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 폴사인은 소비자 정보 제공 수단
옥외 광고물 획일적 규제 밀려 사라지는 오류 범하지 말아야
김신_석유가스신문 편집국장
‘최근 삼성그룹의 ‘고맙습니다’ 광고가 화제다. 공중파 CF속 장면에는 전 세계 곳곳에 진출한 ‘삼성’의 브랜드가 입체적으로 소개되고 ‘여러분의 믿음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는 멘트로 끝맺음하고 있다. 경영권 불법 승계나 비자금 조성 등 삼성그룹을 둘러싼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여론에 삼성 브랜드의 글로벌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고도의 심리적 광고 기법이라는 논란의 여지는 남겨 두더라도 삼성의 브랜드가 전 세계 곳곳에 광고되고 선전탑을 차지하는 모습은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 뿌듯한 것만은 사실이다’
‘정유사들은 지난 해 총 240억불 이상의 석유제품을 수출했다. 세계 최대 산유 단지인 중동 국가들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석유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S-OIL 같은 정유사는 생산 제품의 60% 가까이를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정유사들은 사실상 수출 전략 기업으로 그 자체가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분명하다. 하지만 쉘이나 비피 같은 세계적인 메이저 석유 그룹들의 브랜드 로열티를 떠올리면 우리 정유사들의 갈길은 여전히 멀다. 사정이 이런데도 옥외광고물법의 제한에 걸려 주유소나 충전소 등에 내걸리는 정유사의 브랜드 표지마저 사라지게 될 판국이다’
일반적으로 주유소나 충전소에 설치되는 옥외광고물은 캐노피 간판과 주유소 상호가 명시된 현수식 가로형 간판, 폴사인(Poll-Sign), 가격표지판이 해당된다. 이동중인 운전자 고객의 시인성을 보장하고 주유소 선택 기준을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유형은 옥외광고물 설치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석유판매사업장의 옥외광고물이 행정안전부 소관 옥외광고물법령에 근거해 불법 광고물로 철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나치게 까다롭게 옥외광고물의 수량과 형식을 제한하고 있는데다 각 지방자치단체에 법령 해석의 상당 부분을 위임하며 지자체별로 다른 광고물 형식이 적용되는 혼선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자체적인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며 주유소 등의 광고물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유소에 설치된 국내 정유사들의 브랜드가 시중의 난잡한 광고 홍보물과 도매급으로 취급 당하고 있다.
정유사의 기업 규모가 크다는 점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도심이나 유흥지에 무계획적으로 난잡하게 얽혀 있는 일반 옥외광고물과는 차원이 다른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정유사들은 엄청난 자금을 투입해 표준화된 CI와 VI를 개발하고 주유소나 충전소에 적용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대목중 하나는 도시미관과의 조화다. 운전중인 소비자의 시인성을 확보해주기 위한 폴사인과 캐노피의 홍보물, 현수식 상호 간판과 가격표지판들은 각 정유사별로 통일된 CI가 적용되고 있다. 도심이나 한적인 외곽 시골길이나 어김없이 통일된 브랜드 이미지가 적용된 정유사의 주유소들은 ‘난잡’이나 ‘경관의 훼손’과는 거리가 멀다.
세계화 시대에 정유사 브랜드는 오히려 널리 알리는 것도 바람직하다. 지난 해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6.5%에 달하는 금액을 정유사들이 수출했고 우리가 원유를 들여오는 중동 산유국은 물론 미국과 일본, 중국, 남미 심지어 아프리카 먼 나라까지 석유 완제품을 내다 팔았으니 글로벌 비즈니스의 선봉에 서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떠오르는 경제 부국 중국에서는 비피나 쉘 등 세계 유수의 메이저 석유 회사들과 국영 석유회사들이 경쟁하고 있는데 이들이 운영하는 주유소에서는 페트로차이나나 시노펙을 홍보하는 대형 폴사인과 캐노피 간판이 내걸려 있다.
중국을 모르고 중국기업들이 생소한 방문객들도 길가에서 어김없이 마주치는 주유소를 통해 중국 석유산업 심장부인 국영 석유회사를 각인하게 되는 기억은 예사롭지 않다. 일본이나 싱가포르 같은 주변국 역시 정제기업 브랜드는 주유소 곳곳에서 노출돼 홍보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도시 경관을 해치는 난잡한 광고물로 치부되며 정유사 브랜드가 새겨진 폴사인이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다.
◆ 주유소 광고물은 정보 제공의 수단
여기까지는 정유 대기업들만 옥외광고물 규제를 피해 나가려는 궤변이고 과장된 주장이라고 치자. 하지만 주유소의 옥외광고물이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새겨 본다면 현재의 옥외광고물 법령은 상당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주유소의 각종 옥외광고물은 단순한 광고 홍보의 수단이라기 보다는 정보의 전달 매개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지주형 간판인 폴사인은 소비자에게 정유사 선택 정보를 전달해준다.
주유소의 폴사인은 일반 공산품의 메이커를 알려주는 포장지 역할이나 다름없다. 벌크제품으로 포장을 할 수 없는 석유는 폴사인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다가서서 어느 회사의 제품인지를 표현한다. 고유가 시절 가격표지판은 기름 구매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정보 매개체 역할을 한다. 표지판이 없다면 소비자들은 일일이 주유소안에 들어가서 가격을 확인하고 구매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이같은 정보들은 그 공개 수단이 법으로도 강제화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주유소 상표표시 고시를 운용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소비자에게 왜곡된 정보가 전달되는 것을 막는데 있다. 주유소가 실제 거래하고 있는 정유사와는 다른 정유사 브랜드를 표시, 광고하거나 여러 제품들을 혼합, 판매하는 경우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기만하거나 오인시킬 수 있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주유소의 폴사인은 바로 그 소비자 선택권을 보호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인 동시에 소비자를 기만하는 주유소를 솎아내고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 주유소 사업장 내부의 캐노피 광고물이나 현수식 상호 간판 역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가격표지판 역시 석유사업법령에서 의무화하고 있다. 주유소 사업자들이 영업장소에서 판매하는 석유제품의 판매가격을 공지하면서 소비자들에게 가격 선택권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주유소들간의 경쟁까지 유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정부는 가격표지판을 활용하고 있다. 가격표지판 의무의 근거가 지식경제부 소관 고시에 따르면 ‘유가자유화에 따른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과 소비자 보호’가 그 존재 목적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또 그 근거 법령중 하나로 재정기획부 소관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이 제시되고 있으니 그 안에 담겨 있는 정보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보 제공의 수단인 주유소의 옥외광고물은 하지만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명분이 밀려 사라지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 소비자의 기름 정보, 획일적 규제에 밀려
최근 지식경제부는 주유소에 소비자 판매가격 정보를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지식경제부는 소비자들에게 주유소 선택 기준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기름가격 실시간 공개 시스템을 4월부터 운용할 계획이다. 전국 주유소의 기름 가격을 실시간 확보하고 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하게 되면 기름값 인하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 측의 판단이다. 정부는 특히 기름가격공개 시스템의 주요 콘텐츠로 세차기나 경정비 등 다양한 유외 사업 수단과 각종 이벤트도 홍보할 계획이다.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구매 행위를 돕는 것이 목적인데 이를 테면 세차가 필요한 운전자 입장에서는 기름 가격 정보는 물론 세차기 설치 유무나 세차 비용에 대한 정보까지 온라인을 통해 취득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기름 가격이나 각종 유외사업, 이벤트 등과 관련한 정보는 공익적인 기여가 큰 셈인데 정작 오프라인상에서는 철저한 규제가 우선되고 있다.
주유소 사업자들은 지식경제부의 석유사업법령에 근거해 가격표지판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데 ‘이 표지판을 반드시 고정식으로 설치 해야 한다’, ‘표지판의 내용에는 정유사나 판매 석유제품의 브랜드가 표기되서는 안된다’, ‘세차나 경정비 등의 유외사업 정보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등등 참견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주행중 주유소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얻는 운전자들의 구매 성향과 범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주유소 기름 가격정보 공개의 취지에 부합되기 위해서는 주유소 현장에 노출된 가격표지판 역시 다양한 정보가 소개되는 것이 마땅하다. 다양한 주유소 관련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도시 미관도 살릴 수 있는 수단을 찾는 것이 선진화된 행정일텐데 정작 현실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가 도시 미관이라는 사회적 베네핏(benefit)에 밀리는 모습이다.
◆ 다양한 공익 조화시키려는 노력 필요
‘빨간색’을 회사의 대표 이미지로 사용하며 정유업계의 칼라 마케팅 돌풍을 몰고 온 SK에너지는 색상 규제로 큰 곤혹을 치른 바 있다. 빨간색이 지나치게 경직된 이미지를 나타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이 논리로 SK에너지는 물론 우체국이나 기아자동차 같은 국내 기관과 기업들은 물론 맥도널드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SK그룹이 2005년 새로운 CI를 도입하면서 고유 색상이던 ‘빨간색’을 줄이고 ‘주황색’을 보조색으로 사용하게 된데는 이른 바 ‘빨간색’규제의 영향이 컸다.
옥외광고물의 수량이나 형식에 대한 규제도 갈수록 까다로워 지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조례를 통해 지주 이용 간판 즉 폴사인을 설치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가 하면 간판물의 수량도 2개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동이 가능하며 운전자의 시인성을 최대한 고려해야 하는 가격표지판도 반드시 고정하도록 의무화하려 한다. 심지어 정유사 지정색상이 건물 입면적의 일정 부분을 넘어 서면 안되도록 제한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추구하기 원하는 여러 공익적 니즈를 조화시키려는 노력보다는 획일적이고 일방통행식 공익만을 쫒은 대표적인 결과물이 옥외광고물과 관련한 규제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주유소를 인식하는 요소로 가격표지판인 폴사인을 꼽은 비율이 무려 82%를 차지하고 있다. 그 폴사인이 지주형 옥외광고물에 해당된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지게 되는 행정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이제 정유사의 브랜드는 국가가 나서서 알려야 할 공익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인식, 주유소의 옥외광고물은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선행됐다면 이런 획일적 규제는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