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에너지, 그 꿈과 현실 사이
이덕환_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초고공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원유 가격이 심상치 않다. 본격적인 100달러 시대가 바짝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어차피 한 세기 가까이 써왔던 대표적인 화석 연료인 석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인가 획기적인 대안을 반드시 마련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더 이상 방심하면 애써 이룩해놓은 현대의 과학기술 문명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버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돌아갈 수 있는 ‘과거’가 없다는 현실도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우리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 바로 ‘수소 에너지’다. 우리에게 「엔트로피」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제러미 리프킨이라는 미국 경영학자의 「수소 혁명」이 그 기폭제의 역할을 했다. 리프킨의 주장은 간단하다. 이제 석유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수소가 그 대안이라는 것이다. 20세기의 대부분을 석유 경제가 지배했던 것처럼 21세기는 수소가 우리의 문명을 재구성하고 세계 경제와 권력 구조를 재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수소가 중요한 대안 에너지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주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H)는 지구상에 그야말로 무진장으로 많다. 산소, 실리콘, 알루미늄, 철, 칼슘 등에 이어 10번째로 많은 원소다. 더욱이 수소는 산소(O)와 강하게 결합해서 물(H2O)이 되면서 많은 양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수소 1킬로그램을 산소와 결합시키면 3만 5천 킬로칼로리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같은 질량의 석유 연료(프로판, 부탄, 휘발유, 등유 등)와 비교하면 3배에 가까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수소의 장점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화석 연료를 연소시킬 때 나오는 온실기체인 이산화탄소가 전혀 배출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환상적인 연료인 셈이다. 리프킨의 주장은 수소의 그런 특성만을 근거로 한 것이고, 지금까지 그의 주장이 많은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에 성공한 것은 틀림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는 법이다. 수소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많은 양의 에너지를 제공해주는 환경친화적 청정 에너지라는 주장만으로는 수소 에너지의 정체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좋은 연료를 지금까지 방치해두었다면 인류 문명의 발달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지 못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런 문제를 외면하고 수소의 장점만 내세우는 것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우선 수소가 같은 질량의 석유 연료보다 훨씬 더 많은 열량을 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소는 매우 가벼운 원소이기 때문에 연료의 부피는 석유 연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부피를 차지한다. 가스 상태로 활용하는 프로판의 경우와 비교하더라도 같은 온도와 압력에서 수소의 부피는 프로판보다 22배나 더 크다. 더욱이 수소는 액체로 만들기도 매우 어려운 물질이다.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수소를 영하 423.17도 이하로 냉각시킨 후에 충분히 압축하면 액체가 된다. 비행기에 사용하는 제트 엔진과 같은 장치를 사용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만든 액체 수소는 로켓의 추진제로 사용된다. 일상적인 활용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결국 수소를 운반하고 저장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은 셈이다. 수소를 사용하는 자동차는 엄청난 크기의 연료 탱크를 싣고 다니거나, 불편할 정도로 자주 수소를 충전(充塡)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포기해버릴 과학자들이 아니다. 팔라듐과 같은 금속이나 나노 소재를 이용해서 수소를 대량으로 저장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과학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다. 아직 성공 가능성은 확실하지 않지만 운반과 저장 기술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수소를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기술을 기적처럼 개발해왔었다. 그런 과학자들이 수소를 운반하고 저장하는 기술을 개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지구상의 수소가 대부분 산소나 탄소를 비롯한 다양한 원소들과 화학적으로 결합된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결국 수소를 활용하려면 물(H2O)이나 탄화수소(CnHm)와 같은 수소 화합물에서 수소를 분리시켜야만 한다. 화학에서는 그런 과정을 ‘환원’(還元)이라고 한다. 결국 수소를 연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수소 화합물에서 환원시켜서 얻은 수소를 다시 산소와 결합시켜 물을 만드는 산화(酸化) 과정에서 에너지를 얻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천연가스(CH4)와 같은 탄화수소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미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기술은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개발되어 있다. 천연가스만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면 연료로 사용할 수소를 충분히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천연가스는 직접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석유 연료라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굳이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수소로 전환시키는 것보다는 천연가스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뜻이다. 더욱이 수소를 생산하고 남은 탄소도 결국에는 산화되어 이산화탄소로 대기 중에 방출될 가능성도 있다. 천연가스를 이용한 수소의 활용이 온실 가스 감축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셈이다.
수소를 생산하는 원료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물이다. 천연가스와는 달리 물은 그야말로 지천으로 널려있다. 지구 표면의 70퍼센트가 바다이고, 육지에서도 물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 더욱이 수소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얻고 나면 다시 물이 되기 때문에 자원이 부족해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사실 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수소 에너지의 가장 큰 장점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물을 이용해서 수소를 만드는 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전기나 열을 이용하면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물을 분해시키는 과학적인 방법은 충분히 알려져 있다. 전기를 이용하려면 물에 적당한 전해질을 넣어주고, 열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아이오딘화포타슘(KI)와 같은 물질을 촉매로 사용하면 된다. 다만 분해의 효율을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가 될 뿐이다.
진짜 문제는 물을 분해해서 얻은 수소를 다시 연소시켜서 물로 되돌려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열역학에서는 그런 변화를 ‘순환과정’(cycle)이라고 한다. 한 곳에서 출발해서 변환을 거듭하다가 다시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열역학 원리에 따르면, 순환과정이 작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에서 에너지가 유입되어야만 한다. ‘우주에는 공짜가 없다’는 열역학의 가장 강력한 원칙이다. 그런 원칙은 어느 누구도 어길 수가 없다.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고도 순환과정을 일으킬 수 있는 ‘영구운동장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열역학 제1법칙이다.
결국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시켰다가 다시 물로 되돌려보내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투입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가 수소를 연소시켜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보다 클 수밖에 없다. 어떤 방법으로 물을 분해시키는지는 상관이 없다. 결국 물을 분해시켜서 얻은 수소를 에너지로 활용하는 것은 열역학적으로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물을 분해한 수소를 사용할수록 물을 분해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을 낭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소를 쓰면 쓸수록 물에서 수소를 생산하는 비용에 의한 적자는 눈덩이처럼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수소 에너지가 전혀 쓸모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현대 문명을 유지할 수가 있다. 문제는 우리가 에너지를 소비하면 오염이 생긴다는 것이다. 화석 연료의 사용에서는 매연, 일산화탄소, 질소 산화물, 이산화탄소 등에 의한 환경 파괴가 대표적인 경우가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모든 연료가 심각한 오염과 사고의 위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오염은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도시에서 더욱 심각하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에서는 에너지 소비 때문에 생기는 환경 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수소의 생산과 소비에서 발생하는 적자의 폭이 대도시의 환경 오염을 해결하는 비용보다 적을 경우에는 수소 에너지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물을 분해해서 수소를 생산하고, 그렇게 생산한 수소를 저렴하고 안전한 방법으로 대도시까지 운반해서 사용함으로써 대도시의 오염 문제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면 수소 에너지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수소를 생산하는 지역의 오염은 굳이 비용을 들여서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수소를 대도시까지 안전하게 운반하는 비용도 충분히 저렴해야만 한다. 그리고 수소를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그런 전제 조건이 만족되지 않은 경우에는 물을 이용한 수소 에너지는 엄청난 낭비만 초래하게 될 뿐이다.
수소 에너지를 이야기할 때 원자력이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대도시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총량은 엄청날 것이고, 그런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수소의 양도 엄청날 것이 분명하다. 결국 대도시에서 소비하는 수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대도시에서 소비하는 에너지보다도 더 많은 양의 열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많은 양의 열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은 원자력뿐이다.
원자력을 이용해서 생산한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전기 자체가 청정 에너지이고, 전기를 대도시로 공급하는 것이 기체 상태의 수소를 운반하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고 저렴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도시에서 사용하는 에너지를 모두 수소로 전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수소가 환경에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도 진실은 아니다. 수소를 활용하는 방법은 수소를 산소와 함께 직접 연소시켜서 열을 발생시키는 방법과 연료전지(fuel cell)를 통해서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수소를 직접 연소시킬 경우에는 상당한 양의 물이 수증기나 액체의 형태로 환경에 배출된다. 수소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배출된 물이 환경에 영향을 주게 된다. 연료전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황산과 같은 맹독성 전해질이 대량으로 필요하게 된다. 연료전지에서 만들어지는 물에서 그런 전해질을 분리해내는 일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결국 수소가 우리의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는 꿈의 에너지가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수소가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수소 에너지의 정체와 한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현명하게 사용하는 경우에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수소에 대한 환상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