심으로 초고유가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데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반면, 가격이 조금만 하락할 조짐이 나타나도 산유량을 줄이는 등 OPEC이 이른바 고유가 유지 정책을 펴면서 석유공급은 거의 늘어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세계 석유시장에서는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타이트한 수급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07년 세계 석유수요는 하루 8,581.4만 배럴로 공급(하루 8,562.8만 배럴)을 하루에 18.6만 배럴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유가의 고공비행을 이끌고 있는 두 번째 요인으로 달러화 약세를 들 수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경기하락을 우려한 미국이 작년 8월부터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하면서 달러화 가치의 하락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달러/유로 환율은 5월 23일 1.58달러를 기록하면서 미국의 금리인하 직전인 2007년 8월 16일(1.34달러)보다 20% 가까이 급등했다. 국제유가가 대부분 달러화로 결제되기 때문에 달러화 약세는 자국통화로 표시된 석유수출국의 실질구매력을 감소시켜 이를 보전하기 위한 산유국의 고유가 정책을 견인하고, 석유수입국의 실질구매력을 증가시켜 수요확대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유가상승을 유발하게 된다.

국제유가 상승의 세 번째 요인으로는 석유시장으로 대거 몰리고 있는 투기자금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수급불균형, 달러화 약세 등으로 가격상승에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금융시장에서 원유와 같은 실물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전 세계의 과잉유동성 자금이 유가 상승세를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석유선물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는 투기자금의 대리지표 자주 이용되고 있는 뉴욕상품거래소(NYMEX)의 WTI유 선물 非상업용 純매수 포지션 규모는 5월 20일 1억 2,651.4만 배럴로 작년 초(2,155.4만 배럴)의 여섯 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순매수 포지션 규모는 2007년 세계 석유시장의 공급부족분(6,789.0만 배럴)의 두 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마지막 네 번째 요인은 언제나 유가상승의 원인으로 단골처럼 등장하는 지정학적 위험요인이다. 이란 핵문제, 미국과 베네수엘라간의 불화, 터키와 이라크 內 쿠르드족 분리주의 세력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나이지리아의 정정불안이 악화되면서 공급차질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란 외교부는 5월 5일 자국의 핵개발 권리를 제한하는 서방의 유인책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핵개발 포기 거부 성명을 발표했으며, 나이지리아 최대 무장반군조직인 멘드(MEND)는 4월 17일~5월 4일 총 다섯 차례에 걸쳐 쉘社와 쉐브론社의 송유관을 공격했다. 이와 함께 석유시설에서의 파업도 공급차질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켰다. 4월 25일~5월 1일 나이지리아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인해 엑슨 모빌社에서 생산차질이 발생했으며, 4월 28일~29일 스코틀랜드의 그랜지머스(Grangemouth) 정제시설에서도 파업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러한 네 가지 요인 중에서 작년 2월 이후의 유가급등에 투기자금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개발한 '유가상승의 요인별 분석 모형'을 이용해 추정한 결과, 최근의 유가급등에 수급상황은 1.8%, 달러화 약세 4.5%, 투기자금 유입 40.3%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는 39.7%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결정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요인인 수급상황의 기여율이 낮은 것은 분석기간 동안의 변화정도가 다른 요인에 비해 작았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초과수요 현상이 발생할 정도로 수급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조그만 돌발요인에 의해서도 석유시장이 크게 출렁거리는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최근의 유가급등은 시장의 펀더멘탈적인 요인보다는 외부교란 요인에 의해서 유발된 측면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향후에도 타이트한 수급상황이 이어지면서 당분간 유가의 초강세가 쉽게 꺾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수급상황은 신흥개도국의 지속적인 수요 증가와 산유국의 공급능력 약화로 쉽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라크, 앙골라, 에콰도르를 제외한 OPEC 10개국의 여유생산능력은 지난 4월 하루 313.1만 배럴로 1990년(하루 727.8만 배럴)의 40%를 조금 웃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여유생산능력은 생산능력(30일 이내에 생산을 개시해 90일 동안 지속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실제 생산량을 뺀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여유생산능력 감소는 유전의 노후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 세계에 하루 5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열세 개의 대형유전 가운데 단지 세 개만이 1970년 이전에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특히, 유전개발에 수십억 달러가 투자된 1990년 이후에 발견된 대형유전은 카자흐스탄의 카샤간(Kashagan) 유전이 유일한 상황이다.

당분간 초고유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의 폭등세는 하반기로 갈수록 다소 진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최악의 국면을 넘기면서 미국의 금리인하가 상반기 중 마무리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어서 달러화 약세와 투기자금 문제가 하반기 중 완화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기자금 문제의 경우 유가급등세가 둔화되면서 차익실현 매물이 시장에 대거 출회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올 11월에 치러질 美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더라도 중동정책만큼은 기존의 일방주의 노선이 지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민주당의 대선후보인 버락 오바마의 경우 이라크 내 미군철수를 외교관련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따라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요인 해소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하반기로 갈수록 원유의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도 어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초부터 지난 5월 23일까지의 두바이유의 평균가격은 배럴당 98.18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1차 오일쇼크 당시인 1974년의 평균가격(10.98달러)의 거의 아홉 배에 달하며 2차 오일쇼크 때인 1980년(35.85달러)의 세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그 동안의 물가상승을 감안한 실질가격도 1974년과 1980년 각각 배럴당 47.35달러와 92.56달러로 올해 5월 23일까지의 평균가격을 하회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세계경제는 성장세가 둔화되고 물가상승 압력이 존재하고는 있지만 과거 오일쇼크 때만큼의 충격을 받고 있지는 않은 모습이다. 이는 먼저 현재 세계경제의 석유의존도가 에너지 효율 제고, 대체에너지 개발 등으로 당시의 절반이하로 줄어든 것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석유자원의 무기화에 따른 인위적인 공급 감축에 의해 유발된 오일쇼크와는 달리 최근의 고유가가 신흥개도국의 수요급증에 의해 촉발되었던 것도 또 하나의 이유인 것으로 판단된다. 수요증가는 기본적으로 세계경제 성장세 확대에 의해 발생되었기 때문에 수요요인에 의한 유가급등은 견조한 경제성장과 동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최근의 초고유가로 인한 세계경제의 충격은 오일쇼크 당시와는 달리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유가급등세가 과거 오일쇼크 때만큼의 충격을 주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한국경제는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에너지 효율도 낮아서 유가상승에 상당히 취약한 체질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에너지 효율지표인 에너지 原單位가 우리나라의 경우 0.34로 OECD 국가의 평균치(0.20)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에너지 원단위는 단위 부가가치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 투입량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에너지 효율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유가의 상승은 수출입물가 변동을 통해서 기업의 채산성, 투자, 소비, 무역수지 등 경제전반으로 파급된다. 먼저 수출물가보다 수입물가가 더욱 상승함에 따라 수출기업의 제조원가 부담이 확대되면서 채산성이 악화되고 투자가 위축될 뿐 아니라 무역수지가 악화된다. 또한 수입물가의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악화되면서 소비자물가가 오르고 이에 따라 가계의 실질구매력이 약화되어 소비위축을 초래하게 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간 거시계량 모형'을 사용해 분석한 결과, 두바이유 가격이 연평균 10% 오르는 경우 수출물가는 0.01% 포인트 오르는 데 그치는 반면 수입물가가 1.26% 포인트나 상승하면서 경제성장률이 0.35% 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민간소비와 투자 증가율이 각각 0.67% 포인트와 0.26% 포인트 하락하는 반면, 소비자물가는 0.23% 포인트 상승하고 20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요인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최근 유가가 오르고 있는 원인들이 하나같이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수급불균형, 달러화 약세, 투기자금 유입 그리고 지정학적 불안요인 등 모두가 우리경제의 외생변수들이다 따라서 고유가에 대한 뾰족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유가상승의 충격을 국내에서 빠르게 흡수하기 위해 유류세를 추가로 인하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도 있겠지만 최근의 유가폭등세를 감안할 때 세금을 통해서 충격을 완화하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다만, 현재 30%까지로 되어있는 유류세에 대한 탄력세율의 최대한도를 확대하는 것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탄력세율의 최대한도를 50%까지 높여서 최근과 같은 유가급등기에는 50%까지 적용하고 유가가 안정되면 다시 현재처럼 30%까지만 적용하는 방식으로 국제유가에 신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별다른 고유가의 해법이 없으니 나올 수 있는 대책들도 원론적이고 장기적일 수밖에 없다. 먼저 무엇보다도 범국민적으로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에너지 효율을 제고하는 한편, 해외유전과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의 개발을 확대해서 고유가에 대한 내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원론적이고 장기적이지만 그렇다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