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경영실적 들여다보니
"정유사라는 말 무색할 정도로 비정유부문이 수익성 좌우"

박일근_한국일보 기자

“정유가 내수 업종이라고요? 예전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죠. 정유사도 이젠 당당한 수출기업입니다.”

A정유사의 한 임원은 최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유사의 매출에서 내수보다 수출의 비중이 더 커지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정유 업체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매출액은 무려 36조원으로, 34조5,000억원에 그친 내수 부문 매출액을 추월했다. 전체 매출액에서 수출이 차지한 비중도 51% 기록했다. 정유업계 매출에서 수출이 내수보다 많아진 것은 처음이다.

이와 함께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 정유사의 비정유 부문(석유화학, 윤활유, 해외 자원 개발)이익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해 국내 정유사의 정유 대 비정유 매출액 비중은 81대19로 정유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에선 정유 대 비정유의 비중이 31대69로 오히려 비정유 비중이 훨씬 컸다. 이젠 정유사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러한 현상은 올해 들어서도 더욱 강화되는 추세이다.

정유부문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감소

SK㈜의 1분기 실적은 이처럼 ‘매출은 석유 사업이, 영업이익은 비석유 부문’이 이끄는 흐름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SK㈜는 올 1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늘어난 6조740억원, 영업이익은 44% 증가한 4,761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중 SK㈜ 매출의 7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석유 사업은 올해 생산량 확대에 따라 1분기로서는 최대인 4조84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영업이익은 오히려 2006년 1분기의 1,566억원보다 13%나 하락한 1,370억원에 머물렀다. 더 많이 팔았는데 이익은 더 줄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석유사업의 영업이익률은 전체 영업이익률 7%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3%에 머물렀다. 이처럼 석유사업 영업이익률이 안 좋은 것은 고가 원유의 투입 증가로 매출원가가 상승한 데다가 국내 시장의 경쟁 환경 심화로 영업비용 등이 증가한 데 기인한다.

이에 비해 화학사업과 윤활유 사업은 SK㈜의 1분기 실적 호조를 이끈 주역으로 부상했다. 먼저 화학사업은 전년 동기 894억원 보다 무려 155% 늘어난 2,276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분기 사상 최고의 성과를 거뒀다. 매출도 1조5,637억원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지난해 6월 가동되기 시작한 BTX 공장 증설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다 폴리머 제품 수요 증가, 아로마틱 제품의 시황 호조 등 시장 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활유 사업도 지난해 1분기보다 매출액은 43% 늘어난 2,490억원, 영업이익은 105% 증가한 677억원을 기록, 각 사업분야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고급 윤활유에 대한 유럽과 미주 지역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생산 물량도 일일 1만6,600배럴에서 1만9,000배럴로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SK㈜의 화학 윤활유 석유개발사업 등 비석유사업 매출은 전체 매출의 30% 정도로 석유사업 매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나, 영업이익은 3,391억원으로 석유사업 1,370억원의 2.5배에 달했다. 전체 영업이익에서 석유사업이 차지하는 비율도 28%로 작년 1분기의 47%보다 19%포인트나 하락했다.

또 SK㈜의 석유개발 사업은 올해 1분기에 안정적인 생산량을 유지하며 699억원의 매출과 392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SK㈜는 이와함께 3분기 연속 6조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데는 수출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 SK㈜는 올해 석유, 화학, 윤활유제품 등 주요 제품의 수출실적이 1분기로서는 처음으로 내수실적을 앞질렀다. 이들 제품의 1분기 내수 판매가 작년 동기보다 다소 줄어든 2조9,400억원으로 부진했던 데 반해 이들 제품의 수출 실적은 1분기 사상 최대치인 2조9,600억원을 올린 것. 이는 작년 동기보다 무려 41%나 늘어난 것이다.

GS칼텍스의 1분기 실적도 정유 부문 보단 석유화학 부문의 실적이 크게 호전됐다. 매출 4조5,631억원에 영업이익 2,342억원을 기록, 매출액은 전년 동기 4.9% 증가한 데 비해 영업이익은 67.7%나 증가했다. 이중 정유부문 실적은 매출 3조8,907억원에 영업이익 934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2.4%에 머물렀던 데 비해 석유화학부문 실적은 매출 6,724억원에 영업이익이 1,408억원에 달해 영업이익률이 20.9%를 기록했다. 비정유부문만 놓고 본다면 삼성전자는 물론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과 비교해도 부러울 게 없는 성적인 셈이다.

고도화시설이 수익성 제고에 효자

에쓰-오일은 1분기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 3조3,430억원, 영업이익 3,959억원으로 분기 사상 최대 이익의 기록을 세운 것. 특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1% 가량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은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무려 79%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에쓰-오일의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1분기 6.4%에서 올 1분기엔 11.4%까지 올라섰다. 업계에선 에쓰-오일의 경우 국내 정유사 중에서 고도화 비율이 32.4%로 가장 높은 것이 수익성 제고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도화 비율이란 값싸고 질 낮은 벙커C유에서 고부가가치의 휘발유ㆍ등유ㆍ경유 등을 뽑아내는 시설인 고도화 설비의 비중을 일컫는 것으로 설비투자비가 많이 든다. 에쓰-오일의 경우 다른 정유사가 유통망 확보에 열을 올릴 때 고도화 설비에 집중투자했고, 국제 유가가 오르며 고도화 설비의 수익성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정유사도 최근 고도화 설비를 증설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처럼 1분기 정유 업계 실적을 보면 석유 부문보다 비석유 부문 즉 석유화학이나 고도화 설비를 통해서 이익률을 제고시켰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석유사업만을 영위하고 있고 고도화 비율도 낮은 현대오일뱅크의 경우에는 1분기 매출 1조9,982억원, 영업이익 649억원의 성적을 올리는 데 그쳤다는 점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가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젠 글로벌 에너지 종합 회사로 체질을 바꿔야만 한다”며 “수익률 한계에 부딪힌 내수 시장 중심의 정유 부문에서 탈피, 석유화학이나 해외자원 개발 및 고도화 설비 등에 집중 투자하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