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유가시대 정유산업의 생존전략

최정엽 EBN기자

국제유가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으로 배럴당 100달러 선에 육박하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국내 경제·산업 전반에 적신호가 켜졌다. 현대사회의 번영은 안정된 에너지 확보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석유가 없으면 단 하루도 경제·산업 활동을 영위할 수 없다. 결국 안정적인 석유 확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다.

하지만 석유시장은 좀처럼 우리나라와 같은 자원빈국이 틈새를 파고들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동안 세계 석유시장을 점유해 온 엑슨모빌, BP, 로얄더치쉘, 토탈, 쉐브론 등 글로벌 메이저들과 산유국의 국영석유기업으로 양분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사의 경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과 동시에 지상유전이라고 불리는 고도화설비 증설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안정적인 원유 도입이라는 '숙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생산제품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석유는 나지 않지만 사실상 무황(Sulfur-Free) 수준의 휘발유, 경유를 수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과거 달러먹는 '하마'에서 수출 '효자'로 자리를 잡았다.

에너지 빈국서 이룬 '메이드 인 코리아'

우리나라는 동해 가스전에서 소량 생산되는 콘덴세이트(초경질유, 가스와 원유의 중간 정도) 이외에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울산, 온산, 여수, 대산, 인천에 전국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 5개가 위치해 있다. 석유는 현대사회의 '혈액'으로, 정유공장은 '심장'으로 불린다. 그만큼 중요한 산업이다.

국내 처음 정유공장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목적으로 건설됐지만 어느덧 국내 공급은 물론 50%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심장이 더욱 커지고 강해졌다는 의미다.

또한 최근 잇따라 확충되고 있는 고도화설비가 본격 가동될 경우 수출 비중이 더욱 늘어나 국내의 심장을 넘어 세계의 심장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특히 그동안 상대적으로 값이 싼 벙커-C유와 생산 수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유, 항공유가 주를 이뤘다면 앞으로는 대기오염물질인 황이 거의 없는 석유제품으로의 수출 증가는 물론,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을 벗어나 미국, 호주, 유럽 등 선진국으로의 수출 시장 확대가 기대된다.

우리나라 정유산업의 수출은 지난 2004년 사상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돌파해 2년만인 2006년 200억달러가 넘는 206억달러(2억8천900만배럴)를 기록, 반도체, 자동차, 무선통신기기, 선박류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올해도 약 224억달러 정도가 예상되고 있다. 폭발적인 수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전체 매출액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1년 34.1%에서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2005년 48.4%, 지난해 51.0%로 수출이 내수를 넘어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정유업계가 단순히 원유를 들여와 정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아로마틱 등 화학부문과 윤활유, 해외유전개발 등 비정유 사업에서, 내수가 아니라 수출에서 더 큰 수익을 올리는 형태로 이익구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석유협회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정유업계 전체 매출액은 70조6천445억원, 영업이익은 2조9천402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서 석유제품 수출액은 절반이 넘는 36조39억원을 기록, 2005년(29조9천498억원)에 비해 20.2% 증가했다.

석유제품 수출액은 2001년 14조6천300억원에서 2002년 13조3천502억원으로 다소 줄었다가 2003년 14조7천52억원, 2004년 24조138억원, 2005년 29조9천498억원 등으로 계속 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올 상반기 석유제품 수출액도 100억달러에 육박하면서 반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6월 국내 정유업계의 수출액은 99억4천537만5천달러로 전년동기(87억7천640만7천달러) 대비 13.3% 급증했다. 수출물량 역시 1억3천725만5천배럴로 전년동기(1억2천321만8천배럴)대비 11.4% 늘어나 사상 최고 수준을 보였다. 주요 수출 대상국은 중국(24억4천465만달러)과 미국(20억7천771만달러), 일본(16억5천253만달러)으로 집계돼 전체 수출액 중 60% 이상을 차지했다.

지상유전 확충으로 '화려한 부활'

국내 정유사들의 잇따른 고도화설비 확충이 향후 석유제품 수요 경질화 및 고급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원유정제 과정에서 병산되는 중유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 고도화설비 건설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업계에 따르면 오는 2011년까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지역에서 총 일일 357만배럴 규모의 CDU(원유정제시설) 증설 프로젝트가 계획돼 있다. 특히 실질적인 제품 공급까지는 투자시작 이후 최소 2∼3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급부족은 지속될 전망이다.

또한 경질제품을 추가로 생산할 수 있는 고도화시설 증설규모 역시 2011년까지 일일 76만배럴(절반 이상 국내 건설 예정) 규모로 전망돼 2011년 기준 CDU(원유정제설비)를 포함한 아시아지역 경질제품 최대 공급규모는 일일 1천500만배럴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아시아지역 경질제품 소비는 일일 1천828만배럴에 달해 공급규모를 초과하게 된다. 특히 2010년 경유, 항공유, 휘발유 소비 규모만 일일 1천455만배럴로 공급규모의 97% 수준에 달해 3개 제품의 아시아지역 수입규모는 일일 21만배럴(연 7천670만배럴)로 예상된다.

아시아 지역의 경질제품 수입 증가는 우리나라의 수출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GS칼텍스가 지난 9월 일일 5만5천배럴 규모의 No.2 HOU의 기계적 준공을 완료하고 상업가동에 들어간 가운데 No.3 HOU 건설도 계획대로 추진 중이다. 최종적으로는 아스팔트까지 경질석유제품으로 변환하는 No.4까지 준비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SK인천정유도 SK에너지로부터 양도 받은 6만배럴 규모의 RFCC 역시 내년 4월 조기 완공된다.

현대오일뱅크도 2011년까지 총 5만2천배럴 규모의 고도화설비 확충을 추진 중이며, 현재 연기됐지만 에쓰-오일 역시 고도화설비 확충 계획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만 일일 약 30만∼35만 배럴 규모의 고도화설비가 확충될 예정 이어서 그만큼 수출 여력이 증강되는 셈이다.

각 사별로 수 조원 단위의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는 국내 정유사의 고도화설비 확충은 치열해지는 국제 석유시장에서 고부가가치 설비를 통한 사실상의 '승부수'는 물론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해석 가능하다.

사실상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원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곧, 외화절감은 물론 경쟁력 향상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 경쟁력 갖춰

국내 정유사들은 오래 전부터 국내 기준보다 한 발 앞선 움직임을 보여 왔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석유제품 품질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상태다.

특히 정유산업 자체가 더 이상 내수 산업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 안정적인 공급을 넘어 세계의 심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휘발유와 경유의 황 함량은 국내 기준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황 성분이 거의 없는 무황(10ppm 이하) 수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휘발유 제품에 있어 O3(오존) 형성물질 및 각종 유해물질 발생의 원인이 되는 올레핀(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함량과 자연 상태에서 휘발돼 VOCs(휘발성유기화합물)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증기압을 줄이기 위한 움직임에 돌입한 상태다.

이에 따라 고도화설비 확충 등으로 휘발유, 등·경유의 생산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제품 수출 기준이 까다로운 미국, 일본, 유럽지역 등 선진국으로의 수출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계를 넘어서 미래를 대비하라

그동안 석유는 산업의 기초에서 전분야로 확산된 모습이다. 이를테면 석유에서 나온 석유화학제품은 각종 전자제품이나 섬유, 자동차 등의 소재로 사용되면서, 부가가치가 커진다.

원유만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거의 없다. 추가적인 부가가치 창출능력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그저 '자원부국'에 머물 뿐이다.

또 산유국의 석유회사가 큰돈을 번다고 그 나라까지 부강해지는 것도 아니다. 막대한 규모의 원유를 매장하고 있는 이란은 요즘 오히려 휘발유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베네수엘라 등도 '산유대국'일 뿐 선진국은 결코 아니다. 이들 산유국은 국제 석유가격이 비싸면 호황을 누리지만, 하락하면 침체를 면치 못한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석유가 나오지 않지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정유산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은 물론 업종간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원유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이를 이용해 더 부가가치 높은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하면 이 역시 바람직하다.

최근 정유사들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많은 실적을 거둔 잔치 분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위기의식'이 배어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 있는 부문을 키우지 않을 경우 수년 내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낙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또 하나의 몸부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복지를 증진시킨다는 긍정적 측면보다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부정적 측면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다. 선진국에서는 정유산업으로 인한 고부가가치 창출과 생활의 편리성이 강조되면서 좋은 이미지로 평가받고 있을 뿐 아니라 개발도상국들도 의식주 문제해결과 국가경제를 일으키는 기간산업으로 크게 각광 받고 있다.

과거 중동지역과 미국에서 대규모 유전 발견으로 시작된 정유산업 발전은 화학분야로 이어지고 있고 석유를 활용한 각종 제품이 생산되면서 단순히 천연소재를 유기합성이라는 화학기술을 이용해 대체하는 단계를 벗어나 새로운 기능과 성능을 갖는 첨단 신소재의 개발로 이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전자·자동차·의약 원료부터 최종제품 생산단계까지 정유·화학공정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다.

차세대 유망산업으로 꼽히는 IT(정보), BT(바이오), NT(나노), ET(환경)산업도 조금만 넓은 시야로 보면 그 시작은 정유산업을 기반으로 시작될 뿐만 아니라 자동차, 섬유, 제지, 의약 등 거의 모든 산업의 원료부터 최종 제품에 이르는 다양한 생산단계에서 정유·화학공정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발상의 전환만 이뤄진다면 못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업계 CEO을 역시 사업다각화와 이미지 변신은 물론 최첨단 산업으로의 탈바꿈을 지속적 발전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제 정유산업도 그동안의 단순 석유제품 생산에서 탈피해 시야를 넓혀야 할 때다. 국내 정유사들의 힘찬 도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업종간의 경계를 넘는 종합적인 사고가 절실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