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산업에 바란다”
박청원_산업자원부 석유산업팀장
먼저, 석유협회보를 통해 석유산업 관계자분들게 인사를 드리게 된 점을 기쁘게 생각한다. 저는 지난 8월말 산업자원부 석유산업팀장으로 부임한 후 1개월도 되지 않아 “석유산업에 바란다”라는 주제로 원고청탁을 받고 약간 주저하였다. 산업자원부에 20년 이상 근무하였지만 에너지부문의 경험이 많지 않은 저의 견해가 석유산업 관계자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燈下不明이라는 말도 있듯이, 한편으로 제가 오랫동안 석유산업팀에서 관련 업무를 수행하여 사고의 틀이 굳어지기 전에 객관적 입장에서 정책방향을 미리 한번 정립해 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이번 원고에 대해 독자 여러분의 건전한 비판과 합리적 정책제안을 부탁드리면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외형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우리나라의 석유산업은 지난 50년동안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성공적인 성장을 이룩하였다. 세계 13위의 경제규모, 석유소비량 7위(2,308천B/D)에 걸맞게 우리 정유업계의 정제능력은 세계 5위로서,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석유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화학산업 등 연관산업 발전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원유가 거의 전량 해외로부터 수입되고 있기는 하나, 우리의 정제설비와 기술을 바탕으로 꾸준히 석유제품 수출에 힘써오면서 석유제품은 이제 자동차, 반도체, 조선, 무선통신기기에 이어 5대 수출품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680억불의 원유 및 석유제품을 수입하였지만, 205억불의 고부가가치 석유제품을 수출하였고 석유화학제품의 수출규모(200억불)를 고려할 때 석유류 수입에 따른 무역적자규모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외형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현재 석유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국내외 환경변화는 우리 석유업계가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많은 과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원유생산 및 도입부문과 관련하여 산유국의 민족주의 강화와 이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은 우리석유업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라는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9월말 현재 Dubai현물가격은 월평균 기준으로 연초대비 40% 이상 상승하였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세계 원유생산의 40%을 점유하면서 유일하게 단기 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OPEC의 감산정책(소극적 증산정책)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OPEC뿐 아니라 러시아(04년 유코스그룹 국유화, 외국인 투자지분 제한 등), 아프리카와 같은 자원부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우리 정유업계는 안정적인 원유수급을 위해 해외자원개발과 국제협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기업은 전세계 31개국 104개의 원유·가스전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우리나라의 자주개발율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바, 정부는 상류부분 진출에 따른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지원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산유국과의 전략적 유대관계 강화를 위한 노력을 통해 산유국과 소비국이 상호 이익을 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갈 예정이다. 한편 이러한 해외자원개발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경우, 현재 80%를 상회하는 우리나라의 중동 원유의존도 심화나 원유도입시 아시아 프레미엄 등의 문제도 완화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고유가 상황에서 원유의 안정적 공급에 힘쓰는 한편, 업계는 석유대체에너지 개발에도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바이오디젤을 통한 석유대체 연료의 개발·보급 정책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 이러한 신재생 에너지 기술 개발이 큰 이익을 가져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 및 석유자원 고갈에 대비하여 차세대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것은 에너지기업의 당연한 과제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ExxonMobil, Shell, BP등 세계 유수의 석유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해 현재 이익의 일정부분을 재투자 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우리석유업계의 지속적 수익률 제고를 위해 분해시설과 탈황시설 등 고도화 설비의 확대가 시급한 과제이다. 세계적으로 원유의 중질화 경향 및 고도화시설의 부족으로 경질·저유황 제품과 중질·고유황 제품간의 가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의 고도화 설비율(76%)을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고도화율(22.4%)은 경쟁국인 대만(36%)이나 일본(39%)에 비해서도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업계는 고도화설비 확충을 위해 11년까지 13조원 이상의 신규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우리정유사 영업이익이 2.9조원이였으니, 영업이익의 상당부분을 고도화설비 확충을 위해 재투자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말이다. 정부는 정유산업이 안고 있는 이러한 현안해결을 지원하기 위해 설비투자에 대한 세제지원 등 가능한 지원방안을 업계와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다. 고도화 설비에 대한 차질 없는 투자를 통해서만이 우리 정유업계의 경쟁력 제고 및 지속적 수출 확대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석유산업 발전방향을 이야기할 때 유통부문에 대한 투명성 및 경쟁제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가장 많이 접한다. 아마 석유산업을 둘러싸고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이해관계자가 있고 소비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부분이 유통부분인 점이 그 이유인 듯하다. 실제로 석유유통부분에는 수평거래규제, 공급자표시제, 석유수입사, 면세유 유통 투명화, 유사 석유제품 단속 등 가장 많은 현안이 산적해 있는 분야인다. 동시에 현행 제도와 개선안 사이에 나름대로의 근거와 타당성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제도의 개편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수평거래 규제만 하더라도 수평거래 허용시 석유제품 품질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기 어려워 유통질서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현행제도 유지 주장과, 이미 상당부분 수평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원가절감을 위한 수평거래는 양성화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대립되고 있다.
석유유통부분의 개선 및 발전방안 추진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석유유통문제는 단순히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 아침에 바뀌기 어려운 소비자 인식과 문화의 문제라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10여년 이상 추진해온 셀프주유소가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제도에 대한 반대라기 보다는, 소비자 감정 및 우리의 상거래 문화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밖에는 없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업계의 의견을 종합·수렴하여 석유유통부분 개선을 위한 방안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립해 나갈 것이며, 앞으로 그 정책효과가 소비자 후생의 증가로 직결될 수 있도록 정책역량을 집중해 나갈 예정이다.
석유유통부분에서 정부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부분으로는 면세유 관리 및 유사석유제품 근절 분야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두 문제는 유류에 부과되는 세금을 피해나가기 위한 조세회피 측면이 강하다. 지난 7월말부터 8월말까지 집중된 유사석유제품 단속결과 유사휘발유의 70% 이상이 자취를 감추었고 이에 따라 정상제품의 판매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이를 보더라도 유사석유제품 생산·유통·판매업자는 조세포탈범과 다르지 않고, 유사제품 제조·사용자들은 성실한 납세자에게 조세부담을 전가하고 있음이 분명해 진다. 따라서 석유업계에서는 보다 높은 사회적 책임을 바탕으로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와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정부는 석유산업의 국제화를 촉진하여 우리나라가 동북아지역 석유 수송 및 저장의 중심지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석유시설의 밀집도가 높고 대형선박의 접안여건이 우수하여 석유제품을 저장·중계할 수 있는 훌륭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여건을 충분히 활용하여 우리나라가 중장기적으로 동북아 석유교역의 중심으로 발전하기 위해 업계와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고자 한다.
석유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하여 업계에 바라는 점이 하나더 있다면, 공정한 경쟁을 통한 기업 이미지 제고를 당부한다. 우리 석유산업이 경제발전 및 국민후생 증진을 위해 그 공이 많으면서도 다른 산업에 비해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 적이 있다. 잊을만 하면 반복되는 담합 등 불공정 관행, 고유가 상황에서 늘어나는 기업의 이윤 등이 그 원인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수익-비용 구조상 고유가 상황에서 이윤이 늘어나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고유가 상황에서도 국민과 고통을 같이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석유업계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고유가의 고통을 소비자와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석유업계의 모습을 통해서만이 비로써 석유업계는 국민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